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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일생과 박근혜 정부의 탄생>

[영애 박근혜]

[퍼스트레이디 박근혜]

[최태민과의 부적절한 관계]

[6억]

[육영재단과 보물섬]

[선거의 여왕]

[수첩공주]

[이명박과의 갈등]

[새누리당]

[최초의 여성 대통령]

<라봉봉>

 

[영애 박근혜]

이명박 정부 다음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여당인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통령이고

이에 이명박 , 박근혜 10년을 이름을 합쳐서 '이명박근혜' 정권이라고도 부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이 된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남긴 인물로서

현재 문재인 대통령 이전 가장 최근 대통령이었고

일단 그녀의 성장 배경 , 대통령 이전 일생 이야기입니다 ..

 

박근혜는 대한민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자

경제발전 , 군사독재로 유명한 박정희 대통령의 딸로서

평생동안 그녀의 등 뒤에는 아버지의 후광 및 독재자의 딸이라는 비난이 따라다녔고

이로 인해 많은 이익을 얻기도 하고 많은 피해를 본 인물이기도 합니다

 

박근혜는 1952년 대구에서 아직 대통령이 되기전의

박정희와 육영수의 딸로 태어났고

아버지가 5.16 군사정변을 일으키고 한국의 대통령 , 절대권력자가 된 이후부터는

'영애(남의 딸의 높임말)' 로 불리며

사실상 대한민국의 '공주' 로서 성장하는데

당연히 아버지는 대한민국의 '왕'이나 마찬가지였던 무소불위의

군사 , 독재 권력자였기에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1960년 청와대에서 박정희 일가

 

한창 산업화를 시키며 과학자 , 공학자를 우대하던

박정희 정부 시기의 대한민국이었고

이에 박근혜는 1970년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하는데

어느 간 큰 교수가 박정희 딸에게 낮은 학점을 주겠냐 싶이

졸업시 학점은 상당히 높았지만

 

대통령이 되기전 정치인 시절

이산화가스 등

이상한 말들을 하며 여러 과학 지식이 뽀록남으로서

사실상 아버지의 영향때문에 자신과 무관한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퍼스트레이디 박근혜]

그녀는 서강대 졸업후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떠났으나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북한이 사주한 테러리스트 문세광의 흉탄에 맞고 사망해

만 22세의 나이로 공석이 된 퍼스트레이디 자리를 대신합니다

 

실제 육영수 여사는 온화하고 현명한 성품으로서

'현모양처' 의 대명사같은 인물이고

국민적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는데

이러한 모습 , '국모' 같은 이미지로

박정희가 온갖 나쁜짓 , 군사독재를 하는 이미지를 중화시키는 역활도 했고

실제로 박정희나 박정희 일가도

육영수 여사에게 많은 의지를 했기에

육영수 여사 사망후부터는 여색에 빠진다거나

박정희의 자녀들이 이후 마약 , 사이비 종교에 빠진다거나 하는 등

상당히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1960년대 중반 육영수 여사와 박근혜

 

박정희와 박근혜는 육영수 여사 사망이후부터

총으로 권력을 잡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고

권력에 취하거나 이상한 행동에 빠지게 된 것으로 보이며

하여튼 박근혜는 이후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어머니 대신 퍼스트 레이디를 대행하며

여러 외교행사에 참석합니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박근혜

 

단지 그녀의 영애 , 공주적 행태는

이미 20대부터 싹이 나왔다하는데

권위의식이 강했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권력에 취한 그녀는

노인 , 원로 인사들을 모아 행사에 동원시키거나 강연을 하기도 했고

시골의 할머니 , 할아버지들이 박근혜를 향해

 

'영애님 오셨다'

 

하며 큰 절을 올리면

사양하지도 않고 그대로 절을 받았기에

20대의 박근혜가 젊은 시기부터

오만함 , 처세술이 얼마나 떨어지는 사람이었냐는가에 대한 증언들이 있습니다

 

<당시 이를 본 김재규의 탄식>육영수는 물론이고 

박정희도 이런 식으로 노인들의 절을 받지는 않았다

 

[최태민과의 부적절한 관계]

박정희 일가는 육영수 여사 사망 이후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이후 박정희는 여색에 ,

박근혜는 사이비종교에 ,

박지만(박정희 아들)은 마약에 빠져

일가가 파탄이 난 것으로 유명한데

 

어머니를 여의고 멘탈붕괴에 빠진 박근혜에게

최태민이라는 사이비 종교 교주가 접근해서

그녀에게

 

<최태민>육영수 여사가 나에게 빙의되어 '딸을 도와달라' 고 했다

 

라며 접근해 인연을 맺었고

 

1977년 최태민과 박근혜

 

그녀에게 계속해서

당신은 한국의 지도자를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며

희망을 주입시킵니다

 

실제 박근혜는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기 때문에

한국 ,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 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무슨 박근혜를 선덕여왕에 비비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역사에서 선덕여왕은 선하고 현명한 여왕 이미지와 달리

그리 좋은 왕은 아니었고

우유부단하고 무능해서 끝이 좋지않았다는 점이나

백제가 공격해오는데 자장법사의 말을 듣고

황룡사 9층 목탑을 지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선덕여왕과 상당히 유사한 인물이고

선덕여왕은 그녀가 키운 김유신 , 김춘추에 의해 높여졌을 뿐이지

실제로는 최초의 여성왕인거 빼면 암군이었던 인물이기에

저는 박근혜는 대한민국사의 선덕여왕급 인물이라고도 생각됩니다

(단지 박근혜에게는 김유신과 김춘추가 없었다는 점)

 

하여튼 박근혜는 최태민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한국 정치사의 거물이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인터뷰에서는 이런 말들이 나왔습니다

 

<기자>옛날부터 총재님 이야기를 전혀 안 들었나요.

 

<김종필>전혀 안 듣는 친구야.

 

<기자>이러니저러니 해도 박 대통령에게 바른말 할 수 있는 사람은

김 총재밖에 없지 않습니까.

 

<김종필>없어. 내 말 듣지도 않아. 옛날부터 그랬어요.

저희 아버지 어머니 말도 안 들었어.

최태민이란 반 미친놈 ,

그놈하고 친해 가지고 자기 방에 들어가면 밖에 나오지도 않았어.

 

주변사람들도 이 둘의 부적절한 관계에 많이 걱정하며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 검찰 , 경찰청까지

 

'이런 사기꾼이 영애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며 박정희에게 최태민을 잡아들여 처리해야한다 했고

박정희는 1977년 최태민을 거세(성기를 자름) 하라 지시까지 했다고 하는데

이럴때마다 박근혜는 본인이 직접나서서

최태민을 비호하고 지켜주었습니다

 

또 최태민의 딸 최순실은

박근혜와 혈육같은 친분관계를 지녀 이후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로 활동했다 하고

하여튼 박정희 대통령 시기부터 여러 구설수가 있었는데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사망하자

박근혜는 청와대를 나와 민간인 신분으로 살게 됩니다

 

젊은시절 최순실과 박근혜

 

[6억]

민간인이된 이후 전두환에게 박근혜는 6억 , 현재 시세로

수백억 수준을 받았고

이전부터 박정희의 양아들이라 불리며

새로운 권력자가 되던 전두환은 그간 고생했고

조용히 살라는 의미로 그녀 , 여동생에게

위로금적 목적으로 돈을 전달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지금돈으로 수백억 수준이기에 그만큼

박정희 정부가 부패했고 정경유착이 극심했음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이기도 합니다

 

전두환과 박근혜

 

박정희 이후 12.12 사태로 전두환 정부가 들어섰는데

전두환 대통령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그렇다고 박정희처럼 제대로 된 선거를 치룬 인물도 아니었기에

자신의 부족한 정통성을 메꾸기 위해

이전 정권 , 독재자였던 박정희를 비난하며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려 했고

(물론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래도 다 한패라는 생각을 했음)

 

박근혜는 이 시기를

 

'내 인생 최대 암흑기였다'

 

라 말할정도로

박근혜와 전두환의 악연이 시작됬고

단 전두환은 그럼에도 박정희를 깊이 존경했던 인물이기에

실제로 박근혜를 존중하고

불쌍히 여겼고 1980년대는 실제로 그녀에게

그렇게 암흑기는 아니었다 생각됩니다

 

[육영재단과 보물섬]

청와대에 나온 후 박근혜는

은둔의 시기를 보냈고

1980년대에는 부모님 이름을 딴

정수장학회 , 육영재단 에서 활동했고

나름 문화에 일가견이 있었던 그녀는

특히 육영재단에서 발행한 월간 만화잡지인

'보물섬' 을 발행했는데

평소 박근혜는 '땡땡의 모험' 이라는 프랑스-벨기에 만화를 좋아하는 인물로도 유명했고

이 보물섬 잡지는 한국 만화가들의 등용문이 되어서

아기공룡 둘리 , 달려라 하니 같은

1980년대 명작 만화들이 나오고

국산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게 됩니다

 

달려라 하니의 경우는 특히

하니 엄마가 육영수의 올림머리 , 외모와 흡사한 것으로도 유명해

박근혜와 연관있는 만화라고도 이야기 되고 있고

 

육영수 여사와 같이 올림머리를 한 하니엄마 , 이후 올림머리는 박근혜의 상징 머리패션이 되었습니다

 

한창 이런거 찾아볼때

나름 박근혜의 의외의 모습으로 생각된 기록이었습니다

 

(뭐 그림이야 만화가들이 그린거지만

나름 판을 깔아주는 것도 중요하고

일종의 이사장 , 구단주같은 거랄까요 ?)

 

그러나 육영재단 역시 박근혜-최태민 위주로 운영됬고

박근혜는 이곳에서도 권위적 , 영부인같은 모습을 유지했다 합니다

 

[선거의 여왕]

하여튼

육영재단 운영 등을 하며 은둔생활을 하던 박근혜는

민주화가 되고나서 은둔생화를 끝내고 본격적인 정치행보를 시작했고

199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이회창 지지선언을 통해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1998년 자신과 아버지의 본거지이자 아주 강력한 지지기반이었던

대구의 재보궐 선거에 나가서 국회의원이 됩니다

 

(전라도 광주와 경상도 대구는

각각 한국 진보 , 보수계의 난공불락의 성지같은 그런 개념입니다)

 

좀 병맛짤로 유명한 단전호흡하는 박근혜 , 기초체력을 위해 이런 수련을 10년간 했다는데 박정희가 평소 도복입고 무예수련을 했다는 것이 유명해서 아버지를 따라한 느낌이고 근데 그런데도 사이비 느낌이 좀 납니다

 

처음 정치인 박근혜의 정치 입지는

아버지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보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유도하기 위한

얼굴마담에 불과했지만

계속해서 민주당의 승리 및 여러 한나라당의 악재가 겹치며

점차 그녀는 한나라당의 핵심주자로 커갔는데

 

그녀가 보수정당의 핵심인물이 된 가장 대표적 사건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 였습니다

 

그녀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핵심인물중 한명이었고

결국 민주당계 내부의 분열등의 악세까지 겹쳐

노무현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탄핵되나

국민들의 거센 반발 및 헌법재판소의 부결로 최종적으로 탄핵이 취소되고

한나라당은 역풍을 맞아 노무현과 열린우리당(민주당)에 두드려 맞습니다

 

한나라당은 탄핵역풍을 받고 위기에 몰리지만

박근혜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어

한나라당 현판을 들고

길거리로 나와 천막당사를 설치했고

뭔가 있어보이고 잔다르크같이 비장해보이는 그녀의 모습 , 이미지 정치에

한나라당은 기사회생했고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299석 중

180~200석까지 노리다

152석을 얻게 됬고

당시 80석이라도 확보하면 다행이라 생각하던 한나라당은

박근혜의 천막 투혼에 기대를 훨씬 웃돈 121석을 얻으며 겨우 살아납니다

 

박근혜 리즈시절 , 무슨 십자가 진 느낌이나 느와르 분위기도 나고 한국 이미지 정치 끝판왕급의 씹간지 포스를 풍기고 있습니다

 

박근혜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오히려 이런 모습을 신비주의 마케팅 , 영애공주마케팅으로 이용하며

어그로와 아버지 후광을 활용하는데 능숙한 인물이었다 보여지고

천막당사 이후에도

2006년 한나라당 오세훈 서울시장 지원유세에 참가하던 도중

괴한에게 커터칼로 얼굴을 피습당했는데

 

박근혜 커터칼 피습 사건 , 아무리 정치인들이 싫어도 이런것은 하면 안됩니다 ..

 

쓰러진 박근혜는 병원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한 말은

 

'대전은요 ?'

 

였고

자신의 안위보다 선거를 걱정하는 이런 모습은 엄청나게 유명해졌고

이러한 모습들은 그녀 개인에게는 불행이었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엄청난 동정표를 받았고

이로인해 그녀는

 

'선거의 여왕'

 

이라 불립니다

 

[수첩공주]

박근혜는 참여정부 , 노무현 정부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서 참여정부의 모든 정책에 반대하며

참여정부를 가열차게 공격했고

이로인해 그녀는 한나라당을 장악하고 가장 유력한 보수계 대권주자로 떠오르는데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똑같이 돌려받습니다 ..

 

하여튼 그렇다고 정치인 생활을 제대로 했냐는 것에대한 논란도 많았고

다른 정치인들과 제대로 된 대화도 못하고

항상 수첩을 들고다니며 수첩에 적힌 내용만 읽는다고

'수첩공주' 라는 별명도 생기고

그녀에게 수첩은 고집과 강경 , 불통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수첩에 메모하는 박근혜

 

유머짤로 유명한 국회에서 박근혜의 볼펜세우기 장난(ㅋㅋㅋ)

 

사실 박근혜가 말도 잘못하는 정치인이라고 노골적으로 비난받기도 하지만

다 잘하는 사람도 없는 것이고

나름 박근혜도 대통령 이전 시기

아버지 후광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보수계를 결집시키고

기사회생시켜 보수계 역시 그녀에게 여러 빚을 졌다 생각하는데

 

그녀는 자신의 이런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알았고

아버지 후광을 이용해 한나라당에 버프를 주는

게임으로 치면 '크루세이더(여)' 같은 캐릭터나

'치어리더' 같은 인물이었다 생각되고

실제 그녀를 미화할때 비유되는 

프랑스의 애국소녀 '잔다르크' 역시

실제 역사에서 전술보다는

여자 , 소녀라는 신선한 이미지로 프랑스군을 결집시킨

'버퍼' 로 활동한 것도 있어서

 

박근혜 역시 한나라당 대표 시절 나름

자기 할일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되고

이로 인해 보수계 대표로 대권주자가 되었다 생각됩니다

 

단지 대통령은 '치어리더' 가 아닌 '리더' 라는 막중한 , 책임을 져야하는 자리이고

그런 자리를 그녀가 감당해내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명박과의 갈등]

하여튼 이후 17대 대선에 출마를 선언하고

당내 이명박과 경선을 치뤘는데

 

노무현 정부 말기는

10년 민주당 정권에 대한 국민적 피로 및

여당의 분열과 막장사태로 국민들이 피로를 느끼고 있던 시기였기에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누가 나와도 대통령이 된다 생각할 정도로 압승분위기였기에

한나라당 경선은 본선보다 더 치열했고

한나라당의 박근혜와 이명박은 진흙탕싸움급의 싸움을 합니다

 

당내 지지도는 박근혜가 ,

여론은 이명박이 우세했는데

이명박은

박근혜의 온갖 공격에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

 

라는 유명한 발언을 했고 (ㅋㅋㅋ)

이는 디시 합성갤러리에서 정치인 합성 음성짤로 사용되어

아주 유명한 정치인 , 이명박의 대표 명대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 , 이띵박 대통령도 은근 웃긴짤이 많습니다

 

하여튼 점차 박근혜에게도 불리한 사건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혈투끝에 이명박은 여론지지율을 앞세워 박근혜를 누르고

경선에서 승리해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되고

이후 민주당 정동영 후보를 2배차이급으로 아주 손쉽게 누르고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후에도

친이계(친 이명박)와 친박계(친 박근혜)로 갈라져 혈투를 벌이며

공천 학살을 주고받았고

결국 이러한 모습때문에 이후에도 박근혜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자신의 여당 , 친이계들에게 두드려 맞고 탄핵이 되게 됩니다

 

하여튼 이명박은 평생 영애나 공주로 살았던 박근혜와 달리

흙수저에서 현대건설 사장 , 서울시장 , 대통령까지 자수성가 코스를 밟은 것도 있기에

도덕성 , 인권에서는 욕을 먹으나

나름 경제나 문화정책에서는 평타 , 상타를 쳤다 이야기 되고 있고

욕도 많이 먹었지만 이시기 한나라당도 무난한 여당으로 이어갔고

높은 지지율로 퇴임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한나라당은  절대 다수여당으로 불어났으나

그럼에도 박근혜의 존재 및 친박 , 친이계의 갈등에

한나라당은 초거대여당임에도 기묘한 동거를 하고 있었고

박근혜는 꾸준히 이명박 대통령과 정면으로 반목하는 모습을 보이며

차기 대권주자로 이미지를 굳혀나갑니다

 

[새누리당]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친이계의 나경원후보가 무소속(민주당계) 의 박원순 후보에게

패배하고 이시기부터 친이계가 힘이 급격히 빠지며

이명박 대통령은 레임덕(정권 말기 정치인들 힘이빠지는 현상)이 시작됬고

여러 악재 , 의혹속에 한나라당은 점차 붕괴되는데

이런 당의 위기를 타개하려

다시 박근혜에게 힘이 몰리고 있었고

박근혜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저

박근혜 비대위는

정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당색을 파란색에서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빨간색으로 바꾸는 파격적인 변화를 보여주며

한국 사회 , 한국 보수정당은 '레드 컴플렉스' 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됩니다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로고 , 새누리당은 이후 자유한국당으로 , 자유한국당은 현재 미래통합당인데 당명을 백날바꿔도 정치인들이 스스로 쇄신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인식은 아무런 변함이 없고 제발 쓰기 복잡하니까 민주당이랑 미통당은 이름좀 그만바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새누리당의 붉은 점퍼 , 사실 북한도 당은 공산당이지만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다하고 실제로 한국 보수정당은 북한 강경파와 닮은 구석도 있다 생각됩니다

 

그런 가운데 19대 총선은 민주통합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박근혜는 유력한 대권주자로 완전히 떠올랐고

 

이러한 그녀가 18대 대선에 출마하자

새누리당 여러 후보들은 모두 그녀의 이름에 눌려

당내 경선은 박근혜의 싱거운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결국 2012년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대결을 하는데

그녀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

 

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나옵니다

 

18대 대선 포스터

 

당시 민주당 , 한국 진보계도 선임 대통령이 모두

이명박 정부 시기 사망했고 이명박 정부의 탄압을 받기도 했기에

이명박 정부나 보수정권을 거의 악의 축으로 생각하는 반정부 감정이

극심해있던 상황이어서 똘똘 뭉치려 했고

많은 표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친구였던 문재인 후보에게 몰아집니다

 

그러나

이전 민주당이 10년을 했으니

보수정당도 10년은 해야한다는 심리적 안정감 및

이명박이 나름 경제에서는 선방했다는 점으로 인한 선임 대통령 버프 및

과거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옛날 기성세대의 추억과 향수 등으로

박근혜는 51.6% 라는 득표를 받고

48.0% 라는 득표를 받은 문재인 후보를 간신히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됬고

특히 51.6% 이라는 516 숫자는

그녀의 아버지가 군사정변을 일으킨 5월 16일 , 5.16 군사정변과 같은 숫자라

여러 회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18대 대선 구도 , 노란색 문재인 붉은색 박근혜 , 박근혜 압승같아보이지만 수도권과 서울 인구가 어마어마해서 나름 비슷비슷한 득표수였습니다

 

화제가 된 51.6% 득표

 

18대 대선 TV 토론회에서는

진보 , 극좌적 성향이 강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의 행동도 크게 화제됬는데

애초에 새누리당 VS 민주당 구도였기에

소수정당인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가 당선될 확률은 없었지만

 

이정희 역시 당선목적이 아닌 당홍보 및 박근혜를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네거티브 전략(상대의 약점이나 비리를 폭로하는 전략) 을 사용하려 나온 것이 있었고

여성후보였던 그녀는 박근혜 후보에게

노골적으로 전두환에게 받은 6억은 어떻게 됬냐 묻던가

박정희의 일본 창씨개명 이름인 다카키 마사오등을 거론하거나

 

'박근혜 떨어뜨리려 나왔다'

 

라고 말하는 등 여러 네거티브 토론을 하며

큰 화제가 되었고

외국 포멧을 가져온 tvN의 SNL 이라는 풍자 , 개그 프로에서는

이러한 후보들의 대선 과정을 텔레토비로 풍자하며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여의도 텔레토비' 로 화제가 된 SNL 의 정치 풍자 개그

 

하여튼 당시 대선은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 역시 여러 위기의 상황이었기에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결집력을 보여줬지만

경상도의 철옹성 , 콘크리트같은 지지 및

이전 향수 , 이명박 버프등으로 아슬아슬하게 대통령이 되었고

그녀는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이고

아버지와 딸이 대통령이 되는 부녀 대통령이기도 했기에

정치 세습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초기엔 여러 기대감 , 신선함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당선 당시 신문기사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박근혜

 

<라봉봉>박근혜 대통령은 원래 그냥 공주 , 유신이나 독재자의 딸 이미지가 강했는데

최순실 게이트 및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때

최태민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급격히 드러나게 됬고

그녀의 탄핵배경에는 이러한 것들이 엮여있었습니다

 

사실 80살 할배가 20대 여자랑 사귀는 경우도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종종 있고

이러한 경우도 골드디거(꽃뱀) 이나 슈가대디(스폰서 아재) 라는 말이 있어

서양에서도 인식이 좋지 않은 편이고

보통 여자가 돈을 보고 접근한다 이야기하는데

 

백번 타협해서 양 당사자가 합의를 한경우면

본인들이 좋다는데 함부로 떨어트리기도 어려운게

남녀 , 치정관계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나이차이가 나던 재산차이가 나던간에

이런것은 사실 둘째 문제고

진정 사랑하고 '떳떳하냐' 는게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데

 

박근혜는 최태민과의 관계에서

사회적으로 떳떳하지 못했고

이에 사람들은 이 관계를 '부적절한 관계' 라 표현하고 있고

저는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하고 떳떳하지 못하면

음란과 불결만이 남을 뿐이겠지요 ..

 

이미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여러 어두운 일화 및 화려한 일화등이 그녀를 따라다녔고

현재는 탄핵후 수감되어 옥살이를 하고있는 인물인데

 

사실 그녀가 박정희의 딸이 아니었으면

이런 기구한 인생을 살았을까도 싶고

이후 쓸 이야기지만

 

현재는 이미 정치적 시체이자 금치산자가 된 그녀이기에

현재 박근혜에 대한 노골적 비난 , 비하와 다르게

딱히 더 노골적으로 비하하고 싶지도 않고

평생 공주처럼 살았을 뿐

사람들의 관계에서 오는 진정한 인간관계도 없고

불쌍한 삶을 살은 인물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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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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