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신라 36대왕 혜공왕 김건운

재위기간 15년 765~780년


혜공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건운이며

경덕왕의 적자 嫡子 (정실 부인의 아들) 입니다


어머니는 김씨 만월부인이며

서불한(=이벌찬, 신라 1등벼슬) 의충의 딸입니다


혜공왕이 즉위했을 때

나이가 여덟살 이었으므로

태후(왕의 어머니,

여기서는 김씨 만월부인 경수태후 景垂太后 )

가 섭정했습니다


혜공왕 원년(1년)

죄수들을 크게 사면했습니다


경덕왕은 태학에 행차해서

박사 博士 (교육 직책) 들에게

상서 尙書 (유학 오경의 하나)

를 강의하게 했습니다


혜공왕 2년

정월(1월) 봄

두 개의 해가 나타났습니다


(태양은 왕을 상징한다 할 수도 있고

이후 혜공왕이 반란으로 피살되는 것을 보면

두 개의 해가 나타났다는 기록은

의미심장한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죄수들을 크게 사면했습니다


2월

혜공왕이 신궁에 직접 제사를 지냈습니다


양리공 良里公 집에서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다리가 다섯이었습니다

다리 하나는 위로 향했습니다


강주 康州 (오늘날 경상남도 진주시쪽)

에서 땅이 내려앉아 연못이 되었는데

넓이가 50여 척이고

검푸른 물빛이었습니다


10월 겨울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북소리 같았습니다


<신라인 1>백제나 고구려가 멸망하기 전에도

이런 불길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나 ?? ,,


<신라인 2>불길하도다,,

조만간 아주 큰 변고가 있을게야,,


<신라인 1> 헉 ,,


<라봉봉>혜공왕은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고 이미 선대왕인 경덕왕대에

녹읍이 부활되며 귀족권이 강화됬던 시기에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인물이며

태어날때의 저주스러운 설화 등

적장자임에도

상당히 불리한 조건에서 왕위에 오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위 초부터 있었던

불길한 기록들은 백제 멸망 전이나

고구려 멸망 전 저주스러운 이야기들 같은 급의

불길한 이야기들이라 할 수 있고

점점 요즘말로 '헬파티' , '헬게이트(지옥문)' 이

열려가는 신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무열왕계의 마지막 인물이었고

이에 김부식님은 거의 1000년 나라였던 신라를

상대, 중대, 하대로 구분했는데

신라 29대왕 태종 무열왕부터

신라 36대왕 혜공왕때까지를 중대라 구분했고

이에 혜공왕은 중대 마지막 인물이며

결국 혜공왕이 내물왕 10대손의

김양상에게 피살당하고 김양상이 선덕왕

(베풀 선자로 착할 선자의 선덕여왕과 다른 한자)

으로 신라 하대의 시작을 하게되며

무열왕계는 그렇게 혜공왕을 마지막으로

끊기게 됩니다

그러다 점점 신라는 귀족들이 일어나고

로마의 '군인 황제 시대' 와 맞먹을 정도의

대혼란기가 펼쳐지는데

딱히 외환도 없었고 강력한 국력에

내부적으로도 경제, 문화적

번영을 누리던 신라였는데 이토록 혼란스러운 시대가

펼쳐진 이유는 로마와 마찬가지로

패권을 장악한 이후 더이상 추구해야할 목적 등이

상실되고 평화에 젖어 위기에 무뎌지던 신라인들 같고

결국 강력했던 신라나 로마의 혼란등은

외부,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인 물은 썩는다' 라는 말같이 아무런 진전이나

발전 없이 그저 점점 잠겨 들어가던 신라였다고 생각됩니다


혜공왕대의 불길한 기록들은

사실 자연현상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오늘날보다 논리적, 합리적인 방식의 과학이 덜 발달했던

옛날에는 이런 자연재해 기록들은 '왕이 정치를 못했다' 하는 식의

은유적 비판이라고도 해석해 봐야 할 수도 있고

실제 백제,고구려 멸망 당시 일어난 불길한 현상들 역시

단순히 자연재해만이 아니라 그런 맥락으로도

이해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귀족들에게 점점 밀려가고 있던 신라 왕실이라 할 수 있고

점차 평화에 젖어 외환도, 내환도 아닌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고이고 썩어가던 당대 신라정치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반응형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