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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깨물어 이가 많아서 왕이 된 유리 이사금, 이사금의 유례>


신라 3대왕 유리 이사금(이름은 박유리로

성과 이름을 특별히 쓴 이유는

신라는 보통의 나라들과 다르게

박,석,김씨 세 성의 왕이 있었던 특이한 나라였습니다


또 신라 유리 이사금은 유리왕이라고도 불리고

고구려 2대왕 유리왕,유리명왕과 발음이 같으나

고구려는 맑은 유 瑠 유리,구슬 이 璃 자고

신라는 선비 유 儒 다스릴 이 理 자라 한자가 다릅니다

별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 이름도

맑은 구슬, 바람의 나라 고구려 다운 이름이고

다스리는 선비, 철학과 선비의 나라 신라 다운 이름입니다)


재위기간 33년 24~57년


유리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남해(신라 2대왕 남해 차차웅)의 태자이자

어머니는 운제부인(남해 차차웅의 왕비)이며

왕비는 일지 갈문왕의 딸이었습니다


<김부식>혹은

왕비의 성은 박씨이며

허루왕의 딸이라고도 한다


애초에 남해(남해 차차웅, 박남해)가 사망했을 때

(그의 아들이자 태자였던)유리(박유리)가 당연히 왕위에

올라야 하는데


유리는 대보(신라 재상, 국무 총리 격) 탈해(석탈해)가

본래 덕망이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왕위를 그에게 사양했습니다


(당대에는 부자 父子 [아버지와 아들] 상속이라는 개념이

확고할 때도 아니었고

유리는 남해 차차웅, 왕의 아들이었지만

신라의 정치는 석탈해가 국정을 운영하고 있었으므로

석탈해에게 왕위를 사양했던거 같습니다,,)


이에 탈해는,,


<석탈해>임금이라는 자리는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치아)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들(박유리와 석탈해)은 시험삼아

떡을 깨물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유리의 이 자국이 더 많았으므로

즉시 측근들과 함께 그를 받들어 왕위에 오르게 하고

왕호를 이사금이라 하였으니

옛부터 전해오는 말이 이와 같았습니다


<김부식>김대문(통일신라 인물)은


'이사금은 방언(사투리,고유어)이다'


라고 말했다


'이사금'은 곧 '이의 자국'이란 말이다


이전에 남해(남해 차차웅, 박남해)가 죽음을 앞두고

아들 유리(박유리)와 사위 탈해(석탈해)에게


'내가 죽은 뒤에는

너희들 '박'과 '석' 두성을 가진 사람 중에

나이 많은 자가 왕위를 이으라'


고 말했었다


그러나 후에

김씨 성이 또한 흥기 興起 (세력이 왕성해짐)했으므로

세 성씨들 중에서 나이 많은 자를 선택하여

왕위를 잇도록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왕을 이사금이라고 불렀다


<라봉봉>아무리 삼국 초기가 왕위 부자상속 개념이

확고히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당대에도 역시 없던게 아니고 '확고히' 없었던것 뿐이지

왠만해서는 부자상속이 이뤄졌을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석탈해 역시 사위에다가 국가 재상직에서 일찍이

나라를 운영하며 다음 후계로 단지 혈연적 관계만 안될 뿐이지

암암리에 이야기 되다가 역시 그럼에도 아들,태자였던 박유리가 이었던거 같고

떡,이사금 이야기를 하기 전에

비록 구실은 떡을 깨물어서 이의 수로 왕위에 올랐다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미 석탈해 역시 여러 실정은 장악하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딱히 왕위를 이을 명분은 없어서

괜히 무리하지 않고 태자였던 박유리에게

왕위를 주게 된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재상직으로도 신라의 실권을 장악한 석탈해였으나

원래 역사에서는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렇게 되기도 하고 도중에 죽기도 하고 그런 경우게

되게 많았는데 이게 꼭 욕심이나 부정적으로 볼것만이 아닌

더 좋은 생활수준으로 가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지금은 혈연으로 운영되는 왕정시대도 아니고 저는 개인적으로

능력이 있다면 마땅히 승진이 가능하고

또 능력이 부족하면 누구든간에 자리에서 나오는게 맞다고 보고

냉정하거나 그런게 아니라

이런게 꽉 막힌게 아닌 수직,수평이동이 원활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보고있습니다


아무래도 왕정 국가는 이런게 원할하지 못했고

오늘날 민주정이 실행된지도 사실 우리나라만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게 아니라

역사에서 볼때는 세계사적으로 모두 왕정기간이 더 길었기에 서양이던 동양이던

아직도 21세기 오늘날에도 왕정적 모습들이 정치에서 나타나고 있기에

여러 문제들도 있으나 역시 그럼에도

진짜 왕정이었던 옛 시대는 이런게 오늘날보다 더 원활하지 못했고

오늘날은 민주정이기에

왕정에 비해서는 이런게 더 원활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약,비유하면,, 사회에서 올바르게 성실하게 가는 애들은

빨리빨리 올려주고

불법을 저지르고

반칙하는 애들은 빨리빨리 내려주며 반칙하지 못하게 하고

쉬게 해주는게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건강한 사회,선진국일 수록 이게 빠르고

건강하지 못한 사회는 이게 느리긴 한데

끝내 올바르고 성실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속도의 차이는 다를지언정 변함없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다시 신라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렇게 석탈해 역시 신라 사회에서 왕위 계승권이 있다면 크게 있는 인물이었지만

역시 혈연적인 한계가 있어서

박남해 차차웅의 아들 박유리가 왕위에 오르게 된거 같고


더 현명한 사람을 가리기 위한 떡물기 시험은

명분이었던거 같습니다,,


이번엔 떡물기 시험 이야기로 돌아가서,,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치아)가 많기에

떡을 깨물어 더 많은 이 자국이 있는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로 해서 박유리와 석탈해가 떡을 물어서

박유리가 이가 더 많아서 왕위에 올랐다고 하는데


저도 옛날엔 이가 많다고 현명한게

말도안되는 소리라고 생각됬으나

요즘 인터넷 속어로 '틀딱'이라고 노인들을

비하하는 말들이 나타나는데

늙어서 이가 없어서 틀니가 딱딱거린다고 하는

경거망동한 노인 비하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런 얘기들과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


이런 한국에서 떠도는 말들이

사실 비과학적인거 같아도

과학적으로 생각해보면

어렸을때는 별 문제가 없는거 같아도

나이가 들면서도 건강을 유지하려면

역시 좋은생활습관과 좋은 환경, 돈이 있어야 하는데

물론 예외도 있겠으나

치아나 머리를 유지하려는 것도

좋은 영양섭취와 생활습관이 있어야

더 잘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되고

실제로 공짜를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는 말이

공짜로 무언가를 준다는 것은 하자가 있거나

미끼 상품일 수도 있기에 물론 저도 공짜는 좋아하지만,,

함부로 공짜만 밝히면 질나쁜 상품이 있을 수도 있고

정말 많은 시간,체력낭비가 있을수 있기에

이는 건강의 악화를 가져올 수 도 있고

나름 일리가 있는 속어 같기도 하고


나이가 있음에도 치아나 머릿결을 유지한다는 것도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많은 좋은 건강습관이 있어야 하기에

이가 많으면 현명하다는 말이

옛날같이 말이 안되는 소리만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또 돈이 많으면 역시 건강할 확률이 높겠지만

단순히 돈만 많다고 건강한것도 아니고

돈이 있는 사람들도 저가 보기에 좋은 건강 습관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여럿 본거 같고

건강을 유지한다는 것은 물론 돈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단순히 돈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나이가 들어서도 치아가 많이 남아있다는 것은

젊었을때부터 꾸준히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해온 것이고

건강하다는 것은 역시 지혜롭고 현명하다는 것과도

정비례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기에


'이가 많은 사람이 현명하다'


라는 말이 이제는 우습게만 생각되지는 않은거 같습니다


그렇게 신라에서는 이가 많은 사람을

'이사금'이라고 부르게 됬고


나름 신라신하들도 석탈해가 유능한 인물이긴 했어도

혈연은 아니었기에 꽤 거리감,이질감을 느꼈을거 같고

또 기록들로 보아서

역시 부자상속 개념이 확고하지는 않았어도

혈연이 뒤를 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기는 했던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사금'이라는 말은

신라에서 왕을 부르는 말로 쓰였는데

이후 '임금','임금님'의 어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혹은 한국 시조 단군왕검의 '왕검'이 그런 관계가 있지 않나하는

설도 있기는 하나

이렇게 서양 카이사르,카이저

이집트 파라오, 중국 황제, 일본 덴노같이

한국은 왕을 고유적 표현으로

임금,임금님이라고 했던거 같고

이는 신라 이사금에서 나왔다고 추측하고 있다고 합니다

떡물기 이야기는 되게 민속적이기도 해서

신라 백성들에게도 특히 퍼져나가

이사금이 임금의 어원이 되지 않았을까 싶고

그래서 저도 고구려나 백제 이야기를 쓸때

임금이라는 표현은 최대한 덜 넣고

태왕(고구려),어라하(백제),건길지(백제)등의

고구려,백제의 고유 용어를 쓰려 했습니다,,

신라는 방대하고 길고 되게 보수적일거 같고

실제 그런 느낌도 있으나

대신 삼국을 통일하고 한국의 중심원형이

됬기에 되게 익숙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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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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