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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공왕 3년

6월 여름

지진이 있었습니다


7월 가을

이찬(신라 2등벼슬) 김은거를 당나라에 보내서

특산물을 바치고

책명을 冊命 (왕으로 책봉) 주기를 청하니

당황제가 자신전에 나와서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별 세 개가 대궐에 떨어져

서로 부딪혔습니다

그 빛이 불같이 솟아 올랐다가 흩어졌습니다


9월

김포현 金浦縣 (오늘날 경기도 김포시) 에서

벼 이삭이 모두 쌀로 변했습니다


혜공왕 4년

혜성이 동북쪽에 나타났습니다


당대종 唐代宗 (당태종과 다른

당나라 8대 황제 당대종입니다) 이

창부랑중귀붕경겸에게 어사중승을 겸하게 하고

책서 冊書 (책글씨) 를 보내서

혜공왕을 개부의동삼사 신라왕으로 책봉하고

겸해서 혜공왕의 어머니

김씨를 책봉해서 대비로 삼았습니다


5월 여름

사형수를 제외한 죄수들을 석방했습니다


6월

서울(=수도, 서라벌) 에 벼락이 치고

우박이 내려서 초목이 상했습니다


큰 별이 황룡사 남쪽에 떨어졌습니다


지진이 발생했는데

그 소리가 벼락소리 같았고

우물과 샘이 모두 말랐습니다


호랑이가 대궐에 들어왔습니다


(흉흉한 기록들입니다)


7월 가을

일길찬(신라 7등벼슬) 김대공이 그의 아우인

아찬(신라 6등벼슬) 김대렴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고

무리를 모아서 33일간 신라 왕궁을 포위했습니다


([김]대공의 난)


혜공왕의 군사가 이들을 토벌하여 평정하고

구족(=9족, 본인과 친족들) 읆 모두 처형했습니다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 에는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7월 3일

대공 각간(=이벌찬, 1등벼슬인데

혹은 신라 17 관등제와 별도로 최고 관위중 하나라고도

합니다 혹은 96각간의 난에서 각간은 원래 1등벼슬인

이벌찬이지만 또한

고위 신분을 상징하므로 귀족을 이야기 한다고도 하며

즉 대공 귀족의 반란,

96 귀족의 난이라 해도 무방할거 같습니다)

이 반란을 일으키자

수도(서라벌) 와 5도의 주와 군 등 96각간이 서로 싸워

크게 어지러워졌습니다


( '96각간의 난 ' 으로

이정도 급이면 신라 고위층에서

너도나도 그냥 다 일어났다고 보면 됩니다)


대공 각간의 집이 망하자

그 집의 보물과 비단 등을 왕궁으로 옮겼습니다


신성 新城 의 장창 長倉 (창고) 이 불에 탔습니다


사량리와 모량리에 있던 역적들의 보물과 곡식도

왕공으로 옮겼습니다


난리가 석(3) 달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상을 받은 사람도 제법 많았지만 죽임을 당한 사람도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표훈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고 말한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원래 혜공왕의 아버지

경덕왕이 아들을 가지려 스님 표훈대덕에게

하느님에게 부탁좀 해달라 했는데

하느님이 가능은 하나 그러면 나라가 어지러워 질 것이라

하셨고 경덕왕은 그럼에도 상관없다 해서

결국 '원래 여자로 태어나야했을' 혜공왕이 남자로 태어났고

신라가 어지러워 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96 각간들>원래 여자로 태어나야 했을 자가 왕위에 오르니

나라가 이모양 이꼴이다

모두 일어나라 !!!!!!


(혜공왕의 출생 전설은

비과학적인 설화라 할 수 있으나

이미 경덕왕대부터 녹읍 부활등으로

귀족들이 일어나던 시기였고

선대 왕들의 왕권이 강했긴 했으나

계속된 찍어누르기식 귀족 견제책이 계속되가며

귀족들의 불만이 쌓여갔던 것으로 생각되고

어린 왕 혜공왕이 즉위하자

흉흉해진 민심 등에 이런 소문까지 섞여서

전국구의 반란이 일어나게 된거 같습니다)


9월

사신을 당에 보내서 조공했습니다


<당나라인들>오,, 신라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데

괜찮으시오 ?


<신라 사신들>괜찮습니다,,

아직까지는요,,


10월 겨울

이찬(신라 2등벼슬) 신유를 상대등(신라 귀족 수장직)

으로 임명하고

이찬 김은거를 시중(오늘날 국무총리)으로 임명했습니다


<라봉봉>결국 김대공, 김대렴 형제의 난을 시작으로

신라 96명의 각간들이 일어나고

신라는 이때를 기점으로 대혼란기가 시작됩니다


오랫동안 귀족들에 대한

찍어누르기식 왕권강화책, 중앙집권화가

있었던 신라왕실이었고

왕실의 권위를 높일 수 있는 유교를 중시한 점,

귀족등릐 경제적 기반이었던

녹읍을 폐지한 점등에서 많은 도태된 귀족들이 생겨나고

왕권에 대한 불만도 잠재적으로 늘어갔다고 합니다

그 결과 경덕왕대 다시 녹읍이 부활되고

경덕왕 사후 어린 왕 혜공왕이

즉위하자 여러 흉흉한 소문들과

왕에 대한 저주스러운 탄생 소문들이 맞물려서

큰 난이 일어나게 된 거 같고

일단 겨우겨우 진압은 하긴 했으나

이미 귀족들의 왕의 권위에 대한 불신이

시작되고 있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고

결국 혜공왕 시기부터는

왕이 왕답지 못하고

귀족 집안간의 왕위 쟁탈전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혜공왕이 당시 김대공의 난을 진압한것도

겨우겨우 선대왕으로부터 이어진

강력한 왕권의 마지막 끝물로 진압한 느낌이고

결국 신라의 혼란기는 막을 수가 없었고

옛날 번영과 태평성대의 신라가 아닌

점점 신라는 속고 속이고

죽거나 죽이는 '서바이벌 생존게임' 화 되갔다

할 수 있고 김대공의 난을 시작으로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신라의 혼란기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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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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