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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에디슨>

[달걀을 품은 아이]

[어머니의 교육]

[기차의 소년]

[사업가 에디슨]

[축음기 발명]

[세상을 뒤바꿀 실험]

[빛이여 있어라]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가]

[발명왕 에디슨]

<라봉봉>

 

토머스 에디슨

 

[달걀을 품은 아이]

에디슨은 1847년 2월 11일

미국 오하이오주 밀란에서 태어났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발명을 남긴 사람 ,

발명왕 에디슨은

어린시절부터 호기심천국 어린이였는데

 

어느날 어린 에디슨은 헛간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에디슨을 찾다가 헛간을 보니

에디슨은 헛간속에서 달걀을 꼬옥 품고있었고

에디슨은

알을 따뜻하게 품으면 병아리가 나온다해서

알을 품고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에디슨 고양이

 

[어머니의 교육]

매사에 엉뚱한짓을 일삼는 에디슨은

호기심 많은 아이였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에디슨은

학교에서 주입식 교육을 하는

선생님에게 계속 질문만 해댔습니다

 

<에디슨>선생님 왜 1+1은 2가 되나요 ? ,

 

왜요 ? 왜요 ? 왜요 ?

 

의문과 만물에 대한 탐구심이 강한 아이였던 에디슨의 질문공세에

선생님은 에디슨을 꾸지람했고

선생님은 화가 났습니다

 

어느날 에디슨은 선생님에게서

편지를 받아 읽지 말고 어머니에게 드리라는 말을 들었고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에디슨의 어머니는 선생님의 편지를 읽어본 후

눈물 흘리면서 그 편지를 에디슨에게 크게 읽어주었습니다

 

<에디슨의 어머니>당신의 아들은 천재입니다

우리 학교는 이 아이를 가르칠만한 좋은 선생이 없고

아이에게는 너무 작은 학교입니다

그러므로 집에서 직접 가르치십시요

 

결국 에디슨은 학교를 다닌지 80여일만에 자퇴하게 됬고

에디슨의 어머니는

결국 스스로 에디슨의 선생님이 되어

열성적으로 에디슨을 직접 가르쳤습니다

 

어린시절 에디슨과 에디슨의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으로 에디슨은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공부했는데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과 달리

어떤 질문에도 에디슨에게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에디슨의 어머니>똑똑한 아이는

원래 호기심이 많은 법이란다

 

에디슨은 어른들에게는 골칫거리 아이였지만

의문 , 궁금증이 있을때는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곧바로 직접 실험해보는 끈질긴 집념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에디슨이 훗날 성공한 발명가가 되어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할때

학교 선생님이 준 편지를 읽어보았는데 편지에는 사실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진짜 편지>당신의 아이는 지적장애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아이들과 함께 가르칠 수 없습니다 

더이상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위대한 발명가를 키워낸 것이었고

편지를 읽고 한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한

토머스 에디슨은 훗날 일기장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에디슨의 일기>토마스 에디슨은 지적장애가 있었지만 엄마는 나를 천재로 만드셨다.

 

에디슨의 호기심은 멈추지 않았고

얼마후 어머니는 에디슨의 재능을 고려해

에디슨에게 지하실을 실험실로 꾸며주고

과학책을 사 주었습니다

 

실험실의 에디슨은

사람도 몸속에 가스를 넣으면 하늘을 날거라 생각했고

친구를 불러서

하늘을 날게해준다며

친구에게 화학약품을 먹였습니다

 

그러나 잠시후 친구는 배를 움켜쥐며 데굴데굴 굴렀고

다행히 친구는 살았지만

에디슨의 과도한 탐구심에 온 집안이 난리가 났습니다

 

이에 에디슨의 어머니는 에디슨의 종아리를 때렸고

에디슨은 이후부터

사람에 해가되는 실험은 하지 않기로 다짐합니다

 

<에디슨 명언>나는 무기를 발명하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기차의 소년]

12살의 에디슨은 공부 외에도 일에도 부지런히 힘써

스스로 일을 하기 시작했고

기차역에서 행상일을 하며 기차 승객들을 대상으로 사탕과 신문을 팔고

마당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는 등 틈틈히 채소도 팔며 수입을 늘려갔습니다

 

미국의 기차

 

에디슨은 이렇게 번돈으로

1달러를 한 주마다 어머니께 드리고

나머지는 책과 실험장비를 구입하는데 사용합니다

 

<에디슨의 회고>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12살 때였다. 

열두살이면 좋은 시간을 갖기에는 충분히 자란 나이지만

골치 아픈 문제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이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성실성으로

점차 기차 차장에게도 인정받은 소년 에디슨은

차장의 배려로 열차 화물칸을 실험실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실험하는 에디슨

 

어느날도 흔들리는 기차안에서 실험을 하다가

기차가 갑자기 크게 흔들리자

실험하던 화학 약품이 떨어져 기차에 화재가 발생합니다

 

다행히 불길은 크게 번지지 않았지만

열차를 운행하던 차장은 격분했고

분노한 차장은 에디슨의 뺨을 때렸는데

이순간 에디슨의 귀에서는 날카로운 굉음이 들렸고

이로인해 에디슨은 고막을 다치게 되고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됩니다

 

<훗날 사람들>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실험과 연구에 불편함이 없었습니까 ?

 

<에디슨>아, 제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군요.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살면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아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던 사실에 감사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차장 역시 착한 소년 에디슨이 미워서 때린 것은 아니었고

자칫하다간 큰 사고로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었기에

순간 화를 참지못했던 것이었고

이후에도 에디슨에게 항상 상냥했습니다

 

에디슨이 불낸 기차 실험실을 기념하는 기념관 (;;)

 

15세의 에디슨은 어느날처럼

기차역에 행상일을 하려 출근했는데

3살배기 남자아이가 철로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았고

멀리서 기차가 달려오자

에디슨은 팔던 물건을 버리고 달려가 아기를 구했습니다

 

알고보니 아기의 아버지는 역의 역장이었고

역장은 자신의 아들을 구해준 에디슨이 고마워

행상일을 하는 소년 에디슨을 돕고 싶었습니다

 

<역장>얘야 , 내가 전신교환수 일을 가르쳐 줄테니

한번 배워보렴 ,

앞으로는 역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니

큰 도움이 될거야

 

새로운 과학 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에디슨은

역장의 도움으로 당시 최신기술이었던 전신 기술 , 전신교환수일을 배우게 되었고

이는 에디슨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전신기술자가 된 에디슨은

전신을 시작으로 평생 전기에 관한 발명을 한 인물이 되었고

사업을 할때도 알고지내던 전신기술자들과 함께 시작했을 정도로

에디슨에게 전신기술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사업가 에디슨]

이후 사업에 진출한

에디슨은 산업실험연구소 , 발명회사를 최초로 세웠는데

전신기를 판매하며 큰돈을 벌게되자

점차 에디슨은 자신의 큰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에디슨 연구소 , 발명전문회사를 세우게 됬고

전신기술자 및 여러 전문가들을 끌어모았습니다

 

에디슨 연구소 , 멘로파크 연구소

 

에디슨 연구소 내부

 

에디슨은 세상의 온갖물질들을 연구소로 가져와 연구했고

그의 엉뚱함 , 과도한 호기심과 집념은 학교에서는 쓸모가 없었지만

연구 , 기업에서는 또렷하게 빛나게 되었습니다

 

[축음기 발명]

1877년 에디슨은

음악과 소리를 저장하는 장치인 '축음기' 를 발명합니다

 

에디슨과 축음기

 

어느날 에디슨은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기계를 돌리며 노래를 불렀고

 

<에디슨이 부른 노래>매리에겐 작은 양 한마리가 있었네 ♩♪♬

 

노래를 마친 에디슨이 다시 손잡이를 돌리자

방금 한 노래가 거짓말처럼 흘러나왔습니다

 

이후 개량된 축음기 '에디폰'

 

축음기의 발명으로 인해

에디슨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에디슨의 이름은 전세계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축음기를 테스트하는 에디슨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진으로 천재의 집념의 눈빛이 엿보입니다

 

[세상을 뒤바꿀 실험]

점차 사업적으로 성공해가던 에디슨은

세상을 뒤바꿀 실험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었고

촛불이나 당시까지 쓰이던 기름등 , 가스등이 아닌

전등을 만들어 전기의 힘으로 밤낮을 밝게 하려했습니다

 

전등 발명전까지 사용된 가스등 , 어린왕자에 나오는 그 등

 

이전부터 전등을 만들려하는 시도등은 꾸준히 있었지만

너무 빨리 전구의 수명이 다하거나 값이 비싸

제대로된 전구가 나오지 않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은 발명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에디슨에게 기대를 모았습니다

 

젊은시절의 에디슨

 

에디슨이 상업적이며 실용적인 전구를 만들 수 있다 발표하자

수많은 부자 , 투자자들이 에디슨에게 재산을 몰아주었고

가스등 회사는 에디슨이 주가를 올리고

돈을 벌기 위해 거짓소문을 퍼트린다고 공격했지만

 

에디슨은 실험실로 들어가

가장 기본적인 전기와 전구의 원리를 생각하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친 후

직류전기는 110볼트로 공급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110~120볼트 전기는 오늘날에도

미국과 북미 , 일본 등의 표준 전기가 되었습니다

 

[빛이여 있어라]

점차 전구를 만들기 시작하는

에디슨은 전등에서 불을 밝혀주는 필라민트 부분을 만들려 특히 고생했는데

100시간 이상 불을 밝혀줄 필라멘트 재료를 구하고 있었고

집념과 근성의 에디슨은 필라민트 재료로

온갖 재료 , 물질은 다 사용해봅니다

 

전구와 필라멘트

 

에디슨은 백금 낚싯줄  , 종이 , 무명실 , 심지어 자신의 머리카락 등

수많은 재료로 필라멘트를 만들려하나 모두 실패했고

4만달러를 들여 1200번이 넘는 실험 , 실패를 했습니다

 

실험하는 에디슨

 

<에디슨 명언>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다 ,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나는 효과가 없는 10,000개의

방법을 발견한 것뿐이다.

 

그러다 에디슨은 갑자기 연구소에 있던 중국산 대나무 부채를 보고

대나무를 필라멘트 재료로 사용하려 합니다

 

대나무는 구하기 쉽고 일정한 세포구조를 지니고 있어

에디슨은 이 재료가 전구에 최적의 원료라 결론을 내렸고

대나무 공급을 위해 전세계를 샅샅히 뒤지라 합니다

 

이에 에디슨 연구소 연구원은 일본 교토의 대나무숲에서

최적의 대나무종을 공수해왔고

 

교토의 에디슨 기념비

 

일본산 대나무로 만든 필라멘트가 들어간 에디슨의 전구는

1879년 12월 3일 켜지게 되었고

순식간에 캄캄했던 겨울밤의 연구소는 대낮같이 환해졌습니다

 

이제부터는 이 전구가 얼마나 버틸지가 문제였고

에디슨의 전구는 10시간을 못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무려 40시간을 버티게 됩니다

 

사람들은 에디슨이 만들었다는 인공태양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엄청난 인파가 실험실을 에워싸는 바람에

직원들도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누군가가

 

'저기 에디슨이 있다 !'

 

고 외치자

사람들은 일제히 그곳으로 몰리면서

건물 버팀목이 무너질뻔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에디슨이 만든 전구의 불빛을 보고

넋을 잃고 감상합니다

 

1887년 조선에서 에디슨 전등이 켜진날 놀라는 사람들

 

독일의 역사학자 에밀 루트비히는 말했습니다

 

<에밀 루트비히>프로메테우스가 불을 발견한 이후 

인류는 두 번째 불을 발견한 것이다. 

인류는 이제 어둠에서 벗어났다

 

인간을 위해 신에게서 불을 훔치는 프로메테우스 , 불을 훔치는 프로메테우스(1637)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가]

에디슨 전구 , 전등의 매력에 푹 빠진

미국 금융가 JP모건은 에디슨에게 큰 투자를 해서

미국에는 전등과 발전소가 깔리게 되었고

미국 가정에도 점차 전등이 보급되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밤에도 대낮같이 생활할 수 있게 되었고

밤이면 무조건 자야했던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바뀌게 됩니다

 

미국 금융왕 JP모건

 

또한 오랫동안 과학 , 기술분야에서 유럽에게 열등감에 사로잡혀있었던 미국인들은

에디슨의 축음기와 영사기(동영상 기계) , 전구발명으로

에디슨의 발명품들이 유럽을 휩쓰는 모습에 감격하고 행복해했고

자신들의 나라를 '발명가들의 나라' 라 부르기 시작했고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이 발명의 천재에게

새로운 별명을 선물합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가 , 토머스 에디슨'

 

에디슨은 이후에도 발명에 열중했고

사람들은 그를 발명왕이라 불렀으며

그의 발명품은 축음기 , 영사기(영화) , 전화 , 전구 ,

전기 냉장고 등 1000개가 넘어갔습니다

 

항상 의문을 가지고

왜 , 어째서를 외치던 그의 호기심은

역사를 빛내는 결과가 되었고

에디슨은 항상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이로운 도구를 만들려 노력했습니다

 

[발명왕 에디슨]

82세의 발명왕 에디슨에게

사람들은 에디슨 전등발명 50주년 기념식을 열어주었고

그 자리에서 에디슨은 자신을 천재라하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에디슨>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Genius is one percent inspiration and ninety-nine percent perspiration

 

1931년 10월 18일 에디슨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자신의 꿈을 이해해준 에디슨을

아버지처럼 존경하던 미국 자동차왕 포드는

에디슨의 마지막 한숨을 손에 넣었습니다

 

자동차왕 포드와 발명왕 에디슨

 

허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은 에디슨의 전구 발명을 기리기 위해

전국민에게 모두 일시적으로 전등불을 끄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에 사람들 에디슨의 죽음을 슬퍼하며

1분동안 전등을 껐습니다

 

전구를 들고있는 에디슨

 

<라봉봉>저도 어렸을때 에디슨 위인전 읽고

냉장고에서 달걀꺼내서 쇼파 이불에 넣었던게 생각나고

어린이 과학잡지에서 나온 에디슨부화기라는 달걀부화기를 가지고싶었던게 생각이 납니다

 

에디슨은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천재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무엇보다 그가 세계 어린이 위인전에서도 항상 1순위로 들어갈 정도로 사랑받는 이유는

호기심 , 집념과 근성 , 인간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을 시작으로 미국은 대발명시대가 열리게 되어

그의 제자 , 연구원들은 놀라운 발명을 할 수 있었고

재밌는 것은 미국의 위대한 발명가들은 학교를 나온 유럽 발명가들과 달리

대부분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유럽과학은 이론적 , 학문적 성향이 강하고

미국과학은 실험적 , 기업 및 상품과 연관이 깊습니다

 

에디슨 , 라이트형제 , 헨리포드 , 스티브 잡스 등

미국 기업가 , 발명가는 학교 중퇴자 , 자퇴자들이 많고

창의성과 불굴의 의지로 자신들의 인생을 개척했다는 의의가 있고

오히려 이런 창의력과 호기심 강한 인물들이 학교를 억지로 계속 더 다녔으면

인류의 삶을 바꾼 위대한 발명들이 묻혀버렸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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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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