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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과 포에니 전쟁>

[1차 포에니 전쟁]

[한니발의 맹세]

[2차 포에니 전쟁]

[알프스를 넘다]

[명장 한니발]

[칸나이 전투]

[파비우스 전략]

[스키피오의 자마전투]

[3차 포에니 전쟁]

<라봉봉>

 

[1차 포에니 전쟁]

피로스군을 격퇴하고 로마인들은 이탈리아 남부마저 먹게되고

이탈리아를 통째로 지배하게 됩니다

 

이에 어느덧 소규모 도시국가에서

큰 규모의 국가로 성장한 로마는

남부의 시칠리아 섬이 눈에 띄게 됬고

슬슬 이탈리아 너머 외부 세계 , 강대국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시칠리아 섬은 아프리카 북부에 해양민족 페니키아인들이 건설한 해양국가

'카르타고' 인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이 섬의 패권을 두고 신흥강국이자 육군강국 로마와

전통적 강대국이자 해양강국 카르타고 두 나라는 23년간 싸우는데

이를 '1차 포에니 전쟁' 이라 부릅니다

 

로마인들은 오랜기간동안 내륙의 여러 부족들과 싸워 풍부한 실전경험이 있었지만

해전경험은 없어 카르타고군에 고전했는데

이에 로마인들은 '까마귀' 라는 다리를 배에 부착했고

카르타고 군선들에 쇠갈고리를 던져 끌어당긴 후

까마귀라는 다리를 내려 로마 군사들이 건너가 백병전(근접전)으로

카르타고 해군을 궤멸시킵니다

 

로마해군의 '까마귀'

 

바다의 로마를 깔보던 카르타고는 큰코다치게 됬고

로마군은 해전에서 승리한 이후 승승장구하며

시칠리아 제해권을 찾았고

카르타고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로마군과 강화를 맺어

1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납니다

 

카르타고는 로마와의 강화로

시칠리아 섬 권리 포기 , 막대한 배상금을 지급했고

이어서 로마에 사르데냐 섬과 코르시카 섬을 빼앗기게 됩니다

 

[한니발의 맹세]

1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에 패배해 패장이 된

카르타고의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 는

아들 '한니발 바르카' 에게

로마에 맞서 끝까지 승리할 것을 신전에서 맹세하도록 합니다

 

9살의 어린 아들 한니발은

신전에서 로마를 멸망시킬 것을 맹세합니다

 

<한니발의 맹세>제가 장성한 때에 , 불과 칼을 들어 로마인들을 쫓아가

트로이의 운명 (국가 멸망) 을 다시 행하겠습니다.

신들께서는 저의 생애를 막지 않을 것이며 ,

칼을 금하는 조약도 , 알프스의 높음도 , 테르페이아의 바위도 그러할 것입니다.

저는 맹세합니다.

우리의 전쟁신의 신성에 , 엘리사(디도)의 그림자에

 

이 한니발은 훗날 전술 , 전략의 천재라 불리며

로마를 침공하고 로마인들을 떨게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한니발 상

 

카르타고의 식민지인

하스파니아(스페인) 지역에서

무럭무럭 성장한 한니발은

27세의 젊은 나이로 가족의 직위를 세습해

히스파니아 주둔군의 총사령관이 됩니다

 

[2차 포에니 전쟁]

한니발은 총사령관에 오른 뒤 로마와의 전쟁을 결심하고

스페인에 있던 로마의 동맹시이자 가장 부유한 도시 '사군툼' 을 공격해

포위합니다 (2차 포에니 전쟁 발발)

 

2차 포에니 전쟁 지도

 

로마 원로원(국회)은 빡쳐서 원로원 의원(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사절을 한니발에게 보내

강력항의했고 한니발이 만나주지 않자

매우 화가 난 로마 원로원 의원들은

카르타고 본국으로 가서 항의했고

카르타고 역시 로마가 잘못한 점을 들어

로마의 위법성을 집중적으로 추궁합니다

 

카르타고 원로원의 강경한 답변과 나름 반박하기 어려운

사안을 맞닥뜨린 로마 사절은 카르타고에게

 

'전쟁이냐 사군툼 철수냐'

 

라는 양자택일을 강요합니다

 

이에 카르타고 원로원은

 

'한니발을 말리지 않겠다.

전쟁을 선포하면 받아들이겠다'

 

라고 강경히 대답합니다

 

<로마 사신 파비우스>좋다 전쟁을 주겠다

 

이때 로마가 지원병을 보내지 않을 것을 안

사군툼 시민들은 한니발에게 강화를 요청했고

한니발은 강화 조건으로 모든 재산을 성에 두고

옷 두벌만 가지고 나오라 했고

가장 부유한 도시였던 사군툼 시민들은

그러한 굴욕적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최후의 항전을 벌였으나 사군툼은 한니발군에 점령당하고

모든 성인은 죽고 살아남은 자는 노예로 팔립니다

 

[알프스를 넘다]

사군툼을 점령한 한니발은 다음 말발굽을 로마로 향했기에

로마는 군단을 시칠리아와 프랑스 남부로 이동시켜

한니발의 공격을 막으려 합니다

 

이때 한니발은 빠른 속도로 코끼리 부대(카르타고는 북아프리카 일대에 있어

코끼리 부대를 편성했음) 를 이끌고 피레네를 넘어 북상했고

그후 한니발은 로마군의 예상을 깨고

험준한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침공하기로 결심합니다

(이후 나폴레옹도 한니발 따라하려고 알프스 넘습니다)

 

한니발군이 알프스를 넘을때

매우 험준한 알프스의 추위로 엄청난 병사들이 고생했고

코끼리나 병사들이 죽어나갑니다

결국 한니발군은 알프스를 넘어 북이탈리아에 도착하는데 성공했고

험준한 산을 넘으며 산전수전 다겪은 카르타고 군은 로마를 멸망시킬 기세였습니다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

 

[명장 한니발]

뒤늦게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을 것임을 눈치챈

집정관(대통령 격) 스키피오는 북이탈리아 타키누스(파비아)에서 한니발군과 맞섰고

한니발은 스키피오와 최초로 기병전을 벌이는데

이 싸움에서 한니발은 누미디아 기병을 효과적으로 운용해

스키피오의 기병을 격파하고

스키피오에게 중상을 입혔고

스키피오는 겨우 살아나 도망칩니다

 

한니발이 이 싸움에서 승리하자

북부 부족인 갈리아인(갈리아는 오늘날 프랑스지역)들은

한니발을 신뢰했고 한니발은 그들로부터

군량과 병력을 넉넉히 제공받게 됬고

이때 부상당한 스키피오는 치료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틈을 타 한니발은 인근 지역을 점령 , 약탈하며

북이탈리아의 로마세력을 급격히 위축시킵니다

 

이후 한니발의 4만군대는 42000명의 로마군과

트레비아 전투에서 격돌했는데

 

트레비아 전투 , 파랑은 한니발군이고 빨강은 로마군입니다

 

카르타고 기병은 로마군에 기습공격을 했고

이에 로마기병은 즉각 출전해 카르타고 기병을 밀어냈고

로마군 전 보병이 출전해 카르타고군을 추격하는데

트레비아 강을 건너 카르타고군을 추격하던 로마군은

진형을 짜고 카르타고군과 싸웁니다

 

전투 초반에는 로마군은 카르타고군을 무찌르는 듯 싶었지만

강을 건너느라 몸이 젖은데다가 추위와 허기로

갈수록 힘이 약해지고 있었고

기병 역시 카르타고 기병에 밀리기 시작합니다

또 숲속에 매복한 카르타고 기병과 보병이 로마군을 포위했고

 

거의 2만명의 로마군이 포위되 카르타고군에 살육당했고

로마군은 15000명정도가 겨우 포위망을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이 전투로 한니발군은 4~5000명이 사망했지만

로마군은 26000~32000명이 사망했다는 뼈아픈 패배를 겪었고

한니발은 로마군을 궤멸시키며 로마로의 남하를 준비합니다

 

다음해 봄 한니발은 남하를 시작했고

늪지대를 진군했는데

늪은 허리까지 차오르며 백여킬로미터나 뻗은 곳이어서

도중에 어떤 휴식을 취할 수도 없었고

이에 한니발과 카르타고군은 3박 4일에 걸쳐 잠도 안자고

늪지대를 통과하고

많은 병사들이 과로사합니다

 

이에 한니발 역시 눈병에 걸렸고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다 한쪽눈이 상실하는 '애꾸' 가 됩니다

 

강행군으로 늪지대를 통과한 한니발은 병사들에게 휴식을 주었고

이후 트라시메노 호수에서 군사를 매복시켜

불피우는 것도 금지시키고 로마군을 기다립니다

로마군은 트라시메노 호수 어귀에서 야영을 하고 안개속에서 행군을 했는데

이때 숨어있던 한니발군이 로마의 행군로를 봉쇄하고

무차별 포위공격을 감행했고

전투가 아닌 일방적 학살이 시작됩니다

 

트라메시노 호수의 전투

 

로마군은 호수로 밀렸고 카르타고군의 칼에 죽거나 호수에 빠져 죽었고

집정관(로마의 대통령 격)도 전사합니다

2만 5천명의 로마군중 살아서 로마로 돌아간 병력은 2천명에 불과힙니다

(혹은 총원 3만명중 사망 15000명 , 익사 15000명)

 

[칸나이 전투]

이러한 승리 후 한니발은 남부 이탈리아를 향해 남하하기 시작했고

한니발은 이탈리아 국토를 마구 유린하며

중부 이탈리아를 가로질러 남부 이탈리아에 도착해

이탈리아 대표 곡창지대이자 물류집결지

'칸나이(칸나에)' 를 점거합니다

 

이에 로마군은 8~9만대군을 뽑아

칸나이에 있는 한니발과 싸우러 갔고

 

칸나이에서

카르타고 군대와 로마대군이 맞붙게 됬는데

5만의 카르타고군은 8만 6천 400명의 로마군보다 수가 압도적으로 적었음에도

한니발은 초승달 모양으로 보병을 배치해

거대한 로마군을 쌈싸먹듯이 포위하고

궤멸시킵니다 (칸나이 전투 , 칸나에 대회전)

 

칸나이 전투

 

초승달 모양으로 포위하는 한니발군 , 망치와 모루전술의 표본

 

백병전 , 근접전에서 포위될 경우

아무리 수가 많아도 가운데 병사들은 힘을 쓸 수 없었고

오늘날 군사학에서도 포위는 곧 필패를 의미합니다

 

포위될 경우 아무리 병사가 많아도 가운데 병사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아주 교과서적인 한니발군의 전술에

로마군은 칸나이 전투에서

44500~60000명이 사망하고

19300명이 포로가 됩니다

 

칸나이 전투는 오늘날 세계의 군사학교에서도

포위섬멸 , 망치와 모루 전술(쌈싸먹기 전술) 의 교과서적인 전술로 이야기 되고 있고

로마군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습니다

 

칸나이 전투로 로마의 전력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리자

로마의 동맹시들은 빠르게 이탈했고

특히 이탈리아에서 로마 다음으로 인구가 많고 번영한

카푸아까지 한니발에게 돌아서자

카푸아의 이탈은 로마와 많은 도시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파비우스 전략]

칸나이 전투이후 로마인들은

한니발과 맞서려면 용감히 정면승부로 싸우는 것보다

무조건적으로 버티는 장기전 , 지구전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파악했고

장기전 , 지구전으로 변화시킵니다

 

로마인들은 한니발군과의 싸움은 철저히 피했고

한니발이 떠난 지역을 공격하며 한니발의 힘을 깎아먹는데 집중합니다

이를 '파비우스 전략(지구전)' 이라 하는데

로마 정치인 파비우스는 한니발군에 앞서 소극적 , 방어적 전략을 하다

처음엔 로마인들에게 욕을 오지게 박혔지만

로마인들은 칸나이 전투에서 한니발에게 크게 당한 후부터

파비우스 전략을 사용합니다

 

한니발군은 승리 이후에도 로마 동맹시들의 결속력을 와해시키지 못했는데

로마는 각도시 지배계층에게 전쟁병력만 내놓으면 딱히 간섭을 하지 않았기에

도시의 지배계층들은 로마인들에 호의를 가지고 있었고

또 그렇다고 로마를 직접공격하기에는

병력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로마가 지구전에 돌입하며 한니발이 지휘하지 않는 병력만

적극적으로 공격 , 격파하자

슬슬 한니발도 위기를 느끼고

이탈리아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집니다

 

로마인들은 한니발군은 줜내 강하지만

한니발이 없는 다른 카르타고군은 줜내 약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한니발 없는 카르타고군은 로마군과의 병사의 질이 비슷했음에도

지휘관 역량차이가 나서 15년에 걸친 2차 포에니전쟁동안

로마군에 단 1번 승리합니다

 

[한니발의 군사 능력치가 100이면 다른 카르타고 장수 능력치는 20~30이었고

50~70의 준수하고 평범한 로마 지휘관들에게 격파됩니다] )

 

계속해서 한니발없는 카르타고군들을 두두려 패며

한니발을 고립시키고 한니발의 팔다리를 다 끊어버리려 노력합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고전하는 한니발군에 보급을 해야했던

카르타고 대군은 로마군에게 격파당했고

또 스페인에서 보낸 지원군 역시

로마군과 싸우나 격파당해

한니발은 적시에 지원을 받지 못합니다

 

한니발에게 지원 및 보급을 해야하는

카르타고 본국에서 보내진 군사가 계속 궤멸당해

카르타고 역시 피해가 누적됬고

반대로 로마군은 한니발군을 상대로 전투를 피하며

많은 병력을 보전하며 싸웁니다

 

한니발은 이탈리아 중부를 휘젓고 다니며

로마 6개 군단을 전멸시키는 활약을 보여줬는데

이사이 로마는 카푸아를 겹겹이 포위했고

 

한니발은 카푸아 포위를 풀기 위해

로마를 직접공격할 것을 생각했는데

한니발이 로마를 직접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자

로마 시민들은 공황상태에 빠졌고

로마 여자들은 밤낮에 걸쳐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로마 시민들 사이에서는

 

'문앞에 한니발이 왔다'

 

라는 관용어가 생길 정도였습니다

(한국식으로 치면 '애비애비 문앞에 호랑이가 왔다')

 

그럼에도 로마군들은 로마의 견고한 성벽을 믿고

굳이 병력을 빼지 않아 카푸아의 포위를 풀지않았고

카푸아를 함락시키고 한니발은 결국 이도저도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로마군은 스페인의 카르타고군들을

궤멸시켰고

또 한니발의 동생 하스두루발은

한니발과 합류하려 했지만

로마군에 대패하고 전사했고

그의 목은 로마군이 참수해 한니발에게 던졌습니다

 

스페인 함락 , 동생의 죽음 등에

한니발의 전황이 워낙 불리해지자

많은 이탈리아 도시들이 한니발을 배신했고

한니발은 이탈리아 남부 끝으로 이동합니다

 

[스키피오의 자마전투]

한편 로마의 전세가 호전되자

스키피오를 대표로 한 많은 로마인들은

카르타고 본토인 아프리카 상륙을 희망했고

 

로마 원로원은 회의적 모습을 보이며

 

'만일 적지에서 패배하면 어떻게 하느냐'

 

라 했지만

스키피오가 워낙 자신만만해

군대를 마음대로 편성할 권한을 부여합니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이에 스키피오는 군대를 모아

북아프리카 침공을 계획했고

이에 위기를 느낀 카르타고 본국은

적극적으로 이탈리아의 한니발에게 보급을 시도했으나

로마 해군의 철통같은 감시에 막힙니다

 

스키피오는 아프리카에 상륙해

연이어 승리를 거두었고

이에 카르타고는 스키피오와 강화를 맺었는데

사실 이때 이미 카르타고는 사방의 식민지를 몽땅 잃고

멸망 직전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키피오 역시 이탈리아에 있는 한니발의 위험성에

온건한 강화를 제시했고 그만큼 한니발의 위상은 로마인들 사이에 남달랐습니다

 

그러나 카르타고 원로원의 과격파는

한니발의 존재만 믿고서 한니발을 불러들여 싸우기로

자기들 멋대로 결정했고

그것도 모잘라 강화를 체결하고 돌아가는 로마 사절단을 매복해

기습하는 비겁행위를 했고 로마 사절단은 탈출에 성공합니다

 

결국 한니발은 카르타고에 귀국했는데

이러한 상황속에 결국

스키피오의 로마군과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은

자마에서 맞붙게 됩니다

 

한니발과 이탈리아를 휘젓고 다니며 산전수전을 다겪은 한니발의 군사들은

지중해 최강 보병대였고

이 백전의 노장이자 전술의 천재라 불리는 한니발은

패기넘치는 로마의 젊은 장군 스키피오와

자마에서 맞붙게 되고

2차 포에니 전쟁 최후의 전투 '자마 전투' 가 시작됩니다

 

<전투를 앞둔 스키피오의 연설>그대들의 과거의 전투를 가슴에 새기고 ,

그대들 자신과 그대들의 조국에 부끄러움 없이 용감히 싸우라.

그대들의 눈앞에 이것을 그려라.

만약 그대들이 적을 무찌른다면 그대들은

의심의 여지없는 아프리카의 지배자가 될 뿐만 아니라 ,

그대들 자신과 조국을 세계 위에 군림하게 만들 것이다 ...

 

우리가 단지 생에 대한 애착으로 이 엄청난 선물을 거절한다면 ,

우리는 겁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바보에 가까울 것이다.

이제 나가서 적과 싸우라.

우리 앞에는 승리가 아니면 죽음뿐이다.

목숨을 버릴 각오로 전투에 나가는 군대는 항상 승리한다

 

지중해 세계의 운명을 가른 전투 '자마 전투(자마 대회전)'

 

자마전투때는

로마군은 35500명 , 한니발군은 45000명의 병력이었는데

원래 항상 로마군이 보병이 많고 기병이 부족했는데

당시 누미디아 기병이 로마군으로 넘어간 탓에

이번엔 카르타고군의 기병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카르타고군은 80마리의 전투 코끼리를 선두에 배치하고

전열을 배치했고

기병의 열세를 극복하려 80마리 전투코끼리를 먼저 로마군 진영으로 돌진시키나

이미 코끼리 공격을 염두한 로마군은 진영을 넓게 벌려놓고

코끼리 공격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합니다

 

자마전투 배치 , 코끼리는 흥분하면 앞만보고 달리는 성질이 있어 로마군이 진영을 벌려놓자 그대로 빈곳으로 돌진하다 죽었다 합니다

 

그 틈을 타 로마는 누미디아 기병을 앞세워 전진해

카르타고군을 혼란에 빠트렸고

잠시 한니발군이 승리하는듯 했지만

로마 기병이 뒤를 찔러 한니발군은 무너지게 됩니다

 

결국 로마군은 4~5000명 사망 , 카르타고군은 33500명~전멸 되고

로마는 카르타고군과 한니발군에 완전히 승리하고

2차 포에니 전쟁은 끝을 내리게 됩니다

 

2차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이 로마를 떨게 했던 전쟁이었기에

'한니발 전쟁' 이라고도 부릅니다

 

카르타고에서는 한니발 혼자만 싸운 건 아니지만

불행히도 카르타고의 다른 장군들 가운데서는

한니발만큼은 아니더라도 로마에 위협이 된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실상 한니발이 시작해서 한니발 패배로 끝난 전쟁이었고

끝내 한니발이 자마전투에서 패배하며 2차 포에니 전쟁은 끝나게 됩니다

 

한니발은 이후 로마의 견제와 카르타고 정적들로 인해 망명해 살다가

로마의 추격에 독을 마시고 자결합니다 (자결설)

 

한니발을 무찌르고 2차 포에니 전투를 종결시킨 스키피오는

아프리카를 정복한 자라는 뜻의 '아프리카누스' 라는 칭호를 얻게 됬고

한니발에 당한 충격이 너무나도 엄청났던 로마인들은

제 2의 한니발이 나올 것을 두려워해 카르타고를 철저히 탄압하고 핍박합니다

 

로마는 카르타고 해군을 해체시켰고

모든 해외영토를 로마에게 넘기게 합니다

또 로마 허락없이는 전쟁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3차 포에니 전쟁]

카르타고는 로마의 속국화 됬고

사실상 이때 멸망한 것이었지만

풍부한 농업생산력과 뛰어난 해상무역으로

아직도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부유했고

이에 로마인들은 그 부유함에 또다시 위기를 느끼고

두려워합니다

 

결국 이후 로마인들은 카르타고 전체의 무기를 몰수 ,

새로운 배상금 부과등 다양한 압박을 가했고

이미 힘이 없어진 카르타고는 로마가 내세우는 말도안되는 여러 조건들을

모두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카르타고를 멸망시키려 했던

로마는 또다시 더욱 중대한 조건을 내놓았는데

수도를 파괴하고 모든 주민들을 해안가에서 15km 밖으로 이주하라 했는데

평소 무역이나 해상업으로 먹고살던 카르타고인들에게는 그냥 죽으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고

분노한 카르타고 시민들은 결국 로마와 전쟁을 결의하고

3차 포에니 전쟁이 터집니다

 

그러나 이미 승패는 전쟁 전부터 결정되 있었고

그럼에도 카르타고인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스스로 파괴하며

비참한 굴욕을 맛보기보다는 로마인들과 싸우다 죽는 것을 택합니다

 

결국 3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하자마자 카르타고시는

로마군에 완전포위됬고

무장해제된 카르타고인들은 다시금 무기를 만들어 급격히 재무장해

로마군에 맞섭니다

 

로마 집정관들은 이미 다끝난 전쟁 명예를 얻기위해

맹공을 퍼부었는데

카르타고인들은 아예 살 생각이 없었고

처절히 항전하며 3년을 버티다 성벽이 뚫리게 됩니다

 

카르타고인들은 시가전을 벌이며 로마군에 맞서다

죽거나 자살합니다

 

카르타고 공방전

 

함락된 카르타고는 껍데기까지 전부 태워졌고

빈 터에는 소금이 뿌려져 완전한 불모지가 되어

폐허로 방치됩니다

 

당시 지휘관 스키피오(로마는 스키피오가 여러명입니다) 는

한때 번영해 지중해 최강대국이었지만

허망하게 불타는 카르타고를 보며 비애감에 젖어

 

<스키피오>후일 언젠가 로마도 이처럼 멸망할 것이다

 

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는 명실상부 지중해 최강자 , 패자가 되어

서양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카르타고 영토는 로마 직할령에 편입되

아프리카 속주로 재편됬고

당시 북아프리카는 사막화가 되기전이었기에

비옥한 농경지였고 비옥한 카르타고 땅은

다수의 노예를 이용해 농장을 경영하는 '라티푼디움(광대한 토지 , 대농장)' 의 농장이 되어

로마 귀족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줍니다

 

단지 라티푼디움은 원래 로마의 자영농 방식과 다른

카르타고의 방식이었고

운명의 장난인지 카르타고인들의 라티푼디움을 받아들인 로마는

이 라티푼디움으로 인해 값싼 농작물이 로마로 들어와

경쟁력을 상실한 로마 자영농 , 중산층이 몰락하고

지배계층이 타락하고 사회적 모순속에 멸망하게 됩니다

 

<라봉봉>수많은 이야기를 남긴 포에니 전투였고

천하의 로마를 떨게한 한니발 , 그의 이름은 로마와 서양인들에게 큰 충격과 공포를 주었습니다

 

그는 군사 , 전술의 천재라 불리며 수많은 군사이론의 교과서적 모습을 보여주었고

오늘날 현대 군사학에서도 그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로마인들은 한니발과 맞선 후부터

한니발의 전술을 빠르게 습득하게 되어

'전쟁기계화' 되어 이후부터 서구세계를 계속 정복하기 시작합니다

더이상 지중해세계에 로마를 위협할 세력이 없어졌고

광대한 영토의 로마 역시 확장을 멈추고

사치와 타락에 일삼다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멸망하고

고대 시대가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로마 이야기는 더 많이 남았고

포에니 전쟁 이후 지중해 시대에서

로마를 위협하는 외부의 적은 사라지게 됬지만

포에니 전쟁 이후부터는 전쟁 후 전쟁에 참여한 중산층(보병)에 대한

이권 분배 실패 및 귀족들의 대농장 독점 등 사회 모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극심한 내부갈등이 일어나다

로마는 제정 , 황제의 나라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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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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