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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신라 4대왕 탈해 이사금, 탈해왕 석탈해는

왕이 되기 전 고아였던 그를 거두었던

가난한 할머니와 함께 살며

한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고기잡이를 하며 할머니를 봉양했고

이후 할머니가 석탈해에게

너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며

학문에 종사해서 이름을 떨치라 말했기에

석탈해는 학문에 전념했고

동시에 지리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전 이야기에서 쓴

석탈해가 먼 나라 왕자출신으로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에 반대되는

저가 생각해본 '석탈해 고아설' 로 저가 추측한 것입니다

고아 孤兒 라는 말이 다소 자극적,비하적인 느낌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런 의도는 없고 부모를 여읜 아이라는 의미로

고구려 동명성왕 주몽도 부여를 탈출해 강을 건너며

신에게 기도할때 스스로를 고자 孤子 라고 했고

장애인을 굳이 장애우나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것 보다 그냥 장애인 분들 께서

장애인으로 부르라는 이야기같이 고아를 고아라고

쓴 것이지 비하의도 같은것은 전혀 없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고아나 장애인, 어려운 사람에 대해

어떠한 편견같은거는 없고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 보다는

더 가진 사람들에게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언더 도그마 효과라는 이론같이

무조건 적으로 약자는 옳다고 여겨서도 안되고

어려운 환경 출신,고아 출신이거나 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부정적인 방법으로

좋은 환경으로 갔을 경우에도

그것을 규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총명했던

석탈해는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왔고

어느날 석탈해는

양산 楊山 아래에 있는 호공(신라 재상)의 집을 보고

그곳이 좋은 집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석탈해는 꾀를 써서

이 터를 얻어서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이 땅은 뒷날 월성터(신라 왕궁 경주 월성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라봉봉>석탈해가 쓴 꾀는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 자세히 기록되있는데

이 이야기는 잠시 쓰겠습니다,,


-삼국유사 '탈해가 지략으로 호공의 집을 빼앗다' 중에서,,-


(석탈해는) 성 안에 살만한 곳을 살펴보니

마치 초승달 三日月 (신라는 초승달과 연관 있는 이야기가

백제 멸망때에도 '백제는 둥근달[다 차서 기울어짐]

신라는 초승달[창창함]'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양으로 된 봉우리가 하나 보이는데

지세가 오래 머물만한 땅이었습니다

이내 내려와 그곳을 찾으니

바로 호공(신라 재상)의 집이었습니다


이에 석탈해는 지략을 써서

몰래 숫돌과 숯을 그 집 곁에 묻어두고

(다움날) 새벽 아침에 (호공의 집)문 앞에 가서


<석탈해>이 집은 조상때부터 우리 집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호공이


<호공>그렇지 않다 (뜬금없이 뭔소리임 ??)


하여 서로 다투었으나 시비를 가리지 못하였습니다


<호공>하아,, 너무 말도안되게 우기니까

진짜 내집이 아니었던거 같아,,

(저가 지어낸 대사로 꼭 일본이 갑자기

한국 고유의 영토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것과 비슷한 논리를

석탈해가 실행한거 같습니다

석탈해의 꾀 이야기로 나오지만

옳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에 관가에 고하자 관가에서 묻기를


<관가의 관리>그 집이 너의 집임을 무엇으로 증명하겠느냐 ?


하자


<석탈해>우리는 본래 대장장이였는데

얼마 전 이웃고을에 간 사이에 그 집을 다른 사람이

빼앗아 살고 있으니

청컨대 땅을 파서 조사하게 해 주십시오


했습니다


석탈해의 말대로 따르니

과연 숫돌과 숯(대장장이들의 도구)이 나왔으므로 이에 석탈해가

그 집을 취하여 살게 했습니다


-삼국유사-


<라봉봉>기록들로 봐서는 석탈해가

신라 재상이었던 호공의 집을 뺏었을 수도 있는거 같은데

왕 다음가는 벼슬이 재상인데

신라 재상이었던 호공이 정말 이런식으로

집을 뺏긴만큼 어리석었던 인물은 아니었을거 같고


정말 이런식으로 뺏었는지는 아무래도

기록이 요약되거나 소문 등에 이야기에 살이 붙으며

과장되거나 했을 수도 있고


먼저 미약한 출신이었지만 석탈해는

신라 재상의 집에 가서 대범하게 어떠한 행위들을 한거 같고

아무래도 정말 이렇게 순진무구하게 숫돌과 숯등으로

집을 뺏었다기 보다는

그거는 빙산의 일각이고

실제로는 석탈해가 호공의 말하기 곤란한 약점을 잡았거나

하는 경우로 좋은 집 하나를

얻어낸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호공같은 자리는 잃을게 매우 많고

당시의 석탈해는 잃을게 없는 인물이었던거 같아서

이런것을 한게 아닐까 싶고

왕 다음 벼슬이 재상이고

신하들 중 가장 권한이 강한 신하인데

실제 재상자리를 이용해서 여색을 탐한다거나

살인죄를 덮는다거나 하는 것은 옛날부터 비일비재했고

[물론 재상 뿐만 아니라 폭군이라 불린 왕들도 할거없이

예로부터 권력이 쥐어쥐면

그것을 잘못 휘두른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호공 역시 어진 왕이었던 박혁거세,

혁거세 거서간을 보필한 인물이었으나

조선시대 어진 왕이었던 세종대왕을 보필했던 황희 정승역시

청백리 고결한 재상 이미지와는 다르게

현실은 부정부패로 얼룩진 인물이기는 했기에,,

호공이 이렇게 쉽게 석탈해에게 집을 내주게 되었다는 것은

무언가 석탈해에게 약점잡힌게 있지 않았을까 싶고

단순히 숫돌과 숯만으로 집을 넘기게 된것은 아닌거 같습니다

옛 이야기들은 하나를 기록하려면

글자 한줄을 쓰는데에도 오늘날보다

더 상당한 인력,비용들이 소모됬기에

요약이 필수였을 수밖에 없었고

이에 두루뭉술하게 요약된 설화적으로

남는 경우들이 있는거 같은데

실제 역사는 표면적 요약된 기록 말고도

더 복잡하고 자세한 이야기들이 내면에 깔려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석탈해의 지혜,꾀로도 해석 될수가 있겠으나

남의 집에가서 이런 방식으로 둘러대거나 하는 것은

옳은 방식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신라 재상집 앞에 찾아가서

말하는 석탈해가 배짱,대범함은 있다고 생각되나

백제 무왕,서동이 공주와 잤다는

서동요를 퍼트려 신라 선화공주를 희롱해서

혼인한 이야기같이 대범하거나 배짱이 있기는 하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생각은 별로 안한거 같고

결말은 신라 석탈해,탈해 이사금이나 백제 서동,무왕이

훗날 성공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는 있으나

과정등이 올바른 방식이 아니라 찝찝한 구석이 있습니다


근데 이런 석탈해의 배짱이나 대범함 역시

비록 옳은 방식으로 가지는 않았더라도

그가 부지런히 고기잡이를 하며 부모를 봉양하고

학문에 전념하고 공부하며 얻은 지혜와 지식을 바탕으로

나온 것으로 보이고 (백제 무왕 역시 마파는 생활을 하며

고생한 인물일 거고 마찬가지일 겁니다)


석탈해나 무왕이 상대적으로 다른 왕들보다는

비범한 인물이었던 것은 사실로 보이나

아무래도 수준이 높으면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게 사람 마음인거 같고,,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부모님이 '다른거 안바라고 건강하면 그만이지'

이래도 막상 건강하면

공부도 일도 잘하라는 압박을 할 것입니다,,)


인물 자체는 유능하고 훌륭했으나

그만큼 유능한 사람이 잘못을 하면

더 아쉬운것도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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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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