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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해 이사금 9년

3월 봄

탈해 이사금이 밤에 금성(신라 수도)

서쪽 시림 始林 (비로소,먼저 시 + 수풀 림)의 나무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엇습니다


<닭>꼬끼요 !


날이 샐 무렵에 호공을 보내서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도록 했습니다


호공이 가보니 그곳에는 나무가지에 금빛이 나는

작은 상자가 걸려있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있었습니다


호공이 돌아와 이를 보고했습니다

탈해 이사금은 사람을 보내서

그 상자를 가져와서 열게 했습니다

그 속에는 어린 사내아이가 들어있었고

그 아이는 자태와 용모가 뛰어났습니다


탈해 이사금이 기뻐하며 측근들(혹은 좌우 대신들)에게


<탈해 이사금>이 아이는 어찌 하늘이 나에게

아들로 준 것이 아니겠는가 !


라고 말하고

그 아이를 거두어 길렀습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났습니다

그의 이름을 알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금빛이 나는 상자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씨라고 했습니다


시호를 고쳐 계림 鷄林 (닭 계 + 수풀 림 즉 닭 숲) 이라 부르고

이를 국호(나라 이름)로 했습니다


<라봉봉>신라는 그렇게 서라벌,계림 등으로 불리다가

이후 지증왕때

'새롭게 사방을 망라한다(포함한다, 그물로 덮는다)'는

'신라 新羅 '라는 이름으로 고정되고 우리에게

신라라는 이름으로 전해져오나

이렇게 여러 국호가 있었고

실제 고구려는 장수왕대부터 이후 고려라 불렸고

백제는 일본 日本 이라고도 불렸으며(왜 倭 가 이를 차용해서

일본의 기원이 됬습니다,,)

신라 역시 이렇게 여러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는 지역 방언,사투리의 차이나 특색들로 인해

생긴 일들 같고 오늘날 우리에게는

고구려,백제,신라로 이야기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림이라는 한국어 풀이로는

태초의 숲 이런 숲에서 닭 소리에

금궤가 발견됬고 거기에서 아이가 나왔는데

그 아이는 금 金 상자에서 발견됬기에 김 金 씨의

시조가 됬고

태초의 숲 시림은 닭의 숲 계림이 되었고

계림은 초기 신라의 나라 이름이 되었습니다


분명 설화이고 과학적으로 해석해본다면

김알지는 외부인 세력으로 추측되는거 같고

오늘날 '흉노족 신라왕족설'이 있는데

신라에 북방 기마유목민족들이 유입되었고

이들이 김씨 성의 시조라는 이야기라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신라 시조인 박씨와 두번째로 왕이된 성씨인 석씨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에 외부 유목민이나 외부 유이민 세력인

김씨 일족들은 신라사회에 적응하되 다르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말들이 있듯이

박씨와 석씨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에 대비되게

닭을 일족의 상징으로 삼았을 수도 있는거 같고

다른 해석으로는 김씨가 박씨와 석씨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그들의 토템인 닭과 연결시켜서

나타냈다고 해석한다고도 합니다


이후 김씨들은 왕이 되고

이후 신라는 사실상 김씨 왕조가 되며

이후 김씨들은 신라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성씨가 되게 됬습니다

이렇게 신라는 박씨,석씨,김씨들이 모두 출현하게 되었고

김알지 역시 정말 황금궤짝에서 나온 아이라기 보다

황금을 숭배했던 북방 기마유목민족들의 이주민 집단의

대표거나 했었던거 같고(실제 기마민족[스키타이인]들은 황금을 숭배했고

이는 신라의 금관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신라 사회로 편입되며

신라에서 벼슬등을 받고 신라에 정착하다

신라 주요 성씨로 떠오르며 이후 왕이 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김알지는 북방 기마민족인 흉노족 왕자 김일제라는 사람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실제 신라에서 나오는 황금 유물들이

기마민족의 것들과 일치한다는 점 등에서

토착 신라세력들에 이런 북방 기마민족의 유입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기도 어렵고

고대 한국인들의 활동 변경은 상당히 넓었는데

이는 이전 조선 오늘날 고조선이라 불리는

단군할아버지가 세운 나라의 영역이 매우 넓었기에

조선이 멸망한 이후에도 한국인들은 광할한 영토에서

교류하거나 했을 것이고

왜 북방민족이 한국 동남쪽 구석의 신라까지 왔을지는

미스터리한 부분이 있으나

당대에는 북방에서 고구려가 완전히 북방을

장악하지는 못했을 때라

국경선들이 많이 물렁물렁 할때였고,,

충분히 외국 이민세력이 북방 영토를 거쳐서

신라로 들어왔을 수가 있을거 같습니다


오늘날 이에 경상도민들을 흉노족이라

놀림,비하식으로 부르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실제 흉노세력이 경상도로 유입되었던거 같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특히 경상도 지방의 ' ~~했노 ? ' 이런 사투리에서

'노'자 발음이

흉노의 노자에서 나온게 아닐까 싶고

흉노족과 연관이 있는게 아닐까 싶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또 경상도 지역의 거친 억양의 사투리들이

기마민족 특유의 강하고 용맹한 기풍이 있었던

흉노족에서 발현된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또 저도 언양 김씨이고 신라 마지막왕 경순왕과

저가 현재 주로 참고하는 우리 고전 역사서인

삼국사기를 편찬하신 김부식님의 후손이고

경상도를 여러번 방문해 봤지만

신라역사와 경상도 지역은 특유의 색이 강해서

좀 기괴한 면이 있습니다(물론 수도권 지역과는 다른 특색과

좋은 기억들이 많긴 했습니다,, 헿헿)

오늘날 한국의 도 경계는 옛날 한국 고구려,백제,신라의

영역들과도 비슷해서인지

한국의 도마다의 특색이 있고

특히 충청,전라도와 경상도가 그 색이 특히 강한거 같은데

이는 백제(충청,전라도)와 신라(경상도)의 주된 영역이었기에

그 지역 사람들은 각각의 조상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그런 전통들을 유지하기 위해 그런 개성들이 나타난게 아닐까 싶고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충청,전라도 지역과 경상도 지역은

백제와 신라인들의 특색과 닮아 있는거 같습니다


또 제목의 김씨의 시조는 경주김씨 시조 김알지 뿐만 아니라

김해김씨의 시조 가야 김수로왕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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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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