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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 이항복>

[몸이 약한 늦둥이]

[개구쟁이 도련님]

[오성과 한음]

[어머니의 교훈]

[감나무와 권대감]

[권율과 이항복]

[이항복과 이덕형]

[임진왜란 , 홀로 임금을 지킨 신하]

[영의정 이항복]

<라봉봉>

 

백사 이항복

 

[몸이 약한 늦둥이]

이항복은 1556년 형조판서 이몽량의 넷째아들로 태어납니다

이몽량은 58세때 본 늦둥이 막내로 아들이 태어난 것에 기뻐했지만

 

처음 이항복이 태어났을때

아이는 사흘동안 울지도 앉고 젖을 먹지도 않고

몸도 약해서 모두 걱정했는데

점쟁이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점쟁이>근심할 것 없습니다

이 아이는 더할 나위 없이 크게 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옛날 한국에서 자식이 태어날때 귀신 , 액귀를 막기위해 집안에 걸어놓은 '금줄' , 아들일경우는 숯과 고추를 걸고 딸일경우 숯과 생솔가지를 걸었습니다

 

다행히 항복이는 건강하게 자랐고 장난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영리함이 남보다 뛰어나서

6살때 이항복은 아버지가 칼과 거문고로 글귀를 지어보라 하니

즉시

 

<이항복>칼은 장부의 기상을 가졌고 , 

거문고는 천고의 음성을 간직했다

 

라는 시를 지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사람들은 그가 훗날 큰 그릇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개구쟁이 도련님]

그러나 이항복이 9세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셔서

집안이 크게 기울어졌고

그럼에도 항복이는 동네 불량배들과 어울리며

골목대장이 되어 장난과 말썽을 치고 돌아다녔습니다

 

조선 판서집안 명문가 양반아들 , 도련님이었음에도

하는 행동은 전혀 양반집 자식 같지 않았던

조선 최고 개구쟁이 이항복이었습니다

 

탈춤에서의 개구쟁이 도련님 모습

 

그럼에도

이항복은 물욕이 없었고

12세의 이항복은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남을 구제하는데 뜻이 있었기에

한번은 새 옷을 입었는데 헤진 옷을 입은 가난한 이웃 아이가

그것을 보고 입고싶어하자 즉시 벗어서 그냥 주었습니다

또한 신발을 남에게 주고 맨발로 돌아온 일도 있었습니다

이에 어머니가 나무라자

항복이는

 

<이항복>갖고 싶어 하여 차마 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오성과 한음]

소년 오성 이항복의 장난은 매우 유명해

그의 죽마고우 한음 이덕형과 함께

조선의 유머집이었던 '오성과 한음' 의 주인공으로 유명합니다

 

매일같이 친구들과 장난에 열심이었던 이항복이었지만

항상 정의를 지키려 노력했고

욕심쟁이 어른들 앞에서도 떳떳한 어린이였습니다

 

하루는 이웃 고을에 한 욕심쟁이 양반이 살았는데

한 농부가

조선의 장난꾸러기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을 찾아왔습니다

 

<농부>도련님들 ,

소문에 두분이 신동이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부디 제 억울한 사정좀 해결해 주십시오

 

이에 한음은

 

<한음>억울한 사정이 있으면 관청의 사또에게 찾아가야지

왜 우리를 찾아왔소 ?

 

이에 농부는 자초지종을 털어놓았습니다

 

농부의 아내가 소변이 급한 나머지

길 옆 밭에서 용무를 보았는데

하필 그 밭이 세도가였던 황대감네 밭 옆이었고

마침 황대감이 그곳을 지나가는 중이었습니다

 

황대감은 남의 밭에다 함부로 소변을 본다며

길길이 날뛰었고

농부와 농부부인은 거름이 필요한 밭에다 잠시 실례를 한 것이었는데

늙은 욕심쟁이 대감이 날뛰는 모습에 당황합니다

 

사실 황대감은 농부의 집에 일잘하는 황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관가로 가서 곤장을 맞지 않으려거든

황소를 내놓으라 했고

결국 황대감네 하인들이 몰려와 황소를 끌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김홍도의 논갈이 , 농경사회인 조선시대 재산 1순위였던 '황소'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길이 없는 농부는

조선 최고 개구쟁이였던 오성과 한음을 찾아온 것이었고

분노한 오성과 한음은 입술을 바르르 떨며

무슨 일이 있어도 황소를 찾아오겠다 대답합니다

 

오성과 한음은 머리를 맞대고 황소 찾을 방법을 연구하다가

이튿날 아침

황대감이 가마를 타고 행차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길목인 황대감네 밭에서 기다리다

황대감의 가마가 오자 둘은 엉켜서 싸우기 시작합니다

 

이에 황대감집 하인들은

 

<하인들>아니 , 왠 꼬마녀석들이 대감님 행차를 막고 싸우고 있느냐 ?

어서 길을 비켜라 !!

 

하고 소리쳤고

둘은 못들은채 하며 싸움을 계속합니다

 

이에 황대감의 행차는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황대감>무슨 일이냐 !

 

욕심쟁이 대감님

 

이에 오성은

 

<오성 이항복>아니 제가 길을 가다가 하도 급해서

이 밭에다 오줌을 누려하니까

이 친구가 말하기를

 

'여기다 오줌을 누다가는 황소 한 마리를 빼앗기게 된다'

 

며 말리지 않겠습니까 ?

 

무슨 터무니없는 말이냐고 오줌을 누려하니까

그래도 말리는 바람에 제 바지에 오줌을 싸버렸지 뭡니까 ?

그래서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성이 또박또박 이야기하자 이에 황대감은 뜨끔했습니다

이에 한음은

 

<한음 이덕형>저는 정말 이 고을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 들었기에

이 친구를 말린 것입니다

 

자기 밭에다 오줌을 누었다고 그 사람의 전 재산인 황소를 끌고 갔다고 하던데

혹시 대감 어르신께서는 그 이야기를 모르시나요 ?

 

이에 황대감은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웠습니다

 

이에 오성은

 

<오성 이항복>저것 보십시오

저 친구가 끊임없이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번에 암행어사가 되신 제 숙부께 말씀드려서

혼을 내주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 세상에 그렇게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

 

안 . 그 . 렇 . 습 . 니 . 까 . 어르신 ?

 

암행어사라는 말을 듣자 황대감은 표정이 굳어졌고

그길로 집에 돌아가 농부에게 황소를 돌려주며 애써 웃으며 말했습니다

 

<황대감>여보게 , 내가 자네 부인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려고

잠시 황소를 맡아두었던 것이니

오해는 말게..

 

사실 오성과 한음은 황대감에게

암행어사가 안통하면 병조판서 , 그것도 안통하면 영의정 ,

그것도 안통하면 나랏님까지 팔아먹을 셈이었는데

다행히 일이 쉽게 되어 첫단계에서 끝나고 말아

조금 싱거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교훈]

그러나

15세의 이항복은 어느새 동네 골목대장이 됬고

공부보다는 놀기 좋아하고

씨름과 제기차기를 잘했는데

동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너무 장난을 많이 치자

 

한국 전통놀이 제기차기

 

항복이의 어머니는

집안 사당에 칼을 들고 들어가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소복바람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조상에게 자식을 잘못 가르친 죄를 빌었고

이를 본 항복이는 어머니가 죽으려하는 것으로 알아서

깜짝 놀라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소복바람의 여인 , 장사의 신 - 객주 2015

 

이에 어머니는

 

<항복의 어머니>아버지 없는 너를 이 어미가 잘못 가르쳤구나.

자식 잘못기른 죄로 조상 앞에 갈면목이 없어

죽지도 못할 죄인이니 머리를 잘라 조상께 사죄드리려 한다.

 

남자가 호탕하고 의리가 강한 것이야 말할 수 없이 좋은 일이나

그 호탕함이 충분한 인격과 교양으로 받쳐지지 못하게 되면

일개 한량이 될 뿐

장래 사회를 위해 큰 재목은 될 수가 없다

 

이에 이항복은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되고

학업에 정진했습니다

 

[감나무와 권대감]

그럼에도 이항복의 장난끼는 사라지지 않았고

하루는 이항복네 집 하인들이

옆집 권철 대감댁의 집 하인들에게 얻어맞고 들어왔습니다

 

어린 항복이 이유를 묻자

하인들은 이항복의 집의 감나무가 크게 자라

영의정 권철대감집으로 뻗어넘어갔는데

이로 인해 권철대감댁 하인들은 담을 넘어왔으니 자신들 것이라며

항복네 감을 따먹어고

이로인해 서로 싸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감나무

 

분노한 항복은 무작정 권철대감집에 찾아가서

독서하고 있던 권철의 방문에 주먹을 대뜸 찔러넣었습니다

 

<이항복>이 주먹이 누구 것입니까 ?

 

권철방문을 뚫은 항복이의 주먹 , 역사만화 한국위인전

 

문 창호지가 찢어졌지만

옆집 개구쟁이 소년 항복의 목소리를 들은 권철대감은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권철>이놈아 , 그야 네 주먹이지 ^^

 

이항복은

 

<이항복>그런데 왜 대감님댁 하인들은

우리집 감나무에서 뻗어나간 감을 마음대로 따먹게 하십니까 ?

 

이에 놀란 권철대감은 자초지종을 물었고

하인들을 혼내며 다시는 이런일이 없다했습니다

 

한편 권철대감은 소년 이항복이 장차 큰 사람이 될 것이라 보았고

아들 권율에게 이항복을 사위로 맞으라 권했고

결국 조선을 구한 두 충신 권율과 이항복은 장인과 사위관계가 됩니다

 

이항복을 손녀사위로 들이기로 한 권철은

이항복의 품행을 알아보기 위해 이항복의 집을 방문했는데

자신을 떠보려 왔다는 것을 안 이항복은 대뜸

 

<이항복>어르신께서는 사람의 겉만 보십니까 ,

아니면 겉과 속을 모두 보려 하십니까 ?

 

라고 질문합니다

이에 권철은

 

<권철>둘다 보는게 좋겠지만

어찌 사람의 속을 볼 수 있겠나 ?

 

이에 이항복은 갑자기 바지를 벗어 던지고

자신의 '그것' 을 보여주며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항복>제 속은 이렇습니다

사람의 속이 이만하면 매우 훌륭하지 않습니까 ?

 

훌러덩

 

이에 충격을 받은 권철은 이항복의 속과 대범함에 감탄하고

즉시 혼사를 추진합니다

 

영의정인 나한테 주먹을 날린건 너가 처음이야 항복이 ♥

 

[권율과 이항복]

이항복은 이렇게 권씨집안과도 인연이 많은데 각별한 인연이 있었던

장인 권율 역시 늦깎이까지 백수생활을하다 관직에 들어간 인물이고

어린시절이 노답이었던 인물이라

이항복과 통했던 것이 많았고

두 인물 다 임진왜란시기 나라를 구한 한국사의 위인이 됩니다

 

이항복의 장인이자 임진왜란 시기 행주대첩으로 나라를 구한 한국사 위인 '권율 장군'

 

이후 둘은 장인과 사위이자 조선의 신하이며 조정 동료였고

형 동생 수준으로 굉장히 가까운 관계가 되어 여러 이야기를 남깁니다

 

이항복은 조정에서도 장인을 골탕먹이려 온갖 장난을 쳤고

두인물은 같이 조정에 출근하려다가 하루는 날이 너무 더워

권율이 괴로워하자

이항복은 속옷을 입지 말고 관복만 입고 출근하면 좋겠다 했고

권율은 그게 좋겠다 싶어 관복만 입은채 출근합니다

 

조정에서는 역시 찜통더위에 선조임금 , 신하들이 모두 괴로워하고 있었고

 

사극 징비록에서 지친 선조 , 찌질함의 극치라 사극 고증 중 가장 잘 캐스팅된 선조라 생각됩니다

 

이에 이항복은 선조에게

 

<이항복>주상전하 , 날씨가 너무 더워 신의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옵니다

이대로는 회의를 더이상 진행하기 힘들 것 같으니

관복을 벗도록 , 아니면 관모만이라도 벗고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에 자신도 매우 더웠던 선조는 흔쾌히 허락했고

다른 대신들도 마침 잘됬다싶어

관모와 관복을 기꺼이 벗어던지고 바지저고리 차림으로 있었는데

오직 한사람 권율만이 관복을 벗지 못했습니다

 

이에 이상하게 여긴 선조는

 

<선조>권대감은 덥지도 않으시오 ?

어서 관복을 벗지 않고 뭐하는 것이오 ?

 

이에 권율은 우물쭈물하며 관복을 벗었는데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속옷차림이었고

사람들은 할말을 잃습니다

 

 

이에 이항복은 나서서

 

<이항복>주상 전하 , 권율은 평소 백성들이 헐벗은 채 생활하는 것을 보고

부끄럽게 여기며 이렇게 다닌다고 하옵니다

그러니 권율의 무례함을 용서하소서 !!!

 

이에 이것이 이항복의 장난임을 눈치챈 선조는 웃으면서

권율에게 비단을 내리고 옷을 해입으라 말합니다

 

또 이항복은 권율이 소변 눌 때마다

항상 그것을 훔쳐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소변을 보던 권율은 불쾌해하면서

자신의 '그것' 을 가르키며

 

<권율>이것 또한 자네의 장인일세.

어찌 무례하게 쳐다보려 하는 건가 ?

 

라고 말했습니다

 

갑자기 이항복은 소변을 다 둔 장인 권율의 싸대기를 때려버립니다

당황한 권율에게 이항복이 말했습니다

 

<이항복>지금 어르신께서 제 장인의 목을 잡고 위아래로 흔드시니

사위인 제가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

 

이에 권율은

 

<권율>네놈은 정말이지 '그것' 의 사위라 해도

화를 내지 않을 놈이구나 !

 

하고 웃어넘겼다 합니다

 

[이항복과 이덕형]

16살이 된 이항복은 어머니마저 여의었고

기운 집안에서 매일같이 장난만 치며

장가도 가지 않아 사람들이 걱정하다가

위 이야기처럼 19세의 나이에 권율의 사위가 됩니다

 

어머니를 잃고 장가를 간 이항복은

뒤늦게 철이 들어서 공부에 매진했고

1580년 25세의 나이에 문과에 급제했고

평생의 친구 한음 이덕형도 20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해서

함께 벼슬을 시작합니다

이항복은 해학과 기지 , 장난끼가 넘쳤고

이덕형은 차분하고 진중했기에

둘은 평생의 친구가 됩니다

 

(오성과 한음 설화는

이름만 따온거고 실제로는 이 둘은 이시기에 처음 만났다 합니다)

 

오성과 한음 , 이항복과 이덕형

 

2년후인 장인 권율도 46세에 문과에 급제헤

뒤늦게 벼슬을 시작합니다

 

(사위보다 장인이 벼슬이 느렸고

이로인해 자주 사위한테 놀림받음)

 

이항복과 이덕형은 율곡 이이의 추천으로

함께 사가독서(관리가 조정에서 휴가를 받고 글을 읽고 학문을 닦던 조선시대 제도)

를 했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

 

둘은 관악산 염불산에 올라

동생 세종에게 왕위를 양보한 형 효령대군 심정을 이야기해봤습니다

 

<이항복>이보게 한음 ,

효령대군과 세조의 마음을 비교해보니

하늘과 땅 차이가 있네 ,

효령대군은 양위하려 했고 불교에 귀의한 척 하였는데

세조는 임금이 되려고 조카까지 죽였으니

 

이에 이덕형은 가만히 듣고 있다 말했습니다

 

<이덕형>자네 말이 맞네 ,

사람은 의리를 지켜야하고

사리사욕을 버려야 하는데

 

이항복은 자신의 호를

서울 종로의 하얀모래가 깔린 백석동천 , 백사실계곡에서 따와

하얀 모래라는 뜻의 백사 白沙 라고 지었습니다

 

백사실 계곡

 

별다른 뜻은 없지만

담백하고 맑은 자연을 조선의 선비들은

자연지물에서 자신의 호를 따오는 경우도 많았고

낙동강 상류 토계마을에서 호를 따온 퇴계 이황이나

밤나무골 , 밤나무 마을에서 호를 따온 율곡 이이 선생님 등

욕심없고 순수하고 소박한 자연을 사랑한 조선의 선비들이었습니다

 

이항복은 성인이 , 관리가 되고나서도

끊임없는 장난끼를 버리지 못했지만

일할때만큼은 한없이 진지했고

항상 백성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명관리였습니다

 

워낙 재치와 익살이 뛰어났기에

조정 동료들은 그의 우스갯소리에 모두들 웃으며 좋아했지만

나랏일에 임할때는 한없이 진지한 덕행높은 학자이자 선비였습니다

 

이에 이항복은 조정에서 여러 주요 관직들을 거치며 승진해갔고

이항복은 유쾌하고 재치가 많은 성격이었기 때문에

항상 신하들끼리 비난이나 분쟁이 발생할때

이를 중재하고 시비를 공평히 판단해

옛날 세종시대 황희정승같은 중재자의 모습을 보였고

이항복의 도움으로 억울한 것에 몰리지 않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임진왜란 , 홀로 임금을 지킨 신하]

1592년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침공을 시작했고

'임진왜란' 이 일어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임진왜란의 시작 부산진 전투

 

부산을 점령한 일본군은 조선 최후 방어선인

충주 탄금대에서 명장 신립장군까지 패퇴시키고 파죽지세로

수도 한양까지 밀고 올라오자

조선왕실은 한양과 백성들을 버리고 북으로 몽진(임금의 피난) 했는데

임금이 수도와 백성을 버리고 피난간다는 소식에

조선 왕실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져버렸고

모든 조선백성들이 무능한 선조를 대놓고 욕했습니다

 

백성과 수도를 버리고 몽진가는 선조

 

계속해서 일본군이 한양으로 몰려오자

선조 주변 신하들도 하나둘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는데

도승지(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장) 이항복만이 홀로 남아서

선조를 호종(보호하며 지킴) 했고

이항복은 홀로 횃불을 든 채 선조를 모시고 피난길에 오릅니다

 

북을 향해 피난가며 서울을 떠난 이튿날 밤

선조 일행은 임진강 나루터에 겨우 도착했는데

겨우겨우 사공과 배는 찾았지만

비구름으로 한 치앞도 보이지 않았고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져내려 건너기를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항복은 강기슭의 정자를 발견했는데

바로 율곡이이가 만들어놓은 '화석정' 이라는 정자였습니다

 

한때 일본의 침략을 대비해 10만 대군을 양성해야 한다 주장했던 율곡이이는

(십만양병설)

 

훗날 나라에 위기가 있을 것임을 예감해서

화석정에다가 들기름을 듬뿍 발라놓았고

이항복은 화석정에 불을 질렀는데

기름이 발려진 화석정은 순식간에 활활 타올랐습니다

 

불타는 화석정

 

이에 불타는 화석정을 등대삼아

선조일행은 간신히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침울한 분위기속에서

이항복은 조선왕실의 피난길에 묵묵히 참여했고

왕비를 개성까지 호위하고

왕자는 평양으로 ,

선조 임금을 의주까지 호종(보호하고 따라감)했습니다

 

이 기간동인 이항복은 이덕형과 함께

명나라에 구원병을 청할 것을 건의하고

호남지방(전라도) 에 사람을 보내

근왕병을 일으켰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바다에서 일본군을 물리칠동안 ,

이항복의 장인 권율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을 물리칠동안

 

이항복은 국난의 기간동안 신하로서

발벗고 노력하며 국정과 외교 등으로 나라를 구하려 노력했고

임진왜란 기간동안 병조판서(국방부 장관)가 되어 군무를 관장했으며

 

이항복은 계속해서 위기의 조정을 수습하려 노력했으며

밖으로는 구원병을 보내온 명나라 사절의 접대를 전담했습니다

 

명나라 사신에게도 이항복의 덕망이 알려져

명나라 사신들 역시 이항복을 존경했습니다

 

임진왜란 기간동안

이항복의 형 , 조카부부 , 이항복의 어린 딸까지 연이어 죽었지만

이항복은 고통을 참고 계속해서 위기의 나라와 백성들을 위하려 했습니다

 

[영의정 이항복]

여러 신하 , 장군 , 의병들의 활약으로 임진왜란이 끝나고

일본군은 물러가게 되었고

이항복은 이 공으로 조선 최고 벼슬 영의정에 오릅니다

 

그는 명재상이었고 항상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과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 외교와 국민통합에 이용한

전시 , 위기의 조선을 이끈

한국의 처칠이었습니다

 

한국의 처칠 , 영국의 이항복

 

이항복을 아끼던 선조임금이 승하하고

광해군이 인목대위를 폐위시키고 궁에 유폐시키자

올곧은 선비였던 이항복은 광해군에게 폐위 반대 상소를 올리다가

대북파(광해군의 파벌) 의 모함을 받고 실각해서

60넘은 고령의 나이에 추운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를 떠났고

혹독한 추위에 고생하다 5개월만에 생을 마감합니다

 

귀양가는 모습

 

북청으로 유배가며 이항복은 시조를 남겼습니다

 

<이항복 , 자고가는 저구름아>

철령 높은 재에 자고 가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임금의 사랑을 잃은 외로운 신하의 원통한 눈물) 를 비삼아 띄워다가

님께신 구중궁궐에 뿌려본들 어떠리

 

이항복의 친구 이덕형 역시

광해군에게 영창대군의 처형을 반대하다가

삭탈관직(벼슬에서 삭제됨) 당한 후 고향집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항복은 임진왜란 당시 위기의 조선을 이끈 조선의 명신하이자

황희정승과 더불어 조선의 덕망높은 영의정 , 명재상이었고

항상 공평하고 뛰어난 인품의 관료이자 선비였습니다

 

<조선 임금 정조의 이항복 평가>

백사 이항복으로 말할 것 같으면 덕망과 공로와 문장과 절개 중에서 하나만 얻어도 

어진 재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

하물며 한몸에 겸했음에랴.

세상에 전하는 우스개들이 꼭 모두 그가 행한 것은 아니겠지만

백성이 지금까지도 그를 아끼고 사모하고 있는 까닭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임진왜란으로 임금이 파천하던 날 밤 궁궐을 지키는 위사들은 모두 흩어졌는데

홀로 손수 횃불을 들고 앞장서서 임금을 내전으로 인도했고 ,

조정의 의논이 결정되자 개연히 호종(보호하고 따라감)을 자처한 인물은

공 한 사람뿐이었다

 

<라봉봉>사실 이항복은 요즘말로 소위말하는

'금수저' 출신이었고 위인들은 출생이 가난한 출생에서 노력해서 자수성가한 인물도 있지만

금수저 출신도 많고 되게 다양합니다

 

그러나 이항복은 보통의 금수저들과 달리

노블레스 오블리주 , 귀족의 의무를 실현한 인물이자

위기의 조선을 구한 명신 , 명재상으로 유명한 한국사 위인이고

항상 정의의 편에 서려 했던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보통 말도안되는 소리를 개소리 , 개드립이라 하지만

이항복의 이야기는 개드립을 넘어

성적농담이 유독 많아서 조선 섹드립의 원조라 할 수 있고

 

그는 전시수상 처칠처럼 항상 재치있는 입담으로 위기상황에서도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 인물이고

이에 조선 백성 , 민중들의 큰 사랑을 받은 인물이기에

 

똥 , 꼬추 , 방구 이런 원초적인 유아기적 조선 웃음설화에는

백성들이 항상 오성과 한음이라는 이름을 흑기사로 출현시켰기에

여러 그들과 관련없지만 재밌는 설화가 많고

'오성과 한음' 은 그들과 무관하게 '조선 개구쟁이' 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힘든 시대여도 이런 인간미나 인간적인 웃음을 잃어서는 안된다 생각하며

긍정적인 사고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 실제 생존술에서도 정말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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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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