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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건국과 로마 공화정의 수립>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의 건국]

[사비니족 여인과 로맨스]

[정복국가 로마]

[로마 공화정의 수립]

[강력한 로마 군단]

[피로스의 승리]

<라봉봉>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를 끝내고 

고대 서양세계 전체를 지배한 로마 !

 

'모든길은 로마로 통한다' ,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라'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서양사회에서 큰 입지를 차지하고 있고

서양의 중국같은 개념이었고

오늘날에도 서양 , 유럽 각각의 나라들은

자신들이 '로마의 후예' 임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중국 중심의 조공무역 질서가 형성됬지만

오늘날 동양 국가들이 중국의 후예라 자처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서양 국가들은 각각의 독립국가면서도

로마의 후예 및 왕실 , 국민들이 혈연적 관계로 엮여있습니다)

 

모든길은 로마로 통한다거나

법을 따르라는 말은 로마가 엄격한 국가라는 이미지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로마는 건축(길) 과 법이 발달한 건축과 법의 나라였고

이러한 뛰어난 능력으로 세계 각지역에 로마건물 및 로마 도로를 건설하고

로마법을 퍼트려 오늘날까지 현대 법률의 모태가 되어

서양과 세계사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인들이 건설한 도로

 

로마인들이 지중해 세계에 건설한 어마어마한 도로

 

로마법 , 로마인들은 무력과 법률과 종교로 세계를 3번 정복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로마법은 로마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중 하나입니다

 

[로마의 건국]

먼저 로마의 건국 이야기입니다

 

로마 건국은 한국의 단군신화처럼 신화적 성격이 강한데

로마 건국자는 두 형제로

이름은 각각 로물루스와 레무스였습니다

형제의 외가는 왈바롱가 왕국의 왕실이며

아버지는 전쟁의 신 마르스였다고 합니다

 

일단 알바롱가 왕이 사망하자

누미토르가 왕위를 이으려다가

그는 동생 아물리우스의 반란으로 왕위를 찬탈당했고

누미토르의 딸 레아 실비아는 평생 처녀로 살아야하는

신전의 여사제로 강등됩니다

 

그런데 레아 실비아의 미모에 반한 마르스 신이

그녀를 취해 레아 실비아는 두 쌍둥이 (로물루스 , 레무스) 를 낳았고

아물리우스는 그녀가 부정을 저질렀다 생각해

두 형제를 강가에 버립니다

 

마르스와 레아 실비아 , 루벤스 작품

 

그러던 중 지나가던 어미늑대가 두 형제를 보고

자신의 젖을 물려 형제의 목숨을 구했고

두 형제는 양치기가 발견해 양치기의 자식이 되어 자라나

로물루스 , 레무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됬습니다

 

로마건국을 상징하는 사진 , 늑대젖을 먹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두 형제는 장성해 양치기 집단 두목이 됬고

이후 왕위에서 쫓겨난 외할아버지 누미토르와 만나게 됬고

결국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원수 아물리우스를 죽이기로 하고

궁전에 침입해 아물리우스를 죽이는데 성공하고

누미토르는 알바롱가 왕이 되었으며

누미토르의 도움으로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는

자신들이 정착할 도시를 찾아 떠나게 됬고

기원전 753년 7개의 언덕이 있는 지역에

양치기 , 떠돌이들과 함께 로마시를 건설하게 되고

로마(로마왕국 , 기원전 753년~기원전 509년) 가 시작됩니다

 

로마의 일곱 언덕

 

이때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도시를 세울 자리를 두고 싸우다가

전쟁을 벌였고 레무스가 죽고

로물루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로마'라는 도시를 세우고

로마의 시조가 됩니다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대립

 

[사비니족 여인과 로맨스]

이런 신화와 별개로

난민 , 부랑자들이 모여살다 점차 도시화됬다고도 하고

하여튼 로마 초기는 양치기 혹은 바랑자 , 난민들이 모인

가난한 나라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를 건국한 양치기들은 마땅한 베필이 없었고

이에 로물루스가 꾀를 내어서

로마 북쪽에 거주하던 사비니족의 가족들을 초청해 파티를 벌였고

그 틈에 칼을뽑아 사미니족 남자들을 도망치게 냅뒀고

무방비가 된 사비니족 여인들을 보쌈해버려

배필로 삼았습니다

 

분노한 사비니족은 이후 로마로 쳐들어갔는데

로물루스는 이들을 격파했고 분노 및 로마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낀 사비니족들은

다시 격돌하지만 그러던 중

사비니 여인들이 두 군대 사이로 뛰어들어

쓰러진 , 무장한 병사들을 붙들고 오열하거나 매달립니다

 

전쟁을 말리는 사비니족 여인들 , 자크 루이 다비드 작품

 

사비니족 여인들은 납치될 동안 이미 로마인들의 아이를 임신하거나

부인이 된 것이었고

사비니족 여인들은 각각

한쪽(사비니족) 에는 아버지와 오빠에게 ,

한쪽(로마) 에는 남편에게 전쟁을 말리게 됩니다

 

결국 전투는 중지되고 양쪽은 화해를 하고

사비니족과 로마는 합병되어

로마의 인구가 두배로 늘고 군대 역시 배가 됬습니다

 

사비니 여인 이야기는 르네상스 이래로

수많은 예술가를 자극하게 되었고

로마인들이 사비니족 여인을 보쌈해갈때

안고 갔는데

그게 신혼부부에서 남편이 신부를 안고 침실로 가는

'로맨틱(낭만이지만 로마스럽다라는 뜻에서 유례됨)' ,

'허니문' 의 유례가 됩니다 (허니문은 약탈혼에서 나옴)

 

재밌는게 서양식 결혼풍습이 거의 약탈혼에서 비롯됬다 하고

영원한 사랑을 뜻한다는 반지는 부녀자를 구속한다는 의미고

예식장 들러리는 신부를 되찾으려는 적을 물리치는 장치 등이라 합니다

약탈혼(강간) , 좋은 곳에서 나온 유례가 아닌만큼

씁쓸한 이야기라고도 이야기 되고 있는

신랑이 신부를 안고 침실로 가는 허니문의 유례였습니다

 

(로마가 근데 힘에의한 서양 패도정치 끝판 제국이라

로맨틱 혹은 불륜의 나라여서

이런 힘에 의한 노예 , 강간 , 파멸등이 많았고

멸망의 원인이 됩니다)

 

[정복국가 로마]

하여튼 로마인들은 사비니족 뿐만 아니라

여러 근처 소국들을 뚜두려 패기 시작했고

점차 로마 영토를 넓혀가고

소국들의 기술들을 흡수하는 '정복국가' 적 성향을 지니며

팽창하기 시작합니다

 

로마의 시작은 떠돌이 , 양아치 , 양치기 청년들이었지만

로마인들은 떠돌이 집단이었기에 외부의 인재와 기술을 받아들이는데

다른집단보다 더 적극적이었고

그리스 , 에트루리아인들의 건축술과 정치체계를 본떴고

특히 로마인들에게는 에트루리아인들의 영향력이 커서

이름 - 씨족 - 가문 이름으로 나뉜 작명방식도 카피하게 되고

 

(예를들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이름은

가이우스[이름] 율리우스[씨족이름] 카이사르[가문이름] 뜻인데

사람들은 카이사르라는 가문 이름으로 그를 기억하고

한국으로치면 이순신 장군을 '덕수 이' 라고 부르는 셈입니다)

 

로마인들은 건국 이후 정복전쟁을 통해 주변 작은 마을들을 점령한 뒤

이들을 로마에 강제 이주시키는 방식으로 인구를 불렸고

주변 좋은 기술들이 있으면 카피하며 발전합니다

(로마인들은 시초부터 깡패 기질이 보입니다)

 

[로마 공화정의 수립]

기원전 750년부터 기원전 500년까지

로마는 7명의 왕이 통치했다하고

왕은 100명으로 구성된 원로원(로마의 유력부족 수장 , 족장들 [오늘날로치면

국회의원] ) 들과 상의해 국정을 운영했고

이 원로원들은 훗날 300명으로 구성되는 로마 원로원의 모태가 됩니다

 

오늘날 국회 , 국회의원 격인 '로마 원로원'

 

나름 유능한 왕들이 나온 시기였고

마지막 7대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때 왕은 원로원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통치하다

그의 아들 섹스투스가 명문과 귀족의 안주인 루크레치아를 강간했고

(닉값 ;;)

 

빡돈 루크레치아는 가족 , 친척 , 왕의 사위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를 부른 뒤

복수를 맹세시키고 자결했고

이에 분노에 끓은 브루투스는 로마시민들을 선동해

타르퀴니우스를 쫓아내고

로마 공화정(기원전 509년~기원전 27년) 을 수립합니다

 

(로마 공화정을 연 이 브루투스라는 이름은 이후 황제가 되려는

카이사르를 죽인 암살자 브루투스의 조상이고

이에 로마에서 브루투스=공화정 수호자 라는 인식이 생깁니다)

 

이로인해 250년에 걸친 로마 왕정이 끝나고

로마는 왕이 통치하지 않는 , 공화정 국가가 되었고

귀족들이 통치하는 나라가 됬고

고대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왕정붕괴-귀족들의 공동통치-시민들에 의한 민주정 수립'

 

의 테크를 따라가게 됩니다

단지 로마는 민주정으로 가려다가

카이사르라는 야심가가 등장해 제국이 됬고

결국 황제가 통치하고 부패하고 잔인한 나라가 되다

예수님의 사랑 , 기독교사상 보급 및

이민족의 침략으로 제국이 붕괴하게 되는 것입니다

 

[강력한 로마 군단]

로마 공화정이 시작된 이후에도

로마의 군사적 강력함은 주변국가들을 압도했고

로마 주변도시들은 '라틴 연합' 이라는 연합을 맺고

로마에 대항합니다

 

로마는 홀로 연합군과 싸웠지만

그럼에도 이들을 압도하며 모두 뚜까패서 로마땅으로 만들었고

하여튼 로마는 매우 쎘습니다...

 

로마군은 초기에는 그리스 전통 전술인

팔랑크스 대형으로 군대를 운영하다

여러 전쟁경험을 통해 다양한 전술을 습득했고

켈트족에게 패배한 것을 계기로 군대를 개혁하는데

 

'팔랑크스' 체제에서 '레기온(군단)' 체제로 진화해

팔랑크스 스타일은 모든 무자한 병사들이 하나의 거대한 사각형으로

공격하는 방식이었는데

레기온 스타일은 작은 네모들로 큰 네모를 형성해

공격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팔랑크스 스타일 (대규모 사각형)

 

레기온 스타일 (소규모 사각형)

 

이 레기온 , 로마군단은 강력한 보병으로서

여러 전쟁으로 타국의 전술들을 흡수하며

고대 지중해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보병집단이 되었습니다

 

[피로스의 승리]

지중해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전술의 천재 혹은 용병의 천재라 불린 에페이로스(그리스) 왕국의 피로스왕은

로마와 이탈리아 남부를 자신의 세력으로 넣으려

이탈리아로 들어와 로마군을 격파했는데

 

피로스 왕

 

피로스는 명성에 걸맞게 연이어 승리를 거두나

전사자가 로마군 전사자의 70%에 이르러 더이상 원정을 계속할 수 없었고

로마는 피로스에 대항해 지중해 해양국가 카르타고와 동맹을 맺고

이후 피로스왕은 연이은 승리를 했음에도

아군의 손실이 너무 많았고

피해누적으로 자국의 불만 ,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고

이탈리아에서 철수하고

 

이에 아무리 이겨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 승리를 뜻하는 말인

'피로스의 승리' 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한국식으로 번역한다면 '상처뿐인 승리' 정도)

 

<피로스의 승리 이야기로 나오는

피로스왕의 대화 요약>

'전하 로마를 물리치면 그다음엔 무엇을 하실것입니까 ?'

'로마를 정복하면 이탈리아는 우리 차지가 되는 것이지'

'그렇다면 이탈리아를 정복하면 무엇을 하시렵니까 ?'

'그다음엔 부유한 시칠리아를 손에 넣기 수월해지겠지'

'그렇다면 그다음엔 무엇을 하시렵니까 ?'

'하하 그야 , 편안히 쉬면서 날마다 즐거운 이야기나 나누지 뭐 ...'

'전하는 지금도 편안히 쉬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실 수 있습니다

아무런 노력과 고통 , 위험 없이도 이미 그리 하실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고생을 하시려 합니까 ?

 

한편 겨우 피로스군을 물리친 로마는

손해는 막심했지만 본토에서 싸우는데다가

물량 규모도 우위여서 금방 손해를 메꾸게 되었고

피로스군을 물리친 이후

로마는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계 도시를 꿀꺽하고

결국 이탈리아를 통째로 지배하는 세력이 되고

강력한 신흥 군사 , 육군 강대국으로

지중해 세계에 첫 발을 내디디게 됩니다

 

<라봉봉>로마는 특출난 인물들이 나왔다기보다는

안정적인 시스템 , 법으로 여러 평범한 사람들이 뭉쳐

고대 지중해 세계 , 서양을 정복한 나라로

가히

 

'평범한 사람들의 나라'

 

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평범하다는게 말이 쉽지

엄청 어려운것이기도 해서

 

'평범한 것이 비범한 것이다'

 

라는 말도 떠오르며

 

단 로마는 점차 타락하고 제국주의화되며

특출난 사람이 크게 나오지 못하고

정체됬다는 한계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일단 여러 법치적 안정성 등으로

뛰어난 누군가가 한명 죽으면 압도적 전력손실이 컸던

다른 나라들과 달리

누군가 한명 죽어도 또다른 누군가로 금방 대체된 로마였고

이러한 압도적 물량과 평범함의 강력함은

가히 로마를 당대 서양세계 패자로 만들어 놓았다 할 수 있고

이러한 강력함의 원인에는

'보이지 않는 힘' 인

법치주의와 시스템적 안정성의 힘이었다 생각됩니다

 

여러 안정적 법으로

타 국가들에 비해 로마는 통치나 재판에 불만이 적었고

이러한 모습들로 국민 상호간의 신뢰 , 지도자와 국민 사이에

믿음과 신뢰가 형성되어 로마는 국운이 뻗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로마는 이러한 모습들로

딱히 대체할 적수가 없었고

결국 주변 민족들을 잔인하게 제압하고 노예로 만드는데

고대 로마는 말그대로 '지중해 깡패' 라는 말이 아주 적합합니다

 

강력하고 엄격한 군대 , 조직체계를 갖추어서

서양 독재자들의 모티브가 된 나라이기에

비판의식의 눈으로 볼 필요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며

제국주의 국가의 시작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힘의 논리 , 제국주의가 가장 보편화된 시기가 로마였기에

여러 잔혹한 악행 , 기독교 탄압 , 내로남불 등으로

오늘날 나쁜 이미지도 많은 로마지만

결국 예수님의 아가페적 사랑이

이 거대하고 잔인한 제국을 무너뜨렸다 생각하고 있고

 

단지 로마의 법과 건축은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끼친

선진적 시스템이 존재했으며

화려한 갑옷 , 군단 이미지로

서양 독재자들이 동경하는 나라가 됬고 ..

문화적 컨텐츠나 전쟁게임으로 쓰기에는 소재가 너무 좋기에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로마의 이미지들을 알고 있고

또 세계사에 여러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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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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