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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수출규모는 10억달러를 돌파했고

점차 70년대부터 중공업화 및 100% 식량 자급자족 달성 및

중동특수 등으로

1976년 대한민국은 세계 19위 무역국에 올라섰고

1977년 수출규모는 100억달러를 달성하게 됬습니다

 

(나름 단기간에 최빈국에서 중진국화된건데

아직도 대한민국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정도니

상위그룹으로 갈수록 격차 줄이기가 더 까다롭고 정밀한 노력이 필요한거 같습니다)

 

초고속 성장으로 '한강의 기적' 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빛나는 경제발전 속에

여러 부정부패와 혼란이 있었던 유신시대 말기이고

박정희는 자신의 유신 독재를

'한국식 민주주의' 라 포장하게 되었고

 

한강의 기적 , 과거의 서울과 오늘날 서울

 

정희팍이 주입시킨 '한국식 민주주의' 를 외워가며

당대 사회를 이끈 세대들이 현재 노년세대들이며

나름 그때 시절의 낭만과 향수도 있었던 시대이고

오늘날 자유한국당계 세력들의 밥줄 시대라고도 합니다

 

<당시 학생들이 외워야 했던 '국민 교육헌장(황국신민서사 암송 강요와 비슷 ,

이거랑 새천년건강체조가 제가 초딩때까지 있다가 사라진거 같습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국민교육헌장

 

하여튼 제가 어렸을때까지 있었다가 폐지된 거로 기억하는데

옛 세대들은 이것을 외워야 했고 전부 기억하지는 못해도 앞구절인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각인되있는 국민교육헌장의 첫문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렸을때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 (?) '새천년 건강체조(국민 건강체조)'라고

무슨 탈춤노래같으면서 군대느낌나는 체조를 했던 기억이 나는데

ㄹㅇ 이것들이 생각해보니 군대에서 하는 복무신조랑 도수체조의

예비형식이라 할 수 있고

 

사실 세계사에서도 학교라는게 역사적으로

근대화가 되며 의무교육이 자리잡은 건데

의무교육을 시작한 나라가 대표적으로 독일로서

군대를 키우던 독일은 학교를 통해 징병자원을 확보하려 했고

옆나라 영국 역시 산업혁명으로 공장 노동자들이 무한정 필요했기에

산업예비군을 위해 학교교육제도를 적극 확보했는데

 

서양의 영향을 받은 일본 역시 군비증강을 위해 의무교육을 시작한 측면도 있고

일본의 영향을 받은 박정희 정부시기 한국 역시

군인 및 산업예비군 양성을 위해 학교교육제도를

적극 이용한 면이 있습니다

 

ㄹㅇ 소름돋는게 국민교육헌장과 복무신조 ,

새천년 건강체조와 도수체조가 소름끼치도록 비슷한 구석이 있고

이것들을 표문화만 한게 아니라 외우고 암송하는것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하여튼 하기 매우 싫은 것이라는 점 , 세뇌화 작업의 일환이라는 점 등

여러 논란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미군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경례도 없다는 경우도 있다는 거 같은데

예전 일제도 그렇고

꼭 인권유린국가나 후진국들 특징이 허례허식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특히 내용은 나름 일리가 있는 '좋은 말' 들이라 쳐도

무엇보다 소름끼치는게 '암송을 강요' 한다는 점인데

한국에서 이런거를 안하면 '비애국자' , '빨갱이' 낙인을 피할 수 없기에

유신독재의 서슬퍼런 사회에서 너도나도 이런거를 외우며

국민 근대화가 아닌 '국민 바보화' 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또 교련복을 입고 군사수업을 받는 등 이시절 학교와 군대는 비슷할 뿐만 아니라

서로 연계 , 관련이 있었던 시절입니다

 

박정희 정부때는 오랜 노동 및 정부의 강력한 통제 , 군대식 사회 분위기로

예술이 발달하지는 못했던거 같고

대신 이 시절을 추억하는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많은데

만화로는 검정고무신이 대표적이고

영화로는 클래식 , 말죽거리 잔혹사 등 여러 작품들이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검정고무신 , 저도 어렸을때 티비에서 본 기억이 많은데 이 만화는 현 20대들도 잘 아는 만화입니다

 

말죽거리 잔혹사 , 어렸을때 극장에서 봤을때는 배우 권상우의 무술 등이 인상적이었는데 지금보니 당시 사회상이 그려진 명작이고 당시 군사독재시기 일상생활속까지의 군대 , 폭력적 풍조가 만연한 사회상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당시 어려운 시대를 배경으로 소박한 서민들의 모습을 그린 만화 짱뚱이네 시리즈나

소설 '아홉살 인생' 도 인상적이었고 하여튼 훗날 보면 추억으로도 생각할 시기지만

또 서슬퍼런 독재 및 공포의 시대였기도 합니다

 

또 무개념보스 정희팍은

국민들에게 1971년부터 애국심 고취를 위해

극장에서 애국가 상영을 의무화 시키며 애국심을 강요했고

 

(이건 외국도 그렇지만 후진국 , 후진기업 특징이 보상이 적은것을 더 줄 생각을 안하고

정당히 줘야 할 것을 뒤로는 지들이 꿍쳐먹으면서

애국심 , 애사심으로 포장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애국심 두목 박정희는 유신독재의 말기인 1978년에는

 

'오후 6시 국기하강식'

 

을 전국적으로 거행하라는 지시를 내려

모든 국민은 오후 6시만 되면

그 자리에서 차렷 자세로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해야 했고

 

오후 6시되면 국기를 향해 얼음땡해야 했던 불행했던 당시 대한민국 국민들

 

파시즘으로 광기에 치닷던 일제 말년이랑

박정희 유신 독재 말년이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문제 ?

당연히 안 터질 수가 없고

입으로는 자유 , 한국식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정작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했던

박정희와 유신독재의 뭐같음을 느끼던 국민들은 결국 하나 둘 반발하기 시작했고

1979년 8월 9일 가발업체였던 YH 무역 여성 노동자들은

회사 운영 정상화와 근로자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 마포구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였고

'YH 사건' 은 유신독재 붕괴의 신호탄이었습니다

 

YH 무역사건 ,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는 여공들

 

YH 무역은 사장과 친인척이 경영했는데

국내 최대 가발업체로 수출순위 15위 대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지도부에서 외화를 미국으로 반출하거나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고용하고 노골적 불법해고 , 부당전직 및 전출 , 감봉

만행을 자행했고

회사의 처우에 견디지 못한 여성 노동자들이 일어나다

회사는 결국 일방적으로 폐업한다하자

노동자들은 야당인 신민당(오늘날 더불어 민주당) 에 호소하기로 하고

신민당사에서 회사 정상화 및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농성투쟁을 시작합니다

 

8월 11일 1000여 경찰이 신민당사에 난입해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 폭력적으로 강제연행했고

김영삼 신민당 총재마저 경찰에 폭행당해 갈비뼈 골절 및 얼굴이 뭉개졌다 하며

신민당 당원 및 여공들은 강제 연행됩니다

 

연행되는 사람들

 

여공들을 위로하는 김영삼 총재 , YH 사건은 부마항쟁 및 10.26 사건의 도화선이 됬습니다

 

이 과정에서 21세 여공 김경숙이

사망(경찰의 강제 진압과정에서 추락사 , 당시 경찰은 투신자살로 조작)했고

결국 1979년 10월 16일

점차 말년의 이승만화되는 박정희의 모습에 분노한

부산광역시와 마산시 시민들은 일어나 (부마 민주항쟁)

 

부마 민주항쟁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 교정에 뿌려진 선언문>

청년학도여. 지금 너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의 조국은 심술궂은 독재자에 의해 고문받고 있는데도 과연 좌시할 수 있겠는가. 

이 땅의 위정자들은 흔히 민족을 외치고 한국의 장래를 운운하지만 

진실로 이 나라 이 민족의 영원한 미래를 위하여 신명을 바칠 이 누구란 말인가. 

 

청년학도여!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돌이켜보게나... (중략)

소위 유신헌법을 보라! 그것은 법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을 위한 법이라기보다는 

한 개인의 무모한 정치욕을 충족시키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정당한 비판과 오류의 시정을 요구하는 순수한 의지를 

반민족적 행위 운운하면서 무참히 탄압하는 현정권의 유례없는 독재. 

이러고도 우리 젊은 학도들은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사회 문제에 

방관만 하고 있을 것인가! 너희들의 정열은 어디 있는가... 

 

부산에 육군 특전사의 2000여명의 병력이 투입됬지만

시위는 부산을 넘어 마산까지 번졌고

경남대학생 1000여명과 300여 경찰은 대치하며 투석전도 벌였고

3.15 의거탑에서 유신철폐와 독재타도 및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는 등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전개됩니다

 

부마 민주항쟁 당시 거리행진하는 시위대

 

당시 마산지역에 붙은 격문

 

그렇게 '부마 민주항쟁' 이 일어나자

위기에 몰린 박정희는 '4.19 혁명' 을 언급하며

 

<박정희>앞으로 부산같은 사태가 생기면 이제는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겠다. 

자유당 때는 최인규나 곽영주가 발포명령을 하여 사형을 당하였지만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하면 대통령인 나를 누가 사형하겠느냐 ? 

(김재규의 증언)

 

박정희의 오른팔이었던 차지철은 여기에 덧붙여

1976년 캄보디아의 대학살극 킬링필드를 언급하며

 

<차지철>부산 · 마산 시민 100~200만명 쯤 희생시켜도 괜찮지 않겠느냐 ?

(김재규의 증언)

 

라 했다하고 이후 이들을 총으로 죽인 김재규는

사형 전 '이 사람들이 제 정신이 아니구나' 라 생각하며 크게 놀랐다하며

이들을 죽이려 한 이유라고 사형전에 직접 밝혔습니다

 

박정희와 차지철의 발언 , 단 그들을 죽인 김재규의 명분쌓기용 발언 및 조작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전두환측 신군부의 조사에서는 '새끼들 까불면 신민당이고 학생이고 간에 전차로 싹 깔아뭉개 버리겠습니다' 라고도 했다는데 사실상 거기서 거기라 생각됩니다,,

 

결국 YH 사건과 부마민주항쟁으로

4.19 정신은 이어졌으며

기나긴 박정희 정권 , 유신독재도 종말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라봉봉>박정희식 경제발전으로 통계적 지표끌어올리기는 성공했지만

한국인들의 경제의식을 성장시키지는 못했고

오늘날에도 솔직히 한국 기업들은 대체적으로 답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놀랍게도 2019년에도 YH 무역사건 원흉인 저임금 , 노골적 불법해고 등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보여지고 이는 일부도 소수도 아닌 다수라 생각될 정도로

나라 자체가 경제 관련 법이 신고하거나 해야 당연한 권리를 겨우 얻을 정도지

어찌저찌 선진국대열에 끼었음에도

실제 국민들 개개인의 경제 의식이나 실제 경제생활 수준등은 형편없다 생각됩니다

 

물론 박정희 정부시기에는 법으로 신고해도 법무부나 정부기관 자체가

기업편을 노골적으로 들던 시기라 더 헬이었으며

그나마 민주화 운동가들로 인해 신고는 하면 권리를 챙길 수준으로 온게 오늘날이 아닐까 싶고

오늘날도 노동현장들이 참으로 참혹한데

저는 오늘날에도 대기업 · 중소기업 할 것없이 참으로 지속 불가능한 일들이 반복되고

인권이 말살되고 또 파괴되고 있는 것을 많이 목격했고

박정희가 경제대통령이라고도 하지만

정작 그가 남겨놓은 군대식 기업문화 , 후진적 기업문화때문에

대한민국의 경제 민주화 , 선진화의 길은 아직도 멀었다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차라리 적극적으로 불법노동업장들을 신고해야 지금 어린이들이

일할 나이가 될때쯤 좀더 평화로워지지 않을까도 싶고

현재 청년인 저로서도 이 시대 선배들처럼

요즘은 가끔 들고 일어나야하나 싶을정도로 막막한 현실에 분노감도 들 지경입니다

 

하여튼 박정희정부는 유신독재를 자행하며 1970년들어 점차 한계점에 달하고 있었고

점차 일어나는 국민들의 분노를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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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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