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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호랑이를 잡은 태자]

[백두산에서의 맹세]

[백성을 평안하게 하다]

[관미성 전투] 

[신라를 보호하다]

[요동 수복]

[강대한 나라 고구려] 

<라봉봉>

 

광개토대왕

 

[호랑이를 잡은 태자]

광개토대왕(=광개토태왕) 의 어릴적 이름은 고구려 고씨성에

담덕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담덕' 이었습니다

담덕 왕자는 374년 고구려에서 태어났습니다

담덕왕자는 태어날때부터 체격이 크고

생각이 대범했습니다

 

담덕 왕자가 태자로 결정된 날

고구려 백성들이 같이 기뻐했습니다

 

<담덕 태자의 맹세>나는 반드시 고구려를

부강한 나라로 만들겠습니다 !!

 

담덕태자의 의연한 모습에

백성들이 너도나도 기뻐하며 축하 연회가 펼쳐졌습니다

 

한창 새 태자를 축하하는 잔치가 무르익어가며

해가 졌을 때쯤

담덕 태자는 홀로 말을 타고 나와

깊은 산속에 올랐습니다

 

노련한 고구려의 사냥꾼들도 꺼리는 밤중의 산을 오르며

담덕 태자는 축제로 무르익어가는 도성과

저 멀리 오랑캐들에게 뺏긴

옛 조선의 광할한 요동(만주) 영토를

바라보았습니다

 

<담덕 태자>저곳은 대대로 이어진 우리 조상들의 땅이다..

나는 태왕(고구려의 왕)이 되어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저곳을 되찾아야겠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만주 평원

 

그때 저 멀리서 호랑이 한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용맹한 담덕 태자는

재빨리 활을 꺼내 호랑이의 이마에 맞췄고

그럼에도 돌진해오는 호랑이에게

보검을 뽑아 내리치자

호랑이가 죽었습니다

 

한민족(한국인)을 상징하는 동물 호랑이 , 옛날 한국의 산에는 호랑이가 많았습니다

 

담덕 태자는 죽은 호랑이를 말위에 매어

도성인 국내성으로 돌아왔고

백성들은 담덕 태자가 호랑이를 사냥해오자

용맹한 담덕 태자의 담력에 기뻐했습니다

 

<고구려 백성들>담덕 태자님 만세 !

고구려 만세 !

 

이후부터 담덕 태자는

책임감을 가지고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집안시에 남아있는 옛 고구려 국내성 성벽

 

[백두산에서의 맹세]

이후 담덕태자는 부왕(아버지 왕) 인 고국양왕과 함께

백두산 꼭대기인 천지에 올랐습니다

 

한민족(한국인)의 영산인 백두산 정상에 있는 호수 '천지' , 고구려 왕실 무덤에 모셔진 고구려 왕들의 머리는 백두산을 향하고 있습니다

 

백두산의 물줄기는 크게 세 곳으로 나뉘어

압록강 , 두만강 , 송화강으로 흐르고 있었고

사방에는 여러 세력들이 옛 고구려 조상들의 땅을

점거하고 있었습니다

 

<고국양왕>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성산(성스러운 산) 으로서

무덤속에 모셔진 우리 태왕(고구려의 왕) 과 왕비의 머리는

백두산 천지(방위각 55도) 를 향하고 있단다

자 이곳에서 사방에 펼쳐진 우리 고구려인들의 땅을 보아라 !

 

<담덕 태자>저는 아바마마를 이어 위대한 왕이 되어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 저 멀리 빼앗긴 조상들의

영토를 되찾겠사옵니다 !

 

의젓한 담덕 태자의 모습에 부왕 고국양왕은 흐믓했습니다

 

[백성을 평안하게 하다]

이후 고국양왕은 병에 걸려 사망했고

담덕 태자가 17세의 나이에

고국양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고구려 19대왕 광개토대왕이 되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

고구려를 부강한 나라로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먼저 광개토대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가난한 백성들의 세금을 감해주거나

면제하고 의로운 관리들을 뽑았고

이에 고구려는 평안해졌습니다

그러자 곧 광개토대왕은 강한 군대를 길러야겠다 생각하고

군사들을 모집하자

너도나도 고구려의 용맹한 젊은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고구려 벽화 수렵도 , 용맹함을 중시하는 '상무정신' 을 중요시한 고구려인들이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병사들에게 사냥을 통해 훈련을 시켰는데

병사들은 사냥을 하며 자연스럽게

활쏘기와 검술, 말타기 실력이 높아졌습니다

 

[관미성 전투]

날래고 강한 병사들이 생겨나자 광개토대왕은

옛날 백제에게 진 원수를 갚기로 결정했고

백제를 공격했습니다

옛날 백제왕 근초고왕은 광개토대왕의 할아버지

고국원왕을 평양성 전투에서 전사(전쟁에서 사망) 시켰고

이에 고구려인들은

백제를 단단히 벼르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백제의 정복군주 근초고왕 , 출처 : KBS 1TV 대하드라마 근초고왕 (2010)

 

결국 광개토대왕은

백제의 천혜의 요새라는 관미성(오늘날 강화 교동도로 추정) 을 공격했는데

백제 관미성 성주는 사방이 가파른 절벽에

바다로 둘러쌓인 관미성의 험준한 지형을 믿고

고구려 군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백제 최고의 요충지 관미성 , 출처 : KBS 1TV 대하드라마 광개토태왕 (2011)

 

결국 광개토대왕은 관미성을 포위공격하기로 결심하고

고구려 군을 7갈래로 나뉘게 해서

20일동안 공격해서 관미성을 함락시켰습니다

 

관미성이 함락되자 백제 영토는 속수무책으로

고구려에게 넘어가기 시작됬고

당시 백제 진사왕은 고구려 군을 우습게 여기며

한가롭게 궁에서 사냥하며 놀다가

백제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 살해당했고

삼촌인 진사왕을 죽이고 새 백제 왕이 된 아신왕은

광개토대왕에게 복수하려고

외삼촌 진무장군을 내세워 관미성을 되찾으려 했지만

진무 장군은 용맹한 고구려군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아신왕이 계속해서 고구려를 공격하자

분노한 광개토대왕은 직접 고구려 수군을 이끌고

아리수(한강) 를 건너서 백제 수도 한성을 포위했고

이에 아신왕은 성문을 열고 나와 보물과 백성들을 바치며

고구려 군사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신왕>이제부터 저희 백제는

영원히 고구려 왕의 노객(노예)이 되겠사옵니다

 

이에 광개토대왕은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 여기며

아신왕의 잘못을 용서하며

항복한 정성을 기특히 여기고 백제 포로들을 데리고

고구려 수도 국내성으로

개선(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옴) 했습니다

 

[신라를 보호하다]

한편 광개토대왕은 남방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해

신라와 친분관계를 맺었고

신라에 왜군이 쳐들어오자 고구려 군사들을 파병해서

대신 물리쳐주었습니다

 

경주(신라 수도)에서 출토된 고구려 호우명 그릇 , 광개토대왕의 이름이 새겨져있으며 신라가 고구려의 속국이었음을 의미하는 유물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남쪽의 백제와 신라는 서쪽의 한족(중국인) 들과는 달리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의복을 입는

같은 고조선의 후예임을 알고 있었기에

속국으로만 삼기로 했고

 

이제부터는 한족들이나 북방 오랑캐들에게 뺏긴

서북방의 옛 고조선의 광할한 영토를 되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고조선 유물 '비파형 동검' 으로 추측하는 광활했던 옛 고조선의 영토

 

[요동 수복]

광개토대왕은 북방의 거란을 공격하고

거란에 넘어간 고구려 백성들을

달래서 데려왔고

이후 광개토대왕은 옛 고조선의 영토였던

광활한 요동땅(만주)을 되찾으려했고

요동땅을 점거하고 있었던

서쪽의 연나라를 공격해서 요동성을 수복(되찾음) 했습니다

 

광개토대왕의 영토확장 , 출처 : 대한민국 우표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고구려 철갑기병인 '개마무사'

 

<광개토대왕>옛 선조의 땅을

후손인 우리 고구려가 갖는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

 

<고구려 군사들>와아아아 !

고구려 만세 !

태왕폐하 만세 !

 

그렇게 고조선이 중국 한나라에 멸망하고

빼앗긴 광할한 고조선의 중심지였던 요동벌판(만주벌판)을

수백년만에 되찾은 광개토대왕이었고

고구려 백성들은 감격해 눈물흘렸습니다

광개토대왕은 사방으로 고구려의 영토를 크게 넓혔습니다

 

광개토대왕 당시 고구려 영토, 동서남북으로 영토를 넓힌 광개토대왕의 정복로

 

[강대한 나라 고구려]

광개토대왕 시대부터 고구려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떠올랐고

주변의 나쁜 무리들이 사라지고 영토가 크게 넓어지자

고구려 백성들은 각자의 생업에 힘쓰고

평안히 살았으며 해마다 풍년이 들어

부강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광개토대왕은 평생을 전쟁터에 사느라

몸이 쇠약해져서 병상에 누웠고

태자 거련에게 말했습니다

 

<광개토대왕>거련아 앞으로는 네가

남은 백성들을 편안히 잘 다스리고

고구려를 부강하게 이어가야 하느니라

 

태자 거련은 눈물흘리며 대답했습니다

 

<거련 태자>예 아바마마 ..

 

광개토대왕은 이어서 말했습니다

 

<광개토대왕>그동안

우리 고구려 태왕릉(고구려 왕의 무덤) 은

항상 고구려인들이 관리하게 했지만

고구려인들의 삶이 염려되므로

내 무덤은 내가 몸소 잡아온 백제인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라

또한 태왕들의 무덤이 헷갈리지 않도록

묘에 비를 세우도록 하라 !

 

말을 마친 후 광개토대왕은

413년 음력 10월

39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사망했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거련 태자는 부왕 광개토대왕의 뒤를 이어

고구려 20대왕 장수왕이 되서

왕이 된지 2년째 되던해인 414년

아버지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압록강 건너에 광개토대왕을 기리는

'광개토대왕릉비' 를 세웠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

 

광개토대왕릉비에는 고구려 동명성왕의 건국신화와

광개토대왕의 훌륭한 업적들이 쓰여 있습니다

 

<삼국사기 광개토왕 편에서 ... >

그(광개토대왕) 는 태어나면서부터 체격이 크고

생각이 대범하였다

 

광개토대왕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태왕사신기' , 출처 : MBC 수목 미니시리즈 태왕사신기(太王四神記) (2007)

 

광개토대왕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광개토태왕' , 출처 : KBS 1TV 대하드라마 광개토태왕 (2011)

 

<라봉봉>한국 역사상 '대왕' 이라 불리는 2명의 대왕은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조선 세종대왕이 있습니다

광개토대왕 시대는 한민족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시기로 이야기 되고 있고

건국 초기부터 한국 영토에서 살고있던 한족(중국인) 들과 투쟁하며 성장해온 고구려는

광개토대왕대에 이르러 고조선 영토의 중요지역이었던 요동지방을 수복하고

당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이야기 되는 시기가 펼쳐졌다 할 수 있습니다

 

광개토대왕 시기 고구려인들은 스스로를 '천하의 중심' 이라 여기며

자부심이 컸고 이러한 자부심은 후손들에게도 이어져

'한민족' 이라는 민족적 자부심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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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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