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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쇼 데모크라시와 군국주의화 되는 일본>

[온화했던 다이쇼 천황]

[1차 세계대전 승리와 벼락부자]

[다이쇼 데모크라시]

[관동 대지진]

[암군 히로히토]

[만주사변]

[2.26 사건]

<라봉봉>

 

[온화했던 다이쇼 천황]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모든 체제 , 제도들을 서구식으로 개혁하고

1910년 대한제국(한국) 을 강제 병합하고

점차 제국을 표방하며 제국주의 국가의 길을 걸었고

당대 아시아 세계는 일본을 견제할 힘도 없었고

일본 군사력에 한주먹거리도 아닐만큼 빈약했기에

일본에 속수무책으로 털리게 됩니다

 

1912년 메이지 천황이 사망하자

메이지 시대가 끝나고

다이쇼 천황이 즉위해 다이쇼 시대(1912~1926)가 시작되는데

 

다이쇼 천황

 

다이쇼 시대는 우리 한국에게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이 시기까지 일본은 마치 천운이 따르는듯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오랜 개혁으로 축적해 온 힘 뿜어내던 시기)

 

새로운 황제가 된 메이지 천황의 아들 다이쇼 천황은

유약했지만 성품이 온화한 편이었고

생각한 것을 바로 입밖으로 내뱉는 버릇이 있거나

호기심이 많고 규칙을 매우 싫어하고 신분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대한제국 영친왕과 대화해보려 한국어도 공부했다는

특이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엄격했던 그의 아버지 메이지 덴노와 달리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음에도

자식에게는 좋은 아버지였다 하고

병약하고 온화한 인물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1차 세계대전 승리와 벼락부자]

이 시기동안 일본은 영일동맹을 빌미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데

영국은 애초에 아시아에서 독일 무장상선을 수색하는 것에 한정해

일본의 참전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1차 세계대전으로 서양이

아시아에 영향력이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이를 뛰어넘어 전면참전을 강행합니다

 

이에 일본은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산동반도를 공격하고

중국 위안스카이에게 '21개조 요구사항' 을 강제해

중국을 침탈하기 시작합니다

 

일본이 점령한 산동반도

 

그렇게 일본제국은 연합국(협상국) 편에 붙어버려서

승전국이 되었고

또한 1차 세계대전은 서양 위주로 전개된 국제전쟁이었기에

일본은 산업시설이 파괴된 서구권에 여러 전쟁물자 , 자원들을 팔아

엄청난 전쟁특수를 누립니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14년 11억엔의 채무에 시달리던 일본은

6년만에 24억엔의 채권국이 되었고

해운 , 섬유 , 중화학 분야 등 여러분야에서 새로운 부자들이 생겨납니다

 

이로 인해 벼락부자(졸부)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벼락부자는 나리킨 成金 이라 불리며

구두를 찾으려 요정(술집)에서 100엔짜리 지폐에 불을 붙인다거나

초호화 결혼식 , 돈밖에 모르는 모습들을 보여

온갖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이러한 시대속에 일본내에서도 너도나도 부자가 되겠다는 투기열풍이 불게 됩니다

 

당시 지폐에 불을 붙이는 벼락부자를 풍자한 그림

 

식민지 조선(한국)도 일본경제가 급속성장하자

일본내 쌀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

쌀값이 3년만에 3배가 올라버렸고

이러한 와중에 쌀 투기꾼(미두꾼)들이 일어났지만

얼마후 쌀값이 폭락하자 인생역전 신화는 다시 막을 내렸다고도 하고

 

그러한 시대상속에 자본가들의 성장 및 많은 풍요가 생긴 일본이었지만

제국주의의 모순이 심화되고 급속한 경제성장에 대한 빈부격차 ,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게 됩니다

 

미국도 이시기 유럽에 물자들을 팔아 떼돈을 벌고 졸부들이 많이 나타났지만

점차 일본은 군비를 계속확장하며 아시아를 정복하려는 야망을 드러내며

영국 , 미국과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

하여튼 이 다이쇼 시대에

1차세계대전 참가등으로 큰 부가 일본에 들어오자

일본에도 자유주의 , 민주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일본의 풍요 낭만시대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가 시작됩니다

당시는 낭만주의가 퍼져 '다이쇼 로망' 이라고도 불리고있고

 

원래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1911년부터라고도 보지만

한창 일본이 잘나가던 시기에 일어나다 못나갈때 끝난 것이었고

일본은 이 시기동안 식민지 조선에는 문화통치(문화 기만통치) 를 시행해

총칼로 협박하던 이전과 달리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유화적인 모습을 보였고

단 그 시기동안 친일파를 양성해 민족을 분열 , 이간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일본 내에서는 자유로운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자

여러 사회주의 정당 , 좌파정당 , 공산당 등이 들어섰고

1925년 일본은 보통선거법이 제정되

25세 이상 성인남자에게 선거권이 부여됬고

이러한 것들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거나 보편적인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다 점차 군주제가 부정되고 공산주의 운동이

일본내서 봇물터지듯 터지자

일본제국은 이들을 탄압하기 위해

1925년 치안유지법을 시작해

천황체제 부정자 , 공산주의자 , 노동운동자 , 종교인들을

탄압 , 고문 , 처형해

일본 내에서만 고문당하거나 처형당한 사람만 75000명이 됬다고 합니다

 

이법은 식민지 한국에도 적용되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이법으로 많이 탄압받게 됩니다

 

치안유지법으로 연행되는 독립운동가들

 

이로 인해 풍요속 자유 , 인권이야기가 활발하던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끝나게 됬고

(혹은 1년후인 다이쇼 천황 사망후부터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끝나다고도 봄)

 

[관동 대지진]

1923년 간토대지진(관동 대지진)으로 상공업 지대가 초토화되며 불황이 찾아왔고

곧 세계적인 경제 대공황도 불어닥쳐 일본은 공포 분위기속에

군비확장 및 외국 침략으로 불안한 국민들의 눈을 돌리려 합니다

 

특히 간토대지진은 일본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남겼는데

일본 정부가 마비될 정도로 엄청난 대규모 지진 , 대화재가 일어났고

전년도 국민총생산액 1/3이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러한 와중에 일본내에 혼란한 사회분위기 , 무법지대가 조성되자

사람들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 내에 있던 애먼 조선인 , 중국인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게 되었고

일본 민간인들은 죽창 , 몽둥이 , 일본도 등으로 무장해

자경단을 조직해 불시검문을 하며

조선인이다 싶으면 가차없이 살해합니다

 

<당시 나온 말>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

조선인들이 일본에 지진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일본에 저주를 퍼부었다

 

조선인을 학살하는 일본 자경단

 

이러한 상황임에도

일본 정부의 묵인아래 자경단등에게

수많은 조선 , 중국인들이 살해당합니다

한국 교과서 등에는 조선인 피해규모를 6천여명으로 썼고

오늘날에도 피해규모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합니다

 

일본 도쿄의 한강 격인 스미다강은

학살당한 조선인의 피로 붉게 물들었고

운명의 장난인지 자업자득인지

22년 뒤 미국 공군의 네이팜탄 공습으로 스미다강은

학살당한 조선인들보다 많은 일본인들을 태우거나 삶아죽인 강이 됩니다

 

(남에게 잘못하면 그대로 혹은 그이상으로 돌아온다는

사필귀정이나 천벌받는다는 말이 요즘 자주 생각나는데

일본이 그런꼴을 많이 보였고 또 역사를 몰라서인지

반복하는 경향들이 있었습니다 ,

 

'일본 민간인들은 순진하고 순수해서

정치와 관련 없는데 미국에 억울하게 학살당했다 ?'

 

라는 말은 말이 안되는게 전쟁특수로 재미를 보거나 투기열풍에 빠져든

일본인들이었고 그러한 정치인들을 방조하거나 밀어준 것도

일본인들이었고 얻는게 있으면 잃는것도 있기에

정작 이러한 사회혼란을 틈타 야비하게 이익은 다 챙기며 잔치하다

이제 악의 씨앗을 뿌린 대가를 치룰 시간을 맞이한 것일 뿐입니다

 

결국 과거와 역사와 정치에 무지한 대가로

독일의 평범한 사람들이 히틀러를 지지한 대가로

2차 세계대전때 총알받이로 전쟁터에 끌려가게 된 것처럼

무고한 사람들까지 학살당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제일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현재랑 미래가 중요하다' 라고 개기며 꼴깞떠는 자들인데

오늘의 나는 과거의 모습들로 이루어진 사람이며

과거가 정당해야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고

과거가 더러우면 결국 미래로 가는 발목이 잡히는 것인데

하여튼 천하고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일단 다이쇼 천황은 이전 메이지 천황처럼 카리스마형 인물은 아니었고

나약한 인물이었기에 재위기간 중에도

 

'존재감이 없는 천황 影の薄い天皇'

 

이라 불리며 정치인들에게 무시받았고

답답한 궁중생활과 빡빡한 천황스케쥴 속에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

좀비 수준으로 살다가

1925년 경직 , 발작 증상을 보이다 이후 심장마비로 사망합니다

 

(제가보니 다이쇼 천황이 유능한 인물이긴 한데 이자도

결국 민심이나 군부의 광기에 대한 통제를 하지 못하다

멘탈 다털리고 병상에 눕게 된거 같습니다)

 

[암군 히로히토]

그가 사망하자

1926년부터 그의 아들 히로히토가 천황이 되어

쇼와 천황 , 쇼와시대가 시작됬는데

히로히토는 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 전범으로서

일본 역사상 최악의 암군이며 (최악이라는 말밖에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쇼와 천황이 아닌 히로히토라는 본명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고

한국 , 세계인들에게 히틀러나 무솔로니 급으로 악명이 자자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세계적 전범 히로히토 천황(쇼와 천황) , 디즈니가 2차세계대전때 만든 반전영화에서도 세뇌당한 도날드덕이 '하일 히틀러 ! , 하일 히로히토 ! , 하일 무솔리니 !' 하고있고 서양 언론에서도 1989년 그가 죽을때 '지옥이 이 악마새끼를 기다린다' 라 평했을 정도로 이런 독재자들과 엮여 불립니다

 

쇼와 , 히로히토 시기부터

일본은 군부에 의한 정치가 시작되 군국주의 국가가 되는데

1931년 전쟁특수 , 졸부들의 잔치가 끝나고

곧 세계 대공황이 시작되자

세계 주가는 폭락하고 경제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대공황으로 실직자가 된 미국인들이 무료배급소에서 줄서있는 모습

 

미국은 사회자본 건설 정책인 '뉴딜정책' 으로 ,

해외에 넓은 식민지를 확보한 영국과 프랑스는 식민지를

파운드 블록 , 프랑 블록으로 묶는

'블록경제 형성' 으로

대공황에 대처하려 했고

 

블록경제 형성

 

상대적으로 늦게 제국주의 국가에 진입한

독일과 일본은 해외 식민지가 적었기에

군비를 확장해 외국을 침략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려 했습니다

 

[만주사변]

대공황으로 불황이 깊어지며 일본내에서도 불만이 심화되자

그러한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 전역을 점령하고

청나라 마지막황제 선통제 푸이를 꼭두각시 황제로 만들어

만주국을 건국해 황제로 삼고

일본의 괴뢰국으로 만들어 만주국을 지배하게 됩니다

 

하얼빈에 입성하는 일본군

 

만주국 꼭두각시 황제 '푸이'

 

일본의 괴뢰국(허수아비 국가) 만주국 지도 (빨간 빗금)

 

만주국에 대한 세계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일본 군부는 국제연맹을 탈퇴하도록 정부를 압박하고

일본 외교는 세계에서 고립되게 됩니다

 

[2.26 사건]

이러한 상황속에

1936년 2월 26일 일본 황도파 청년장교들은

병력 1483명을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켜 일본 대신들을 살해했는데

(2.26 사건)

 

2.26 사건 , 한국에서는 이 사건이나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박정희가 영향을 받아 5.16 군사정변을 일으킵니다

 

일어난 청년장교들은 히로히토 천황이 직접 일본을 통치하라 요구했고

이에 히로히토는 불쾌감을 표시하며 천황의 결심을 기다리던

궐기군을 반란부대로 규정해 진압하게 됩니다

 

청년장교들의 개혁의지와 혈기속에 일어나

허무하게 끝난 2.26 사건이지만

이로인해 군부를 중심으로한 파시즘 세력이 힘이 엄청나게 커졌고

일본 육군은 이러한 사건들로 군의 쿠데타 위협을 이용해

자꾸 정치에 개입하려 해서 문민정부를 겁박한 끝에

일본 정부를 장악하게 되며

형식적으로나마 이어지던 일본 민주주의 정치는 사형이 선고되고

일본은 군인들이 지배하는 군국주의 국가가 되게 됩니다

 

이후 징병 , 징용 , 국민 노예화 , 군수물자 약탈등이 전국적으로 실시되

당연히 식민지 조선인들에게는 지옥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현재는 일본사를 쓰고 있기에 ..

당연 본토의 일본 국민들 역시 지옥의 시간이 시작됬고

영토가 급속도로 팽창하지만 전국민이 전쟁터로 끌려가거나

끌려가기를 강요받았으며 전쟁터에 안나가거나

전쟁 협력을 안하면

그럼에도 강제로 끌고가거나

비애국자 , 매국노로 마을에서 집단 이지메(왕따) 를 당하던 시기입니다

 

(일본에 엄청나게 당한 한국인으로서 이야기 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가해자 두둔이 아니라 당시 미군의 공습피해가 없던 한국보다 일본이 더 위험하기도 했어서

매일 공습이라는 러시안 룰렛이 머리위에서 돌아가던

진짜 일본국민들도 매일 언제 죽을지 모르던 답이 없던 시기입니다)

 

일본인들에게도 이 시기는

빛나던 시대가 끝나고 악몽의 시대가 시작되는 시기로 여기고 있는데

(이제 악의 씨를 거둬야만 하는 대가를 치룰 시기)

 

특히 전쟁을 직접 경험한 오늘날 고령의 전후세대에게는

크나큰 악몽과 고통 , 후회와 반성의 시기이기도 하고

역사에 무지하고 개념없이 자란 청 , 중년층 , 젊은이 세대들에게는

침략으로 넓은 땅덩어리를 가졌다는 것 , 동양에서 가장 강했다는 것에만 집중해

반성은 커녕 무슨 이 시기를 영광의 시기로 여기고 있는 경향도 있어

이런게 지속될 경우 일본은 또다시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게 되는 것입니다 ..

 

<라봉봉>일본이 군국주의 시기로 전환되기 전까지 시기는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행운의 나라였다 할 정도로

여러 정치 , 사회 , 경제적 조건들이 일본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식민지 한국도 이러한 일본의 강성함 앞에 마땅한 대응이 어려웠던 힘들었던 시기입니다

 

미국과 영국도 영일동맹을 맺은 일본을

귀엽고 똘똘한 모범생 아들같이 여기며 아시아 일찐으로 우대해 주었고

(이로 인해 한국독립이 더 힘들어지기도 함)

 

1차 세계대전 전쟁특수도 누리게 되며 엄청난 경제성장을 하며

아시아 1위국가에서 점차 서양세계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가 되던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일본이었고

 

그럼에도 결국 역사의식의 부재 , 제국주의의 씨앗이 점차 자라나며

결국 올것이 오듯 일본의 악마화시기이자 악몽시기인

군국주의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일본 내에서도 참혹한 공포의 시기로서

이 시기는 매우 예민하며

극도로 조심스러운 입장인데

점차 이 시기를 겪으며 반성하며 자란 전후세대가 고령등으로 사망해가고

전쟁을 겪지 않고 고속경제성장 , 풍요를 겪은 세대들로 세대가 교체되자

제국주의의 망령들이 깨어나고도 있는 오늘날 일본이기도 하고

이러한 모습들이 커지면

일본은 전쟁후 세계사회를 주도했던 선진대국에서

점차 변방의 찐따 원숭이 우끼끼 국가화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퇴보' 라고 합니다

 

올바른 역사교육이 있어야만

한중일 삼국이 평화의 미래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으로서

오늘날 다시금 반성하는 모습도 보이는 일본 , 망령이 깨어나는 일본의 두얼굴은

우리가 주의하고 경계해야 할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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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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