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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쓴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백제의 마지막 충신 계백 장군의 황산벌 전투>


그렇게 백제 계백 장군은

신라 김유신 장군의 5만군대에 맞서

결사대 決死隊 (죽기를 각오하고 있는 힘을 다할 것을

결심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부대나 무리) 5천명을 뽑아

신라군에 대항하면서 말했습니다,,


<계백>하나의 나라의 인력으로

당나라와 신라의 대군을 당해내야 하니

국가의 존망을 알 수 없다


내 처와 자식들이 포로로 잡혀

노비가 될 지 모르는데,


살아서 욕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쾌히 죽는 것이 낫겠다


계백 장군은 말을 마치고

마침내 자기의 처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황산의 벌에 이르러

세(3) 진영을 설치하고

신라의 군사를 맞아 싸울 때

(계백 장군은) 여러 사람들에게 맹세했습니다


<계백>옛날 구천 句踐 (중국 춘추시대 말기 월나라 왕)은

5천명으로 오나라 70만 군사를 격파하였다


오늘은 마땅히 각자 용기를 다하여 싸워 이겨

국은 國恩 (나라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드디어 (백제군은) 힘을 다하여 싸우니

한 사람이 천 사람을 당해냈습니다


신라 군사가 이에 물러났습니다

이처럼 진퇴 進退 (나아감과 물러감)를 4번이나 했습니다

그러나 (계백 장군은,,)마침내 힘이 다하여 죽었습니다


<라봉봉>계백 장군은 백제 마지막 충신,명장이자

한국사의 위인으로 애초에

신라 김유신 장군의 5만 군대와 결전에 임하기 전

신라 김유신 장군의 인물됨이나 명성은 이미

유명했을 것이고

또 군사의 10배 차이(5000 vs 50000)라는 숫적 열세와

신라의 왕성함 그리고 황산벌 5만 신라군 이외에도

당나라 13만 군의 공격 등

온갖 불리한 상황이었고

이에 이미 지는 전쟁임을 알고

가족들을 죽이고 전장에 나선거 같습니다,,


계백 장군이 이끈 백제군은

만약 백제 귀족들이 군사를 내어서 지원했다면

5천군사보다 더많은 병력으로 싸우는게 충분히 가능했겠으나

결국 멸망의 상황에서도 5천 군사로 싸웠는데

이는 백제 전체 전력이 아닌

백제 왕실에서만 낼 수 있는 최대 군사로 보여지는데

즉 소수였으나 백제 왕실 최정예군으로 보여지고


황산벌 黃山野 , 즉 벌판,들판,평지 野 에서

벌어진 전투라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 계백 장군은 산 위에 진을 치고 싸웠다고 하고

상식적으로도 10배 넘는 적과 벌판에서 교전하면

포위되서 붕괴되기에

평지전은 아니었고 구릉지대(산지와 평지의 중간)에

작은 토성과 목책(나무 울타리) 등을 세워

신라군의 공격을 저지하는 전투가 벌어졌을 거라고

이야기 되고 있고 기본적으로 신라 공격군을

방어해서 물리친다기 보다는

신라군의 진격을 최대한 저지하고 지연시키려 하는

계획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5만 신라군은 당나라군과 신속히 합류가 목적이어서

하루라도 빨리 가야해서 지체할 틈이 없었고

(당나라군에 보급,쌀배달,,을 가야했다고도 이야기되나

실제로 당나라군은 수군 함대로 병력과 물자를

수송했기에 신라군의 군량보급이 필요 없었고

신라군이 당나라에 군량보급을 한 경우는

겨울철 항해가 불가능할때 등이었다고도 합니다)


이에 백제군은 백강과 탄현의 험준한 요새,

방어라인이 이미 뚫렸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황산벌에서 신라군을 막아내서

최대한 당나라군과 신라군의 합류를 저지시키려 했고

당나라 군 역시 대군이지만 그만큼 많이 먹기도하고

식량이 떨어지면 돌아가야 하거나 전세가 불리해 지기에

백제 계백 장군과 신라 김유신 장군 두 한국사의 위인,명장들은

어느 한쪽도 물러서지 않고 전력을 다해 싸웠고

백제 역시 밀리면 곧 백제 멸망급 위기였기에


항복했다거나 하는 기록은 없고


'마침내 (계백 장군은) 힘이 다하여 죽었다'


라고 나오는 거로 보아서

끝까지 신라군에 분투하다가 사망한 거로 보입니다,,

계백 장군과 5천 결사대는 백제의 존망을 걸고

싸웠고 결국 전멸하게 됩니다,,(좌평 충상, 상영 등

20여 명이 포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백제 계백 장군은 결국

다른 백제 귀족들은 도망치거나 도피하는 상황에서

불리한 상황임에도 끝까지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기에

백제의 충신이자 한국사의 위인으로서 이야기 되고 있고

신라 김유신 장군 역시 삼국통일의 주역이자 한국사의 위인이기에

황산벌 전투는 두 한국사의 위인들의 어느 한쪽도 물러서지 않는

한국사의 전설적 전투가 되었고 백제 700년 왕조의

마지막 충신 계백장군은

충신의 대명사로 이야기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백장군의 인생>


계백 장군에 대한 다른 이야기로는

오늘날 고양시,행주 쪽을 옛날에는 개백현 皆伯縣

이나 계백현 階伯縣 이라 불렀는데

계백장군의 조상이 계백현 땅을 분봉으로 받아서

계백 장군의 이름이 계백이라는 이름이 됬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혹은 계백지역을 땅으로 받아서

계백을 성씨,계백씨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계백은 호라는 이야기도 있고

조선시대 지리학자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계백 장군은

백제 수도 부여현 출생의 사람이며

그의 이름은 승 承 이고 성씨는 백제 왕실과

동성 同姓 (같은성) 즉 부여씨였다고 합니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 에서도

이와 같은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고 하고

이런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계백 장군의 본명은 부여승이고

계백은 계백 장군 집안의 식읍,분봉이었기에

가문의 상징 지역을 호나 이름 등으로

이야기 해서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 같이

오늘날 계백 장군으로 알려지게 된 거 같습니다


다른 계백 장군의 이야기로는

계백 장군는 사비 충화에서 태어나서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고

낮에는 천등산을 오르며 무술을 연마하다가

밤이면 글을 읽었다고 합니다


계백 장군은 궁술과 마술 馬術 (말타기)에 뛰어났고

학문에도 뛰어나서 이로 인해 좌평 다음인 정 2품 달솔 벼슬에

올랐다고도 합니다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 장군은 월나라 구천이 5천명으로

오나라 70만 군사를 격파했다는

말등을 했기에 계백 장군은 무예 이외에도

역사나 다른 학문에도 밝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백제에 위기가 닥치자

5천 결사대를 뽑고 자신의 처자를 죽이고

황산벌 싸움터에 나가서 전사했고

곧 백제는 멸망했습니다,,


계백 장군은 이에 성충,흥수와 백제의 3충신으로 불리며

나라에 대한 충성을 끝까지 지킨 충절의 표상이 됬고

계백 장군의 의로운 죽음을 보고

백제유민들이 시신을 거두어 은밀하게 가매장했다고 합니다


계백 장군의 유적지는 충남 논산시(황산벌) 부적면 신풍리에 있다고 합니다


<백제 3명의 충신 성충,흥수,계백을 모신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여 삼충사 三忠祠 의 계백 장군 영정>


<라봉봉>계백 장군은 백제의 명장이자 지식인이었을 것이고

그런 그가 신라 불세출 不世出 (다시 나타나지 않을 만큼 뛰어남)의

명장이었던 김유신 장군의 그것도 10배나 많은 5만 군사를 상대로

이미 불리한 전황임을 모를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족을 죽이고 결사의 각오로 전장에 나선거 같고

그러나 결국 끝내 황산벌 전장에서 사망했고

백제 좌평 충상, 상영과 20여 명이

포로가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럼에도 같이 온 백제 지휘부는 계백 장군과 달리

살아남은 길을 선택했고 계백장군은 끝까지 신라군에 맞서다가

죽게 된것 같습니다,,


구차한 삶과 의로운 죽음

둘다 극단적이기에 그 어떤것도 옳다 할 수는 없겠지만

결국 계백 장군은 의로운 죽음을 택했고

백제의 마지막 충신으로 이야기되나

700년 백제사의 마지막 인물이었고

그렇게 답답하고 우울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담대하게 남쪽으로 내려왔던

온조왕과 그의 가족,부여,고구려계 인물들이 세운 나라인

백제 700년 왕조는 근초고왕때 동아시아에

대국 大國 으로 우뚝 섯고

먼 바다를 너머 대륙(고구려 만주 요동 왼쪽의 요서지방) 大陸 과

왜(일본)를 경략(다스림)하고

뛰어나고 찬란한 예술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는

무왕때 마지막 전성기가 끝나고

의자왕때에 이르러 이렇게 황산벌의 계백 장군의

결사항전을 마지막으로 백제 700년 왕조가

허망하게 무너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강유역(한성백제)과 충청남도 공주시(웅진백제),부여군(사비백제)

에는 그런 백제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고

옛 도성의 풀들을 보고 쓸쓸해 한다는

옛 시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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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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