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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 이사금 25년

정월(1월) 봄

많은 별들이 비오듯 떨어졌으나

땅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7월 가을

실직(실직국)이 배반하자


(실직국이 신라에 항복했는데

반란을 일으킨거 같습니다

실직국의 독립운동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애초에 신라와 실직국은 같은 한국민족이었고

신라의 음즙벌국에 대한 실력행사에 겁을 먹고

실직국이 자진해서 항복하기는 했으나

신라가 강제로 실직국을 항복시키지 않았다는 점 등

배반,반란이 맞는 표현 같습니다)


파사 이사금은 군사를 보내서 토벌 평정하고

남은 무리를 남쪽 변경으로 옮겨 살도록 했습니다


(파사 이사금대에 항복한 실직국과 압독국은

완전히 합병됬다기보다

신라에 속국으로 들어갔는데 허무하게 항복하고

뭔가 아쉬워서인지 신라에 각각 반기를 들고 일어났는데

[압독국은 일성 이사금 13년]

둘다 패했고 결국 제대로 신라에 합병,흡수됬다고 합니다,,)


파사 이사금 26년

정월(봄)

백제가 사신을 보내서 화해를 요청했습니다


2월

서울에 석자 (약 69cm) 깊이의 눈이 내렸습니다


파사 이사금 27년

정월(1월) 봄

파사 이사금이 압독에 행차해서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했습니다

3월에 압독으로부터 돌아왔습니다


8월 가을

마두성주에게 명령해서 가야를 정벌토록 했습니다


파사 이사금 29년

5월 여름

홍수가 났습니다

백성들이 굶주리므로

10도에 사신을 보내서

창고를 열어서 구제토록 했습니다

군사를 보내서 비지국,다벌국,초팔국을

정벌해서 합병했습니다


파사 이사금 30년

7월 가을

메뚜기 떼가 곡식을 해쳤습니다

파사 이사금이 산천에 두루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러자,,)메뚜기 떼가 없어지고

풍년이 들었습니다 ('기도의 힘은 대단하군요 !'

라고 해석된다기 보다,,

신라의 국력은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었기에

재난 상황에도 그를 재빠르게 수습할 행정력등을

갖추고 있었던거 같고

물론 정말 파사 이사금 역시

고대국가의 왕 답게 재난상황에 하늘에 기도를 했겠지만

파사 이사금이 기도를 하자 하늘이 도왔다라는

그의 덕을 높이기 위한

선전,프로파간다 일 수도 있는거 같습니다,,)


파사 이사금 32년

4월 여름

성문이 저절로 무너졌습니다

5월부터 가을 7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파사 이사금 33년

10월 겨울

파사 이사금이 붕어,사망했습니다

사릉원 경내에 장사지냈습니다


<라봉봉>그렇게 신라 5대왕 파사 이사금은

진한의 일개 소국에 불과했던 초기 신라를

진한의 맹주,우두머리 급으로 끌어올린 정복군주라고

이야기 되며 학계에서는 실질적인 신라의 시작을

파사 이사금 재위기로 보기도 한다고 하며

비슷한 사례로는 고구려 6대왕 태조대왕(태조왕) 역시

초기 고구려의 기틀을 잡고 소국들을 정복하며

영토를 넓혔기에 실질적인 고구려의 시작이라 보고 있다고도

하며 파사 이사금 역시 신라의 그런 역활이었던 인물이었던거

같습니다


파사 이사금은 신라 초기 정복군주인데

아무래도 신라 정복군주는 중기의

신라 24대왕 진흥왕이 가장 유명할것입니다

아무래도 영토를 크게 넓혔다는 것과

각국의 전성기라고도 불리기 때문에

신라 뿐만 아니라 고구려,백제 할거없이

정복군주들은 그 입지들이 화려하기도 하나

그런데 이런 정복군주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개인의 유능함만이라기보다는

선조들때부터의 축적된 힘이 있었다고 할 수가 있었고

신라 선조들 역시 혁거세 거서간대부터

덕있는 정치를 하며 여러 내정개혁들이 이루어졌고

그렇게 쌓여진 힘을 바탕으로 후대에

영토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지

단순히 개인의 유능함만으로 해석되기에는

무리가 있는 이야기이고

물론 개인의 유능함 역시 중요하나

유능한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는

백제 무왕이나 고구려 연개소문 같은 경우에는

선대에 쌓여진 힘이 부족해서

개인의 유능함이 있었음에도

영토확장은 커녕 국내상황을 유지하며 개혁하는

위치에 있었다가 사후 곧 백제와

고구려는 멸망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고

이렇게 영토를 확장하는 왕,인물들의 경우에는

단순히 그 인물만 본다기보다

선대왕대부터의 쌓여진 국력등을 보지 않을 수 없고


파사 이사금 역시 선대 왕들이

조용히 내정개혁을 위주로 정치를 했다면

파사 이사금대에는 그렇게 쌓여진 힘을

외부로 뿜게되는 시기였던 것으로 보이고


파사 이사금은 초기 신라의 왕이며

한국사에서 그렇게 유명한 왕은 아니지만

초기 신라의 기틀을 잡았고

절도있고 검소하고 백성을 사랑했다고 기록되있기에

선대로 부터 이어진 좋은 나라를 물려받음과 동시에

어질고 유능했던 인물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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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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