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왕 , 효성왕 , 경덕왕>
[성덕왕의 친당외교]
[당나라에 미인을 바친 성덕왕]
[향가의 유행]
[헌화가]
[효성왕]
[마지막 황금시대 경덕왕]
[녹읍부활과 한화정책]
[찬기파랑가와 안민가]
[제망매가]
<라봉봉>
[성덕왕의 친당외교]
성덕왕이 아들없이 사망하자
신문왕의 둘째아들 김흥광(혹은 김융기)이 왕위를 이어
신라 33대왕 성덕왕이 되었습니다
성덕왕은 통일신라의 세종대왕 같은 명군이었고
뛰어난 정치를 하며
통일신라를 안정기에 이끌고
태평성대를 열었습니다
당나라와의 관계도 회복되어
46차례나 당나라에 사신을 보냈고
성덕왕은 정전 제도를 실시해
일반 농민들의 토지 소유를 인정했고
이로인해 신라는 많은 세금을 거둘 수 있어
국가 재정이 안정됩니다
[당나라에 미인을 바친 성덕왕]
성덕왕은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서
미인 두명을 바쳤습니다
한명읜 포정 , 한명은 정완이라는 여자로서
두 여인이 떠날때 성덕왕은
옷과 기구와 노비와 수레와 말을 주어서
예장을 갖추어 보냈습니다
신라에서 미인을 보내오자 당현종은
<당현종>너희들이 모두 왕의 내종자매(고모의 딸)들로서
친척과 이별하고 고국을 떠나 왔으니
나는 차마 머물러 있게 할 수가 없다
라고 말하고는
선물을 주어 돌려보냈습니다
나당전쟁은 사실 당나라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고
당나라는 서역지역과 고구려지역에서 일어난 발해도 신경써야했기에
성덕왕대부터는
당나라는 나당전쟁에 대해 더이상 신경쓰지 않고
신라와 다시 우호국화 되었고
신라를 예의를 아는 모범생 국가로 인정해주게 됩니다
당나라는 신라에서 조공을 하며 여러 물자를 보내오자
이에 예에 갖추어 보답하였고
조공무역 질서가 확립됩니다
외국에서는 동아시아의 조공질서를
식민지배 , 지배국과 상국의 질서라 확대해석하기도 하지만
실제 조공질서는 당시 중국이 다방면에서 선진국이었기에
다른 나라들이 조공품을 보내면 중국은 그에 맞는 대가의 물품들을 하사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고 양쪽 다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단지 그것마저 굴욕이라 볼 수도 있다면 있는 것이고
하여튼 당시 당나라는 선진 문명국으로서 오늘날 미국이나 마찬가지였고
국제통화국 개념이었기에 이런 당나라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 및
'한자 문화권' 이 중국 , 한국 , 일본 등 동아시아에 형성되었습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신라가 조공을 보내오자
결국 당나라는 신라의 동아시아의 입지를 인정하고
당황제는 나당동맹시기 약속대로 신라에게 패강(대동강) 이남의 땅을 주라는 조칙을 내렸고
성덕왕대에 이르러 신라는 국제적으로 백제 지배를 완전히 승인받게 됩니다
성덕왕대 신라는 여러 물자들이 풍부하고
태평성대를 이루었습니다
[향가의 유행]
삼국시대 말기부터 시작되고
통일신라의 전성기대부터
'향가' 가 크게 유행했는데
향가는 한국 고유의 민요적 내용이 담긴 서정시였습니다
향가 , 시조는
한국의 고유의 문학으로서
일반적 문학과 달리 음악성 , 리듬감이 중요시되며
서정적(정서를 듬뿍 담음) 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헌화가]
성덕왕대에
김순정이라는 인물이
아내였던 수로부인과 함께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길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바위 봉우리가 병풍처럼 바다를 둘러싸고 있었고
높이가 천길이나 되는 절벽이었는데
그 절벽 위에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수로부인은 그것을 보고 좌우사람들에게
<수로부인>저 꽃을 꺾어다 줄 사람은 없는가 ?
하고 물었습니다
따르는 사람들은
<따르는 사람들>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곳입니다
하고 모두 사양했습니다
그 곁으로 한 늙은이가 암소를 끌고 지나가다가
수로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어왔고
또 노래를 지어 바쳤습니다
그 늙은이는 어떤 사람인지 알수 없었습니다
<노인의 노래 , 헌화가>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효성왕]
성덕왕이 사망하자
맏아들은 이전에 죽었기에
성덕왕의 둘째아들 김승경이 왕위를 이어
신라 34대왕 효성왕이 됩니다
당현종은 당시 신라가 '군자의 나라' 라 불린다며
후하게 대접했고 당과의 우호관계가 역시 이어집니다
효성왕 시기
파진찬 영종의 딸이 효성왕의 후궁으로 들어왔는데
효성왕은 그녀를 몹시 사랑해서
은총이 날로 심했고
왕비가 이를 질투해서
자기 친척과 함께 그녀를 죽이려합니다
이에 영종은 왕비와 그녀의 친척무리들에게 원한을 갖고
반역을 하려다가
처형됬습니다
[마지막 황금시대 경덕왕]
효성왕이 아들없이 사망하자
성덕왕의 셋째아들
김헌영이 왕위를 이어
신라 35대왕 경덕왕이 되었습니다
경덕왕대는 유독 설화가 많은데
경덕왕의 치세는 문무왕대부터 이어진
통일신라 전성기 , 황금기의 마지막 시대였고
점차 신라는 쇠락기에 접어들어
이야기속에 어떤 쓸쓸함이나 슬픔이 있습니다
경덕왕 시기
곡식이 귀해 백성들이 굶주리자
웅천주의 향덕이라는 사람은
가난하여 아버지를 봉양할 수가 없었으므로
자기의 다리 살을 베어 아버지에게 먹였습니다(이를 '할고' 라 합니다)
이 소문을 듣고 경덕왕은 그에게 선물을 후하게 주고
효자문을 세워 표창했습니다
[녹읍부활과 한화정책]
경덕왕은 관리들의 월급제들을 폐지하고
다시 녹읍을 주었고
녹읍부활은
신라 왕권이 약화됨과
신라 귀족권이 다시 강화됨을 보여줍니다
또 경덕왕은 신라의 고유어나 지명들을
적극적으로 당나라식으로 바꾸거나 한자화시키는 한화정책을 펼쳤습니다
(한화정책=왕권강화책 , 녹읍부활=귀족 회유책)
[찬기파랑가와 안민가]
경덕왕대에는 향가가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경덕왕은 길거리가 보이는 누각 위에 올라서
좌우 측근들에게 말하기를
<경덕왕>누가 길거리에서 위의(위엄) 있는 승려 한 사람을
데려올 수 있겠느냐 ?
라고 말했고
이때 마침 몸가짐이 깨끗한 고승 한분이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신하들은 그를 데려다 보이니
경덕왕은
<경덕왕>내가 말하는 위의(위엄)있는 승려가 아니다
하고는 물리쳤습니다
다시 한 승려가
기워 꿰맨 누더기 옷을 입고
앵통(스님이 등에 지고다니는 통) 을 지고 오자
경덕왕은 그를 보고 기뻐하며
누 위로 맞았는데
스님의 앵통속에는 차마시는 도구들이 들어있을 뿐이었습니다
경덕왕이 묻기를
<경덕왕>그대는 누구요 ?
하니
스님이 대답하기를
<스님>충담(충담사 , 충담스님) 이옵니다
이에 경덕왕은
<경덕왕>어디서 오시오 ?
하니
<충담사>소승은 미륵세존에게 차를 다려 공양하는데
지금도 차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이에 경덕왕은
<경덕왕>과인도 차 한 잔을 줄 수 있소 ?
하니
충담사는 곧 차를 다려 경덕왕에게 드렸는데
차의 맛이 이상하고 찻잔 속에는 특이한 향이 풍겼습니다
경덕왕은 차를 마시며 말하기를
<경덕왕>짐이 일찍이 듣기로
스님이 기파랑(신라의 화랑)을 찬양한 노래(찬기파랑가) 가
그 뜻이 매우 높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하오 ?
이에 충담사는
<충담사>그러하옵니다
이에 경덕왕은
<경덕왕>그렇다면 짐을 위해
백성을 편안히 다스릴 노래를 지어주시오
하니 충담사는 즉시 왕명을 받들어 노래를 지어바쳤습니다
경덕왕이 그를 아름답게 여겨
왕사 , 왕의 스승 스님으로 봉하려 했지만
충담사는 두번 절하고 굳이 사양하며 받지 않았습니다
<찬기파랑가-충담사>
(구름을) 열어 젖히고
나타난 달이
흰구름 좇아 떠가는 것이 아닌가?
새파란 냇물에
기파랑의 모습이 있도다
일오천 조약돌에서
기파랑이 지니신
마음 끝을 따르려 한다
아아 ! 잣나무 가지 드높아
서리도 덮지 못할 화랑의 우두머리시여
<안민가-충담사>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요
백성은 어린아이라고 하실지면
백성이 그 사랑을 알리라
꾸물거리며 살아가는 물생(物生)에게
이를 먹여 다스린다
이 땅을 버리고 어디 가려 할지면
나라 안이 유지됨을 알리이다
아아 ,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할지면
나라 안이 태평하리이다
[제망매가]
아름다운 충담사 스님의 두 향가였고
이외에도
월명사라는 스님은 일찍 죽은 여동생을 기리기 위해
재를 올리고 향가를 지어 제사지냈는데
문득 세찬 바람이 불어 종이돈을 날려
서쪽(서방세계=극락정토=천국) 으로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 향가는 한국 서정시의 절정이라 불리는
죽은 누이를 기리는 노래 , 제망매가였습니다
<제망매가>
생사의 길은
여기 있으매 두려워지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어찌 갑니까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는구나
아아 미타찰(극락 , 천국)에서 만날 나는
도 닦아 기다리련다
<라봉봉>생각해보니 이전 신라사 이야기를 쓰면서
어찌보면 가장 중요할수도 있는
신라인들의 영혼과 정신을 상징하는 향가를 깜빡했던게 참 아쉬웠고
오랜만에 한국 시가를 보니
참 우리나라 문학과 음악은
가슴이나 뼈가 '사무치도록' 슬프고 좋은 느낌이 있습니다
통일신라의 번성속에
신라인들은 태평성대와 사랑 , 그리움을 노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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