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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이처>

[동물을 사랑한 아이]

[가난한 사람들]

[철학과 신학 공부]

[의학 공부]

[아프리카의 백인 의사]

[슈바이처의 생명사랑]

[꼴통 의사]

[병원을 짓다]

[노벨 평화상]

[아프리카의 성자]

<라봉봉>

 

슈바이처

 

[동물을 사랑한 아이]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1875년 1월 14일 독일 카이제르스부르크 라는 작은마을에서

목사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슈바이처는 동물을 사랑했습니다

이에 친구들이 동물을 괴롭힐때마다 말렸습니다

 

목사였던 슈바이처 가족들은 식사때마다 소리내어 기도를 드렸고

기도 시간에 슈바이처는 길에서 본 다리절룩거리는 늙은 말을 보고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슈바이처>하나님. 숨쉬는 모든 동물을 보호하시고 축복하여 주십시오

 

[가난한 사람들]

슈바이처의 마을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슈바이처 집안도 가족이 많아 빠듯했지만

목사아들면서 차림새가 단정했던 슈바이처는

부잣집 아들이라는 오해를 받으며 따돌림당했습니다

 

어린시절 10살의 슈바이처(뒷줄 가운데)와 슈바이처의 가족들

 

그러나 슈바이처가 따뜻하게 대하자

마을 아이들도 슈바이처를 좋아했습니다

 

슈바이처는 일곱살때

길에서 몸집 큰아이 게오르그가 슈바이처에게 싸움을 걸었는데

슈바이처가 이겼습니다

 

게오르그는 화를 참지 못하며 말했습니다

 

<게오르그>그래 , 나도 너처럼 일주일에 두번씩

고깃국을 먹으면 너 같은 것은 문제없어 !

 

이에 충격을 받은

슈바이처는 평생동안 그 말이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슈바이처>게오르그의 말이 맞아...

그건 공정한 싸움이 아니었어

 

이때 슈바이처는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다른 아이들보다는 부유했던 슈바이처는 자기만 좋은 생활하는게 싫었고

굶주린 이웃들이 있는데

자신만 배부르고 따뜻하게 지내는 것이 부끄러워진 슈바이처는

이후부터 고깃국을 입에 대지 않았고

추운 날씨에도 외투를 입지 않았습니다

 

슈바이처는 어린시절 가난한 친구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철학과 신학 공부]

슈바이처의 마을에는

유대인 상인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유럽에 반유대인 , 반유대주의 정서가 강해서

사람들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돼지' 라 부르며 모욕했습니다

 

하지만 그 유대인 상인은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비난에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고

이를 본 슈바이처는

용서만이 악을 굴복시키고 갈등을 극복하는 길임을 확신하는

평화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슈바이처는 감수성이 풍부해

어린시절부터 오르간을 배워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도 했고

 

오르간치는 슈바이처 , 음악은 그의 평생의 친구였고 슈바이처는 예수님과 바흐를 사랑했습니다

 

어른이 된 슈바이처는 독일 병역법에 따라

군복무를 하였는데

중대장의 배려로

군인 신분으로 대학교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철학과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슈바이처는 군복무중 휴가를 집에서 보낼때

생각했습니다

 

<슈바이처>나는 이렇게 가족들과 행복하게 휴가를 보내는데

이러한 행복을 나만 누려도 되는가 ?

 

, 나만 행복하게 살 수 없다

 

이후 슈바이처는

교수가 되어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슈바이처는

21세때부터 생각하기를

30세까지는 학문과 예술활동에 전념하고

그 이후부터는 인류를 위해 직접 봉사하는 길을 가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1세의 슈바이처

 

[의학 공부]

1904년 29세의 슈바이처는 아프리카 콩고의 선교회장 뵈그너가 쓴

아프리카에서 전염병과 배고픔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선교활동을 모집한다는 내용의 글을 봅니다

 

이에 슈바이처는 아프리카로 가기로 했고

철학자이자 신학 교수가 되어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슈바이처가

아프리카로 가서 원시림속에서 토인들을 위한 의사가 되겠다하자

모두가 반대했지만 슈바이처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습니다

 

슈바이처는 당시 성경의 한 구절을 생각하며

시몬과 안드레라는 어부가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만나뵈고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장면을 생각하며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1905년 30살이 된 슈바이처는 의학 공부를 해서

6년후 의사가되었습니다

 

의사가된 다음해인

1912년 6월 18일

슈바이처는 헬레네라는 착한 아가씨랑 결혼했습니다

헬레네도 슈바이처와 함께 아프리카로 가기 위해 간호사가 된 여인이었고

 

슈바이처와 헬레네 부부

 

결혼한 바로 다음해인

1913년 3월 26일 슈바이처 부부는 배를 타고

열대 아프리카인 가봉 오고웨강 연안의 랑바레네에 출발합니다

 

슈바이처가 활동한 아프리카 가봉

 

그리고 슈바이처는 1965년 그가 죽을때까지

아프리카에 계속 머물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백인 의사]

랑바레네에 도착한 슈바이처가 짐풀기도전에

백인의사가 왔다는 소문이 금새 퍼졌습니다

 

아프리카는 험하고

백인 의사가 없었고

환자를 치료할 병원도 없었음에도

수많은 흑인환자들이 슈바이처 부부에게 새까맣게 몰려왔습니다

 

아이들을 안고있는 슈바이처 박사

 

먼저 슈바이처는 나무 그늘에서 환자를 치료했고

피부병에 걸려 살이 썩어들어가는 환자 ,

열병으로 신음하는 환자 등

수많은 환자들을 위해

슈바이처 부부는 밤낮으로 바빴습니다

 

<슈바이처의 회고>(나는 아주 어릴때부터)

세상에서 발견되는 비참한 일들을 보고 괴로워했다

 

슈바이처는 닭장으로 쓰던 건물을 고쳐

임시병동 및 진찰실 만들었고

슈바이처와 헬레네는 열심히 환자를 치료해

첫해에만 2천명의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진료를 보는 슈바이처

 

검은 땅에서 요술을 부리는 백인의사의 모습에

아프리카 환자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그러나..

 

'박사님 치료비가 없어요'

 

아프리카 사람들은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이에 슈바이처는 진료 이외에도

강연과 연주 등에 의한 수입으로 병원을 운영했고

 

고향 친구들에게 편지도 썼습니다

 

<슈바이처의 편지>아프리카에는 가난하고 아픈사람들이 너무많은데

도와줄 수 없겠나

 

슈바이처의 친구들 , 유럽 후원자들도

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났기에 처지가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병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민중과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슈바이처를 위해

기꺼이 후원했고

유럽에서 많은 돈과 약품이 왔습니다

 

[슈바이처의 생명사랑]

슈바이처는 모든 생명은 신성하므로 모든 생명을 경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슈바이처는 우리가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로서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에 둘러싸인 살려고하는 생명'

 

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했고

 

'모든 생명은 거룩하며 희생되어도 되는 생명은 없다'

 

고 말했습니다

 

슈바이처는 적도 아프리카의 더운 날 밤에도

방문을 열면 날파리들이 등불에 날아와 타죽는 것을 볼 수 없었기에

창문을 열지 않았고

평생 생명 존중사상을 철저하게 실천합니다

 

사람들에게 달려드는 열대 아프리카의 파리 , 열악한 아프리카의 현실입니다

 

[꼴통 의사]

아프리카의 환자들은 치료도 어렵지만

환자들은 슈바이처 말을 듣지 않아

슈바이처를 곤란하게 했습니다

 

아프리카 환자들은

함부로 더러운 물마시거나

약을 한꺼번에 먹었고

말도 통하지 않아

슈바이처의 마음은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슈바이처가 오염된 물을 마시지 말라 경고했음에도

또다시 오염된 물을 마시려다 발각된 환자들에게

슈바이처가 푸념했습니다

 

<슈바이처>이런 야만인들을 치료하겠다시고 아프리카까지 왔다니 ,

나도 참 어지간한 꼴통이로군 !

 

이에 통역자겸 조수로 일아던 현지인 조세프가 말했습니다

 

<조세프>옳으신 말씀입니다.

지상에서는 선생님이야말로 대단한 꼴통이죠.

하지만 하늘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병원을 짓다]

많은 환자를 치료하기에는 병실이 턱없이 부족해

슈바이처는 환자를 치료하며

병실을 짓는데 열심이었고

직접 삽을 들고 병원짓는일에 참여했습니다

 

슈바이처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짜증없이 묵묵히 최선을 다해 일했고

 

슈바이처의 노력으로

커다란 병원이 지어졌습니다

 

랑바레네의 슈바이처 병원

 

병원이 커지고 환자수도 늘어나자

슈바이처는 유럽에 의사와 약품이 부족하다는 편지를 썼고

 

편지를 읽고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약품을 들고 슈바이처를 찾아왔습니다

 

이제 랑바레네에는

큰 병원과 의사 , 간호사 , 원주민 직원도 수십명이 되었고

슈바이처가 20년동안 기울인 노력이었습니다

 

평생을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봉사한 슈바이처 박사

 

사람들은 슈바이처를 '흑인의 아버지' , '윈시림의 성자' ,

'아프리카의 성자' 라고 불렀습니다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는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모든 인류에게 행복을 나누어주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습니다

 

[노벨 평화상]

1952년 전세계에서는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의 랑바레네에서

독자적으로 병원을 차려 인술을 펼쳐오던

77세의 슈바이처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노벨 평화상

 

평화주의자 노벨이 만든

노벨상중 가장 권위가 있는 상이었던

노벨 평화상 ,

항상 노벨평화상은 수상자들에 따라

여러 반대 , 논란이 있던 상이었지만

슈바이처가 수상자로 결정되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슈바이처는 노벨상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갔는데

이를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기자들은

슈바이처를 찾기 위해

기차의 특등칸 , 1등칸 , 2등칸을 모두 뒤졌는데

찾지 못했고

한 기자가 3등칸에서 사람들을 진찰하는 슈바이처를

발견하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기자들>선생님 !

왜 1등이나 2등칸이 아닌

왜 이런 3등칸에 타고 계십니까 ?

 

이에 슈바이처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슈바이처>이 기차에는 4등칸이 없더군요 !

 

이에 어리둥절해진 기자에게

슈바이처는 다시 말했습니다

 

<슈바이처>저는 편안한 곳을 찾아 다니는게 아니라

저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특등실의 사람들은 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슈바이처는 노벨평화상 상금을

모두 아프리카 원주민을 위해 쓰기로 했습니다

 

기자들과 슈바이처 , 슈바이처는 대중들의 관심을 이용해 아프리카의 현실을 알리려 했습니다

 

[아프리카의 성자]

1965년 9월 4일

슈바이처는 그가 그렇게 사랑하던

아프리카 랑바레네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고

 

아프리카의 성자라 불린 슈바이처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전세계인들이 눈물흘리는 가운데

슈바이처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무덤옆에 묻혔고

슈바이처 부부는 랑바레네 병원뜰에 나란히 묻혔습니다

 

오고웨강 언덕에 있는 슈바이처 무덤에는

슈바이처가 생전 직접 깎아서 만든 십자가가

그를 지키고 있습니다

 

슈바이처 병원의 십자가

 

미소짓는 슈바이처 박사와 어린아이

 

슈바이처가 남긴 아름다운 사랑과 봉사 정신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빛이 되었습니다

 

<슈바이처 명언>

내 안에 빛이 있으면 스스로 밖에 빛나는 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내부에서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Light in me shines outside.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rying to keep the light from going inside me.

 

<라봉봉>슈바이처는 평생을 봉사를 하며

인류애를 실현하고 간 위인으로서

참 아름다운 사람이였습니다

 

옛날에 집에 몰로카이섬의 다미안신부라는 만화가 있었는데

실존인물로서 33세의 나이로 자원해서 한센병 환자들이 있는

저주의 섬이라 불린 몰로카이섬에 간

다미안 신부는 평생을 자비와 사랑으로

한센병 환자를 돌보시다

자신도 한센병에 전염되어 선종하시게 된 인물입니다

 

이외에도 한국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등

수많은 훌륭한 인물들이 있고

그들의 삶은 예수님의 삶을 직접 실천한 것이었다 할 수 있고

일반인이 감히 하기 어려운

숭고한 기독교 정신이라 생각됩니다

 

옛날 , 이런 위대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가 남긴 생명존중사상은 오늘날에도 길이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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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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