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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왕 19년

정월(1월) 봄

서울(=수도, 서라벌) 동쪽에서

북을 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귀신이 치는 북 소리라고 말했습니다


(경덕왕 사후부터 통일신라 혼란의 시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불길한 기록이라 해석해볼 수 있겠습니다)


2월

대궐 안에 큰 연못을 파고

또한 대궐 남쪽 문천 蚊川 (오늘날 경주 남천,

문천은 순 우리말 이름 '모그내' 에서 나왔다 합니다) 위에

월정교 月淨橋 , 춘양교 春陽橋 의 두 다리를 놓았습니다


<아름다운 한국의 문화유산 월정교 月淨橋 로

해석하면 맑은,밝은 달 다리라고도 할 수 있을거 같고

여러 지명에 달을 붙여 달을 상징으로 생각한 신라인들 같습니다>


4월 여름

시중(오늘날 국무총리) 염상이 퇴직하고

이찬(신라 2등벼슬) 김옹이 시중이 됬습니다


7월 가을

왕자 김건운(훗날 신라 36대왕 혜공왕 김건운) 을

왕태자로 봉했습니다 


<라봉봉>월정교가 있던 남천은 김유신 장군과의 사랑이야기로 유명한

천관녀의 집 근처인데 천관녀의 집은

김유신 장군 생가인 '제매정택' 과 남천 건너편에

500M 거리로 가까히 있어

김유신 장군도 천관녀 만나러 갈때 남천을

건넜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남천은

꼭 견우와 직녀의 은하수같고

TMI (잡소리의 요즘 말) 좀 하자면,,

남천 근처에 살았던

천관녀 이야기도 씁쓸한게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 이루고

태대각간 즉 왕밑이면서 왕급 대우의 최고 권력자까지 되고

삼국통일 후 한가해질때 쯤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니

신라 주류사회에 들어가기 위해서

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결혼한 자신의 여동생 문희의 딸,

즉 어린 조카를 부인으로 데리고 있던 늙은 자신을 되돌아보니

김유신 장군을 원망하고 비구니(여자 스님)로 살다 병으로

죽어버린 소년시절의

첫사랑 천관녀가 떠올랐는지

자신의 집에서 남천 건너편에 있던 천관녀의 집터에

그녀의 이름을 딴 천관사를 지어주었다 하고

( 이미 부인, 자식들 다있는데 옛 첫사랑 이름으로

절을 짓는 고령의 김유신 장군의 찌질력도 참,, )


오늘날 사람들도 이런 면의 김유신 장군에 대해

냉정하다 생각하게 되는거 같습니다


하여튼 이렇게 신라의 월정교가 있던 남천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고

남천은 또 원효대사의 부인으로 유명한,,

요석공주가 머무르던 요석궁 근처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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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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