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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의 폭정에

신하들은 훈구파 사림파 할 것 없이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고

백성들 역시 연산군의 사치와 향락에 신음했습니다

 

결국 뜻있는 신하들은 힘을 모아

연산군을 몰아내고 진성대군(중종)을 왕위에 올리는

'중종반정' 을 일으켰고

 

연산군은 폐위도 강화도로 유배됬는데

흥청망청 독재권력을 행사하며 살다가

갑자기 강화도로 가버려 초라한 생활을 하니

큰 충격을 받았는지

그해 병(홧병이라는 이야기도 있음)으로 사망했습니다

 

연산군대를 마지막으로 조선초기 강력한 왕권시대는

끝이 나게됬고

신하들에 의해 반정으로 옹립된 중종시대부터는

신권의 힘이 강해졌습니다

 

중종은 다시 유교적 도학정치를 부활시키고

자신을 왕위에 올려준 신하들과 사림파들을

적극 등용했습니다

 

중종이 등용한 대표적인 사림파는 '조광조' 였는데

조광조는 성리학을 조선에 보급시키려

지방 마을(향촌)마다 향약(향촌 자치규약 , 지방에서

사림파 지위강화에 기여)을 보급하고

과거시험은 사람의 행실을 알 수 없고

글재주로만 인재를 뽑는다고 생각해

인재 추천제도 '현량과(=천거제)' 를 실시해

인재를 등용하게 했고

이에 지방에 숨어살던 사림파들이 조선 중앙정계로 왔습니다

 

조광조 , 그린이 : 국오 정홍례 (1750년경)

 

조광조는 사림파들이 꿈꾸던

유교적 이상정치를 구현하려 했습니다

 

특히 조광조는 깨끗한 정치를 추구하며

이전 중종반정때 공신 작위를 받았지만

실제 반정에 참여가 없었던 자들의 공신 직을 회수하자는

주장이 사림파에서 나왔습니다 (위훈삭제)

 

이에 위기감을 느낀 훈구파들은 결국 조광조를 죽이려 했고

결국 개혁에 전면적으로 나서는

조광조와 사림파들을 시기 질투하던 훈구파들과 신하들은

조광조를 몰아내려고

나뭇잎에 꿀을 발라서 벌레들이 나뭇잎을 갉아먹게해서

'주초위왕' 이라는 글씨를 새겼고

주초위왕은 '조씨가 왕이 된다' 는 뜻이었고

이 나뭇잎을 본 중종은 깜짝 놀랐습니다

 

주초위왕

 

결국 신하들의 주청에 조광조와 진보적 사림파들은

귀양가거나 죽게 되었는데

이 사건을 '기묘사화(기묘년의 선비들의 재앙)' 라고 합니다

 

조광조는 조선에 성리학적 정치를 구현하려 했던 인물이었고

조광조의 사상들은 훗날 여러 조선 사림 , 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었고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조선 사림의 계보 (꼭 계보도가 맞다기 보다 모두 같은 사림에서 나와 서로들 엮여있음)

 

중종은 나름 중종반정으로 왕이 되

왕권이 약화된 불안정한 상황에서

좋은 임금이 되려 노력했던 인물이었지만

이렇게 내부적으로 여러 혼란도 있었고

외부적으로는 북방에서는 여진족들이 다시 일어나고

남방에서는 왜구(일본해적) 들의 침략이 일어났는데

1510년(중종 5년) 부산포 , 염포 , 제포 세 개의 포(항구) 에서

일본인들의 대규모 폭동이 있었고 진압되기는 했지만

중종시대의 큰 사건이었고

이 사건을 '삼포왜란' 이라고 합니다

 

이외에도 중종은

의녀 장금(대장금)을 최초의 여자어의(어의=임금의 주치의)

로 임명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해서

그녀의 이야기는 오늘날 한국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큰 흥행(+한류열풍)을 했고

중종은 백성에게 따뜻한 모습을 보이고

여러 개방적인 모습을 보인 임금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의 여성 어의 '대장금' 을 소재로한 드라마 '대장금' 은 오색 비단같이 고운 드라마이고 여성의 당당한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제 머리속에 중종=임호 배우 입니다 , 출처 : MBC 대하드라마 대장금 (2003~2004) 大長今 / Jewel in the Palace

 

<라봉봉>조광조는 청렴한 개혁가의 억울한 죽음 이미지도 있기는 하나

조광조 역시 급진적 개혁으로 당대 많은 반발이 있었던 인물입니다

 

결국 훈구파들에 의해 또다시 사림파들은 밀려났지만

조광조가 향촌(지방)이나 곳곳에 뿌려둔 씨앗은 계속해서 자라났고

조선 사림파는 지속되는 탄압에도 계속해서 세력이 커져만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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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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