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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21대왕 소지 마립간

재위기간 21년


소지


<김부식>비처라고도 한다


마립간이 왕위에 올랐씁니다

그는 자비왕의 맏아들 입니다


어머니는 김씨이며

서불한(=이벌찬, 신라 1등벼슬) 미사흔의 딸입니다


왕비는 선혜부인이며

내숙 이벌찬(신라 1등벼슬)의 딸입니다


소지는 어렸을 때부터 효성스러웠고

겸손함과 타인을 공경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탄복 歎服 (매우 감탄하여 마음으로 따름) 했습니다


소지 마립간 원년(1년)

죄수들에게 대사령(사면령)을 내리고

모든 관리들에게 벼슬을 한 급씩 올려 주었습니다


소지 마립간 2년

2월 봄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5월 여름

서울에 가뭄이 들었습니다


10월 겨울

백성이 굶주리므로

창고의 곡식을 풀어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11월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범했습니다


소지 마립간 3년

2월 봄

소지 마립간이 비열성에 행차해서

군사들을 위문하고 군복을 하사했습니다


3월

고구려와 말갈이 북쪽 변경에 들어와서

호명 등 일곱 성을 빼앗고

다시 미질부로 진군했습니다


우리 군사는 백제 및 가야의 구원병과 함께

길을 나누어 방어했습니다

(한국 남부 국가 모두가 총연합을 해서 고구려에

맞섰고 그만큼 당대 고구려는 최전성기를 지나고 있었던

시기로 매우 위협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신라 병사들>나제동맹 든든하다 이기야 !


<백제 병사들>시방 고구려의,, 위협에 대비하려면,,

이 수밖에 없지유,,


<가야 병사들>,,(우리는 뭘까 ?)


적(고구려 군)이 패해서 물러가자

그들을 니하 서쪽까지 추격해서 격파하고

1천여 명의 목을 베었습니다


소지 마립간 4년

2월 봄

큰 바람이 불어서 나무가 뽑혔습니다

금성 남문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4월 여름

오랫동안 비가 내렸습니다


소지 마립간이 중앙과 지방의 유사 有司 (단체장) 들에게

명령해서 죄수를 재심사하도록 했습니다


5월

왜인이 변경을 침범했습니다


소지 마립간 5년

4월 여름

큰 홍수가 났습니다


7월 가을

큰 홍수가 났습니다


10월 겨울

소지 마립간이 일선 一善 지방에 행차해서

재해를 당한 백성들을 위문하고

재해의 정동 따라서 곡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11월

우레가 있었습니다


서울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습니다


소지 마립간 6년

정월(1월) 봄

오함을 이벌찬(신라 1등벼슬)에 임명했습니다


3월

토성이 달을 범하고

우박이 내렸습니다


7월 가을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므로

우리 (신라) 군사와 백제 군사가 모산성 아래에서

함께 공격해서

그들을 대파했습니다


소지 마립간 7년

2월 봄

구벌성을 쌓았습니다


4월 여름

소지 마립간이 시조묘에 직접 제사를 지냈습니다

묘지기(묘를 지키는 사람) 20호(집)를 더 두었습니다


5월

백제가 예방(예를 갖추는 의미로 인사차 방문)해 왔습니다


<백제 사신>나제 !


<소지 마립간>동맹 !


소지 마립간 8년

정월(1월) 봄

이찬(신라 2등벼슬) 실죽을 장군으로 임명했습니다


일선 지방의 장정 3천명을 징발해서

삼년성과 굴산성의 두 성을

개축 改築 (낡은 건물 등을 고쳐지음) 했습니다


2월

내숙을 이벌찬(신라 1등벼슬)에 임명해서

국정을 맡겼습니다


4월 여름

왜인이 변경을 침범했습니다


8월 가을

낭산 남쪽에서 군사를 사열하는 큰 행사를 벌였습니다


소지 마립간 9년

2월

내을(나정 蘿井)에 신궁 神宮 (시조를 모신 사당)을 설치했습니다


(당대 고구려와 백제에는 이미 불교가 들어왓는데

신라에 역시 틈틈히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이에 위기를 느낀 한국 토착 종교인 무당세력들이

신궁 설치를 권유했을 지도 모릅니다)


내을 奈乙 은 시조(박혁거세)가 처음 탄생한 곳입니다


3월

처음으로 사방에 우역 郵驛 (공문서 전달,관물의 운송등

벼슬아치의 숙박 편의 시설 등 목적으로 설치한 기관)

을 설치하고

소관 관청으로 하여금 관도 官道 (국가에서 관리하던 도로) 를

수리하게 했습니다


7월 가을

월성(신라 왕궁)을 수리했습니다


10월 겨울

우레(천둥)가 있었습니다


소지 마립간 10년

정월(1월) 봄

소지 마립간이 월성으로 옮겨 살았습니다

(고구려와의 전시체제 때문에 자비 마립간때부터

명활성에 옮겨 살다 다시 월성으로 돌아오게 된거 같습니다)


2월

소지 마립간이 일선군에 행차해서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들을 위문하고

어려운 정도에 따라 곡식을 하사했습니다


3월

소지 마립간이 일선에서 돌아오는 길에

도중에 주와 군의 죄수들 가운데

두 종류의 사형수를 제외한 나머지 죄수들을 모두 석방했습니다


6월 여름

동양 東陽 지방에서 여섯 개의 눈을 가진 거북을 헌납했습니다

그 거북의 배에 글자가 있었습니다


7월 가을

도나성을 쌓았습니다


소지 마립간 11년

정월(1월) 봄

유랑하는 백성들을 모아서 농촌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9월 가을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해서

과현에 이르렀고

10월 겨울는

호산성을 점령했습니다


소지 마립간 12년

2월 봄

비라성을 다시 쌓았습니다


3월

추라정에 용이 나타났습니다

처음으로 서울에 시장을 열어서

사방의 물자를 유통시켰습니다


(이때 소지 마립간 다음왕 지증 마립간,지증왕 김지대로가

54세정도였기 때문에

소지 마립간대의 여러 개혁정책들은

김지대로가 이끌었을 가능성이 있고

소지 마립간때 처음으로 신라에 시장이 생겨난 것도

지증왕때에도 이어지기에 그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개혁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김지대로 지증왕은 저가 한국사에서 세종대왕 만큼이나

훌륭하신 월드클래스 위인이라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세종대왕의 성격이 밝고 유쾌한 위인이었다면

지증왕은 진중하고 조용한 성격의 위인이었던거 같고

그래서인지 지증왕은 한국사에서 인기가 별로

없는 인물 같습니다,,

지증왕은 신라,이 땅에 자신의 기둥을 세운 인물로

어서 다음 지증왕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소지 마립간 14년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자

소지 마립간은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서

자신이 먹는 음식을 줄이도록 했습니다


소지 마립간 15년

3월 봄

백제왕 모대(백제 24대왕 동성왕 부여모대)가 사신을 보내서 혼인을 청했습니다

소지 마립간은 이벌찬(신라 1등벼슬) 비지의 딸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신라 21대왕 소지 마립간과 백제 24대왕 동성왕때

신라와 백제의 혼인,결혼동맹이 성사됬고

나제동맹의 절정기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7월 가을

임해, 장령의 두 진 鎭 (군사 주둔지역)을 설치해서

왜(일본)적을 방비했습니다


<라봉봉>제목은 결혼동맹이지만

이전에 쓴 백제사나 위 이야기에서 틈틈히 썼고


소지 마립간대에는 다음왕 지증왕이 되는

김지대로가 성장해 있던 시기였고

김지대로는 매우 훌륭한 인물이기에

소지 마립간을 보필하며 차근차근 입지를 넓혀갔고

이에 소지 마립간대에 여러 개혁과 선정이 이뤄졌던 것 같습니다


김지대로는 소지 마립간과는 그렇게 가까운 친척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내물왕의 증손자였고

왕족은 왕족이었고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소지 마립간 당시 크게 인심을 얻고

세력을 확장하게 된 인물 같고


신라 위인하면 역시 김유신 장군이 가장

유명하겠지만

김유신 장군이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 포지션이라면

지증왕 김지대로는 조선시대 세종대왕 정도의 포지션이라고

생각하고 왕이 되고난 후 신라 사회에 있었던

악습이었던 '순장'을 폐지한 그의 업적은

미국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과

비견될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고

당장 중국에서도 명나라때까지 순장을 했다는 것을 보면

한국은 일찍이 신라왕조때 순장을 폐지했기에

여러 희생을 막을 수 있어서

더욱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지 마립간 이야기인데

지증왕 이야기만 하는거 같지만

지증왕이 64세에 왕위에 오른 것을 보면

한창 소지 마립간 당시

소지 마립간을 보필하며 신라의 국정을

매우 수준높은 상태로 운영하며

자신의 입지를 넓혀갔을 가능성이 있는거 같습니다


하여튼 이런 위인들이 지도자로 나오는게

세계사적으로도 흔한 일은 아니었는데

한국에서는 (당장 생각나는 인물로는)

지증왕과 세종대왕 두명이나 있었기에

괜히 5000년 역사가 아니고

괜히 옛날부터 중국이라는 초강대국 바로 옆에서

길고 긴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한민족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라는 소지 마립간 이후로

지증왕-법흥왕-진흥왕으로 이어지는

최고의 전성기를 지나게 되고

지증왕이 대국의 초석을 다졌고 그의 후손들이

그가 만들어놓은 거대한 시스템과 국력을 바탕으로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어 나가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도

500년을 버틴것도 세종대왕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원인이라 생각하고 실제 임진왜란대에 조선군 무기들도

세종대왕대 개발된 무기였는데,,

신라왕조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고 1000년 왕조로

이어진 것도 중대에 나타난 거인이었던 김지대로(지증왕)의

출현이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과연


'한명의 천재가 수십만명을 먹여살린다'


라는 말의 표본이라 할 수 있고

실제로 역사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인물들의 출현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실제 오늘날에도 우리는 '천재'라고 불린 인물들이

만들어놓은 유산의 혜택속에서 살고 있고

인구 증가 역시 그런 혜택속에서

인구의 증가가 있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뽕'이라고 지나친 민족주의는 경계해야 하지만

신라 지증왕 김지대로라는 인물은

정말 하늘이 내린 인물이었다고 생각하고


소지 마립간 시기부터 그의 성장과

그의 재위기간동안의 신라는

과연 축복의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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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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