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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칠삭둥이 아기]

[책읽기를 좋아한 충녕군]

[양녕대군의 비행]

[대마도 정벌]

[백성을 사랑한 마음]

[집현전 학사들]

[신분을 차별하지 않은 임금]

[훌륭한 업적들]

[아아, 훈민정음]

[위대한 왕 세종]

<라봉봉>

 

세종대왕

 

[칠삭둥이 아기]

세종대왕은 1397년 (조선 1대 임금 태조 6년)

5월 7일(그레고리력으로는 5월 15일) 서울 준수방의 정안군(=이방원) 저택에서

칠삭둥이(7달만에 태어난 아이) 로

정안군 (= 이방원 , 훗날 조선 3대 임금 태종)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세종대왕의 어머니는 원경왕후입니다

 

사람들은 7달만에 태어난 아이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이는 건강히 자랐고

효성이 깊고 형제들간의 우애도 좋아

참으로 착하게 자랐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총서>

영민하고 총명했으며 강인하고 과감했다

무거우며 굳세였고 점잖고 후덕했다

크고 너그러웠으며 어질고 사랑하였다

공손하고 검소하며 효도하고 우애함은

태어날 때부터 그러하였다 (出於天性 출어천성)

 

아이의 이름은 '도' 였고

성까지 '이도' 였는데

이 인물이 바로 백성을 사랑하고

오늘날에도 쓰이는 '한글' 을 만든 깨우친 위대한 임금

'세종대왕' 입니다

 

[책읽기를 좋아한 충녕군]

당시는 한국(조선) 은

한국 고유의 말은있었지만 글이없어

중국어인 한자를 사용해

어렵게 한국 글자를 쓰던 시기였습니다

 

세종대왕은 아버지 정안군이 즉위해 조선 3대임금

태종 임금이 되자

조선 태종 임금의 셋째아들로 충녕군이라 불렸습니다

충녕은 마음이 어질고

책읽기를 너무좋아해서

하루종일 책을 붙잡고 살았고

한권의 책들을 백번 이백번씩 읽었습니다

 

책읽기만 하다 건강이 나빠지기도 했고

몸이 아파도 계속 책을 읽자

이에 아들 충녕군의 건강을 걱정한 태종 임금은

환관(=내시) 들에게 말했습니다

 

<태종>충녕군이 책을 읽지 못하게

방의 책을 모두 거두어오도록 하시오 !!!

 

이에 환관들은

충녕의 책들을 모두 가져갔고

몇일후 태종 임금이 충녕의 방을 살펴보니

충녕은 병풍 사이에 있어 미쳐 환관이 가져가지 못한

책 한권을 열심히 읽고있었습니다

 

태종 깜짝 놀랬습니다

이후에도 충녕은 부지런히 책을 읽으며

책에서 읽은 사람들의 가르침을

실천하려 노력했습니다

 

[양녕대군의 비행]

한편 태종에겐 세명의 왕자가 있었고

첫째아들이 세자 양녕대군 ,

둘째아들이 효령대군 ,

셋째아들이 충녕대군이었는데

세자 양녕대군은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했는데

점점 노는일에 정신팔더니 건달들과 어울려 지내고

여자들에 빠져서 비행(잘못된 행위) 을 하여

태종 임금의 속을 썩였습니다

 

태종 임금과 양녕대군

 

이에 신하들 역시 세자를 못마땅해 했습니다

이에 신하들은 세자가

장차 좋은 임금이 될 수 없다 생각해서

태종 임금에게 글을 올렸습니다

신하들의 글을 본 태종 임금도 안타까워서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태종>그렇다면 누가 왕이 되야하겠는가 ?

 

<신하들>학문이 깊고 어진 인물이어야 합니다 !

 

한편 세자 양녕대군 역시

충녕대군이 어질고 현명한 것을 알고

동생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잇게 하기 위해

일부로 더욱 방탕한 척을 했고

결국 태종 임금의 셋째 아들중에서

가장 어질고 현명했던 충녕대군이

세자가 됬고 얼마후

충녕대군은 21세에

조선의 4대임금 세종대왕이 되었습니다

 

[대마도 정벌]

1419년

왜구(일본 해적) 들이 우리 땅을 자주 약탈하고

침략하고 백성들을 잡아갔는데

이에 세종대왕은 이종무 장군에게 명해서

왜구들의 본거지였던 대마도를 정벌하라 지시했습니다

대마도는 원래 경상도에 속한

한국의 땅이었는데 일본 해적들이

이곳에 근거지를 마련해 살며 점차 조선을 침략하는

전초기지가 되자 결국 이종무 장군은 대마도에 상륙해

왜구를 소탕하고

왜구에 잡힌 조선인과 중국인들을 구출해 냈습니다

한편으로 세종대왕은 왜인들이 함부로 조선을 침략하지 못하게

왜인들에게 조선과의 교역을 허락하며 달래기도 했습니다

 

왜인들의 항복을 받는 이종무 장군 , 대마도 정벌

 

[백성을 사랑한 마음]

학문을 좋아한 세종대왕은 중국의 글과

한국(조선)의 글이 달라 불편함을 느낌과 동시에

중국글인 한자가 배우기 어려워 글자를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기 일쑤였던 백성들의 삶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이에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위한 글자를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종대왕>백성들을 위한 글이라면

배우기 쉽고 쓰기 쉬워야 한다,,

 

세종대왕은 자나깨나 백성들을 위한 글자를

생각했습니다

 

[집현전 학사들]

세종대왕은

집현전에 학자들을 시켜

학문을 연구하게 했습니다

 

어느날 집현전에는 밤늦게 불이 켜져있어 있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살펴보니

신숙주가 밤새 책을 읽고 있다가

깜빡 잠에 들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에 세종대왕은 자신이 입고있던 곤룡포(임금의 옷) 를

신숙주에게 덮어주었고

잠에서 깬 신숙주는 곤룡포가 자신의 어깨에 덮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세종대왕이 거처하는 궁궐을 향해 절을 올렸습니다

 

신숙주 초상화 :: 보물 제 613호

 

세종대왕이 덮어준 곤룡포에 눈물 흘리는 신숙주 , 출처 : 역사만화 한국사위인전 22 세종대왕

 

[신분을 차별하지 않은 임금]

세종대왕은

'도천법' 제도를 마련해서

누구든지 신분을 막론하고 재주만 있으면

나라를 위해 일할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동래현(오늘날 부산) 의

천민출신 장영실이었는데

손재주와 기술이 뛰어나

세종대왕은 그에게 과학기구를 만들 것을 맡기었고

장영실은 기대에 보답해

물시계(자격루) 와 해시계(앙부일구)

세계 최초로 비의 양을 재는

측우기와 강물의 높이를 재는 수표를 만들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이에 장영실이 만든 기구들을 농사짓는데

이용하도록 했고

측우기를 전국에 설치해 홍수피해를 줄이도록 했습니다

 

장영실

 

자격루

 

측우기

 

[훌륭한 업적들]

세종대왕은 이외에도 음악에 관심이 많아

천재 음악가 박연으로 하여금

음악을 정리하게하고 악기도 만들었습니다

 

이밖에도 백성들을 위해

농사의 지혜를 가르치는 '농사직설'

충과 효를 가르치는 '효행록' , '삼강행실도' 책도 펴냈습니다

 

한글로 쓰인 '삼강행실도언해 (1481년)'

 

또 당시 가장 천대받는 계층이었던

노비(천민)들을 아껴 사회적 약자인 노비들에게

출산휴가를 주고

함부로 노비를 떄리거나 죽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세종실록 26년 윤 7월 24일>

,,, 더욱이 노비는 비록 천민이나

하늘이 낸 백성 아님이 없으니

신하된 자로서 하늘이 낳은 백성을 

부리는 것만도 만족하다고 할 것인데

그 어찌 제멋대로 형벌을 행하여 

무고한(죄없는)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또 김종서 장군과 최윤덕 장군을 시켜

4군 6진을 개척해

북방의 한국영토를 수복(되찾음) 하게 했습니다

특히나 김종서 장군은 북방의 여진족들이 두려워해

'북방의 호랑이' 라 불렸습니다

 

세종대왕때 수복된 4군 6진

 

김종서의 육진개척 우표 (1982년) , 출처 : 한국조폐공사

 

[아아, 훈민정음]

1443년 세종 25년

세종대왕은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세종대왕은 밤낮 가리지 않고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펴며

부지런히 공부하며 만들어낸 글자로

일을 너무 많이해서 젊은 나이에도

지팡이를 짚고 다녔고

눈병이 생긴 와중에도

글자를 몰라 억울하게 죽어간 백성들을 생각하며

글자를 만들었고

결국 28 글자를 만들었고

세종대왕이 만든 글자는 쉽고 단순해서

모든 백성이 쉽게 배워 쓰며

자신들의 생각을 전할수있게 되었습니다

세종대왕이 글자를 만들어내자

신하 최만리는 글자를 만드는 것을 반대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최만리의 상소 요약>대국인 중국의 글자가 있고

중국의 글자를 빌려쓴

설총의 '이두' 가 있는데 무엇하러 글을 만들어

오랑캐같은 일을 하려합니까 ?

 

평소 화를 잘 내지 않았던 세종대왕은

최만리의 상소에 감정을 표출하며

격렬하게 분노했습니다

 

<세종대왕>설총이나 나나 백성을 편하게 하자는 것인데

너는 감히 설총은 옳고 임금은 그르다고 하느냐

그리고 너희들이 운서를 알기나 하느냐 ? 

사성 칠음에 자모가 몇 개더냐 ? 

만일 내가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바로잡겠느냐

또 '새롭고 기이한 하나의 기예라' 하였으니

내 늘그막에 날을 보내기 어려워서 

서적으로 벗을 삼을 뿐인데

어찌 옛 것을 싫어하고 새 것을 좋아하여 하는 것이겠느냐 ?

 

결국 세종대왕은 글자를 반포했고

세종대왕은 이 글자를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라는 뜻으로

'훈민정음' 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훈민정음' 이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한국어를 연구한 국문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주시경 선생님이 '한글' 로 바꾸었고

한글은 오늘날에도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뛰어난 글자라고 여겨지는

동시에 세종대왕의 백성을 위한

'애민정신' 이 담겨있습니다

 

훈민정음 언해본

 

[위대한 왕 세종]

세종대왕은 많은 업적을 남기며

백성들을 매우 아꼈습니다

그의 신하들 황희 정승 , 맹사성 , 허조 , 장영실 ,

신숙주 , 성삼문 , 이종무 , 김종서 , 최윤덕  등등

역시 청백리(청렴하거나 도덕적임) 거나

능력들이 뛰어나 세종대왕을 보필하며

훌륭한 정치를 했고

사람들은 세종대왕을 '성군(성스러운 임금)' 이라거나

중국의 훌륭한 임금 요임금과 순임금을 '요순' 이라 부르는데

이에 세종대왕을 '해동요순(한국의 요순)' 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세종대왕을 모신 명재상 황희 정승

 

1450년 4월 8일

세종대왕은 54세를 일기로 사망하셨고

그가 사망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통곡했습니다

사람들은 세종 임금을 높여 '세종대왕' 이라 불렀고

그의 생일 5월 15일(그레고리력) 은 한국에서 오늘날

'스승의 날' 로 기리고 있고

세종대왕은 오늘날 한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 명언>내가 꿈꾸는 태평성대는

백성이 하려고 하는 일을

원만하게 하는 세상이다

 

서울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

 

대한민국 1만원 지폐의 세종대왕

 

게임속 세종대왕 , 출처 : 시드마이어의 문명 5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야기가 나온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 출처 : SBS 대기획 : 뿌리깊은 나무 (2011)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이야기가 담긴 영화 나랏말싸미 The King's Letters , 2019 .07.24 개봉

 

<라봉봉>백성을 사랑한 위대한 임금 세종대왕의 이야기였습니다

세종대왕은 평생동안 공부를 열심히하고 백성들을 위한 많은 일을 해서

왠만한 책 한권으로는 그의 일생과 업적을 일일히 나열하기가 어렵습니다

 

외국 언어학자들은 한글은 '문자 언어학적 사치' 라며

한글의 뛰어난 우수성을 극찬하고 있고

지금 그의 대한 이 이야기 역시 그가 만든 글자인 한글로 쓰이고 있고

현재에도 한국의 문맹률은 쉽고 편한 한글로 인해 극도로 낮으며

외국의 문자가 없는 곳에 한글을 보급하는 시도도 있었고

오늘날 문맹 퇴치에 기여한 개인/단체/기구 등에는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 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광개토대왕과 더불어 우리 역사상 '대왕' 이라 불리는

왕이며

그는 정말로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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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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