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퀴리 부인>


1867년 11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마리아 스클로도프스카라는 여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분은 커서 라듐을 발견하고 인류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여성 과학자 퀴리부인이 되고

마리아 혹은 마냐는 그녀의 어릴적 이름이었습니다


마냐는 5남매중 막내딸이었고

아버지가 중학교 과학선생님이었고

어머니 역시 한때 학교 선생님이었기에

교육적인 집안에서 가족 모두가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마냐는 학교에서도 공부를 매우 잘해서

항상 1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위인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냐 못했냐를

조사한 이야기도 있는데

저마다 가지각색이고 퀴리부인은 학교에서

항상 1등하는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를 안나온 위인도 많으니

어린이 여러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요 ㅎㅎ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녀, 마냐는 학교에서 항상 우등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조국 폴란드는 약한 나라, 약소국이었습니다

그래서 폴란드는 러시아의 간섭을 받았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우등생이었던 마냐에게 항상

역사의 중요성을 가르쳤는데

당시 러시아 지배하의 폴란드에서는

폴란드 말과 폴란드 역사에 대한 수업이 금지되었습니다

이에 마냐의 학교에 방문한 러시아 장학사들이 오자

마냐의 반 아이들은

공책을 감추고 재봉수업을 받는 척을 했습니다

학교에 찾아온 러시아 장학사가 물었습니다


<러시아 장학사>너희를 다스리는 분은 누구냐 ?


그러자 마냐의 반은 정적이 흘렀습니다


<마냐 담임선생님>마냐가 한번 말해보렴,,


<마냐> ,, (울분을 참고) 러시아 황제 폐하십니다


<러시아 장학사>허허허 참으로 똑똑한 여자아이로군


러시아 장학사가 교실을 나가자

마냐는 담임선생님에 품에 안기며 엉엉 울었습니다


<마냐>저는 폴란드 사람이에요 !


담임 선생님도 마냐를 안고 함게 울었고

교실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힘이없는 나라 , 약소국의 비애였습니다


마냐는 초등학교를 일등으로 졸업했고

고등중학교도 16살에 졸업했는데 최우수 금메달을 땄습니다

항상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 그녀였기에

친구들보다 2년이나 일찍 학교를 졸업했는데

당시 대학을 가려했던 그녀였으나

바르샤바 대학은 여자에게 입학자격을 주지 않았기에

유학을 가야했고 당시 마냐의 언니 브로냐는

의학을 공부하고 싶고 마냐는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어했는데

경제적 형편때문에 한명만 대학을 가야할 형편이었고

그녀는 가족들과 상의 끝에 언니를 먼저 프랑스 파리의 의과대학에 보내고

언니가 대학을 졸업할때까지 마냐는 가정교사일을 하다가

언니가 졸업하면 언니가 마냐를 돕고

그때 마냐는 대학에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언니는 대학에 갔고

마냐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항상 학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금방 남의집에서 살면서 가정교사일을 하는

입주 가정교사일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첫번째로 간 집은 허영심이 많은 집이었기에

그녀는 그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금방 그만두었고

그렇지만 돈을 벌어야 했던 그녀였기에

이번에는 바르샤바를 떠나서 시골의 농장주 집안에

입주 가정교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농장주의 자녀는 많아서 그녀는 그들을 가르치며 돈을 벌었고

이곳은 도시와 달리 폴란드 사람만 사는 시골마을이었는데

그녀는 동네아이들이 글을 모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헛간에서 책상과 의자를 넣고 동네아이들의 공부를 몰래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교육의 힘을 믿고있었고

현재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폴란드였지만

폴란드 교육을 받고 자라난 폴란드 아이들이

교육의 힘으로 독립을 이룰 것임을 믿었던 그녀입니다


한편 그렇게 그녀가 가정교사로 지낸 이후

파리에 있던 그녀의 언니 브로냐는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어느새 23살이 된 그녀는 이번에는 언니의 도움으로 결국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 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자 그녀는 마냐라는 폴란드식 이름을 버리고

마리라는 프랑스식 이름을 사용합니다


마리는 소르본 대학에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물리학을 공부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폴란드에서 학교를 다닐때에

프랑스어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진짜 프랑스에 와서 대학에서 물리학 강의를 듣자

말이 빨라 이해가 어려웠습니다

항상 1등만 하던 그녀였는데 대학에 와서 자신의 초라함을 느꼈다 하고

이에 그녀는 더욱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마리는 언니의 집에서 생활하다 얼마후 학교 근처의

저렴한 다락방으로 거처를 옮겼고

마리는 누추한 방은 신경쓰지 않고 항상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돈을 아끼려 난로에 불도 피우지 않는 등

온갖 노력을 했고 공부를 하려 잠도 적게 자자

결국 마리는 쓰러졌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찾아온 마리의 언니 부부는

마리를 다시 자신의 집으로 끌고가서

부족해진 그녀의 기력을 보충시키려 약대신 고기를 먹였습니다


마리의 언니는 자신이 의과대학에 진학하느라

대학 진학에 늦어진 마리가 항상 안타까웠고

그녀를 정성껏 돌봐주었던 인물입니다


다시 건강을 회복한 마리는

공부에 힘썼고

결국 소르본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하며

가장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합니다


마리는 졸업 이후 좀더 파리에서 공부하고 싶었는데

그러다 어떤 사람의 소개로 프랑스 물리학자 피에르 퀴리를 만났습니다

피에르 퀴리와 마리는 서로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는 물리학에 대한 열정과

격식을 차리지 않고 검소한 모습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마리는 결국 피에르 퀴리와 결혼하게 됬고

이에 남편의 성을 따라 마리 퀴리, 퀴리 부인이 되었고

이 둘은 퀴리 부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연구실에서 퀴리부부>


두 사람은 항상 검소하고 격식을 차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결혼식도 조촐했고 결혼식때도 곧바로 실험실에 가려고

순백의 드레스가 아닌 검정색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신혼여행은 둘다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달리다 쉬며 조촐하게 자전거로 신혼여행을 했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했던

퀴리 부부는 파리에서 조그만 아파트에 살림을 차리고

가구도 거의 두지 않고 곧 다시 과학 연구에 집중했습니다


<퀴리 부인의 명언>사치와 부를 미치광이처럼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과학이 인간 사회의 가장 가치 있는 정신적 유산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다


퀴리부부는 항상 검소한 생활을 추구하며 과학연구라는 본질에 집중하려 했고

두 부부는 그렇게 매일 과학 공부를 함께 하고는 했습니다


퀴리부인은 슬슬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퀴리부인>여보 베크렐선을 연구해보고 싶어요 !


그녀의 남편 피에르 퀴리는 그녀를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베크렐선은 베크렐이 발견한 것인데

베크렐은 우라늄에서 신비로운 방사선이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 외에는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퀴리부인은 남편의 도움으로 대학의 허름한 창고를 실험실로 얻어서

광물을 조사하며 연구했습니다

이때 퀴리부인은 처음으로 '방사능' 이라는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퀴리부인은

1898년 방사능을 방출하는 2개의 새 원소를 찾아냈고

제일 먼저 찾아낸 원소에는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따서

폴로늄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과학이던 탐험이던 최초로 발견을 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대로

이름을 붙일 수 있는 특권같은게 있었고 퀴리부인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자신의 조국을 위해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자신이 발견한 원소에

폴로늄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폴로늄 발견 5달 후 두번째로 발견한 원소에는

'라듐' 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퀴리부인은 논문을 통해 라듐의 존재를 예고했고

그것을 발표한 이상 누구보다 먼저 그것을 발견해야 했습니다

퀴리부인의 대발견에 세계 과학계는 크게 놀랐고


퀴리부부는 이때부터 라듐의 분리를 위해 노력했고

열악한 환경속에서 4년간의 노력끝에

1902년 라듐을 분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라듐은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퀴리부부의 실험실을 비추었습니다


퀴리부부는 라듐의 제조방법을

세상에 알리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았고

라듐을 판매했다면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퀴리 부부는 라듐이 세계평화와 인류발전에만 쓰여야 한다고

간절하게 생각했습니다


퀴리부부가 새 원소 라듐을 발표하자

결국 퀴리부부는 1903년 자연방사현상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문기자가 몰려들고 이곳저곳의 파티장, 강연회에 초청받은

퀴리부부였으나 오랜 연구로 지쳐있었고 또

조용하게 지내는 것을 좋아했던 퀴리부부는

그곳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 조용히 있었습니다


노벨상 수상 이후 퀴리부부, 퀴리부인은 크게 유명해졌습니다

퀴리부부는 이후 나선 강연에서도 전쟁에도 사용되는 과학 때문에

과학은 오직 좋은 일에만 사용되고

악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했고

퀴리부부는 라듐이 의약품에 사용되지 않을까 싶어서

라듐의 제조법을 특허내지 않고 모두 공개했습니다


그러다 퀴리부인에게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남편 피에르 퀴리가 달려오는 마차에 치여 사망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은 슬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다 얼마후 정신을 차린 퀴리부인은

다시 과학 연구에 집중해 인류에 기여하는게

먼저 떠난 남편을 위한 길임을 생각하고

다시금 연구에 집중했습니다


<퀴리부인>떠나간 그이를 생각해서라도

용기를 잃어서는 안되,,


퀴리부인은 1910년 라듐을 더 순수한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이 업적으로 퀴리부인은 1911년 노벨 화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평생 한번 받기도 어렵다는 노벨상을 두번이나 받은 퀴리 부인이였고

두번이나 노벨상을 받은 인물은 당시 퀴리부인이 최초였습니다


두번째 노벨상을 받은 퀴리부인은 이후 라듐 연구소를 세웠고

조용히 지내려 했지만

1914년 곧 1차 세계대전이 터지게 됬습니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전쟁터에 갔고

퀴리부인도 당시 몸이 약해져있었지만

그녀는 나라가 있어야 연구도 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퀴리부인>전쟁터에 간 프랑스 젊은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


1895년 뢴트겐은 엑스선을 발견했는데

엑스선은 몸상태를 알아보는데 쓰였고

엑스선 기술은 

몸에 박힌 총알 , 파편 위치를 빠르게 알아낼 수 있는 유용한

기술이었고

그녀는 엑스선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그쪽 방면은 원래 잘아는 과학자인 그녀였기에

그녀가 개발한 엑스선 기계를 설치한 20대의 자동차를

직접 지휘하며 병사들을 돌봤고

이때 그녀가 도운 부상병은 100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병사들은 그녀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지만

그녀는 항상 겸손했다고 합니다


이후 프랑스와 연합군의 승리로 전쟁이 끝났습니다

퀴리부인은 유럽과 인류의 평화를 간절히 기원했고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그녀에게 좋은 소식은 또 있었는데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그녀의 조국 폴란드가 독립했던 것 입니다

그녀는 그토록 염원했던 조국의 독립에 기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퀴리 부인>폴란드 독립 만세 !!


이후 퀴리부인은 다시 퀴리 연구소 소장으로서

바쁜 생활을 했습니다 그녀는 노벨상으로 받은 상금도

나라에 바쳤고 전쟁때 기부금을 내는 등으로

재산이 많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미국 여성 기자 멜로니 부인이 퀴리부인을 찾아왔습니다


<퀴리부인>미국에는 라듐이 50그램이나 있다지요 ?

잘 사용됬으면 좋겠군요


<멜로니 부인>프랑스에는 라듐이 얼마나 있습니까 ?


<퀴리부인>제 연구소에 1그램이 전부입니다


이에 멜로니 부인은 크게 놀랬습니다

라듐의 발견자이면서도 라듐을 1그램밖에 가지고 있지 못했던

그녀였고 멜로니 부인은 미국에 돌아가서

퀴리부인의 업적을 알리며

이 위대한 과학자에게 라듐을 보내달라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결국 많은 돈이 모였고 퀴리부인은 미국에 초청됬습니다

그녀가 뉴욕 항구에 도착하자

수많은 미국인들이 이 위대한 여성과학자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그녀에게 환호했고

원래부터 이런것과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그녀였지만

미국에서의 여러 추억등으로 과학을 널리 알려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그녀였습니다


이후에도 연구에 집중하던 퀴리부인은 몸이 급격히 악화됬습니다

오랫동안 방사성 물질을 연구하며 방사능에 노출된 그녀였고

여러 질병을 앓다가 결국 그녀 병으로 쓰러졌고

1934년 66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인류를 위해서 방사성 물질을 연구하며

수많은 방사능에 노출된 그녀였고

그결과 골수암 , 백혈병 , 빈혈등이 겹쳐서 사망한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무덤에는 그녀의 조국 폴란드 흙이 뿌려졌습니다

 

<라봉봉>19~20세기는 유럽 과학의 전성기 시대였습니다

당시 수많은 기초과학, 이론들이 유럽에서 나왔고

퀴리부인 , 아인슈타인 같은 위인들이 나왔던 시기입니다


퀴리부인은 여성권이 낮았던 시대에 여성으로, 약소국 폴란드인으로 태어나서

수많은 장애와 제약에도 당당히 꿈을 이룬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과학이 오직 인류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되기를 원했던 인물입니다


어려운 환경, 길고긴 연구작업 등

그녀 스스로도 여러 많은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해해야 할 것이 있을 뿐이다'


그외에도 저는 어렸을때 퀴리부인 위인전에서 다른것보다도

자전거로 신혼여행을 했다라는 점을

아직도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남들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의 소리를 따른 인물이라 생각하고

한국에도 퀴리부인 같은 위대한

기초, 순수과학자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반응형

'어린이 개인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범 김구  (4) 2019.03.16
알프레드 노벨  (0) 2019.03.14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0) 2019.03.12
녹두장군 전봉준  (4) 2019.03.11
태조 왕건  (0) 2019.03.08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