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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마 이사금 2년

2월 봄

지마 이사금이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창영을 이찬(신라 2등벼슬)으로 임명해서 정사를 맡겼습니다

옥권을 파진찬(신라 4등벼슬)으로

신권을 일길찬(신라 7등벼슬)으로

순선을 급찬(=급벌찬, 신라 9등벼슬)으로 임명했습니다


3월

백제가 사신을 보내서 예방했습니다


지마 이사금

3월 봄

우박이 내려서 보리싹이 상했습니다


4월 여름

홍수가 났습니다

죄수들을 심사해서

사형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석방했습니다


지마 이사금 4년

2월 봄

가야가 남쪽 변경을 약탈했습니다


7월 가을

지마 이사금이 가야를 직접 공격했습니다

보병과 기병을 거느리고 황산하 黃山河 를 지나는데

가야인들이 숲속에 군사를 매복시키고 기다렸습니다


지마 이사금이 이를 모르고 곧바로 전진했는데

복병이 나와서 지마 이사금을 여러겹으로 포위했습니다

지마 이사금은 군사를 지휘해서 맹렬히 싸워서

포위를 뚫고 퇴각했습니다


지마 이사금 5년

8월 가을

장수를 보내서 가야를 공격하게 하고

지마 이사금은 정병 (정예 군사) 1만을 거느려서 뒤를 이었고

가야는 성을 닫고 굳게 수비했습니다

그때 마침 비가 오래 내렸으므로

지마 이사금은 되돌아 왔습니다


지마 이사금 9년

2월 봄

큰 별이 월성(신라 왕궁) 서쪽에 떨어졌고

그 소리가 우레(천둥)와 같았습니다


3월

서울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습니다


지마 이사금 10년

정월(1월) 봄

익종을 이찬(신라 2등벼슬)으로 임명하고

흔련을 파진찬(신라 4등벼슬)으로 임명하고

임권을 아찬(신라 6등벼슬)으로 임명했습니다


2월

대증산성을 쌓았습니다


4월 여름

왜인(일본)이 동쪽 변경을 침범했습니다


지마 이사금 11년

4월 여름

큰 바람이 동쪽에서 불어와서

나무를 꺾고 기와를 날렸습니다

바람은 저녁이 되어서야 그쳤습니다


서울(수도)사람들이 왜병(일본군)이 크게 몰려온다는

헛소문을 듣고 앞다투어 산꼴짜기로 피난했습니다


지마 이사금은 이찬(신라 2등벼슬) 익종등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돌아가도록 했습니다


<익종>백성들아 산에서 내려오라카이

왜군이 온다는거 그거다 뻥이다 !


<백성들>아아 ! 왜군때문에 못살겠십니더

좀 편안히 살게좀 해주소 !


7월 가을

메뚜기 떼가 곡식을 해쳤으며

흉년이 들어서 도둑이 많았습니다


지마 이사금 12년

3월 봄

왜국과 강화 講和 (교전국끼리 싸움을 그만두고 서로 화해함) 했습니다


<신라인들>느그 왜놈들 그만 오그래이


<왜인들>알겠다데스 크큭(또올거지롱 ㅋ)


4월 여름

서리가 내렸습니다


5월

금성 동쪽 민가가 내려앉아 연못이 되었고

그곳에 연밥(연꽃 열매)이 생겼습니다


지마 이사금 13년

9월 가을

그믐(달의 마지막 날) 경신일에

일식이 있었습니다


지마 이사금 14년

정월(1월) 봄

말갈이 북쪽 변경을 크게 공격해서

관리와 백성들을 죽이고 약탈했습니다


7월 가을

그들(말갈)은 다시 대령책 大嶺柵 (대령 나무 울타리[목책])을 습격하고

이하 泥河 (번역하면 진흙 강)를 건너왔습니다


지마 이사금은 백제에 글을 보내서 구원을 요청했고

백제는 다섯명의 장군을 보내서 돕게 했습니다


적(말갈)은 이 소식을 듣고 물러갔습니다


<신라인들>아아 ! 백제 장군님들 우리가 남입니까 ?

저 말갈 역적들을 잡는데 힘을 모아야지요 ~


<백제 다섯명의 장군들>(??) 응 큰 일 있으면 말해 ~


<라봉봉>지마 이사금 당시에는 신라와 백제와

사이가 좋았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신라인들은 어려울때 백제,고구려인들에게

도움이란 도움은 다받았는데도 이후 두 나라를 멸망시키게 됬고,,

백제인들에게 잔인,음흉하며 사기를 잘친다라는 프레임을

뒤집어 씌운거 같은데 실제로는 신라가 더하면 더했지

백제보다 덜하지는 않았던거 같습니다

실제 백제인들은 풍요롭고 여유있었고

이에 현실적 생각들보다는

내세적인 예술등에 심취했던거 같습니다


이에 비해 신라인들은 내세적 문화,예술에 심취했다기 보다는

현실적인 사고관이 되게 강했기에

온갖 외교,정치,사기에 능했고

한국 고구려,백제와 중국,왜(일본)와의 관계에서

크게 실리를 취했던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삼국에서는 신라가 승자였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같이

신라인들이 백제인들을 견제하기 위해

백제에 사기,음흉,잔악 이미지을

뒤집어 씌운게 아닐까 싶습니다


지마 이사금 16년

7월 가을

초하루(달의 첫번째 날) 갑술일에

일식이 있었습니다


지마 이사금 17년

8월 가을

장성이 하늘 끝까지 뻗쳤습니다


10월 겨울

동쪽 지방에 지진이 있었습니다


11월 우레가 있었습니다


지마 이사금 18년

가을

이찬(신라 2등벼슬) 창영이 사망하자

파진찬(신라 4등벼슬) 옥권을 이찬으로 임명해서

정사(국정운영)에 참여시켰습니다


지마 이사금 20년

5월 여름

큰 비가 내려서 민가가 물에 잠겼습니다


지마 이사금 21년

2월 봄

궁궐 남문이 불탔습니다


지마 이사금 23년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었습니다


8월 가을

지마 이사금이 붕어(사망)했으나

아들이 없었습니다


<라봉봉>그렇게 지마 이사금대에는

여러 나라들과의 관계를 맺게되었음을 알 수 있고

틈틈히 경상도 지역 사투리를 써가며 당대 상황을

대화로 써서 설명해보고자 했습니다


위에서 설명한데로

신라인들은 내세적 문화,세계관 보다는

현실적인 사고관이 되게 강했던거 같고

그 원인은

고구려같이 넓은 영토(아무리 고구려가 산지가 많고 추웠더라도

넓은 영토에서 나는 수많은 자원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백제같이 비옥한 평야와

거대한 인구가 있는것도 아니었고

또 고구려와 백제는 각각 육로,지상과 해로,바다로 당대 선진국이었던

중국과의 문물교류가 용이했는데

신라는 한국 동남쪽 구석에 있었기에

중국과의 교류도 어려워서 선진 문물의 수용도 늦었고

온갖 약점이 많아서 자연히 살아남기 위한 현실적 사고관들이

발달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비슷한 사례로는 주변에 사막이 있기에

외적의 침입이 없어서 내세적인 문화가 발달한 이집트 문명과

그에비해 사방이 평야라서

외적의 침입이 잦아서 현세적인 문화가 발달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사례를 예로 들 수가 있고

신라 역시 동서남북으로 동쪽의 왜(일본),서쪽의 백제,남쪽의 가야,

북쪽의 고구려,말갈등 여러 나라들에게 둘러쌓여 있어서

건국 초부터 사방으로 얻어맞았는데,,

딱히 내세울 자원등도 없어서

치열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며 생존을 모색했던거 같고

오늘날 한국인들의 중심 원류는 신라를 중심으로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저가 어렸을때부터

'한국은 자원이 없어서 인재(사람)양성이 중요하다'

이런 말들이 자주나왔는데

신라인들 역시 이런 처지였다고 할 수 있고

근데 진짜 현재 한국은 석유가 펑펑 나오는거도 아니고

영토도 좁아서 자원들이 정말 별로 없어서

신라 이후에도 한국인들 역시 이런 전통 ?? 을 계승해서

끊임없이 치열하게 머리를 굴리며 오늘날까지 살아오며

역사를 유지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신라에 비해 풍요로웠던

고구려와 백제인들은 이런 머릿싸움들 보다는

그냥 힘으로 밀거나 하는 용맹한 기풍들을 유지했고

고구려인들의 용맹함은 말할것도 없는데

백제도 의외로 북방민족의 후예답게

중국등에 굽히지 않았고 하여튼 두 나라는

꽤 풍요로웠기에 별다른 깊숙하거나 야비한 계책없이

외국들과 직선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신라인들은 고구려와 백제 입장에서 보기엔

온갖 야비하고 곡선적이고

사기,기만 등 더럽고 추악한 외교들을 하며 살아남았고


사실 약육강식,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있는데

가장 약했던 신라가 또 가장 느리게 발전했던 신라가

끝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과연 신라인들이 정말 약했는지도 의문이며

신라인들이야 말로


'강한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자가 강한거다'


라는 말의 대표적인 표본이었던거 같습니다


실제 신라인들은 가장 머리를 치열하게 썼기에

삼국중에서 가장 '강자'였으며

많은 개혁들을 제대로 이뤄냈기에

삼국중에서 가장 최적화가 잘된 '적자'였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아직 신라는 계속 사방으로 두둘겨 맞던

속된말로 '찌질이' 시절이라,,


신라 중대가 오기전까지는 이리저리 두둘겨 맞고 있는 중이고

나름 그런 와중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던 신라인들의 모습들이 보입니다,,


이번 기록에서도 역시 가야,왜,말갈 등 여러 국가들에게

계속 공격받는 안습('안구에 습기찬다'라는 말로

눈물난다는 뜻의 저 어렸을때 유행한 말입니다 ㅋ)시절의 신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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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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