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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 마립간 16년

4월 여름

홍수가 났습니다


7월 가을

장군 실죽 등이 살수 벌(벌=들판)에서 고구려와 싸웠으나

승리하지 못하고 견아서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고구려 군사가 그들을 포위했습니다


백제왕 모대(백제 24대왕 동성왕 부여모대)가

군사 3천명을 보내서 포위를 풀고 그들을 구원했습니다


<신라군들>나제동맹 든든하노 !


<백제군들>시방 결혼(소지 마립간대의 결혼동맹으로

이어진 나제동맹)까지

하였는데 당연하쥬 ~


소지 마립간 17년

정월(1월) 봄

소지 마립간이 신궁 神宮 (시조 사당)에 직접 제사를 지냈습니다


8월 가을

고구려가 백제의 치양성을 포위하자

백제가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소지 마립간이 장군 덕지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그들을 구원하게 했습니다


고구려 군사가 궤멸했습니다


<백제군들>시방 든든하구먼 !


<신라군들>고구려도 별거 아니였구만 !


<고구려군들>하 얘네 남한 아이들 둘이 힘을 합치니

버겁구만기래


백제왕(동성왕)이 사신을 보내서 사례했습니다


(나제동맹은 당대 강대했던 북방의 고구려였기에

'깨지기 전까지는' 정말 신라와 백제 양국에게는

큰 도움이 됬던 동맹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지 마립간 18년

2월 봄

가야국이 꼬리의 길이가 다섯 자 (115cm 정도) 인

흰 꿩을 보내 왔습니다


3월

궁실을 중수 重修 (낡고 헌 것을 다시 손대어 고침) 했습니다


5월 여름

큰 비가 내리고

알천의 물이 불어서

2백여 호(집)가 잠기거나 떠내려 갔습니다


7월 가을

고구려가 우산성을 공격했습니다


장군 실죽이 출동하여 니하에서 그들을 격파했습니다


(신라가 고구려군을 단독대결에서도 이길 정도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8월

소지 마립간이 남쪽 교외에 나가서 농사를 시찰했습니다


소지 마립간 19년

4월 여름

왜(일본)인이 변경을 침범했습니다


7월 가을

가뭄이 들고 메뚜기 떼가 나타났습니다


소지 마립간이 모든 관리들에게 명해서

지방관이 될만한 능력이 있는 자를

한 사람씩 천거(추천)하도록 했습니다


8월

고구려가 우산성을 공격해서 점령했습니다


소지 마립간 22년

3월 봄

왜인이 장봉진을 공격해서 점령했습니다


4월 여름

폭풍이 불어서 나무가 뽑혔습니다


용이 금성 우물에 나타났습니다

서울(수도) 사방에 누런 안개가 끼었습니다


9월 가을

소지 마립간이 날이군(날기군, 군=고을)에 행차했습니다

이 군(고을)에 살고있는 파로라는 사람에게 딸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벽화 碧花 (푸를 벽, 꽃 화)라고 했고

나이는 열 여섯 살인데

실로 일국의 미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비단옷을 입혀서

가마에 태우고 채색비단을 덮어서

소지 마립간에게 바쳤습니다


소지 마립간은 음식을 진상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열어보니

얌전한 어린 소녀였습니다 (오늘날 보기에는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일이지만 조선시대 까지만 해도

16살은 결혼 적령기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6살은 아직 신체 성장이 끝날 나이가 아니기도 하고

당대 기준에서도 어리기는 어렸을 것입니다)


소지 마립간은 이는 정상적인 일이 아니라고 여겨서

(역시 당대에도 나이 뿐만 아니라

파로가 가마에 자신의 딸을 바치는게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지 마립간이

대궐에 돌아오자

그녀에 대한 생각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소지 마립간은

두 세 차례 평복으로 갈아입고

그 집으로 찾아가서 그녀와 관계를 맺었습니다


어느날은 (소지 마립간이) 도중에 고타군을 지나다가

한 노파(할머니)의 집에 묵게 됬습니다


(백성들의 자신에 대한 평가가 궁금한) 소지 마립간이

노파에게 물었습니다


<평복으로 변장한 소지 마립간>오늘날 백성들은

국왕을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


노파(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노파(할머니)>많은 사람들이 성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십니더


왜냐하면

내가 듣건대 왕은 날이군에 사는 여자와 관계하면서

자주 평복을 입고 다닌다 하오


무릇 용의 겉모습이 고기와 같이 생겼다면

어부의 손에 잡히는 것이라오


지금은 왕이 만승 萬乘 (일만명의 위자리, 천자 天子 라는 의미)의

지위에 있는데

스스로 신중하지 못하니

이런 사람이 성인이라면

누가 성인이 아니겠소 ?


<소지 마립간>(화끈) ,, 맞는 말이구려,,


소지 마립간은 이 말을 듣고 몹시 부끄러워 해서

즉시 남모르게 그녀(벽화)를 맞이해서

별실에 두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하나 낳았습니다


11월 겨울

소지 마립간이 붕어했습니다


<라봉봉>그렇게 나제동맹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다가

신라 24대왕 진흥왕때 깨지게 되고 당대에는

정말 신라와 백제 사이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였다고 할 수 있었고


아무래도 소지 마립간에 대한 이야기는 벽화 이야기가 유명한데

저는 옛날에는 글로만 봐서 벽화가 '벽에 거는 그림'으로 해석하고

소지 마립간이 신비로운 그림을 별실에 두었다고 생각하다가

이후 사람 이름인거로 알게된 적이 있었고,,


것보다 소지 마립간도 하여튼 찔리는게 많았는지

결국 벽화를 궁궐에 데려와서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라 할 수 있고

옳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나름 다음 후계자라 할 수 있었던

김지대로(신라 22대왕 지증 마립간, 지증왕)라는 인물이 당대에 성장해있었고

김지대로가 소지 마립간대의 국정개혁을 주도했을거 같은데

그런 상황에서 나름 태평성대를 누리며 민심을 살폈던 인물이라 생각하고

삼국사기 다음 기록 지증 마립간 기록에는 소지 마립간이 아들이 없이 죽었다 나오는데

여기서는 벽화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으나

워낙 어리기도 하고 공식적인 관계가 아닌

별실에 몰래 들여온 부인이라 그런지 세력이 미약하거나

도중에 일찍 죽었거나 했을 가능성이 있는거 같습니다

또 벽화 기록이 9월인데 다음기록인 11월에

소지 마립간이 사망하기에 벽화와 낳은 아들은

유복자,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여읜 아들일 가능성이 있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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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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