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윈스턴 처칠>

[개구쟁이 도련님]

[육사 생도 처칠]

[종군기자]

[정치인 처칠]

[체임벌린의 거짓평화]

[전시수상]

[영국 본토 항공전]

[영국을 구한 총리]

[승리의 브이]

[처칠과 유머]

[위대한 영국인]

<라봉봉>

 

윈스턴 처칠

 

[개구쟁이 도련님]

윈스턴 처칠은 영국의 유명한 귀족집안에서

1874년 11월 30일에 태어났습니다

 

처칠의 아버지는 재무장관을 지낸 엄격한 정치가였고

어머니는 사교성과 감수성이 풍부한 인물이였습니다

 

처칠은 활달한 개구장이였지만

아버지는 정치에만 몰두했고

9살때부터 처칠은 기숙학교에 들어가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됩니다

 

어린시절의 처칠

 

처칠이 다니던 학교에 수영장이 있어서

처칠은 수업이 끝나면 그곳에 달려가 수영을 즐겼는데

개구장이 처칠은

친구들을 물속에 밀어넣는 놀이를 즐겼고

어느날처럼 물가에 있는 몸집 작은 학생을 보고

뒤에서 그를 물속에 처박아 버렸는데

알고보니 2년 선배였던 것입니다

 

처칠은

 

<처칠>미안해요 키가 작아서

제 친구인줄 알았습니다

 

이에 선배의 표정은 더욱 무섭게 변했습니다

그때 처칠은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잠깐 생각하다가

 

<처칠>저의 아버지도 재무장관이신데

형처럼 몸집이 작아요

키카 작은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들이 많나봐요 !

 

이에 선배는 화가 풀렸는지 어이없다는듯이 웃으면서

 

<선배>다음부터 조심해 !

 

하고 돌아갔습니다

 

처칠은 항상 신중해야 행동해겠다 생각했지만

그 버릇이 고쳐지지 않았고

항상 학교에서도 선생님의 꾸지람을 받고

성적도 나빠서

활달한 처칠은 점차 내성적인 아이로 변하게 됩니다

 

처칠의 학교 성적을 본 아버지는

 

<처칠 아버지>이 정도의 실력으로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은 꿈도 못 꾼다. 

변호사가 되기에는 머리가 나쁘고 목사가 되기에는 성격도 안 좋고 ,

다른 능력도 안보이니 군인이나 되라

 

아들을 폄하하고 육군사관학교에 보내려했는데

처칠은 특별과외를 받으며 3수끝에서야 겨우 합격합니다

 

처칠은 명문가 출신임에도

아무도 그를 귀족같이 여기지 않았고

처칠의 할머니 조차

 

'윈스턴 같이 막돼먹은 놈에게 공작위를 줄 수는 없어 !'

 

할 정도로 미운오리새끼 , 말썽쟁이 철부지 도련님이었습니다

 

[육사 생도 처칠]

어렵게 육사에 들어간 처칠이었지만

보통 육사생도들이 보병장교를 하는 것과 달리

학과 공부가 어려워 수학과목이 필수가 아닌

기병 장교를 선택합니다

 

장교 , 젊은 시절 처칠

 

또 처칠은 라틴어공부는 싫어했지만

영어와 역사과목은 좋아해서

그가 엄청나게 공부한 영어는 그의 재치와 위트 , 연설에 큰 도움이 되었고

역사는 정치가가 되어 대국적으로 보는 눈을 길러주었습니다

 

<처칠 명언>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

 

[종군기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처칠은

곧 세계 각지의 전투에 참전했고

아프리카 보어지역에 가서

장교 및 종군기자(군대를 따라 전쟁터에 나가 전투 상황을 보도하는 기자) 로 활약합니다

 

보어지역이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처칠은 종군기자가 되어 처참한 전황등을 생생하게 본국에 전달했고

또 보어인 게릴라부대에 붙잡혔지만

처칠은 1년만에 홀로 480km 를 걸어서 탈출에 성공합니다

 

처칠이 보내온 전쟁의 실상 및

처칠이 쓴 자신의 탈출기 책은

영국인들에게 큰 파장을 불러왔고

사람들은 처칠을 전쟁영웅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정치인 처칠]

이에 처칠은 아버지처럼 정치에 입문해

1890년 24세에 하원의원(국회의원) 에 당선됩니다

 

처칠은 이후 통상장관 , 식민장관 , 해군장관을 하며

주요 요직들을 거쳤고

그러다 그가 해군장관일때 1차 세계대전이 터집니다

 

해군장관 당시 윈스턴 처칠

 

유럽인들은 한창 세계에 식민지를 넓혀가다

더이상 넓힐 식민지가 사라지자

점차 내부 모순이 썩고 폭발해가고 있었고

이로 인해 1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전 유럽이 전쟁에 휘말리게 됬고

세계에 가장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영국 , 대영제국 역시

그랬습니다

 

해군장관 처칠은 육군과의 합동작전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해군만의 작전을 하려다 실패했고

이로 인해 장관직에서 물러납니다

 

장관직에서 은퇴후 편한길을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처칠은 다시금 중령계급장을 단 채

최전선의 부대장으로 참전합니다

 

영국은 섬나라라 해군힘이 특히 강해

해군장관은 엄청난 귄위가 있는 자리인데

그 해군장관 출신이 하루아침에 강등되어

최전선 참호로 가자 사람들은 놀랬습니다

 

처칠 역시 놀랬는데

최전선의 참호에서 병사들은 발이 썩어나가고 고통받고 있었고

이것은 날라오는 총알보다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악몽 '참호전'

 

비가 온 뒤 물이 고인 참호

 

피곤에 지친 참호속 병사들

 

이에 처칠은 부대원들에게 틈만나는대로

군화를 벗고 맨발을 햇볕에 쪼일 것을 명령했고

자주 목욕을 시켜 피부병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너무 쉬운 명령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엄격한 군대분위기상 발이 그대로 썩으면 썩었지

혼자 군화를 벗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고

실제로 이런 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모두가 머뭇거릴 수 밖에 없는 사안이었고

처칠은 이런 것을 보는데 뛰어난 리더였습니다

 

처칠은 이런 업적들로 다시금

중앙정계로 복귀해

주요 장관을 거치며 나라의 중책을 맡습니다

 

[체임벌린의 거짓평화]

1차 세계대전은 영국과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고

패전한 독일은 막대한 배상금을

영국 및 연합국에게 바쳐야 했고

이로인한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립니다

 

전쟁배상금을 내느라 화폐를 막 찍어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 당시 독일 , 사용가치가 없어진 독일지폐를 가지고 노는 독일 어린이들

 

그때 그러한 암울한 분위기를 이용해

히틀러라는 인물이 등장해 독일인들을 선동하며 정권을 잡았고

히틀러와 나치당은 1당독재자가 되어

다시금 군비를 확장하고 무장을 강화시켰습니다

 

선동하는 히틀러

 

점차 유럽인들은 나치독일과 히틀러에 의해

2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것이 아니냐는 공포감에 시달렸습니다

 

세계에는 그렇게 파시즘 , 군국주의가 확산되고 있었고

또 소련 중심으로 공산주의가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공산주의를 싫어했는데

당시 유럽 지도자 , 영국 정치인들은

독일이 유럽 공산화를 막기위한 전초기지가 되어야 한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처칠은 파시즘(극우)과 공산주의(극좌)가 모두 옳지 않다 여겼으며

 

'공산화를 막기 위해 파시즘을 용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며

히틀러와 나치즘을 막는게 시급하다 했습니다

 

그러나 영국 정치인들과 대중들은

미래의 공포보다 눈앞의 평화를 원했고

 

1차 세계대전으로 크게 지친 영국인들은

더이상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기에

당장 군비를 확장하는 나치독일의 히틀러를 달래서

같은편으로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결국 영국 총리 체임벌린은

히틀러에게 찾아가서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돌아왔는데

정작 히틀러는 영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하며

영국의 무기력에 쾌재를 부르며 본격적인 전쟁준비에 들어갔습니다

 

히틀러와 만난 영국 체임벌린 총리

 

한편 순진하게 돌아온 체임벌린은

평화협정을 하고 돌아왔다며

이를

 

'우리 시대의 평화'

 

라 말했습니다

 

모두가 체임벌린이 가져온 평화문서에 환호했지만

오직 한 사람 , 처칠 혼자서 의회연설에서

 

<처칠>우리는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패배를 맛보았다..

이것은 끝이 아니다

시작일 뿐이다

 

라고 말했고

그의 연설은 야유와 고함속에 묻혀버렸고

처칠은 전쟁광 취급을 받게 됩니다

 

모두가 히틀러와의 평화협정에 환호하고 있을때

처칠은 이런 굴욕적인 협상으로는 히틀러의 야욕을 막을 수 없다 생각했습니다

 

[전시수상]

결국 평화조약이 1년도 지나지 않아

히틀러는 1939년 9월 1일

영국과 프랑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폴란드를 침공해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체임벌린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총리의 자리에서 물러났고

모두가 히틀러를 달래려 할때

1930년대 내내 히틀러의 위험을 경고해왔던

윈스턴 처칠은 매일같이 잡소리가 해대던 귀찮은 늙은이에서

혜안을 가진 예언자로 급부상했고

 

결국 1940년 65세의 처칠은

체임벌린의 뒤를 이어서

위기의 영국의 전시수상(수상=총리)이 되었습니다

 

<처칠의 수상 취임 연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 이미 정부 관료들에게 말하였듯이 , 

의원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 수고와 , 눈물 , 그리고 땀뿐이라고.

우리의 앞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앞에는 투쟁과 고통으로 점철될 수많은 세월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 한 단어로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승리 ,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승리 ,

어떠한 공포가 닥쳐올지라도 승리 ,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승리 없이는 생존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독일과의 전쟁 , 비상상황에 돌입했기에

영국 노동당 , 자유당 , 보수당은 모두 거국내각을 형성해

힘을 처칠에게 위임했기에

처칠은 초당적 힘을 가지게 되었고

처칠은 위기의 유럽을 구하려 노력합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처칠의 하원 연설>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국을 지켜 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상륙지점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

we shall never surrender !

 

연설하는 처칠 총리

 

그러나 기세등등한 독일은

순식간에 프랑스를 함락시키고 유럽 전역으로 세력을 확대해갔고

홀로남은 영국은 유럽에서 고립된채 독일과 맞서게 됩니다

 

당시 나치독일의 지배지 , 홀로남은 영국

 

[영국 본토 항공전]

독일은 남은 영국까지 함락시키기 위해

영국 본토에 폭격기를 보내서 수도 런던을 공습했고

'영국 본토 항공전' 이 시작됩니다

 

런던 상공의 독일 폭격기

 

하늘을 감시하는 영국공군

 

독일 공군기 Bf109 를 상대로

영국 공군기 스핏파이어는 대등한 성능을 과시하며

영국 상공을 지켜내었고

스핏파이어는

 

'영국을 구한 전투기'

 

라 불리며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스핏파이어

 

런던 시민들은 폭격을 피해 저마다 시골 , 고향으로

피난갔는데

처칠은 이러한 와중에도

국민들의 사기를 고취시키기 위해

끝까지 런던을 떠나지 않고 총리로서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영국을 구한 총리]

또한 처칠은 미국에 무기 대여법으로 수많은 무기를 지원받고

또한 미군의 참전을 요청합니다

 

또한 처칠은 영국의 오랜 라이벌이기도 하지만

나치독일에 맞서는 연합국의 주요 세력인 프랑스 임시정부를 지원해

드골이 자유프랑스 운동을 할 수 있는데 지원합니다

 

2차 세계대전중 처칠 수상은 항상 최전선에 나서며

영국인 , 영국군을 하나로 단결시키려 노력했고

모든일 ,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총리가 관여하려 했고

그것은 영국민들에게 용기와 힘을 모아주었습니다

 

시거를 물고 중절모를 쓰고 톰슨 기관단총을 든 처칠 , 마피아 두목같아 보이는 카리스마 있는 총리의 모습에 영국인들은 환호했습니다

 

이로인해 결국 연합군에게 나치독일은 패망했고

영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합니다

 

[승리의 브이]

처칠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항상 유머 ,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처칠은 히틀러와 같은 '유형' 의 인물이었지만

항상 다정하고 매우 인간적이고 잔인함을 싫어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는 카리스마 , 권위주의로 독일인을 통제하려 했던 히틀러의 모습과 대조되는 것이었고

이런 지도자의 모습에 긴장해있던 영국인들은 다시금 용기를 얻었습니다

 

처칠은 사진을 찍을때에도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손가락으로 항상 승리(Victory)를 상징하는 V 자를 지었고

입에는 항상 시가 담배를 물고 있었습니다

 

처칠의 상징 시가담배와 브이

 

그의 뚜렷한 목표의식 , 주저하지 않는 결단 ,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는

영국인들에게 큰 힘을 주었습니다

 

[처칠과 유머]

하루는 처칠이 의회에 늦게 출근해서

상대편 의원이

 

'아니 , 의회에도 늦는 사람이 무슨 중대한 일을 할 수 있는가 ?'

 

라고 공격했는데

처칠은 당황하지 않고

 

'너도 나처럼 이쁜 마누라가 집에 있어봐라 ,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겠냐 ?'

 

하고 맞받아쳐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어 넘어갔다 합니다

 

하루는 처칠 총리가 전용차를 타고 의사당을 향해 가는데

교통이 막혀서 처칠은 운전사를 재촉합니다

 

결국 운전사도 마음이 급해져

신호를 위반하다가 교통경찰에 잡혔습니다

 

운전사는 교통경찰에게

 

'이 차는 처칠 수상님의 차일세 ,

지금 회의에 늦어서 그러니 한번 넘어가주게나'

 

라고 부탁했고

교통경찰은

 

'처칠 수상님은 교통법규를 어기실 분이 아닙니다

설사 어기셨다 하더라도 법규를 어긴이상 벌금은 당연히 물어야합니다

이런일에 예외란 없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경찰(오른쪽)

 

처칠은 비록 벌금을 물었지만

자신과 수상이라는 직위에 주눅둘지 않고 벌금을 물린 경찰을 보며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며 기뻐했고

경시청장(경찰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일이 있었다며 그 교통경찰을 특진시키라 명령합니다

 

그러나 그 경시청장은

 

'각하 , 교통위반을 한 수상에게 벌금을 물렸다고 해서

순경을 특진시키라는 법 조항은 없습니다'

 

라며 거부합니다

 

처칠은 그날 런던 경찰들에게 2번이나 당해버렸지만

자신이 이러한 영국의 총리임이 한없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 누구라도 원리 , 원칙 , 법을 무시하지 않았다는

영국인들의 자존심과 법치의식을 보여주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위대한 영국인]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사' 라는 책을 집필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합니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처칠

 

처음 처칠은 노벨상 수상이 확정됬다는 말에

히틀러를 물리친 공으로 자신이 평화상을 받을거라 기뻐했지만

문학상이라하자 실망했다고도 합니다

 

처칠은 1955년 총리직에서 은퇴하고

'의회의 아버지' 호칭을 얻고

영국인들에게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영국인' 으로 여겨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처칠의 80세 생일을 축하하며

처칠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주소란에는 처칠의 집주소가 아닌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영국인에게. 런던'

 

이라고만 쓰여있었고

우체부는 그것을 처칠에게 정확하게 배달해줍니다

 

미소짓는 처칠

 

처칠은 마지막 대영제국의 총리이자

초강대국 영국의 자존심이었던 인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의 힘이 빠지고

세계 패권이 미국에 넘어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하기도 했습니다

 

처칠은

1965년 1월 24일

90세의 나이로 서거하고

그의 장례는 아이작 뉴턴처럼 왕실급 국장으로 치뤄집니다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처칠 수상의 죽음에 말했습니다

 

<샤를 드골>이제 영국은 더 이상 대국이 아니다

 

처칠은 나치독일 , 파시즘에 맞서

자유세계를 지켜낸 위대한 인물이었고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그의 굳센 용기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처칠 명언>절대로 포기하지 마시오.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오. 

절대 , 절대 , 절대 , 절대로 !

엄청난 일이건 작은 일이건 , 크건 하찮건 상관 말고 ,

명예로움과 분별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는 경우들이 아니라면 ,

절대 포기하지 마시오.

Never give in. Never give in. Never, never, never, never! 

— in nothing, great or small, large or petty — 

never give in, except to convictions of honour and good sense.

 

처칠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 다키스트 아워 (2017) Darkest Hour

 

<라봉봉>수많은 사람들이 처칠을 알지만

처칠의 이야기는 정작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고

그는 위기 , 전시상황의 영국을 이끌고 영국인들에게 용기를 준

뛰어난 리더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정치가들이 처칠을 존경하고 있고

그 역시 마지막 제국주의자였기에

비판받기도 하나

처칠로 인해 세계는 히틀러의 야욕 , 어둠시대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처칠은 초강대국 영국의 마지막 불꽃이었고

마지막 대영제국인 , 마지막 영국 대정치가 등

마지막이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인물입니다

 

그가 남긴 승리의 V는 오늘날에도

세계인들의 사진찍는 주요 포즈가 되었고

참 멋쟁이 영국신사이기도 했습니다

 

반응형

'어린이 개인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머스 에디슨  (0) 2020.04.21
백사 이항복  (0) 2020.04.15
주시경  (0) 2020.04.09
헬렌 켈러  (0) 2020.04.07
장영실  (0) 2020.04.05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