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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으로 김종서 , 황보인 같은 원로대신 및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 신하들만 숙청된 것이 아니라

조선 군부에도 큰 타격이 있었는데

 

김종서가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살해되자

김종서의 부하이자 북방을 지키고 있었던 이징옥은 파면됬고

이징옥은 궁지에 몰리자 결국 여진족과 연합해

스스로 황제라 일컫고 국호를 대금이라 하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징옥은 매우 청렴하고 뛰어난 무장으로서

4군 6진 개척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었는데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정 대신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파벌로 조정을 채웠는데

군부 역시 예외도 아니었고

수양대군은 김종서를 아버지같이 따르던 김종서계 인물이었던 이징옥을 꺼려

파직 시키다 일어난 반란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징옥은 부하의 배신으로 부하들에게 죽게되어

반란은 흐지부지하게 끝났지만

당대 김종서의 뒤를 이어 북방을 호령하며

여진족의 존경을 받고 있었던 이징옥이 죽자

조선 북방은 큰 구멍이 뚫리게 되었고

또 북방지역인 평안도와 함경도 민심도 뒤숭숭해졌습니다

 

당시 조카를 죽여 왕위를 찬탈하고 왕이 된 세조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도

많이 있었는데

이징옥의 난 이후부터는

세조는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의정부 서사제에서 다시 6조 직계제를 시행했고

지방보다는 서울 중심의 정책을 폈는데

세조는 이징옥의 난의 충격때문인지

북방 지역 사람들을 벼슬에 등용하지 못하게 했고 (명백한 세조의 실정)

호패법(오늘날 주민등록증) 을 강화시켜 지방민 이주를 금지시키자

조선 북방 지역 백성들은 큰 차별에 큰 분노를 가지게 되었고

북방 호족출신 이시애는 세조의 중앙집권정책을 반대하며

북방지역민들을 모아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고

세조가 보낸 젊고 유능했던 남이장군과 관군들은 조심스레

이시애군을 압박했고

결국 이시애는 관군에 잡혀 그자리에서 거열형(흔히 능지처참으로 알고있는

팔과 다리 등 몸을 찢어죽이는 형벌)

당했습니다

 

조선 북방민들의 반란 이징옥의 난과 이시애의 난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에서 나오는 죄인의 팔 다리를 소나 말에 묶어 소나 말을 달리게해 사지를 찢는 잔혹한 형벌 거열형 , 흔히 능지처참으로 알려져있지만 능지처참은 실제로 산채로 살을 회 뜨는 형벌입니다,, :: 출처 :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 (2012) The Moon Embracing the Sun

 

당시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젊은 청년장군 남이는

매우 뛰어난 무예실력으로 차세대 조선군을 이끌 촉망받는 장수였는데

다소 직선적인 성격이 강했던 인물이고

이시애의 난 진압과 건주여진 정벌 등의 공로로

26세에 병조판서(국방부 장관) 이 되었고

 

당시 세조는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훈구파들을 적극 등용했는데

원래 조선을 건국한 공신세력들을 훈구파라 불렀지만

이 시기에는 세조를 도와 계유정난에 참여하거나 세조를 도운 세조계 인물들이

훈구파가 되었습니다

남이도 이중 하나였고 세조말년에 적극 등용되

젊고 촉망받는 유능한 장군이었습니다

 

서울 용산구 남이 사당의 남이를 그린 '무신도(巫神圖)'

 

그러나 세조 사후 예종대에 이르러

또다시 신 · 구 세력의 권력다툼이 시작됬고

남이를 시기하고 질투하던 유자광은 남이를 모함했는데

남이장군이 남긴 시를 불온하다고 모함했는데

남이장군의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남이의 시 북정가>

백두의 돌 칼 갈아 다하고

두만강의 물 말 먹여 없애리

사나이 스물에 나라 평정치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리오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석마도진)

豆滿江水飮馬無 (두만강수음마무)

男兒二十未平國 (남아이십미평국)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수칭대장부)

 

다소 위험하게 해석될 여지도 있는

직선적이고 호탕한 성격의 남이의 기개를 엿볼 수 있는 시지만

이 시에서 유자광은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 을

'나라를 얻지 못하면' 으로 바꿔서

남이를 모함해

남이를 왕에대한 반역죄인 역모죄로 죽였고

많은 사람들이 유능하고 청렴해 존경받던 남이장군의 죽음에

슬퍼했습니다 ('남이의 옥' 사건)

 

반역죄인의 묘는 만들수 없었기에

남이장군의 억울한 죽음에 슬퍼한 사람들은

남이 장군의 시체를 모아 경기도 화성에 몰래 남이장군의 묘를 만들었고

공식적인 묘를 만들면 후손들 또한 위험할 수 있기에

일부로 강원도 춘천시쪽에 가짜 묘를 만들었고

오늘날 이 곳은 남이 장군의 이름을 딴 한국의 관광지

'남이섬' 이 되었습니다

 

남이섬은 메타세콰이어 길로 유명하며

한류드라마의 시초를 알린 '겨울연가' 촬영지로 유명합니다

 

일본에서 큰 인기가 있었던 한류드라마의 효시(시작) 겨울연가 촬영지로 유명한 남이섬 , 출처 : KBS 2TV 월화 드라마 겨울 연가 (2002)

 

하여튼 세조시기 문신(문관) 이외에도 무신(장수)들도 혼란의 시대가 시작되며

많은 타격이 있었고 점차 조선 국방력에는 구멍이 뚫려가나

일단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이 있듯이

조선은 쉽게 망하지 않고 아직까지도 강한 나라였고

점차 점차 약해지다가 선조대에 이르러 일본의 침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라봉봉>세조시기 북방민들에 대한 차별이 노골적으로 심해졌기도 했고

세조는 군사권 역시 장악하기 위해 여러 장수들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여러 반란들을 막았고 결과적으로는 조선의 북방 군사력등의 큰 손실을

입게 되었습니다

또 촉망받던 청년장수 남이가 죽게되는 등 여러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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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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