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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차차웅 8년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었습니다


남해 차차웅 11년

왜인(일본, 당시에는 일본 해적이라는 뜻의

'왜구'라는 말보다는

왜인이라 했던거 같습니다)이 병선 100여 척을 보내서

해변의 민가를 약탈했습니다


6부(신라 여섯 마을, 초기 신라는 여섯 마을,

6부의 연합체였습니다)의 정병(강하고 굳센 정예 군사)을 보내서

이를 방어했습니다


낙랑(중국)이 우리나라(신라)의 내부에 빈틈이 있다고 보고

금성(신라 수도)을 공격해오니 상황이 위급했습니다


밤에 유성(별똥별)이 적의 진영에 떨어지자

적병이 두려워 하며 퇴각하다가

알천가에 주둔하면서

돌무더기 20개를 쌓아놓고 물러갔습니다


신라 6부 군사 1천명이 그들을 추격하다가

토함산 동쪽으로부터 알천에 이르러

이 돌무더기를 보고는

적병이 많은 것으로 알고 추격을 멈추었습니다


<라봉봉>그렇게 초기 신라는

한국 동남쪽 끄트머리인 경상도 경주쪽에 위치해 있었음에도

한(마한,백제),중(낙랑),일(왜)

온갖 세력들의 집단적 견제를 받았던 나라였고

이 작고 작은 약소국이 이후 삼국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게 되었다는 사실이 정말 특이합니다


신라는 한국 동남쪽 구석에 위치해있었기에

당대 선진국이었던 중국과의 교류가

해로,바닷길로 가까운 백제나

육로,지상길로 가까운 고구려에 비해

어려워서 문물의 수용이나 나라의 발달이

가장 늦었고


동화 아기 돼지 삼형제 같이 삼국중 가장

늦게 발전했음에도 다른 첫째(전성기 순서로는 백제),

둘째(고구려) 돼지형제들이

일찍 지푸라기집,나무집을 지으며 놀때

(가장 똑똑하고 부지런하다는,,)막내돼지(신라)

혼자 묵묵히 벽돌집을 지으며

가장 늦게 지은 집이었으나

가장 튼튼한 집이었기에

이후 늑대의 공격을 방어해내고

아기 돼지 삼형제 모두 막내돼지네

지붕 아래에서 살게됬고

신라 역시 마찬가지로 백제,고구려보다는

전성기가 늦었으나 이후 한국은

신라라는 나라로 통합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드라마나 소설,만화에서도 원래 주인공이 처음엔

매우 찌질하고 약하다가 점점 깨달음을 얻거나

각성하며 강해지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신라 중대에 신라는 정말 강한 나라가 되었지만

그 전에는 겨우겨우 어렵게 연명하는 시기가 길었습니다,,


남해 차차웅 13년

7월 가을

그믐(달의 마지막 날) 무자일에

일식이 있었습니다


남해 차차웅 15년

서울에 가뭄이 들었습니다


7월 가을

메뚜기 떼가 나타났습니다


(메뚜기는 누리,황충이라고도 불렸고

메뚜기 떼들은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며

곡식을 대량으로 먹어치우는 동물로

당대에는 자연재해,대재앙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메뚜기 때로)백성들이 굶주리므로

창고를 풀어서 백성들을 구제했습니다


남해 차차웅 16년

2월 봄

북명 北溟 (북쪽의 큰 바다라는 뜻으로 삼국시대 기록에서

종종 나오는 정체불명의 나라인데 북명이

동예나 동북부여라고도 합니다)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 濊王 (예맥왕이라고도 합니다)의 도장을 주워서

이를 남해 차차웅에게 바쳤습니다


남해 차차웅 19년

전염병이 크게 돌아서

사람이 많이 죽었습니다


11월 겨울

얼음이 얼지 않았습니다


남해 차차웅 20년

가을

금성이 태미 성좌에 들어갔습니다


남해 차차웅 21년

9월 가을

메뚜기 떼가 나타났습니다


남해 차차웅이 붕어(사망)했습니다


사릉원 蛇陵園 에 장사지냈습니다


<라봉봉>그렇게 남해 차차웅은 시조이자 건국왕

혁거세 거서간같이 큰 기록들은 많이 없는듯 하나

무난하고 어진 성품의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아버지 혁거세 거서간이 이뤄놓은 나라를 물려받아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방식을 따라하며

나름 조용하고 무난한 치세를 이어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큰 기록이나 큰 치적같은 것은 없는거 같고,,

대신 그렇다고 큰 방탕이나 사치등도 안한거 같아서

무난하고 평범한 군주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이고

이런 군주들이 좋은 세상에서 태어날때는

무리없이 나라와 왕위가 다음으로 이어지게 되나

급변하는 정세나 타국과의 압도적인 불리한 격차등에서

이런 군주들이 나올 경우

조선 고종,광무황제 같이 망국의 왕이 되거나 할 수 있었고

(고종 역시 망국의 왕에 비판도 있으나

사실 크게 잘한것도 못한것도 없는 무난한

군주였던거 같습니다)


나름 남해차차웅은 아버지이자 선대왕인 혁거세 거서간이

좋은 정치를 하며 나라의 기틀을 잡아 놓았기에

외국의 공격에도 방어를 성공해내고

나름 무리 없이 국정을 운영하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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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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