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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와 전후 미국 사회>

[트루먼 독트린]

[한국전쟁]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전후의 경제호황]

[흑인 민권 운동]

[마틴 루터 킹]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라봉봉>

 

[트루먼 독트린]

2차세계대전은 연합국과 미국의 승리로 끝났고

유럽제국은 1 , 2차 세계대전으로 완전히 몰락했고

세계 질서는 완전히 미국 중심으로 재편됩니다

 

군사와 경제(하드파워) 만이 아닌

문화(소프트파워) 라는

교육 , 학문 , 언어 , 예술 , 과학 , 기술 등

인간의 이성 , 감성 , 창조적 분야를 포함한 분야까지

미국중심으로 질서가 편성되어갔고

명실상부 미국은 세계사회의 슈퍼파워(초강대국)가 됩니다

 

오늘날 트럼프 대통령 , 미국 대통령=세계 대통령이라는 말들이 있습니다

 

단 이전 2차세계대전때는 미국과 함께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공산주의 맹주국가였던 소련은 미국 자유주의 질서에 대항해

공산주의를 확산시키려 했고

이에 미국 자유주의 vs 소련 공산주의가 맞서는

'냉전' 시대가 시작되고

세계 국가들은 미국에 붙느냐 소련에 붙느냐로 각각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천조국과 불곰국의 냉전시대 개막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유럽에 공산주의가 퍼지는 것을 막으려

1947년 3월 '트루먼 독트린' 을 발표해

기존 '먼로 독트린' 의 고립주의 노선을 폐기시키고

반공과 자유주의를 원하는 국가들에게 군사 , 경제적 원조를 제공한다 발표합니다

 

트루먼 독트린 , 고립주의 폐기

 

미국은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유럽 , 서유럽지역을 복구하기 위해

막대한 원조자금을 유럽에 수혈했는데

경제적으로는 '마셜플랜' 을 실시해서 막대한 자금을 서유럽에 뿌리고

군사적으로는 1949년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를 만들어

반공 노선을 구축합니다

 

마셜플랜 당시 미국이 서유럽에 뿌린 돈 (빨강작대기=지원액)

 

소련 역시 이에 대항해

동유럽에 경제 , 군사적 지원을 했는데

1949년 코메콘이라는 공산국가 원조기구를 만들고

1955년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만들어 동유럽국가들과 군사동맹을 맺습니다

 

이에 1991년 소련해체이전까지 유럽에서는

미국의 서유럽과 소련의 동유럽이 맞서는 냉전 구도가 형성됬고

이를 '철의 장막' 이라 부릅니다

 

철의장막 , 회색은 중립국

 

[한국전쟁]

냉전은 마치 소설 '1984' 와 똑같이

미국과 소련이 직접적인 전쟁만 안했을뿐이지

온갖 첩보전 , 체제 경쟁 , 대리전 등이 있었던

'소리없는 전쟁' , '차가운 전쟁' 이었는데

 

패전후 독일지역 , 베를린 분할 등 유럽세계에 대한 미국의 원조 이야기는

이전 유럽사이야기에서 했고

결정적인 미국과 소련의 냉전 , 대리전이 폭발한 사건은

1950년 한국전쟁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 , 퓰리처 상 수상작

 

북한 지도자 김일성이 소련 지도자 스탈린의 허가를 받고

기습 남침해서 수천만의 피해자와 이산가족을 낳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 , 6.25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는데

 

더 자세한 이면에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 국제사회의 복잡한 배경도 있었고

일단 미국이나 소련이나 유럽권 백인이 주류인 국가였기에

먼 지구반대편 '고요한 아침의 나라' 라 쓰고 듣보잡이라 부르는 한국보다는

대서양이나 유럽지역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고

소련 스탈린은 국력 회복 및 유럽지역에서 공산주의 확산에 신경쓰고 있었기에

미국의 눈을 돌리기 위해 김일성에게 한국전쟁을 허가 , 지원합니다..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은 탱크 등 현대화된 최신무기들을 앞세워

1950년 6월 25일 남한 , 대한민국으로 기습적으로 남하해

수도 서울을 비롯해 파죽지세로 남한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이에 분노한 미국은 공산세력이 득세하는 것을 막기 위해

UN에서 적극 항의하고 UN군을 결성해 남한을 지원합니다

 

초기에는 고전했지만

2차세계대전 전쟁영웅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또다시 지휘권을 잡고

한국에 참전해 '인천상륙작전' 으로 전쟁의 판로를 바꿨고

인천상륙작전으로 허리가 잘려 보급이 끊긴 북한군은 궤멸되고

이에 한미 연합군 , UN 군은 북진을 시작해 북한 수도 평양을 점령하고

북한 최북단지역까지 진입하며 통일이 눈앞에 보이는듯 했습니다

 

한국전쟁 지도

 

한국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

 

한국전쟁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은 한국이라는 지역이

동아시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몰랐고

초강대국 , 세계최고라는 자부심속에

공산국가가 얼마나 강한지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북한이 멸망위기까지 몰리자 북한을 돕기위해 중공군(중국 공산당 군)이 참전했고

맥아더는 재래식 무기에 보병위주였던

중공군의 참전을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지만

중공군은 이전 일제와의 전쟁 및 국공내전의 승리를 바탕으로

오랜 잔뼈가 굵은 경험많은 노련한 베테랑들이었고

압도적인 물량 , 인해전술로 유엔군을 포위섬멸 , 각개격파하며 빠른속도로 남하하고

이때 미국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이에 맥아더는 중국 , 만주 등에 핵공격을 사용하자 주장했지만

당시 미국이나 소련 , 중국은 한국전쟁이 한국내에서만 끝나야 할 것을 원하고 있었고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되고

강경파였던 맥아더 장군은

전쟁 확산을 원하지 않았던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임됩니다

 

미국민들은 전쟁영웅 맥아더의 해임에 엄청나게 반발했지만

결국 맥아더는 한국전쟁 와중에 해임되어 조국으로 돌아왔고

1951년 4월 19일 미 의회에서 은퇴 연설을 합니다

 

<맥아더의 은퇴연설>

나는 당시 군대에서 유행하던 노래의 후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후렴의 자랑스러운 귀절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이 노래에 나오는 노병처럼 나는 이제 군인생활을 그만두고

신의 계시를 따라

자기 임무 를 완수하려고 노력하여 온 한 사람의 노병으로서 사라져 갑니다.

 

맥아더의 연설 중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Old soldiers never die , they just fade away)'

 

는 오랫동안 회자되는 그의 명언이 되었습니다

 

맥아더의 상징인 까만 선글라스와 콘파이프 담배 + 열혈 금수저 도련님 모에 속성

 

퇴임 직후 맥아더가 뉴욕에서 벌인 시가행진에

700만명의 사람들이 모여 그를 환송해주었고

전무후무한 이런 열렬한 퇴역장군 , 전쟁영웅 환송식에

당대 정치인들은 깜짝 놀랐지만

맥아더는 우려와 다르게 대선에 출마하지는 않고

이후 2차세계대전 유럽전선 전쟁영웅이자 노르망디 상륙작전 지휘관이었던

공화당의 아이젠하워가 다음 대통령이 됬고

아이젠하워는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되어

루스벨트-트루먼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20년 장기집권을 끝내게 되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국전쟁 중의 한국을 방문했을때 한국의 환영인파들 , 광주 민주화운동전까지는 한국에서는 반미감정이 없고 한국독립+자유주의 세력을 지원하는 엄청난 우호 분위기였고 한국인들의 열렬한 환대에 아이젠하워는 감동해 눈물을 글썽입니다

 

한국의 38선지역에서 교착된 양측군은

더이상 대규모 전면공세를 하지 않다가

스탈린이 1953년 갑자기 사망하자

1953년 휴전을 하게 됩니다

 

휴전협정 , 한국측은 북진통일을 강경히 주장하던 이승만 대통령의 휴전 반대로 참여하지 않습니다

 

한국전쟁은 일반적인 냉전과 달리

자유주의 진영 VS 공산주의 진영이 직접 대립하고 엄청난 피해를 만든 전쟁이었고

미국은 생각보다 강한 공산군에 충격을 받았고

당시 미군은 48만명이 참전해 5만명이 넘게 전사합니다..

 

북한과 중국은 미 공군의 폭격 , 공습에 트라우마가 생기게 되는 등

이로 인해 양세력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됩니다

 

[전후의 경제호황]

한국전쟁 이후에도 미소양국의 냉전 , 체제경쟁은 계속되었고

당시 1차세계대전 종전후 미국경제에는 대공황이 일어났기에

여러 사람들이 또다시 대공황이 올것이라는 우려를 했지만

우려와 다르게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경제는 엄청난 대호황을 맞게 되었고

이런 대호황을 바탕으로 미국은 서유럽 경제를 되살리고

아시아의 반공국가들에게 막대한 원조를 아끼지 않습니다

 

1950년대 당시 미국은 '전후의 경제호황 postwar economic boom' 혹은

'자본주의 황금기 golden age of capitalism' 라 불리며

미국에는 아기가 많이 태어나는 '베이비 붐' 세대가 등장했고

엄청난 호황을 바탕으로 1950년대는 미국 고등학생이 자가용을 끌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1950년대 미국 번영과 중산층을 상징하는 미국의 슈퍼마트 , 미국인들에게 1950년대는 황금같은 풍요가 넘치던 번영시대고 영화 킹스맨 골든서클에서 마약상 악당녀도 1950년대풍으로 집을 꾸미고 있는게 생각납니다

 

[흑인 민권 운동]

자유주의 세계인들에게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라는 이미지 뿐만 아닌

점차 세계 선진시민들의 민주국가 이미지가 생겨나게 됬는데

1950년대부터 미국내에서는 민주주의 , 인권운동도 활발히 벌어집니다

 

1 , 2차 세계대전때부터 흑인 , 유색인종들도 많이 미군에 입대하기 시작하며

미국내에서 흑인 , 인종차별등이 점차 완화되가던 분위기였는데

그럼에도 전후 50년대까지만 해도

백인 주류사회 , 백인사회내에서 흑인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은 여전했고

당시 미국정부의 정책 역시

 

'분리하되 평등하게'

 

였는데 정부까지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있었고

흑 , 백인들은 학교도 따로 다녀야 하고 버스 좌석도 흑인 전용이 따로 있었기에

이런 불평등에 분노한 흑인들은 점차 인권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흑인전용 급수대에서 물마시는 흑인

 

1955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는

퇴근하며 버스를 타던 중

백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요구받았고

그녀는 자신이 흑인 좌석에 앉아있기에

백인에 양보할 이유할 이유가 없다며 이를 거부하다

버스기사는 그녀를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은 그녀를 흑백분리에 관한 몽고메리시 조례를 위반했다는 혐의로 체포합니다

 

로자 파크스

 

이로 인해 분노한 흑인들은 버스에 타지 않을 것을 결의하며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보이콧=불매 , 거부 운동) 운동을 시작했고

흑인 교회들 역시 버스탑승을 거부하기로 결정하고

흑인들은 직장까지 걸어다닙니다

 

[마틴 루터 킹]

또 향후 투쟁방안을 논의하려 몽고메리 진보협회가 결성됬는데

회장으로 흑인목사였던 '마틴 루터 킹' 이 뽑히게 됬고

그의 이름은 흑인 민권운동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마틴 루터 킹>짐승 같은 압제의 발길에 걷어차이고 사는 건 지긋지긋하다고 ,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할 때가 왔다.

 

앨라배마주는 이로 인해 버스보이콧 운동 참여자 , 킹 목사등을 들을 체포하는 등

강경한 탄압을 시작했는데

오히려 이로인해 흑인 민권운동이 더욱 확산되었고

전국적으로 흑인 민권운동이 시작됩니다

 

1955년부터 흑인들은

백인 전용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는 '싯인 운동 Sit in' 을 벌였는데

백인 요리사들은 흑인에게 음식을 내오길 거부했고

이에 흑인들은 음식이 나올때까지 백인 식당에서 떠나지 않고 앉아있습니다

 

싯인 운동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여러 흑인사회의 차별철폐 , 민권운동이 전개됬고

결정적으로

1963년 흑인 민권운동의 지도자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워싱턴 행진을 시작했는데

25만명이나 되는 흑인 , 흑인민권운동을 지지하는 백인 들이 모여서

흑인노예해방을 시행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동상앞에 도착해 모였고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3년 8월 28일 링컨 기념관 발코니에서 연설을 시작합니다

 

링컨 동상이 있는 워싱턴 앞에 집결한 시위대와 마틴 루터 킹 목사

 

<마틴 루터 킹의 연설>우리 역사에서 자유를 위한 가장 훌륭한 시위가 있던 날로 

기록될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백 년 전 , 한 위대한 미국인(링컨)이 노예해방령에 서명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곳이 바로 그 상징적인 자리입니다.

그 중대한 선언은 불의의 불길에 시들어가고 있던 수백만 흑인 노예들에게

희망의 횃불로 다가왔습니다.

그 선언은 오랜 노예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즐겁고 새로운 날들의 시작으로 다가왔습니다.

 

...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나의 벗들이여 ,

어제와 오늘 우리가 고난과 마주할 지라도 ,

 

나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 내린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솟아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옛 노예의 후손들과 옛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불의의 열기에,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는 저 미시시피주 마저도 ,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로 변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의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전세계에 방송되고 미 전역으로 알려지는 명연설이 되었고

 

(불의에 맞선 수도자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생각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민권운동으로

196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과격파 흑인들을 어르고 달래며 비폭력운동을 펼칩니다

 

그러다 1965년부터 과격파 흑인 운동가 말콤 X 를 만나며

과격파와 연대를 꾀했으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8년 과격파 백인단체 인물에게 암살당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과 말콤 X(오른쪽)

 

수많은 사람들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죽음에 슬퍼했고

미국 전역에서는 그의 죽음에 분노한 흑인들의 폭동이 일어나

도시 중심부에서 방화와 건물과 차량파괴 , 폭력시위등이 벌어집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흑인들의 민권운동은 헛되지 않아

1965년 흑인들은 참정권 , 투표권을 획득하고

미국 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완화하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백인 우월단체 KKK단원을 치료하는 흑인 의료진들

 

<라봉봉>참 신기한게 현대시대부터는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겪은 사람들이

생존해있고 또 여러 사건 , 인종차별들도 먼 과거의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고

오늘날의 평화와 인권운동도 선대인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근데 미국은 링컨 대통령도 그렇고

유명 , 주요 인사들이 총에 의해 암살당하는게 계속해서 일어나서

총기문제가 심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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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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