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신라 34대왕 효성왕 김승경

재위기간 5년 737~742년


효성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름은 승경이며

성덕왕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소덕왕후입니다


(효성왕 원년[1년])

죄수들을 크게 사면했습니다


3월

사정 司正 (신라의 벼슬아치 감독기관)부의

승 丞 과 좌우 의방부 議方府 (신라의 법률, 소송, 형옥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부) 의 승 丞 을

모두 좌 佐 로 고쳤습니다


이찬(신라 2등벼슬) 정종을

상대등,

아찬(신라 6등벼슬) 의충을 중시에 임명했습니다


5월 여름

지진이 있었습니다


9월 가을

유성이 태미 성좌에 들어갔습니다


10월 겨울

당나라에 갔던 사찬(신라 8등벼슬) 포질이 돌아왔습니다


11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특산물을 바쳤습니다


효성왕 2년

2월 봄

당현종은 성덕왕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랫동안 슬퍼하다가

좌찬선대부 左贊善大夫 (궁궐직 같습니다) 형도를

홍려소경 鴻臚少卿 (예식에 관련된 벼슬 같습니다) 의

자격으로 파견해서 조문케 하고

태자태보 太子太保 (고위직 ??) 의 관작을 추증하였으며


또 새 왕(효성왕)을

'개부의동삼사신라왕' 으로 책봉했씁니다


형도가 당나라를  출발하려 할 때

당황제가 시의 서문(머리말)을 짓고

태자 이하 백관(신하) 들이

모두 시를 지어 보냈습니다


당황제가 형도에게 말하기를


<당현종>신라는 '군자 君子 (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 의 나라' 라고 불리우나니

책과 글에 조예가 상당히 깊어서

우리 중국과 비슷하다


그대는 돈유 惇儒 (부지런하고 정성스러운 선비) 한 선비이므로

나의 신임표를 가지고 가게 하는 것이니

마땅히 경서(유교 경전) 의 뜻을 강의하여

대국 大國 (여기서는 중국)에 유교가 성한 것을 알게 하라


고 했습니다


당황제는 또 우리 백성(신라인) 들이

바둑을 잘 둔다고 해서

솔부병조참군 양계응에게 조칙을 내려서

부관으로 동행케 했는데

우리나라(신라)의 바둑 고수들이 모두 그를 따를 수 없었습니다


이 때

효성왕이 형도 등에게 금, 보물, 약 등을 후하게 주었습니다


당나라가 사신을 보내

조서를 내려서 박씨를 왕비로 책봉했습니다


3월

김원현을 당나라에 보내서

하정(새해 인사) 했습니다


4월 여름

당나라 사신 형도가

노자 '도덕경(도교 서적)' 등의 책을 왕에게 바쳤습니다


흰 무지개가 해를 관통하고

소부리군(옛 백제 도읍 사비지역,

오늘날 충청남도 부여군) 의 강물이 핏빛으로 변했습니다


<라봉봉>위 기록같이 유교,도교와 바둑, 한자문화권 등은

비록 신라의 삼국통일 이전부터 있어왔다 할 수 있지만

점점 동아시아 세계가 당나라대 이어

본격적으로 비슷한 문화권으로 엮여감을 알 수 있습니다

당대 중국은 선진국이었고 중국이 약소국화 된 것은

근래 청나라 말기와 일제시대 정도를 제외하면

역사에 거의 없었다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다시 세계 2위의 경제력을 확보한

중국인들은 그래서 오늘날 굴기[몸을 일으킴]를

외치고 있기는 한데

일단 그에 대한 이야기는 보류하더라도

과거의 영광이 있었던 중국이고

옛 당나라는 개방되고 귀족적인 문화가 발달한

국제적인 선진국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국도 경제개발, 군사독재정권기에


'한국은 오랫동안 약소국이었고 경제개발로

단군이래 가장 잘살게 되었다' 


이런 사상들이 퍼졌는데

실제로 중국 옆에 붙어서 적극적으로 문물을 받아들이며

역사에서 오랫동안 세계 2위정도는 했고

중국도 그나마 말이 통하는 문명국이 바로 옆 한국이라

전통적으로 큰 우대가 있었다 할 수 있습니다


뭐 이런 역사가 있더라도 굳이 우리가 사대외교를 했다고

부끄러워 하기만 한다기보다 앞으로 잘하면 되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중국보다 한국이 잘살기도 하고

애초에 땅덩어리, 인구 규모부터 달랐고

굳이 속이거나 감출 필요도 없습니다

결국 사회는 '적자생존' 이나  '강한 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 라는 말이 있듯이

반만년 역사를 유지해온

한국은 충분히 강한 나라였다 할 수 있습니다


반응형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