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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당시 데탕트(긴장의 완화) 등의 냉전 화해분위기를 조성해

군사적으로 동아시아에 군사적 개입을 줄이는 모습을 보였고

1975년 자유 남베트남이 망하고 공산 북 베트남에 의해 적화통일되자

박정희는 미국을 불신하기 시작했고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시행합니다

 

대한민국 핵무기 개발을 주제로 한 대체역사소설로 한국에 큰 화제작이자 베스트셀러가 됬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단 애국마케팅 + 픽션이 많이 들어간 소설이라 현실역사랑은 구분해서 봐야되고 역사소설을 많이 본 저로서도 이양반 소설이 산파적 요소가 강해 좀 부담스러운 느낌도 있습니다 , 출처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소설) - 김진명

 

이미 이전 1974년 인도가 핵실험을 해 예민해진

미국은 당연히 눈치채고 박정희에게 끊임없는 압박과 위협을 했고

 

(ㄹㅇ 핵이라는게 미국은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나라들은 못가지게 하는거 때매

여러 독재국가들이

'미국 너는 되고 왜 나는 안되냐'

며 핵개발을 하는 경우들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이 세계경찰노릇을 한다 하더라도 일단 핵무기 자체가

지구에 ㄹㅇ 위험한 무기여서

남들이 가진다고 가져서도 안되고 보유국들도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1976년 8월 18일

남북 공동경비구역인 '판문점' 에서

시야를 가리던 미루나무 때문에

미군들은 나무를 베려다 북한군의 의의제기에

가지치기로 바꾸었고

남북 양측은 훈훈한 분위기속에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북한 경비병들이 나타나

 

'그만두지 않으면 죽이겠다'

 

경고했고

미 육군 보병 보니파스 대위는 이를 무시했습니다

 

북한군은 즉각

 

'죽여 !'

 

라고 소리지르며 보니파스 대위에 폭행을 가했고

UN군 장병들 상대로 마구잡이 폭행을 가했으며

노동자들이 달아나며 버려진 벌목 도끼로 보니파스 대위의 머리를 찍어 살해했고

이 과정에서 여러 병사들이 부상을 입고

두명의 미군 장교가 참혹히 살해당했습니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1976)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탈북한 북한 고위간부 증언록에 의하면

당시 북한 주석 김일성이 아닌 후계체제를 구축하던 김정일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었고

천안함 , 연평도 사건과 놀랍도록 비슷한느낌인데

현 북한지도자 김정은 역시 김정일의 후계체제를 구축하던 과정 중

이 사건들을 주도해 일으켰고

이는 후계자의 군부 내부의 통제 및 결속을 위한 지휘체계 연습 및 준비작업이었다고

생각되고 북한의 민족사적인 명백한 죄이지만

만약 계속해서 남북이 적대하는 모습으로 간다면

김정은의 2세가 북한 지도자를 계승할 시

또다시 이런 일들이 반복되 무고한 피해자들이 생겨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판문점 도끼만행으로 어이없게 장교 2명을 잃은 미국은 매우 화가났고

사건을 보고받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박정희>내 군화와 철모를 당장 가져오라 !

 

 

<박정희>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

 

라고 말하며

한국에서는 준 전시상태를 의미하는 '데프콘 3' 가 발령됬고

가뜩이나 베트남 전쟁의 패배로 초강대국의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던 미국은

더이상 공산주의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이며

북진할거까지 고려하며 엄청난 군사들을 한반도 근처로 전진배치했고

제 2차 한국전쟁이 일어날 분위기가 조성됬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다시금 미루나무를 베며

북한의 반응을 살피고 만약 또다시 도발하면 북한을 제대로 조지려 했고

당시 중국과 소련도 북한의 독자적인(정상범주를 벗어난) 행동이

골치아픈 일이었기에 북한을 비호하기 어려웠고

 

결국 한국 특전사 결사대원들은 도끼와 몽둥이를 가지고 북한군 초소 4개를 파괴했고

만약 가까히 다가오면 북한군을 사격해 죽이라는 명령이 있었기에

살벌하게 독이오른 대원들의 모습에 북한군들은 도망쳐버립니다

그 틈에 미국측은 그놈의 나무를 자르고 있었고

북한이 공포에 질리자 김일성도 노발대발 하며 김정일을 갈구었다고도 합니다

 

결국 나무 한그루 때문에 세계 3차대전이 발발할 뻔 했던게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이고 이사건으로 미국을 불신하며 비밀리에 핵개발을 실시하던

박정희 정부는 미국이 당시 보여준 강력한 대북 응징의지 및 동맹국의 모습등으로

다시금 미국을 신뢰하고 핵무기 개발을 중지했고

핵무기를 포기한 덕분에 한국은 세계적인 원자력 대국으로 가게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똑같은 철이 있어도 농사짓는 기계로 만들수도 있고 총을 만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

1976년 이 해에 재미 한국인 사업가 박동선은 미국 의회에 로비를 했다는 사건이

드러나게 됬고

한국 중앙정보부가 개입해 미국내 반 박정희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대규모 회유 , 매수 공작을 벌였다는게 드러나게 되

미국 사회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습니다 (코리아 게이트 사건)

 

1978년 미 하원 윤리위에서 공개증언하기 전 선서하는 박동선씨

 

미국 사회역시 박정희 정부의 비협조 및

동맹 대한민국과 완전히 등을 돌릴 수 없다는 판단으로 흐지부지 넘기게 됬는데

이 과정에서 박정희에게 토사구팽(이용당하다 버려짐) 당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미 의회에 박정희 정권을 고발하며

정희팍과 자신이 중앙정보부장 시절 있었던 일들을 전부 까발리기 시작했고

당황한 박정희는

 

'개도 주인을 알아보는데'

 

하며 허탈해 했고

박정희의 비밀 무력기관이자 당시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중앙정보부장' 의 배신은 정희팍에게 크나큰 충격이었습니다

 

결국 1979년 김형욱은 의문사 당했는데

2005년 국정원(구 중앙정보부)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지시로 김형욱이 권총암살 당했다 발표했고

그럼에도 김형욱 유족들마저 이 결과를 믿지 않았으며

미궁에 빠진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공포스러운 사건들이 유신독재시절 많이 일어났는데

유신독재가 절정에 이르던 시기에는

박정희는 점차 국민에 대한 통제를 일상까지 확대하고 있었고

술에 취해 '유신헌법 개정안은 독재' 라고 비판했다

징역형을 받은 인물도 있었고

말 잘못했다 언제 중앙정보부에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간다' 라는 말들이

흉흉히 나돌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1974년에는 학생들의 대규모 반유신 저항운동을 분쇄하려

박정희는 긴급조치 4호를 선포했고 정부 전복 음모를 조작해

이전에도 문제가 있었던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2차 인민혁명당 사건)을 또다시 꾸며서

여러 사람들을 사법살인시켰고

1975년 4월 9일 새벽 , 사형선고를 받은 8명에 대한 사형이 판결 확정 된 후

불과 18시간만에 사형이 집행됩니다

 

한국 사법부 최악의 흑역사중 하나인 2차 인혁당 사건

 

뉴욕타임스는 '비참한 길을 걷는 한국' 이라는 글을 내며

 

'박정희의 이른바 근대민주주의는 

조지 오웰의 1인 전제정치이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삭감해야 한다'

 

라고 비판했고

충격을 받은 세계 사회는 박정희 독재와 탄압 실태를 눈여겨 보게 됬습니다

 

유신정권을 반대하던 지식인 장준하는

박정희를 제거하려 했는데

1975년 8월 17일 식사를 마친 장준하는

산에 올랐는데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었고 (정부주장)

당시 현장과 맞지 않는 의문스러운 그의 죽음에 여러 의혹이 생겼는데

훗날 그의 유골을 검사하자 머리뼈에 구멍이 뚫려있었고

다른 신체부위에서 추락시 발견되는 골절이 한 군데도 발견되지 않아

타살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출신이기도 한 장준하의 광복군 시절 사진 , 박정희를 죽이려 '거사' 를 시행하려 할때 의문사한 인물로 일제 만주국군 출신 박정희와 광복군 출신 장준하는 여러 비교되기도 합니다 , 박정희 죽이기는 이후에도 이어져 결국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의 '10.26 사태' 로 이어집니다 ,,

 

독재자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김대중 납치도 그렇고 여러 사람들을 암살하거나 사지에 내몰거나

의문사 시킨 인물이고 이는 비판의 여지가 없는 인물이며

그가 아무리 치밀한 범죄은닉에 강했다 한들

살인과 진실을 감출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유신독재로 암울한 시기

1975년 시인 김지하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대학생과 지식인들에게 충격을 준 시를 발표했는데

바로 '타는 목마름으로' 라는 시입니다

 

청년 시절의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서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매우 절망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서

흐느끼는 느낌의 저항시라 할 수 있고

읽을 때 가슴이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한국 현대사의 명시라 할 수 있고

지식인이자 저항시인의 비판의식이 담긴 시라 할 수 있습니다

 

김지하는 유신정권 시절 사형을 선고받은 적도 있고

인형당 사건 진상을 밝히다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는데

나름 반독재 모습으로

노벨 문학상 , 평화상 수상자에 추천된 인물이기도 하고

현재도 살아있는데

단 민주화 투쟁의 아이콘이었던 그가

갑자기 성향을 진보진영에서 자신을 탄압하던 보수진영으로 바꿔버렸고

군사정권의 고문 후유증으로 헷가닥 했다는 말도 인물이고

단 그가 좌우 양편에서 박해를 받으며

진보진영에서는 그는 '민족의 제물' 로 바치듯이

박정희가 죽이려 유도했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고

 

(한명이 죽으면 그 구실로 사회에 정권의 만행을 고발하고 더욱 뭉치려 했던 것인데

꼭 무고하거나 어리숙한 남을 앞세우려는 등

이전세대 한국 좌파의 큰 문제점 중 하나입니다)

 

좌우 양쪽으로 공격받자 큰 충격을 받은 인물이라고도 합니다

 

단 요즘말로 '빠꾸없는' 모습들은 오늘날에도 살아있어 보이는데

박근혜 캠프가 대선후보시절 도움을 요청하자

 

'난 시인이야 , 꺼져. 정치는 너나  잘해'

 

라고 했다거나

안철수 후보에게는 '가만보니깐 깡통이다(속이 비었다는 말)' ,

문재인 후보에게는 '형편없다' 라고 하는 등

특히 당시 국민적 호감을 매우 산 핫이슈인물이었던 안철수 후보를 깟던 점이

인상깊었고 (개인적으로 모두까기 캐릭터가 꿀잼인게 여당과 야당은 항상 있게 마련이고

여당의 힘에 붙어 약한 야당 까는것도 그렇지만

그렇다고 야당도 잘한게 없으니 야당으로 밀린거라 한쪽편만 들바에는

공정히 비판 , 잘한거는 인정하는게 맞다 생각합니다)

 

하여튼 유신독재에 반발해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고문도 당했던 인물이며

유신독재에 저항하는 아이콘이었기도 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인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이런 시인이나 문학가 , 풍자가들이 없고

유치한 정권찬양론자들이 수준낮은 똥글 등을 싸며

매번 정권이 바뀔때마다 정권에 편승해

밀어주기 , 코드인사등으로 분수에 맞지 않는 돈을 받으며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라봉봉>하여튼 요즘은 박정희 향수도 있는 사람들이

박정희의 경제발전 , 좋은점 , 영웅적 모습만 부각시키는 경향의 글을 인터넷에 퍼트린다는 점이 있는데

위에서 쓴 이러한 문제점은 쏙~ 빠져있고

역사는 잘한것도 못한것도 모두 보며 균형잡힌 시각으로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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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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