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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왕 15년

2월 봄

상대등(신라 귀족 수장직) 김사인이

해마다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난 사실을 들어서

경덕왕에게 상소를 올렸습니다

그 상소는 시국 정치의 옳고 그름을

극렬하게 비평한 것이었습니다

경덕왕은 이를 가상히 여겨 받아들였습니다


<김사인>아놔,,

지금 시국이 이렇고 저렇고 하는데

이런식으로 하면 안됩니다 !! ㄱ-


<경덕왕>그래 인정한다,, 좋은 약이 입에 쓴 법,,


경덕왕은 당의 현종이

촉(중국 지역)으로 가서 있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당에 파견했는데

신라 사신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

성도(촉 지역)에 이르러 조공하니

당현종은 오언십운시 五言十韻詩 를 친히 지어 써서

경덕왕에게 보내 주었습니다

그 글에서 말하기를


<당현종의 오언십운시>

신라왕이 해마다 조공을 하고

예악 禮樂 (예법과 음악)과

명의 名義 (명분과 의리)를 잘 실천하는 것을 기뻐하여

시 한수를 주노라


사방은 위도로 나누어 있으나

만물은 모두 중심을 가지고 있네


옥과 비단은 천하에 두루 퍼져 있으나

산 넘고 물 건너 중국의 서울(수도)로 찾아 든다


생각하면 먼 곳 동방은 막혔건만

해마다 신라는 중국을 위해 힘을 쓰네


아득히 먼 곳 땅의 끝

푸른 바다 한 구석에 자리하건만

산 다르고 물 다른 다른 나라라고 어찌 부르랴


사신은 돌아가 중국의 풍교를 전하고

사람들은 찾아와 우리(중국)의 옛 고전을 배워 가는구나


의관을 예절에 맞출 줄 알고

충성스럽고 신의를 지키며 학문을 존중할 줄 아나니


그 성실함이여 하늘이 굽어 볼 것이오

그 현명함이여 덕행은 외롭지 않으리 ! (크 내 시 쩔지 ?)


깃발 세우고 우리(중국)처럼 백성을 다스리니

보내 준 후한 선물 정성이 넘치나니


푸르고 푸른 지조 더욱 소중히 하여

바람 서리 맞아도 영원히 변하지 말라


<신라사신>크 명시이옵니다


<당현종> 認定 (인정) ?


<신라사신>인정


<김부식>당현종이 촉 지방에 갔을 때

신라가 천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황제의 행재소 行在所 (임시 별궁) 까지 찾아 갔으므로

그 지성을 가상히 여겨서 시를 준 것이다


싯구 중의


'푸르고 푸른 지조 더욱 소중히 하여

바람 서리 맞아도 영원히 변하지 말라'


라고 한 것은

옛날의 싯구인


'강한 바람이 불어야만 강한 풀을 알게 되고

정치가 문란한 뒤에야 지조 있는 신하를 알 수 있다'


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 제 생각에는 당현종이 그냥 '충성을 다하셈' 이라 한거 같은데

김부식님의 해석은  '난세의 영웅이 난다' 라는 뜻같기도 합니다)


선화 연간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부의가

이 시의 각본 刻本 (조각한 판목으로 인쇄한 책) 을 가지고

변경에 가서

접대원으로 있던 학사 이병에게 보였다


이병은 이를 황제에게 바쳤는데

황제는 양부와 여러 학사들에게 돌려 보이고

황제의 의견을 말하기를


'진봉 시랑이 바친 시는 틀림없는 현종의 글씨이다'


라고 하면서 감탄하였다


4월 여름

큰 우박이 내렸습니다


대영랑 大永郞 (경덕왕대의 화랑) 이 흰 여우를 바쳤으므로

남변 南邊 (남쪽 가장자리 ??) 제일의 직위를 주었습니다


<라봉봉>상대등 김사인이

시국정치의 옳고 그름을 격렬하게 비평했다는데

바른말하는 신하가 비록 귀에 거슬리거나 쓴소리를 했더라도

내치지 않고 인정하고 받아들인 경덕왕은

마지막 신라 전성기 왕이라 불릴 만큼의 그릇은 있었던

인물 같고


당현종이 시를 지어 보냈다는 점에서는

적극적인 친당,반일 정책을 했던 경덕왕이었는데

당대 당과의 관계도 우호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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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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