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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은 유교적 이상정치를 구현해 나름 성군이라 불리는 인물이었고

그의 아들 연산군은 반대로 폭군(다른 사람을 힘이나 권력으로 억누르며 

사납고 악한 짓을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라 불리는 인물입니다

 

폭군 연산군의 모습을 연기한 배우 김강우님 , 출처 : 간신 (2015) The Treacherous

 

연산군은 광해군과 같이 조선왕들의 시호가 조나 종으로 끝나는 것과 달리

폭정을 일삼다 신하들에게 쫓겨난 인물이기에

조나 종의 시호를 받지 못했고

왕자들의 칭호같이 군칭호에 머물게 된 인물입니다

 

성종은 유교적 이상정치를 추구하며 많은 선비들의 우러름을 받으며

성군이라 불렸지만 여색을 밝혀 가족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던 인물이고

이런 문제들로 연산군을 낳은 윤씨와 다투다가 끝내

윤씨를 폐해 친정으로 돌려보내고 이후 사약을 내려

죽게 했습니다

 

폐비 윤씨는 사약을 먹고 피를 토하며 죽어가며

피묻은 적삼(윗옷)을 보이며 말했습니다

 

<폐비 윤씨의 유언>원자(연산군)가 목숨을 보전하거든

 이것(피묻은 적삼) 을 보여 나의 원통함을 말해주라

 

사약을 받는 폐비 윤씨와 피묻은 적삼 , 출처 : 출처 : SBS 대하사극 왕과 나 (2007~2008) The King and I

 

한편 폐비 윤씨사건을 엄격히 비밀사건에 부친 성종은

연산군을 그대로 세자로 키웠고

궁궐에서 어머니의 존재를 잘 모르고 자랐던 연산군은

왕이 되고나서 명나라에 왕실 가족에 대한 보고를 작성하는 외교문서를 꾸밀때야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됬습니다

 

당시 연산군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애써 어머니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

백성을 위한 왕이 되려했고

나름 백성을 위해 곡식으로 구제하거나

왜구(일본해적)나 여진족을 토벌하거나

하는등 나름 신하들의 기대를 받았는데

 

점차 아버지와 신하들에게 죽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연산군의 의구심은 커져갔습니다

 

연산군 4년에는

성종의 역사기록에서 사림파 거두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 이 발견됬는데

조의제문은 중국 역사에서

항우에게 살해되었던 초나라 회왕의 사례를 들어서

세조의 계유정난(세조가 단종을 죽인 것) 을 비판하는 내용이었고

이는 연산군의 증조할아버지 세조를 비판하는 내용이었기에

조선 왕실을 비판하는 내용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의제문

 

조의제문을 쓴 조선 사림의 거두 '김종직 金宗直 1431년 ~ 1492년'

 

이 사건으로 사림파를 견제하던 훈구파들은

'무오사화(무오년에 일어난 선비들의 참화)' 를 일으켜 사림파 선비들을 죽거나 귀양을 갔고

훈구파들이 다시 득세하게 됬습니다

 

또 평소 강력한 왕권중심 중앙집권 정치를 시행하려 했던

연산군은 사림파를 좋아하지 않았고

이에 더욱 훈구파들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연산군 10년에

연산군에게 어머니 폐비 윤씨가 죽어갈때 그녀의 피가 묻은

'피묻은 적삼' 이 연산군에게 전달되었고

이에 어머니의 죽음에 분노한 연산군은 어머니의 죽음에 관여한

신하들을 훈구파 , 사림파 가릴것 없이 모두 죽여버렸고

궁중에서는 심문받는 이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 사건을 '갑자사화' 라고 합니다

 

연산군의 '사화(선비들의 재앙)'

 

무오사화가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결에서 훈구파가 승리한 것이라면

갑자사화는 폐비 윤씨사건을 중심으로 연산군파와 신하들의 대결이었고

이때 훈구파들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에 훈구파나 사림파 가릴것 없이 신하들은

그냥 연산군이 미쳐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점차 왕을 두려워하여 바른말 하기를 꺼려했고

이에 연산군에게 듣기 좋은 소리만 해주는 간신이 들끓었고

신하들 역시 앵무새처럼 그저 연산군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이에 이성을 놓아버린 연산군은

마음껏 놀아제끼기 시작했고

절대적 독재권력을 행사하며

조선을 그의 놀이판으로 만듭니다

 

연산군은 미녀들을 뽑는 '채홍사' 를 전국에 파견해

미녀들을 뽑아 바치게 했고

미녀들중 미모가 뛰어난 자들을 '흥청' 이라 해

사람들은 흥청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이를 비꼬아 '흥청망청' 이라 했고

오늘날 돈이나 물건을 마구잡이로 쓴다는

'흥청망청' 의 유례가 되었습니다

 

또 흥청들의 숙소는 다름아닌 세종대 훌륭한 학자들을 길러낸

조선 연구기관 '집현전' 이었고

많은 이들이 탄식했습니다

 

연산군은 학문이나 경연들을 멀리하고

선비들의 학교인 성균관을 사냥터로 만들었고

백성들이 살고있던 민가들을 치워버리고 사냥터로 만들고

온갖 기행을 일삼으며 돈낭비를 계속해대며

백성들에게 높은 세금을 거두어들여 백성들의 원망은 나날히 높아져만 갔습니다

 

연산군 시대 문란한 시대상과 왕의 노름판이 배경이 된 영화 '왕의 남자' , 출처 : 왕의 남자 (2005) King And The Clown

 

이에 연산군을 비판하는 투서(대자보같은 글)가 올라왔는데

어떤 사람이 쓴 글인지는 알 수가 없었고 다만 그것이

언문(한글)로 써져 있었기에

연산군은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을 사용을 금지시킵니다

 

또 그의 총애를 받은 후궁 장녹수는

여러 권세를 휘두르는 악행을 저질렀고

연산군 역시 신하들의 아내와 간통하고

온갖 악행을 저질러 백성들의 신음은 나날로 높아져갔습니다

 

세종대부터 연산군까지 일곱 왕을 섬긴

조선 환관(내시) 의 늙은 충신 김처선은

보다못해 연산군에게

 

<김처선>이 늙은 신이 네 임금을 섬겼고

경서와 사서를 대강 통하지만 고금에 상감(주상 전하)과 같은 짓을 하는 이는 없었다

 

라고 목숨을 걸고 간언했는데

연산군은 크게 화를 내며 김처선에게 활을 쏴서

갈비뼈를 맞췄고 이에 김처선은 다시 말했습니다

 

<김처선>대신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늙은 내시가 어찌 죽음을 아끼겠습니까

다만 전하께서 오래도록 보위에 계시지 못할 것이 한스러울 뿐

이에 더욱 분노한 연산군은 다시 활을 하나 더쏴서

김처선을 넘어트리고 다리를 칼로 잘랐고

김처선에게 외쳤습니다

 

<연산군>일어나거라 ! 어명이니라 !

 

이에 김처선은 임금을 쳐다보면서

 

<김처선>전하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다닐 수 있습니까 ?

 

라고 말했고

이에 연산군은 김처선의 혀를 잘르고

배를 갈라 창자를 꺼냈는데

김처선은 죽어가는 와중에도 말을 그만두지 않고

연산군에게 충언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렸을때 안쓰럽고 슬프게 본 한국사의 충신입니다)

 

진정한 왕의 '남자' 였던 한국사의 충신 '김처선'

 

신하들은 사화나 폭정으로 죽어가고

백성들은 연산군의 음행과 악행에 도탄에 빠지자

결국 몇몇 신하들은 힘을 모아 연산군을 몰아내기로 했고

'중종반정' 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위시켰습니다

 

연산군시대에는 궁내 말고도 나라 전체가 어지러웠던 시기로서

관군들을 농락하며 도망다닌 실존 도적 '홍길동' 이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홍길동은 도적이었지만

폭군의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기에

사람들은 그런 난세를 헤쳐나가줄 영웅을 바라고 있었고

이에 여러 이야기를 남긴 홍길동에게 권력자에 맞선 '의적' 이미지가 생겨나게 되었고

허균은 소설 '홍길동전' 을 집필하는 등 홍길동은 조선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오늘날 한국에서는 예시(견본용) 이름으로 '홍길동' 이라는 이름을 자주 사용합니다

 

한국 최초의 국문소설(한글소설) 이라 이야기되는 '홍길동전'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홍길동의 이미지

 

홍길동 이야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쾌도 홍길동' , 출처 : KBS 2TV 수목 드라마: 쾌도 홍길동 (2008)

 

<라봉봉>조선 폭군의 대명사 연산군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머니 없이 자라 여러 애정결핍이 있었던 인물이라고도 이야기 되나

그럼에도 그의 악행은 너무도 심해

신하와 백성들 모두가 등을 돌리게 되었다 할 수 있고

주지육림(술이 연못을 이루고 고기가 숲을 이룬다 , 음란무도한 생활)을 즐기는

폭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광해군은 격변하는 시대에 중립외교를 하다가 쫓겨났다는 등

여러 논란이 있는 왕이지만 연산군은 그런 논란의 여지가 없이

폭군으로 유명한 인물이고

중종반정 이후 중종대부터는 중종을 왕위에 올린

신하들의 권력이 매우 강해졌기에

연산군은 조선 초기 강력한 왕권을 지녔던

마지막 임금이었다 볼 수 있고

연산군대 이후부터는 조선 왕권이 매우 약해집니다

 

저도 노는것을 좋아하지만

주변 백성들이 큰 고통을 받는데도 외면하고 놀기만 한 것은

큰 문제라 할 수 있고 그의 음행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연산군은 별다른 노력없이 세자라는 이유로

선대로부터 강력한 왕권을 이어받았기에

그 부담감으로 인해 자신에 그릇에 비해 몰려오는 책임감들을 견디지 못하다

노름에 빠지다 미쳐버린 것이라 생각됩니다

 

연산군 시대에는 백성들이 너무 고통받아

'홍길동전' 의 배경이 된 시대이기도 하고

백성들은 난세를 구원해줄 영웅을 바라고 있었다 할 수 있고

결국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이 폐위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무슨 말을 하고 싶기는 한데 한마디 하자면

오늘날에도 한국은 '불륜왕국' 이라 불리며

청소년 , 젊은이 , 중년 , 노인 할 것 없이

불륜이나 문란한 이성교제가 많다 하고

저는 실제로도 많이 목격했는데

여러 사람과 연애를 해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가볍게 여기는 경우들을 많이 봤는데

개인적으로 저도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은 오늘날에도 연산군이니 폭군 시대니 할 것없이

너무나 문란하고 거의 '동물의 왕국' 을 보는 느낌입니다

 

'수치심이 없으면 양심도 없다'

 

는 말이 있는데

어디서 서양의 역사도 잘 모르면서

서양도 이렇다며 잘못된 서양 하류층 풍습들이 유입되서

인터넷에서 되지도 않을 연애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선동하거나

연애를 안하면 이상이 있다며 비논리적으로 선동하거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애를 하며 더럽게 지낼바에

진짜 그냥 차라리 혼자인게 난데

매춘부들의 호객행위와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연애를 많이 하거나 문란하게 지내는 것을 '쿨' 하다고 여기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참으로 개념없이 집안 재산들을 말아먹는 짓이라 할 수 있고

순결하지 못하다는 것은 미래 혹은 현재 배우자와 자녀에게도 큰 과실을 저지르는 것인데

조용히 근신하지는 못할 망정 어딜 고개를 들고 다니는 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들은 결국 사회적 비용과 혼란으로 작용하기에

솔직히 저도 이런 면에서는 역사에서 그래왔던 것 처럼

많은 한국인들이 연산군같이 크게 패가망신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뭐 눈에 뭐가 보인다도 아니고 안타깝게도 진짜 순결을 지키는 사람은 극소수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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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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