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덕왕 , 희강왕 , 민애왕 , 신무왕 , 문성왕 , 헌안왕 , 경문왕>
[흥덕왕과 앵무새]
[해상왕 장보고]
[피를 흘린 희강왕]
[민애왕 VS 김우징]
[악몽을 꾼 신무왕]
[문성왕과 장보고]
[장보고의 죽음]
[헌안왕과 김응렴의 대화]
[못생긴 첫째딸과 결혼한 경문왕의 세가지 이익]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봉봉>
[흥덕왕과 앵무새]
헌덕왕이 사망하자
헌덕왕의 동생 김수종(김경휘) 이 왕위를 이어
신라 42대왕 흥덕왕이 되었습니다
흥덕왕이 즉위한지 얼마 안되어
어떤 사람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앵무새 한쌍을 바쳤는데
오래지 않아 암컷이 죽었습니다
홀로 남은 수컷은 애처롭게 울기를 그치지 않자
흥덕왕은 사람을 시켜 앞에 거울을 걸게했습니다
수컷 앵무새는 거울 속의 비춘 그림자를 보고
짝을 얻은 것이라 생각해
그 거울을 쪼다가
그림자임을 알고서 슬피 울다 죽었습니다
이에 흥덕왕이 노래를 지었다하나
알 수 없습니다
흥덕왕이 즉위한 후 얼마 안되 왕비가 별세하자
흥덕왕은 왕비를 잊지 못하고 슬퍼했습니다
여러 신하들이 표문을 올려 다시 왕비 맞아들이기를 요청했으나
흥덕왕이 말했습니다
<흥덕왕>짝을 잃은 새에게도 자기의 짝을 잃은 슬픔이 있는데
좋은 배필을 잃고나서
어찌하여 무정스럽게도
바로 다시 부인을 얻겠는가 ?
흥덕왕은 끝내 요청을 듣지 않고
시녀들조차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해상왕 장보고]
어느날 흥덕왕에게는 장보고(궁복)이라는 사람이 찾아옵니다
장보고는 당나라로 건너가
무예실력으로 벼슬을 얻고 신라로 귀국했고
돌아와서 흥덕왕에게 말했습니다
<장보고>중국에서는 우리 백성을 노비로 삼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저에게 청해를 지키는 일을 맡기시면
적들로 하여금 사람을 약탈하여 서쪽으로 데려가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청해는 신라해상의 요충지로서 오늘날 전라남도 완도였습니다
이에 흥덕왕은 장보고에게
군사 1만명을 주어서 청해를 지키게 하자
그 뒤로는 바다위 , 해상에서 우리 사람들을 노비로 파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또한 이로인해 해상무역이 활발해졌고
사람들은 그를 해상왕 장보고라 불렀습니다
장보고에 의해 당나라 , 일본에는 신라 무역거점지들이 건설됩니다
하루는 당나라에 갔다가 귀국한 사신 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왔고
흥덕왕은 그것을 지리산에 심게했습니다
차는 이전 선덕여왕때부터 있었지만
흥덕왕대부터 신라에 크게 유행하게 됩니다
흥덕왕은 장보고를 시켜 신라 해상무역을 발전시켰고
스러져가는 통일신라의 명군이었습니다
[피를 흘린 희강왕]
흥덕왕이 사망하자
원성왕의 손자 이찬 김헌정의 아들
김제륭이 왕위를 이어
신라 43대왕 희강왕이 됩니다
이전 흥덕왕이 사망했을때
김제륭은 사촌 김균정과 왕위를 두고 다투었는데
흥덕왕의 동생 김명(민애왕)의 도움으로
김균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균정의 아들 김우징은 장보고가 있는
청해진으로 도망쳤습니다
피를 흘리고 왕이 된 희강왕은
자신을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도와준
김명을 상대등에 임명했지만
얼마후 김명은 마음을 바꾸어
군사를 일으켜 반역해
희강왕의 측근들을 죽였고
희강왕은 자신도 무사할 수 없음을 알고
궁중에서 목을 매서 자결합니다
[민애왕 VS 김우징]
이에 김명은 왕위에 올라
신라 44대왕 민애왕이 됩니다
당시 청해진에 있던 김우징은
민애왕이 왕위를 찬탈해 즉위했다는 소문을 듣고
청해진 대사 장보고에게 말했습니다
<김우징>김명은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고
이홍은 임금과 아비를 함부로 살해하였으니
그들과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다
원컨대 장군의 군사를 빌려
임금과 아비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
이에 장보고는
<장보고>옛사람 말에
정의를 보고도 실천하지 않는 자는
용기없는 자라고 하였으니
내 비록 용렬하나
명령에 따르겠소
라고 대답하고는
군사 5천을 주고 신라수도 서라벌(금성) 으로 향하게 합니다
장보고와 김우징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민애왕은 부랴부랴 왕의 군대를 보냈지만
청해진의 정예강병들을 막아낼 수 없었고
장보고의 청해진군이 달벌(달구벌 , 대구) 에서 대승하고
수도 서라벌에 입성하자
민애왕의 측근들이 모두 흩어졌고
홀로남은 민애왕은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도망쳤고
청해진 군사들은 민애왕을 찾아내 죽였습니다
[악몽을 꾼 신무왕]
장보고와 청해진 군사들의 도움을 받은
김우징은 왕위를 이어
신라 45대왕 신무왕이 되었습니다
오랜 기다림끝에 겨우 왕위에 오른 신무왕이었지만
왕이 된후 곧 병으로 눕게 되었고
자신이 죽인 이홍이 꿈에 나와 신무왕의 등에 활을 쏘았습니다
신무왕은 헐레벌떡 잠에서 깨어보니
등에 종기가 났고
이달 신무왕은 왕이된지 181일만에 사망합니다
[문성왕과 장보고]
신무왕이 사망하자
신무왕의 태자 김경응이 왕위를 이어
신라 46대왕 문성왕이 됩니다
문성왕은
<문성왕>청해진 대사 궁복(장보고)이
일찍이 군사를 거느리고 아버지 신무왕을 도와
선왕의 대적을 격멸하엿으니
그의 공로를 잊을 수 있겠는가 ?
하고는 장보고를 진해 장군으로 임명했습니다
이전 장보고는 문성왕의 아버지
신무왕이 왕이 되기 전 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신무왕 김우징이 난리를 피해
한창 장보고의 청해진에 의탁해있었을 당시
<김우징>나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가 있다
네가 나를 위해 능히 그를 제거해 준다면
왕위를 차지한 후에 그대의 딸을 취하여 왕비로 삼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자
왕위를 이은 문성왕은
장보고의 딸을 둘째 왕비로 삼으려 했으나
조정 신하들은 격렬히 반대합니다
<조정 신하들>궁복은 미천한 출신이니
왕께서 그 딸을 왕비로 삼는 것은 불가합니다
지금 궁복은 섬사람인데
그의 딸을 어떻게 왕실의 배필로 정할 수 있겠습니까 ?
이에 문성왕은 그 말을 따랐습니다
[장보고의 죽음]
이에 청해진의 장보고는
자신의 딸을 왕비로 삼지 않는다고 문성왕을 원망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미 한중일 동아시아 바다의 패권을 잡고
신라 국력을 넘어버린 해상군벌 장보고의 막강한 힘에
신라 조정은 토벌할수도 없고 어찌할줄 몰라했습니다
이때 용감하고 힘이 세다는 무주사람 염장이 와서는
<염장>조정에서 다행히 저의 청을 들어 주신다면
저는 군사 한명도 필요없이
빈 주먹만 가지고 궁복의 목을 베어 바치겠습니다
이에 문성왕은 이 말을 따랐습니다
염장은 거짓으로 나라를 배반한 척하고
청해진에 투항했고
장보고는 평소 힘센 사람을 좋아했기에
아무 의심 없이 염장을 귀한 손님으로 대접하며
함께 술을 마시고 기뻐했습니다
<장보고>잘 왔다
장보고가 술에 취하자
염장은 장보고의 칼을 빼앗아 목을 벤 후
청해진 군사들을 불러서 사유를 설명합니다
<염장>그대들은 신라의 신하인가 장보고의 신하들인가 !
이에 장보고의 군사들은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며
땅에 엎드려서 감히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염장은 군사들을 이끌고 와서
문성왕에게 보고하기를
<염장>이미 궁복을 베었습니다
했고 문성왕은 기뻐하며 염장에게 상을 주고 벼슬을 내렸습니다
바다의 왕자 , 해상왕 장보고의 허무한 죽음이었고
이때부터 신라와 동아시아 바다는 다시 구멍이 생겨
해적이 들끓고 동아시아 세계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김부식의 장보고 평가>
옛말에 말하기를
'나라에 한 사람이 있으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한다'
하였으니 ...
장보고를 두고서
누가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이 없었다고 말하겠는가 ?
[헌안왕과 김응렴의 대화]
문성왕이 사망하자
신무왕의 이복동생이 왕위를 이어
신라 47대왕 헌안왕이 되었습니다
헌안왕이 임해전에서 여러 신하들을 모아서 잔치할때
왕족 김응렴이 15살의 나이로 와서 참석했습니다
헌안왕은 김응렴의 생각이 궁금해서 갑자기
<헌안왕>네가 상당기간 사방을 유학한 바가 있는데
착한 사람을 본 일이 없었던가 ?
하고 물었고
김응렴은
<김응렴>제가 일찍이 세 사람을 보았는데
그들은 착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헌안왕은
<헌안왕>어떤 행위인가 ?
라고 물었고
김응렴은
<김응렴>한 사람은 높은 가문의 자제로서
다른 사람과 교제함에 있어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남의 아래에 처하였으며
한 사람은 재물이 많아
사치스러운 의복을 입을만한데도
언제나 베옷을 입는 것으로 자족하였으며
한 사람은 세도와 영화를 누리면서도
한번도 남에게 세도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본 것은 이와 같았습니다
헌안왕은 이 말을 듣고 잠자코 있다가
왕후에게 귓속말로
<헌안왕>내가 사람을 많이 겪었지만
응렴 같은 자는 없었다
라고 말하고는
사위를 삼을 생각으로 응렴을 보고 말했습니다
<헌안왕>그대는 자중자애하라
내가 딸이 있으니
사위를 삼도록 하겠다
헌안왕은 술을 가져오게하여 응렴과 함께 마시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헌안왕>내가 딸이 둘 있는데
언니는 금년에 스무살이오
동생은 열 아홉살인데
그대의 마음에 드는대로 장가를 들라 !
응렴을 사양할 수 없어
일어나 절을 하며 감사의 뜻을 표하고
집에 돌아와 부모에게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응렴의 부모는
<김응렴의 부모>듣건대 왕의 두 딸의 얼굴은
맏공주가 얼굴이 매우 초라하고
둘째공주는 매우 아름다우니
만약 부득이 장가를 가야 한다면
동생에게 장가를 드는 것이 좋겠다
라고 말했고
응렴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다
흥륜사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스님은
<흥륜사 스님>언니에게 장가를 들면 세가지 이익이 있을 것이요
동생에게 장가를 들면 세가지 손해를 볼 것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김응렴은 헌안왕에게 가서
<김응렴>제가 감히 마음대로 결정을 못하겠사오니
다만 왕의 명령을 따르겠나이다
라고 아뢰니
헌안왕은 맏딸을 시집보냈습니다
헌안왕이 병으로 누워 위독해지자
유언을 남겼습니다
<헌안왕>과인이 불행하게 아들 없이 딸만 두었다
우리나라에는 예전 선덕 , 진덕 두 여왕이 있었지만
이는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것과 비슷한 일로써(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본받을 수는 없다
사위인 응렴은 나이가 비록 어리지만
성숙한 덕성을 갖추고 있다
그대들이 그를 임금으로 세워 섬긴다면
반드시 조종의 훌륭한 후계자를 잃지 않을 것이요
내가 죽은 이후에도 나라에 해로운 일이 없을 것이다
[못생긴 첫째딸과 결혼한 경문왕의 세가지 이익]
헌안왕이 사망하자
헌안왕의 유언에 따라
사위 김응렴이 왕위를 이어
신라 48대왕 경문왕이 되었습니다
경문왕은 이전
미인이었던 왕비의 여동생을 둘째 왕비로 삼았습니다
이후 경문왕이 흥륜사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경문왕>대사가 전에 말했던 세가지 이익이란 무엇인가 ?
이에 흥륜사 스님은
<흥륜사 스님>언니와 결혼하면 그것이 당시에
왕과 왕비의 뜻대로 되는 것이니
왕과 왕비가 기뻐하여 당신에 대한 사랑이 점점 깊어질 것이니
이것이 첫째 이익입니다
이로 인하여 왕위를 잇게 될 것이니
이것이 둘째 이익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처음부터 원하던 둘째 딸을 취하게 될 것이니
이것이 셋째 이익입니다
경문왕이 크게 웃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경문왕이 왕의 자리에 오르자
경문왕의 귀는 갑자기 길어져서 당나귀의 귀처럼 되었습니다
왕후와 궁인들이 모두 알지 못했고
오직 그 귀를 숨기는 모자만드는 사람 한명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생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다가
죽으려 할때
도림사의 대나무 숲속 사람들이 없는 곳에 들어가
대나무에 외치기를
<모자 만드는 사람>우리 임금님 귀는 나귀의 귀처럼 생겼다
고 했습니다
이후 바람이 불기만 하면 대나무에서 소리가 나서
<대나무>우리 임금님 귀는 나귀의 귀처럼 생겼다
라고 했고
경문왕은 이를 싫어해서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 나무를 심었더니
바람이 불면 다만
<산수유 나무>우리 임금님 귀는 기다랗다
라고만 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 및 중동전설이기도 해서
세계에 유명한 이야기인데 (외국버전은 왕의 이발사)
동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에만 있는 이야기로서
신라가 서역 , 이슬람 상인들과 교역하며 이 이야기가 한국에도 들어온 것이라 합니다
<라봉봉>신라 후기는 귀족들의 사치 , 왕위쟁탈전이 있었고
동아시아 바다 질서를 잡고있던
장보고가 사망한 이후부터는 구멍이 뚫린 동아시아 바다에는
다시 바다는 해적이 들끓어
신라인들은 만만한 바로 옆 일본을 맛집 드나들듯이 해적질했다 하고
일본인들은 이를 신라해적 , 신라구라 불렀습니다
(신라인들의 해적술을 그대로 배워 이후 왜구로 한국에 보복함)
굶주린 신라 백성들은 도적 , 해적이 되고
이에 지방영주들은 저마다 자체무장을 해 독자적 세력을 키워가고
점차 신라 지배층 , 귀족들 내부에서도
골품제로 인한 한계를 느끼며 신라는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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