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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의 *간언에 풍악을 그친 경덕왕>


(*간언 諫言 웃어른이나 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하는 말)


경덕왕 20년

정월(1월) 초하룻날(1일) 봄

무지개가 해를 관통했고

햇무리(햇빛이 대기 속의 수증기에 비치어

해의 둘레에 둥글게 나타나는 빛깔이 있는 테두리)

가 보였습니다


4월 여름

혜성이 나타났습니다


경덕왕 21년

5월 여름

오곡, 휴암, 한성, 장새, 지성, 덕곡 의 여섯 성을 샇고

각각 태수를 두었습니다


9월 가을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서 조공했습니다


경덕왕 22년

4월 여름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서 조공했습니다


7월 가을

서울(=수도, 서라벌)에 큰 바람이 불어서

기와가 날리고 나무가 뽑혔습니다


8월

복숭아와 오얏(자두)나무 꽃이 두번째 피었습니다

(桃李再花 도리재화)


상대등(신라 귀족 수장직) 신충과

시중(오늘날 국무총리) 김옹이 퇴직했습니다


대내마(=대나마, 신라 10등벼슬) 이순은

경덕왕의 총신 寵臣 (임금의 총애[사랑]을 받는 신하) 였는데

그(이순) 가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피해서 산으로 들어갔는데

여러 번 불렀으나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순은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서

경덕왕을 위해서 단속사 斷俗寺 를 세우고 그 곳에서 살았습니다

그 후 경덕왕이 풍악을 즐긴다는 말을 듣고

이순은 즉시 대궐문으로 찾아갔습니다

이순은 경덕왕에게


<이순>제가 듣건대

옛날 걸주 桀紂 (중국 걸왕과 주왕으로 폭군의 상징으로

쓰이는 말) 가 주색 酒色 (술과 여자) 에 빠져

황음(음탕한 짓) 을 그칠 줄 몰랐습니다


이로 인하여 정치가 문란하고

나라가 망하였다고 합니다


앞에 가는 수레 바퀴가 없어지면

뒷 수레는 마땅히 이를 경계 하여야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허물을 고치고 자신을 새롭게 바꾸어

나라를 영원히 보존하소서 !


라고 간했습니다


경덕왕은 이 말을 듣고 감탄해서

풍악(음악)을 그치게 해고

이순을 큰 방으로 인도해서

도리의 오묘함과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을

며칠 동안이나 들었다고 합니다


경덕왕 23년

정월(1월) 봄

이찬(신라 2등벼슬) 만총이 상대등(신라 귀족 수장직) 이 되고

아찬(신라 6등벼슬) 양상이 시중(오늘날 국무총리) 이 되었습니다


3월

혜성이 동남족에 나타나고

용 龍 (Dragon) 이 양산 밑에 나타났다가

얼마 안되서 날아갔습니다


12월 11일 겨울

크고 작은 유성이 나타났는데

이를 본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경덕왕 24년

4월 여름

지진이 있었습니다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서 조공하니

당황제가 신라 사신에게

검교예부상서 벼슬을 주었습니다


6월

유성이 심성을 범했습니다

(流星犯心 유성범심)


이 달에

경덕왕이 붕어(사망) 했습니다


시호를 경덕 景德 (해석하면

빛나는, 경사스러운 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라 하고

모지사 서쪽 산에 장사지냈습니다


<김부식> '고기 古記 ' 에는

' 영태 원년 을사에 죽었다 ' 라고 기록되어 있고

'구당서' 와 '지리통감' 에는 모두

'대력 2년에 신라왕 헌영(경덕왕의 이름)이 사망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한다


<라봉봉>통일신라 마지막 전성기 왕이라 불리는

경덕왕의 이야기였고

경덕왕 사후 혜공왕때부터 신라는

혼란의 시기가 시작됩니다,,


나름 선대로부터 강력한 왕권을 이어받은 그였고

신라 왕권이 점차 쇠락해가고

귀족들의 힘이 강해졌다고도 할 수 있으나

귀족들에게 휘둘릴 정도는 아니었고 나름 개혁정책도 하고

신하들의 간언도 귀귀울여 들을 줄 아는

마지막 전성기 왕이라 불릴 정도로 무난한 인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경덕왕 말기에 경덕왕이 풍악을 즐기고 있었을 때

찾아온 이순의 간언에 그 말을 듣고

이순과 방에서 며칠 동안이나 세상을 다스리는 법을

이야기 했던 경덕왕은 경덕왕의 어질고 현명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라 할 수 있고 바른말 하던 이순을 총애했다는 기록은

그가 어진 신하들을 가까히 한 인물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녹읍 부활' 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이때부터 왕권이 약해졌다라는 이미지가 있으나

일단 경덕왕때 까지는

그럭저럭 무난히 국정이 운영되던 시기라 할 수 있고

문제는 그 다음왕인 무려 8살에 즉위하게 되는

혜공왕때부터 신라 난세의 시작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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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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