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오랜 분열 기간이 있었는데
통일제국 수나라가 등장해서 모처럼만에 통일국가가 되었고
중국이 통일하자 중국인들은 시선을 외국에 돌렸고
동쪽에 강성한 고구려를 공격하게 됬습니다
그렇게 수양제의 야욕으로 고구려 vs 수나라 전쟁이 발생했고
수양제는 113만 대군을 동원해 고구려를 공격하나
고구려 요동성은 수나라 100만대군을 버텨냈고
결국 싸움이 길어지자 수양제는 30만 별동대를 동원해
고구려 수도 평양성을 직접공격하기로 결심했고
한참 평양성에 도달하자 오랜 굶주림에 지친 수나라군은
을지문덕 장군의 반격, 살수대첩으로 패퇴하고 쫒겨나게 됬습니다
이후 수나라는 고구려 원정에 너무 힘을 많이 써서 멸망하게 되었고
수나라의 뒤를 이은 중국 통일제국 당나라 역시 다시 체제를 정비하고
고구려를 공격하나
고구려 안시성 성주 양만춘 장군은 역시 당나라 대군을 버텨냈고
당황제였던 당태종 이세민은 이때 양만춘 장군의 활을 맞아
애꾸눈이 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한편 신라는 진흥왕의 한강유역 정복 이후부터
당항성이라는 무역항에서 중국과 직접 교류할 수 있었고
한강의 곡창지대를 확보해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신라는 북으로는 고구려 , 남, 서쪽으로는 백제
동쪽으로는 왜의 위협이나 공격을 받았고
이에 김춘추는 당나라로 가서 당태종을 만나 나당동맹을 체결합니다
<나당동맹의 내용>신라와 당나라는 군사적 동맹을 맺고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평양 이남의 백제땅은 신라가 , 이북의 고구려 땅은 당나라로 갖기로 한다 |
이에 당대 동아시아 세계는
고구려(+돌궐 , 말갈) + 백제 + 왜 vs
당나라 + 신라 구도로 맞서게 되었고 이를
지리적 위치를 반영해 십자외교라고 부릅니다
고구려 | ||
당나라 | 백제 | 신라 |
왜 |
이전에 당나라는 고구려와 큰 전쟁을 한 적이 있었지만
고구려 양만춘 장군의 안시성 싸움 등으로 대치상태에 있었고
신라와 손을 잡고나서 먼저 백제를 공격하기로 결정해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끄는 13만 수군이 백제로 상륙하고
신라 김유신 장군의 5만군사와 합류해 나당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켰습니다
당시 신라 김유신 장군의 5만대군은 백제 수도 사비성으로 가기 전
황산벌(오늘날 충청남도 논산시) 에서
백제 계백 장군의 마지막 5000명의 결사대와 맞섰는데
계백 장군은 전쟁터에 나기전 가족들도 죽였고
황산벌 전투에서 처절하게 저항하며 4번을 승리했지만
신라 화랑 반굴과 관창의 희생이 있자 신라군이 다시 힘껏 싸워
계백 장군의 5000 결사대는 전멸했고
끝내 사비성에 도달한 나당 연합군은 백제 의자왕의 항복을 받았고
당시 국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그의 아들 태자 김법민은
이전 백제군에게 죽은 가족의 원수를 갚았습니다
이로서 백제 700년 왕조가 멸망했고
얼마 후 태종 무열왕이 사망하고
태자 김법민이 왕위를 이어 문무왕이 되었고
문무왕은 김유신 장군에게 명해서 다시 나당 연합군과 함께
고구려 700년 왕조를 멸망시키게 됩니다
당시 고구려는 집권자였던 연개소문 사후 연개소문의 자식들이
서로 싸우며 분열해서 혼란상태에 있었고
한때 수나라 , 당나라 대군을 맞선던 것과 반대로
쉽게 무너졌습니다
결국 문무왕과 신라 장군 김유신은 삼국통일(삼한일통) 을 해서
삼국을 하나로 만들었고
한편 백제와 고구려는 700년이나 간 왕조답게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은 곧바로
부흥운동을 일으켜 나당연합군에 저항했고
백제는 복신과 도침 , 흑치상지
고구려는 검모잠과 안승 , 고연무 등이 대표적인 부흥운동 인물입니다
한편 당나라는 나당동맹 약속을 깨고
백제와 신라 땅까지 당나라의 땅으로 만들 야욕을 보였고
이에 분노한 신라 문무왕은 당시 부흥운동을 일으킨 백제 , 고구려 유민들을 포섭해
삼국 백성들의 힘을 모아 당나라를 공격해 나당전쟁을 일으켰고
매소성 전투(지상전) 의 승리와 기벌포 전투(해전) 의 승리를 거뒀는데
신라군은 지상전에 강했던 고구려 유민들과 해전에 강했던 백제 유민들의 도움에 힘입어
한국 땅에서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나당전쟁을 승리로 거두어
삼국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보통은 백제와 고구려 멸망이후를 삼국통일로 보지 않고
당나라까지 몰아낸 신라의 나당전쟁 승리이후를 삼국통일 시기로 보고있습니다
고구려 , 백제 , 신라인 삼국인들은 모두 고조선의 후예로서
중국과는 언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삼국인들은 같은 의복을 입고 같은 언어를 썼고
기존부터 삼국을 삼한이라 부르며 동질의식이 있었지만
신라의 삼국통일은 고구려 땅을 제외한 대동강 ~ 원산만 남쪽의 통일이라는
불완전한 통일이라는 평가와 또 당나라라는 외세의 힘을 빌린 비자주적 통일이라는
평가가 있고 이에 당태종과 나당동맹을 체결했던 태종 무열왕 김춘추는
한국사의 역적이라는 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라 역시 당시 고구려 , 백제 , 왜의
공격과 압박에 멸망 위기까지 갔던 상황이어서 최선의 판단이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한국 최초의 통일 국가가 생겼다는 점 , 나당전쟁 기간동안 백제와
고구려 유민을 포용했다는 점 , 이후에도 한국인들은 끊임없이 고토수복을 하려
북진했다는 점 , 당나라 세력을 몰아낸 후 마지막 한국사 북방왕조 발해의 건국 등
신라의 삼국통일은 여러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의 세 인물은
태종 무열왕 김춘추 , 문무왕 김법민 , 신라장군 김유신 장군으로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나라는 이후 고구려 지역을 관리하지 못하다가
당나라를 탈출한 고구려 유민 '대조영' 이 다시 고구려 지역으로 돌아와
'발해' 를 건국하고 한국사는 '통일신라 시대' 혹은 '남북국시대' 가 시작됩니다
<라봉봉>신라의 삼국통일로 한국에는 최초의 통합국가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고
통일신라는 국제적으로 교류하며 큰 번영을 하며
고구려 + 백제 + 신라 문화가 융합된 한국의 문화가 생성되어 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행히도 북방은 발해가 자리잡아 고구려의 명맥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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