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공왕 , 선덕왕 , 원성왕 , 소성왕 , 애장왕 , 헌덕왕>
[여자로 태어나야 했을 남자아이]
[살해당한 혜공왕]
[에밀레종]
[선덕왕]
[홍수로 왕이 되지 못한 주원]
[원성왕의 독서삼품과 실시]
[소성왕때 신라에 온 코끼리]
[살해당한 애장왕]
[헌덕왕대의 신라의 혼란]
[김헌창의 난]
<라봉봉>
[여자로 태어나야 했을 남자아이]
경덕왕의 성기 길이는 약 20cm 였는데
아들이 없으므로 왕비를 폐하고
후비 만월부인과 정을 통합니다
하루는 경덕왕이 표훈대덕(표훈 스님 , 대덕=높은 승려 , 대사) 을 불러 말하기를
<경덕왕>짐이 복이 없어 아들을 두지 못했으니
원컨대 대덕께서는 상제께 청하여
아들을 두게 해주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표훈대덕은 하늘에 올라가 천제(하느님) 에게 고하고 돌아와서 아뢰기를
<표훈대덕>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딸을 구한다면 가능하나
아들은 합당하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경덕왕은
<경덕왕>원컨대 딸을 바꿔 아들로 해주시오
라고 말했고
표훈이 다시 하늘에 올라가 청하자
상제는
<하느님>될 수는 있지만 아들이 되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표훈이 다시 땅으로 내려가려 하자
상제는 다시 표훈을 불러 말하기를
<하느님>하늘과 사람사이를 어지럽게 할 수는 없는데
지금 스님은 마치 이웃마을처럼 왕래하면서
천기를 누설했으니 이후로는 다시 다니지 말라
고 했습니다
표훈이 내려와 경덕왕에게 하느님의 말을 전하며 달랬지만
경덕왕은 그럼에도
<경덕왕>나라는 비록 위태로울지라도
아들을 얻어서 뒤를 잇는다면 족하겠소
라고 했습니다
이리해서 만월왕후가 태자를 낳으니
경덕왕이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태어난 태자(훗날 혜공왕)는
여자로 태어날 아이가 남자로 태어났으므로
돌때부터 왕위에 오를때까지
언제나 여자들이 하는 장난을 하고
비단주머니 차기놀이를 좋아했습니다
[살해당한 혜공왕]
경덕왕이 사망하자
그의 첫째아들 김건운이 왕위를 이어
신라 36대왕 혜공왕이 됩니다
혜공왕은 8살의 어린나이에 즉위했기에
태후가 섭정했고
이같은 전설 등 혜공왕 시기부터 신라는 혼란에 빠집니다
결국 표훈대덕의 말대로
나라에 큰 난리가 있게 되었고
혜공왕은 나이가 들자
음악과 여색에 빠져
아무때나 법도를 잃고 놀러다니며
재난과 이변이 자주 발생했기에
인심이 이반되고 사직이 위태로워집니다
신라 귀족 수장직인 상대등 김양상(선덕왕)이
앞장서서 혜공왕 주위의 악당들을 제거할 것을 적극 주장했고
이찬 김경신(원성왕) 이 동조해 군사를 일으켰는데
이 난리에서 혜공왕과 왕비는
군사들에게 살해당합니다
혜공왕이 귀족들에게 살해당한 이후부터 신라 왕권은 대폭 약화되었고
혜공왕 암살 이후 150년동안 신라는
20명의 왕이 살해 , 교체되는 대혼란의 시대가 펼쳐졌고
왕들의 평균 재위 기간이 고작 7~8년이었습니다
표훈대덕 이후로 신라에서는 더이상 성인이 나지 않았다 합니다
[에밀레종]
혜공왕의 아버지 경덕왕은
부왕이었던 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큰 종 , 성덕대왕신종을 만들려 했는데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했고
그의 아들이자 성덕왕의 손자 혜공왕이
성덕대왕신종을 만들기로 합니다
성덕대왕 신종을 만들려는데
계속해서 실패를 거듭했고
종이 계속해서 망가지자 일전이라는 종 책임자는
엄청난 비난을 받고 고심에 빠져있었습니다
당시 종을 만들기 위한 시주(모금) 하러 다닌 스님은
한 가난한 집에 들렸는데
과부(남편을 잃은 여자) 아낙이 아기와 둘이 살고 있었고
과부 아낙은
<과부 아낙>마음같아서는 시주하고 싶지만 있는 건
갓난아기 뿐이네요
하고 아기라도 시주받아가겠냐는 투로 말했습니다
스님은 다시 다른집으로가서 열심히 시주를 받았는데
종이 도저히 완성되지 않자
스님은 결국 점을 쳐보니
'받아올 시주를 받아오지 않았다'
라는 점이 나왔고
시주를 받지 않은 남은 집은 그 과부네집 뿐이었기에
다시 그집에가서 아이를 강제로 데려왔고 (;;)
울음을 삼키며 아이를 쇳물에 던지자
성덕대왕신종이 무사히 완성됩니다
이후 성덕대왕신종은 어머니를 원망 하는 아이의 소리처럼
에밀레 , 에밀레 하고 울었기에
에밀레종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선덕왕]
혜공왕이 반란중 살해당하자
내물왕의 10대손 김양상이 왕위를 이어
신라 37대왕 선덕왕(선덕여왕과 한자가 다름)이 됩니다
(혹은 김양상이 쿠데타를 일으켜 혜공왕을 살해했다 함)
그는 같이 군사를 일으킨
이찬 김경신(원성왕)을 상대등(신라 귀족 수장직) 에 임명했고
마치 정종과 태종 이방원의 관계처럼
김경신이 원성왕이 되기전 잠시 왕위에 올라간
바지사장격 왕이었습니다
선덕왕은 별다른 이야기를 남기지는 못했는데
병으로 점차 위독해지자
다음과 같이 유언했습니다
<선덕왕>과인은 본래 재능이 없고 덕이 적어
왕위에 오를 마음이 없었으나
추대를 피할 수 없어
왕위에 올랐다...
과인은 항상 왕위를 물러나
궁궐 밖에서 살고자 하였으나
많은 신하들이 그때마다 지성으로 말렸기 때문에
매번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금까지 주저하고 있었다
이제 갑자기 병이나서
다시 회복이 어렵게 되었다
죽고 사는 것은 천명에 달렸으니
다시 무엇을 원망하겠는가
과인이 죽은 후에는 불교의 법식대로 화장할 것이며
유골을 동해에 뿌리도록 하라
[홍수로 왕이 되지 못한 주원]
선덕왕이 아들없이 사망하자
내물왕 12대손인
김경신이 왕위를 이어
신라 38대왕 원성왕이 되었습니다
원래 선덕왕이 사망할때
여러 신하들은 의논한 뒤
왕의 조카뻘인 김주원을 왕으로 세우려 했는데
주원은 서라벌(금성) 북쪽 20리 되는 곳에 살았는데
그때 마침 큰 비가 내려서
알천의 물이 불어나 주원이 건너올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누군가>임금이라는 큰 지위는 실로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인데
오늘 폭우가 내리니
하늘이 혹시 주원을 왕으로 세우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
지금 상대등 경신은
전 임금의 아우로서 덕망이 높고
임금의 체통을 가졌다
고 말했습니다
이에 여러 사람들은 의견이 맞아
김경신을 왕위에 올렸고
얼마 후 비가 그치니
백성들은 모두 만세를 불렀습니다
원성왕대부터 태종 무열왕계 왕통이 끊어지고
원성왕대부터 내물왕계 왕통이 신라 왕위를 계승해갑니다
[원성왕의 독서삼품과 실시]
원성왕은 이전까지 혈통 , 활쏘기로만 인물을 선발하려한 것을 극복하기 위해
유교에 능한 자들에 시험을 쳐서 관리를 뽑는 과거제도의 원형인
'독서삼품과' 를 시행했습니다
공부를 매우 잘하면 상등 ,
꽤 하면 중등 ,
좀 하면 하등
이렇게 삼품으로 나눠 등용했고
유교공부를 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 잘한 사람은
이런 절차를 아예 밟지 않고 등용했습니다
점차 신라는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시대가 되자
무인이 아닌 문인들이 필요해졌고
이러한 최초의 시험선발제도 독서삼품과 및
당나라 유학이 유행합니다
[소성왕때 신라에 온 코끼리]
원성왕이 사망하자
원성왕의 태자가 일찍 죽었기에
태자의 아들 , 태손인 김준옹은 원성왕과 함께 궁중에서 자라다
왕성왕이 사망하자 왕위를 이어
신라 39대왕 소성왕이 되었습니다
소성왕 시기
우두주 도독이 사신을 보내서 소성왕에게 말했습니다
<우두주 사신>소와 비슷한 이상한 짐승이 나타났습니다
그 짐승의 몸체는 길고 크며
꼬리의 길이가 석 자 쯤 되고
털은 없고 코가 긴데
현성천에서 오식양 방향으로 갔습니다
당시 신라인들은 이 짐승의 정체를 몰랐지만
이 짐승은 코끼리라 이야기 되고 있고
신라에 장사하러온 이슬람 혹은 남국 상인이
잠시 데려왔다 놓친 코끼리라 합니다
[살해당한 애장왕]
소성왕이 사망하자
소성왕의 태자 김청명이 왕위를 이어
신라 40대왕 애장왕이 되었습니다
애장왕은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했기에
숙부였던 김언승이 섭정합니다
애장왕은 가야산에 해인사를 창건했습니다
애장왕은 나이가 들어가며
점차 숙부에게 벗어나 자체적인 왕권강화시도와 개혁을 하려했지만
이러한 모습에 숙부 김언승은 매우 불편해졌고
결국 김언승은 반란을 일으킵니다
김언승은 군사를 이끌고 궁중에 들어가
애장왕에게 갔고
애장왕의 동생 김체명은 애장왕을 지키다
애장왕과 함께 살해당합니다
애장왕의 시호는 그의 일생처럼
슬프고 씩씩하다는 뜻의 애장 哀莊 이 되었습니다
[헌덕왕대의 신라의 혼란]
애장왕을 살해한 그의 숙부 김언승은
왕위를 이어
신라 41대왕 헌덕왕이 되었습니다
헌덕왕 시기부터는
신라에 여러 흉년이 들었고
백성들은 굶어죽거나 유랑하거나
자식을 팔기도 했습니다
[김헌창의 난]
이러한 혼란의 시기
이전 왕이 될뻔하다 못되었던 김주원의 아들이었던
웅천주 도독 김헌창은
아버지가 왕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역해서
국호를 장안국이라 하고
옛 백제땅에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당시 신라에 불만을 품고있었던
옛 백제인들이 적극 동참했고
위기의 헌덕왕은 군사를 모아 반란을 진압합니다
김헌창은 가까스로 몸을 피해
성으로 들어가 수비했는데
모든 군사가 그들을 포위하고 공격한지 열흘 만에 성이 함락되려 하자
김헌창은 패배를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자결했습니다
김헌창을 따랐던 자는 그의 머리와 몸을 베어 각각 따로 묻었고
성이 점령되자 신라군은 그의 몸을 무덤에서 꺼내 다시 베고
그의 친족과 반역도당 239명을 죽이고 그 백성들은 풀어줍니다
당시까지는 신라가 이런 거대반란을 즉시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과 지방통제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신라는 골품제나 지역차별 등 사회모순을 극복하지 못했고
진골귀족 스스로도 계속해서 왕위다툼만 벌이다
썩어가기 시작했고
이에 지방세력들은 점차 성장 , 독립하며
100년후 후삼국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라봉봉>신라는 삼국통일 이후 오랜 평화를 누렸지만
고인물은 썩는다는 말처럼
왕과 귀족들은 사치와 향락에 , 왕위쟁탈전에 열중했고
점차 세금도 높아지고 백성들은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잦은 전쟁으로 귀족들이 빨리 죽거나
전공을 세워 출세하는 등
신분이동이 그나마 원활했다지만
평화기가 오며 신분이동이 정체되고
신라의 골품제는 점차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됬고
보통 나라들이 망할때 외세에 의해 망한 케이스들이 많지만
신라는 특이하게도 철저하게 자국의 한계 및 내부분열로 망한나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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