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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2대왕 남해 차차웅(남해왕)

재위기간 19년 5~24년


남해 차차웅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김부식>차차웅 次次雄 (둘째 차, 둘째 차, 수컷 혹은 두목 웅) 을

혹자는 자충 慈充 (사랑 자, 충만 충) 이라고도 한다


김대문 金大問 (통일신라의 인물) 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충은 방언(사투리)으로 무당이라는 뜻이다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주관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무당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다가

마침내 존경받는 어른을 자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라봉봉>오늘날 무당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도 있을 수 있겠으나

한국에서는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실제로

왕을 보필하던 사무 師巫 (스승 사, 무당 무)라는 무당 벼슬직이 있었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실제 종교의 역활은 미신적인 이미지라기 보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인간 윤리에 대한 탐구와

자아실현의 목적이 있고 또 올바른 길을 걷게하는

길잡이가 되어준다고 생각하는데


고등 종교라 불리는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무당이 그 역활을 대신하고 있었기에

차차웅은 단순한 무당이라기보다 또 당대 무당의 이미지는

현대 오늘날같이 대부분 산속이나 음지에서 활동하는 이미지라기 보다는

한국(삼국)에 불교가 들어온 이후 불교계에서

승려들이 국가적 활동을 하며 나온 것처럼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의 무당은

엄연히 국가적인 활동을 하거나 양지에서 활동하는 입장이었기에

사람들이 무당을 보는 모습은 오늘날 점을 치거나만 하는

모습의 무당이라기 보다는

불교의 승려,스님들 같이

국가적인 스승이기도 하고 존경받는 어른이기도 한 모습이었을 것이고

그렇기에 차차웅이라는 칭호는 무당이라 해서

오늘날 이미지의 속되거나 한 그런 모습이라기 보다는

국가적 제사장의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무당의 이미지는 점치기나 운세등을 알아보는

모습만이거나 희화화된 면도 있는데

실제 한국인들에게 그만큼 매우 초기 한국의 역사와 함께한

종교,도덕을 담당한 직업들이 무당이었고

그만큼 친숙하기도 하고

한국인들의 윤리적 정신세계의 밑바닥에는

영어로 샤머니즘 shamanism 이라 불리는

무당,토속 신앙이 깔려있다고 합니다


남해 차차웅은 혁거세(신라 시조, 신라 1대왕 혁거세 거서간, 박혁거세)의

적자(정실 부인, 본처가 낳은 아들)입니다

즉 그의 이름은

박남해(족보에는 박유 朴悠 라 적혀있다고 합니다) 입니다


그(남해 차차웅)는 체격이 장대하고

성품이 침착하였으며

지략이 많았습니다


남해 차차웅의 어머니는 알영부인(혁거세 거서간의 왕비,정실부인) 이며

남해 차차웅의 왕비는 운제부인 雲帝夫人 입니다


<김부식>아루부인 阿婁夫人 이라고도 한다


남해 차차웅은 아버지 혁거세 거서간의 뒤를 이어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 해를 원년 元年 (남해 차차웅 1년) 으로 했습니다


<김부식>논하건대

임금이 즉위하고

해를 넘어서 원년이라 칭해는 것은

그 법이 춘추(역사 혹은 중국 역사책 춘추라는 뜻 같습니다)에 상세하니

이는 선왕의 고치지 못할 법전이었다


이훈 伊訓 (유교 경전 서경)에는


'성탕(중국 탕왕의 다른 이름으로 탕왕은 어진 통치자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이 돌아가시니

그 해를 곧 태갑 원년이라'


하였다


그러나 '맹자' 에는


'탕(탕왕)이 돌아갔는데

태정은 미립하고 외병은 2년이고

중임은 4년이다'


하였으니

아마도 상서에는 탈간이 있고

정의는 오설인듯 하다


혹자는 말하기를


'옛날에는 임금이 즉위하면

혹은 달을 너머 원년이라 칭하고

혹은 해를 넘어 원년이라 칭하였다'


하였는데

달을 넘어 원년이라 칭한 것은


'성탕이 돌아가시니

태갑 원년이라'


한 것이 곧 이것이요


맹자에


'태정이 미립하고'


한 것은

태정은 임금 자립에서 못하고 죽었다는 말이요



'외병 2년' 이니 '중임 4년' 이니 한 것은

모두 태정의 아들인

태갑의 두 형이

혹은 2년, 혹은 4년을 살다가 주겄으므로

태갑이 탕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까닭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사기(역사책)'가

중임과 외병을 2군으로 기록한 것은

잘못이다


그러므로 전자는 선군이 돌아간 해로써

즉위 원년이라 정한 것이니 옳지 못한 것이고

후자는 가히 상인의 예의 합당한 것이라 할 것이다


<라봉봉>원년에 대한 이야기인데

원년은 임금이 처음 즉위한 해를 1년대신 원년 元年 이라고 합니다

김부식님은 삼국사기를 쓰실때

중국의 사례들을 들며 이런 이야기를 쓰셨는데

크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거 같아서

따로 해석은 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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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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