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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쓰기 전에,,>어저께는 급하게 글을 쓰느라

오타가 있어서 수정을 했고

저는 평소에도 저가 쓴 글들을 읽어보며

틈틈히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수정하고 있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제보해주셔도 ㄳ 합니다


(신라 충신 박제상의 이야기는

이전 이야기 '고구려에 가서 복호를

데려온 신라 충신 박제상, 구우일모의 유례'와 이어집니다)


그렇게 신라 충신 박제상은

뛰어난 말솜씨로 고구려에 인질로 갔었던

눌지 마립간의 동생 복호를 데려왔고 이에 눌지 마립간은

기뻐하면서 박제상을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눌지 마립간>나는 두 아우 생각하기를

좌우의 두 팔과 같이 하는데

이제 다만 한 팔만 찾았으니 어찌 해야 하는가 ?


즉 이는 고구려 말고도 왜국(일본)에 인질로 가있었던

또다른 눌지 마립간의 동생 미사흔을 두고 한 말이었고

이에 박제상은,,


<박제상>신이 비록 재주가 노둔하오나

이미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끝까지 명을 욕되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대국이고 (然高句麗大國 연고구려대국)

왕(고구려 최전성기 왕이자 고구려 20대왕 장수왕)도

역시 어진 임금이었기 때문에 (王亦賢君 왕역현군)

신이 한마디 말로써 그를 깨우칠 수 있었지만

왜인들은 말로써 달랠 수 없으니

속임수로써 왕자를 돌아오게 해야합니다


신이 저 곳(왜국)에 가거든,

(거짓으로) 신이 반역하였다는 죄를 씌우고

이 소식이 저들의 귀에 들어가게 하소서


제상(박제상)은 이에 죽기를 맹세하고

처자도 만나지 않은 채

율포로 가서

배를 타고 왜로 향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이 소문을 듣고 포구로 달려가서

배를 바라보면서 대성통곡하면서 말했습니다


<박제상의 아내>잘 다녀 오시오 !


이에 박제상이 뒤돌아보면서 말하기를,,


<박제상>내가 명을 받들고 적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그대는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지 마시오


라고 하고

드디어 그 길로 곧장 왜국에 들어갔습니다


<왜국에 들어간 박제상>살려주시오 ! 살려주시오 !

신라왕이 나를 죽이려 하오 !


<왜인들> ?? 몸가짐이 보통의 인물이 아니군

일단 이자를 묶으라 데스 ! 경계해야 할 자이다 !


그는 마치 모반하다가 그곳에 온 것처럼 행동했으나

왜왕이 그를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얼마 전에 백제인이 왜국에 가서


<백제인>시방 그,, 신라와 고구려가 모의하여서,,

왕의 나라(왜국)를 침공하려 하는구먼,,


<왜인들> o_o ;;;;;;;


이라고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왜 백제인이 왜에 가서

이런 거짓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당대 백제는 고구려의 위협에 대해서

절체절명의 상황이었고 신라 역시 백제 입장에서는

전통적이고 잠재적인 적국이었고 이에

전통적은 우방이었던 왜를 백제 영향권에 묶어두기 위해

이런 거짓말을 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 왜국에서는 군사를 보내서 신라 국경 밖에서 염탐하게 했습니다


그때 마침 고구려가 침입해서 왜의 염탐꾼을 모두 잡아 죽였습니다

(왜인들을 속이기 위한 고구려 옷을 입은 신라인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서 왜왕은 백제인의 말을 사실로 여겼으며


(즉 백제는 이거랑 별개로 다른 의미에서 왜와의 우호를 강화하려

거짓말을 한거였던거 같고

신라는 왜국에 인질로 간 미사흔을 빼내려 여러 거짓말들을

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당대 왜는 한국 동쪽의 골칫거리 수준이었고

혹은 가끔 위협적인 세력이기도 했으나

여러 방면에서 한국보다 여러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이렇게 한국인들의 거짓말들에 쉽게 속아 넘어가게 된거 같습니다,,)


또한 신라왕이 미사흔과 박제상의 가족들을 가두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자

박제상이 정말 배반자라고 믿게 됬습니다


<박제상>하,, 진짜다 이기야 아니 진짜입니다 데스,,

저느 앞으로 왜인으로서 신라 공격의 앞잡이로서 살겠스무니다 !


<왜인들>진짜로 신라에서 도망친 녀석같은데 ?


<왜왕>어험,, 입조심 하거라 박제상쿤은 유능한 인물로

앞으로 신라공격의 향도(길잡이)가 될 것이며

내 중히 쓸 것이니라 ~ !


이에 왜는 군사를 출동시켜서 신라를 습격하기로 하고,

박제상과 미사흔을 장수겸 향도 鄕導 (길잡이, 앞잡이)로 삼았습니다


(왜군의) 행렬(줄지어 간 무리들)이 바다에 있는 산으로 된 섬에 이르자

왜의 여러 장수들이

신라를 멸한 뒤에는

제상과 미사흔의 처자를 잡아 오자고 은밀히 의논했습니다

박제상이 이를 알고

미사흔과 함께 배를 타고 놀면서

마치 물고기와 오리를 잡는 것 같이 행동하니

왜인들은 이것을 보고 그들에게 다른 마음이 없다고 좋아했습니다


<왜인들>허허 신라가 망하고 가족들이 잡혀갈지언정

신라에서 온 저자들은 태평세월인 것으로 봐서는

거짓으로 우리에게 온 것은 아니였구나 !


이 때

박제상이 미사흔에게 슬며시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습니다


<박제상>때가 왔습니다

슬슬 신라로 돌아가시지요,,


이에 미사흔은,,


<미사흔>내가 장군(박제상)을 아버지처럼 받들고 있는데


(실제로 미사흔은 왜국에서의 오랜 인질생활 중

고국에서 자신을 구하러 온 박제상을 만났고

박제상 역시 어질고 유능한 인물이었기에

미사흔이 박제상에게 크게 의지했을 가능성이 있는거 같습니다)


어찌 나 혼자 돌아가겠습니까 ?


라고 대답했습니다


박제상이 말했습니다


<박제상>만일 두 사람이 함께 떠난다면

일이 성사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미사흔은 박제상의 목을 안고

울면서 하직(작별을 고함)하고 돌아왔습니다


박제상은 방안에서 혼자 자다가 늦게야 일어났습니다

이는 미사흔으로 하여금 (최대한) 멀리 (도망) 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 (왜국) 사람들이


<왜인들>장군(박제상)은 왜 늦게 일어나시무니까 ?


라고 물으니


박제상은


<박제상>전 날 배를 탔더니 피곤해서

일찍 일어날 수가 없었스무니다,,


고 했습니다


그가 밖으로 나오자

왜인들은 마침내 미사흔이 도망간 것을 알고

박제상을 결박해 놓은 채

배를 풀어서 추격했습니다


<왜인들>우리가 신라에 속았다 !

어서 미사흔을 추격하라 !!!!!


때마침 안개가 대단히 짙게 끼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인은 박제상을 (왜)왕의 처소(머무는 곳)로 돌려보내고

곧바로 목도 木島 로 유배시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장작불로 온 몸을 태운 뒤에 박제상의 목을 베었습니다


이 과정은 '삼국유사'에 자세히 기록되있는데

박제상이 미사흔을 보내고 나서 왜인들이

박제상을 가두어 두고 묻기를,,


<왜인들>너는 어찌하여 너희나라 왕자를 몰래 보내었느냐 ?


라고 하자

박제상이 대답하기를


<박제상>나는 오로지 계림(신라)의 신하이지 왜국의 신하가 아니다

나는 단지 우리 임금의 소원을 이루게 했던 것 뿐이다

어찌 당신에게 말할 수 있었겠는가


라고 했습니다


왜왕이 노하여 이르기를


<왜왕>(하,, 근데 그래도 박제상이의 재능이 너무 아까운데,,)

이미 너는 나의 신하가 되었는데도

감히 계림(신라)의 신하라고 말하느냐 !


그렇다면 너에게 오형 五刑 (다섯가지 잔인한 형벌) 을 모두 쓸 것이나

만약 왜국의 신하가 되겠다고 말을 한다면

필히 후한 녹을 상으로 줄것이다


이에 박제상이 대답하기를,,


<박제상>차라리 계림(신라)의 개돼지가 될 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 !


차라리 계림의 형벌을 받을지언정

왜국의 작록은 받지 않겠다 !


고 했고

왜왕이 노해서 박제상의 발 가죽을 벗기고

갈대를 베서 그 위를 걷게 했습니다


<(삼국유사를 기록하신) 일연>지금 갈대의 붉은 빛깔이 나는 것은

박제상의 피라고 한다


왜왕이 다시 물어 이르기를


<왜왕>너는 어느 나라의 신하인가 ?


라고 하자


박제상은


<박제상>나는 계림의 신하다


이에 왜왕은 박제상을 굴복 시키지 못할 것을 알고

목도 木島 라는 섬에서 불태워 죽였습니다,,


그렇게 박제상은 미사흔만을 신라로 보내고

본인은 홀로 왜국에서 사망하였고,,


대왕(눌지 마립간)은 이 소문을 듣고 애통해 하며

그에게 대아찬(신라 5등벼슬)을 추증하고

그의 가족들에게 후하게 물건을 하사하고

미사흔으로 하여금 박제상의 둘째 딸을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함으로서

은혜에 보답케 했습니다


처음 미사흔이 돌아왔을 때

대왕(눌지 마립간)은 6부에 명령해서 멀리 나가서

그를 맞게 하였으며

그를 만나자

손을 잡고 서로 울었습니다


<김부식>형제들이 모여서 술자리를 마련하고 마음껏 즐겼으며

눌지 마립간이 가무를 스스로 지어서

자신의 뜻을 나타냈는데

지금 향악 가운데의 우식곡이 그것이다


<라봉봉>한국사의 위인이자 신라 충신 박제상은 그렇게

끝까지 절개를 굽히지 않으며 왜왕에게 타협하지 않다가 사망했었고

당대 신라에서도 미사흔을 데려오기 위해서

국가적으로 역량을 총동원한 모습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고

이런 상황에 중심에 있었던 그는 홀로 왜국에 가서

세 치 혀로 왜인들을 매료시키며 또 왜인들을 속이기도 하며

미사흔을 구출해 냈던것으로 보이고

본인 스스로는 잡혀서 왜왕의 포섭과 고문에도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사망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계림의 개돼지가 될 지 언정

왜국의 신하가 되지는 않겠다'


고 말한 그의 말은

충절,유교적인 모습과도 일맥상통하며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정절 높은 여인은 두 지아비(남편)를 섬기지 않는다'


는 뜻의 충신불사이군 정녀불경이부 忠臣不事二君  貞女不更二夫

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이런 그의 모습은 당대 신라인들과 한국 선조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이런 불굴의 정신들이 계승되어

신라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고

위기의 순간들에 일어난 백성들의 의병활동,

한국 선비들의 절개,한국 현대사의 여러 민족운동 등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모든 것을 타협하지 않을 수도 없으나

어찌됬건 '반드시 타협하지 않아야 되는 것'도 있는데

신라 충신 박제상의 당대의 모습들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큰 교훈과

귀감이 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박제상의 처도 매우 유명한데

그녀가 딸들을 데리고 왜(일본)가 보이는 바닷가로 가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돌이 되어 죽었는데


이를 망부석 望夫石 (바라볼 망, 지아비[남편] 부, 돌 석)이라 하고

이 망부석 일화의 주인공이 박제상의 부인이고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정절 높은 여인은 두 지아비[남편]을 섬기지 않는다


충신불사이군 忠臣不事二君

정녀불경이부 貞女不更二夫'


라는 말에서 '충신불사이군'이 박제상이라면

'정녀불경이부'는 박제상의 아내이기에


'그 남편에 그 부인' 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남편을 기다렸다는 곳은

오늘날 경상북도 경주시와 울산광역시의 경계에 있는 고개인

'치술령' 고개라고 하고 그곳에는

그녀가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바위가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개돼지'라는 말은 현재

한국 정치권,사회영역에서 국민을 기만하는 굉장히 모욕적인

표현으로 쓰이는 말이나

이때에도 쓰였던 표현임을 알 수 있고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된 말이


계림의 개돼지가 될 지언정

왜국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는 것과

또 계림의 형벌을 받을지언정

왜에서 호사를 누리지 않겠다고 한 그의 말은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것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낫다'


라는 격언과도 비슷하고

진정한 인간의 삶에대한 고찰을 했던

옛 성인들,철학자들의 생각이 나는

그의 유언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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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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