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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의 발달과 솔론의 개혁>

[바다민족과 암흑시대]

[폴리스의 등장]

[올림피아 제전]

[민주국가 아테네]

[솔론의 개혁]

[참주의 등장]

[도편추방제와 아테네 민주주의]

<라봉봉>

 

[바다민족과 암흑시대]

미케네 문명은 철기를 사용하는 도리스인(훗날 스파르타 건설) 에게 멸망했는데

바다민족이라는 미지의 해적같은 민족들이

당시 지중해세계를 휩쓸고 파괴하고 다녀서 멸망했다고도 합니다

 

지중해 세계를 암흑시대로 몰고갔다는 미지의 민족 '바다민족'

 

미케네 문명이 붕괴하고 당시 바다민족의 출현으로

지중해 청동기 문명이 아작났고 (바다민족설)

 

그리스 경제를 이끌던 미케네 왕국이 망하자

그리스 및 지중해 세계는 침체 , 암흑기에 빠져들고

이시기를 '암흑시대(기원전 1100년~기원전 750년 정도)' 라고도 부릅니다

 

이시기에도 그리스 사람들은 살아남아

해양민족이었던 페니키아인들에게

알파벳의 기원이 되는 문자를 배워와

그리스 알파벳으로 사용하였고

일단 그럼에도 이시기는 확실히 알려진 자료가 없는 시대입니다

 

그리스 알파벳

 

[폴리스의 등장]

이후 기원전 8세기부터

그리스 문명은 다시 부활했는데

이 시기부터 '폴리스'라는 도시국가들이 성립됩니다

 

그리스는 산과 섬이 많고 해안선이 복잡해

강력한 통일국가보다는 자급자족의 도시국가인 폴리스들이 생겨났고

폴리스는 군사와 종교거점인 '아크로폴리스' 와

시장이나 공공모임 광장인 '아고라' 로 구성됬습니다

 

폴리스의 모습

 

[올림피아 제전]

폴리스들끼리는 다른 나라였지만

같은 그리스 민족이라는 동질성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들을 그리스민족이라는 의미로 '헬레네스' 라 생각했고

올림피아에서 올림픽의 기원이 되는 체육대회인

올림피아 제전을 열어 같이 운동도하며 친목질도 열심히 했습니다

 

옛날 올림피아 경기가 열린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유적 (현재 올림픽 성화 채화하는 곳)

 

처음에 올림피아 제전(올림픽)은 제우스 신에게 바치는 제전경기로

종교성이 강했지만 점차 규모가 커지며

예술인들이 몰려들었고

고대 올림픽은 그리스의 종교 , 예술 , 군사훈련을 집대성한

헬레니즘(그리스) 문화의 결정체였습니다

 

폴리스들은 올림피아 제전을 평화의 제전이라 여기며

열심히 친목질을 했고 평화의도의 경기는 승부욕 , 돈잔치로 점차 변질되

귀족들마저 뇌물과 반칙을 서슴지 않고 경기가 장삿속 , 도박판으로

바뀌게 됩니다

 

지금의 스포츠 개념과 달리

옛날에는 스포츠=전쟁 훈련 이미지가 강했기에

지금보다 경기가 훨씬 과격했거나 사람이 죽는것도 일상적인 일이었고 ..

그리스의 격투기 경기인

'팡크란티온(판크란티온)' 의 경우

눈을 후비는 것 , 입으로 깨무는 것을 금지했지만 이마저도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하고

경기는 옷쪼가리 하나 걸치지 않고 (여성의 참석은 금지됨) 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누가 죽거나 항복할때까지 계속됬다고 합니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 도자기에 그려진 달리기 모습

 

판크란티온 상상도

 

이 시기에 승자에 대한 영광으로 메달은 없었고

대신 월계관과 올리브유를 가득 담은 손잡이 달린 고대 항아리가 상으로 지급됬다 하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쓰고 은메달을 들고 환하게 웃고있는 사격의 진종오 선수

 

오늘날 보기에 막장스러운 경기나 사례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고대 올림픽(올림피아 제전) 이 평화의 제전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것은

당시 도시국가로 뿔뿔이 흩어져 전쟁을 밥먹듯이 할던 그리스인들이

올림피아 제전 시작 3개월 전부터 그리스 전역에 휴전령을 선포하고

(신의 보호를 받는기간이라 함 , 휴전령을 거부하면 경기에서 임시 제명됨)

 

같은 민족 , 같은 언어 , 같은 종교 이념 등 공동 가치를 가지고

한곳에 모여 일시적 화합을 도모했다는 사실 때문이고

지금 보기에도 특이한 모습으로

근대 올림픽(현재 올림픽) 의 창시자이자 올림픽을 부활시킨

쿠베르탱이 올림픽의 가치에 주목한 이유가 이것이었습니다

 

올림픽을 부활시킨 쿠베르탱

 

[민주국가 아테네]

일단 다시 폴리스 이야기를 하자면 ...

가장 대표적인 국가 , 그리스 폴리스로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있는데

이 둘은 물과 불처럼 성향이 정 반대였습니다

 

먼저 그리스인들의 자부심 아테네는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로서

철학과 사상 , 과학과 수학 , 인문과 문화와 예술이 꽃핀

고대 그리스문명의 꽃이자 유럽 문명의 요람이었던

전설의 도시입니다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 중에서 ...>

'그들을 이끌어가는 이는 누구이며, 그들의 군대를 지배하는 이는 누구인가?'

'그들은 노예로 불리지도 않고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사옵니다.'

 

오늘날까지도 유럽인들은 고대 그리스 유산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학계에서도 매우 근본있는 인물들이 당시 나오는 전설의 시대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아테네는 해양으로 해외무역을 전개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고

상공업이 발달합니다

 

이에 부유한 평민(중산층)들이 전쟁에 참여했는데

이들은 중장보병이 되었고

중장보병들의 사용장비는 모두 개인이 사비로 구입해야 했기에

경제력이 있는 중상류층이 대다수였고

도시국가 시민들은 기본적 군사훈련을 받고

일정 연도동안 군대에 복무해야 했고 국가의 부름이 있을때는

전쟁에 나가야 했습니다

 

그리스 중장보병 , 한명한명은 강한 용사같지만 이 사람들이 뭉쳐서 방패와 긴 창을 들고 '밀집대형' 을 이루면 탱크같이 그 파괴력이 엄청났습니다

 

그리스 중장보병의 팔랑크스(밀집대형) 전술

 

별개로 귀족들은 기마병이 되었습니다

 

중장보병은 고대 그리스 , 로마세계 전력의 핵심으로서

평민 , 중산층들로 이루어져있었기에

그리스와 로마는 중산층 , 평민의 힘이 강했고

이에 평민들의 참정권(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과 민주주의가 발달합니다

 

[솔론의 개혁]

기원전 7세기 정도에 아테네는 왕정이 시행됬지만

왕의 존재가 거의 의미가 없어 곧 9명의 집정권이 통치하는

귀족정으로 바뀌었고

관습법(묵시적으로 인정되는 법) 체제로 귀족들 중심으로 정치가 돌아가자

국정에 불만을 품은 아테네 민중들의 요구에

기원전 621년 성문법(문서화 된 법) 체제를 갖추었지만

이는 사형을 남발하는 가혹한 법률이라 민중들의 불만을 더욱 삽니다

 

그러던 중 솔론이라는 현인(현명한 사람) 이 등장해

집정관이 되어 아테네를 개혁하기 시작했고

솔론은 출신이 아닌 경제적 수준에 따라

정치 참여권을 차등적으로 부과하는데

이를 '금권정치' 라고 부릅니다

 

솔론

 

이에 평민들에게도 일부 참정권을 주는등의 개혁을 했지만

귀족과 평민 모두에게 불만을 사고 결국 물러납니다

 

귀족정치의 온건주의자이자 아테네의 현인이라 불린 솔론은

제도가 아닌 탐욕과 불의가 문제의 근원이라 생각했고

귀족과 평민 어느한편에 쏠리지 않고 중용(치우치지 않음) 을 지켰습니다

 

이에 귀족 , 부자들은 손해를 봤다 생각하고

더 급진적 개혁을 바란 가난한 사람 , 평민들은 얻은게 없다 불평했고

그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긴 어렵다'

 

라는 말을 남기고 결국 물러납니다

 

솔론은 아테네가 민주주의 정치가 아닌

독재정치로 가는 것을 경계했던 인물이고

참주(주제넘은 주인 , 독재자) 의 출현을 크게 경계했습니다

 

[참주의 등장]

이후 페이시스트라토스라는 인물이

정치깡패들을 거느리고 권력을 잡아 참주가 되어

귀족들을 내쫓고 빈민 구제 및 토목공사등을 통해 민중영합적 정치를 폈습니다

 

페이시스트라토스

 

일단 페이시스트라토스 (이름이 공룡이름이나 치토스도 아니고 되게 깁니다 ;;) 는

유능한 인물이었기에 그의 통치기간동안 시민의 지위가 향상되고

아테네 해군이 대대적으로 육성되는 등 긍정적 업적이 많아 생전에

아테네 시민들의 호평을 받았다합니다

 

그러나 그가 죽자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능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형편없는 인물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폭정으로 변해

시민들의 반발로 결국 참주정은 기원전 510년경 무너지고

다시 귀족과 민중의 갈등이 이어지다

기원전 508년 혹은 507년에 클레이테네스가 민주정을 선포하게 됩니다

 

[도편추방제와 아테네 민주주의]

클레이테네스는 고대 아테네 민주정치의 막을 연 인물로서

500인회와 민회를 설치했으며

참주(독재자)의 출현을 막기위해 해마다 한번씩 시민들에게

자유에 해를 끼치는 사람을 가려내 도자기 조각에

그 이름을 써서 정해진 곳에 넣게 했고

그게 6천표에 이르면 그 사람을 나라 밖으로 내쫓게 했는데

이를 '도편 추방제(도자기 파편 추방제)' 라 합니다

 

도자기 파편에 독재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쓰는 민중탄핵법인 '도편추방제'

 

클레이테네스는 전 시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했습니다

 

이후에도 아테네에는 페리클레스라는 뛰어난 인물이 나와

최전성기 아테네를 이끌었고

 

독특한 투구로 유명한 페리클레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주요 공직에 오르기위한 재산기준을 철폐했고

아테네 공직은 원래 무보수였지만 페리클레스는 몇몇 공직에 대해

보수를 지급하는것을 허용합니다

그러나 여자나 노예 , 외국인에게는 참정권이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현대인의 시각에 입각해 아테네는 이중적인 민주주의라는 비판도 있지만

여성 참정권은 산업혁명 , 기계혁명으로 여성의 집안일 부담이 줄어들어

여성들도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20세기에나 겨우 얻어낸 성취였고

또 노예제도 역시 아테네 민주주의의 한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아테네 민주주의는 무산자(가난한 자 , 빈민층) 나 노예를 소유하지 않는 자들에

의해 주도됬고 아테네 민주주의 역시 노예를 당연시 하지는 않고

또 이를 개선시키려 노력하기도 했고

외국인은 오늘날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참정권을 주지 않습니다

 

단 아테네 민주주의의 한계로는

아테네는 소수가 가지고있는 통치능력을 극단적으로 배격했고

이에 중우정치(다수의 어리석은 민중이 이끄는 정치) 로 흐르게 됩니다

 

아테네인들은 능력있는 사람을 판별해 권력을 맡기겠다는 의지도 없었고

이러한 문제로 아테네는 몰락하게 됩니다

 

중우정치의 예를 들면

100명의 사람들이 바다에 가려고 하는데

1명의 사람이 동쪽에는 바다가 , 서쪽에는 산이 나온다는 것을

경험이나 지식을 통해 알고 있는데 (전문가)

그것을 모르는 99명의 사람이 빼애애액 !!!!! 하며 박박 우기며

동쪽에는 산이 , 서쪽에는 바다가 있다거나

아니면 다수결에 의한 투표로 결정하자며

투표로 다수결이 서쪽에 바다가 있다 해도

그럼에도 동쪽에 바다가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은 명백한 사실이며

 

인도 위인 간디 역시 이러한 다수결에 의한 폭력에 대한 것을 생각하며

 

'양심에서 다수결의 원칙은 설 자리가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국민의 민심은 투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투표나 통계지표가 절대적 진실을 말한다고 할 수도 없고

투표로 인한 다수결로 진실을 바꿀 수는 없는것인데

아테네는 이러한 다수결 , 중우정치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보여줍니다

 

이에 서양에서는 엘리트 주의(귀족주의) 와 민중주의가 계속해서 대립했고

오늘날 현대 민주정에서도 이러한 모습들이 나타나는 것인데

사실 둘다 일리가 있는것이고

정치는 공명정대한 관점으로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도 , 진실을 가리며 편파적이게 봐서도 안되는 것이며

또 그렇다고 '민주주의보다 능력있는 독재가 낫다' 라는 궤변으로 빠져서도 안됩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 을 의미하는 말이 결코 아니며

말그대로 사람 , 나와 너와 우리가 주인이 되는 정치체계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스 , 로마 고대사를 이해하는데 아주 좋은 책인 서양고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솔론과 페리클레스와 알렉산더 대왕과 카이사르 등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나옵니다 (갑자기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데 이런거 어렸을때 다 읽은 저도 참 신기합니다 하하하...)

 

<라봉봉>고대 그리스 , 아테네는 민주주의 및 상공업 발달 , 부유함과 여러 학문이 발달한

가히 르네상스 , 태평성대의 시기가 펼쳐졌고

게임으로 치면

정복게임에서 정복승리가 아닌 '문화승리' 급의 사기 시대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우리가 아는 그 위인들이 당시 고대 그리스에서 나왔고

그리스 민주주의의 발달은 서양사회와 세계사회의 큰 모범이 되었습니다

 

여러 문제도 있지만 고대 아테네는 서양 문명의 요람이나 꽃이라 비유될 만큼

아주 좋은 나라 ,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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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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