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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종 , 명종>

[놀기 좋아한 왕 의종]

[머리카락을 판 가난한 아내]

[대장군의 뺨을 친 문신]

[무신들에 대한 차별]

[무신정변]

[김보당의 난]

[강한 자들만 살아남는 시대]

[허수아비왕 명종]

[칼빵과 칼빵]

[인망이 두터웠던 정중부]

[경대승의 정변]

[경대승의 도방]

[청년장군 경대승]

[천민출신 장군 이의민]

[최충헌 가문의 장기집권]

<라봉봉>

 

[놀기 좋아한 왕 의종]

인종대 김부식으로 대표되는 개경파 ,

문벌귀족들의 세력이 날로 커졌지만

 

그럼에도 인종은 현명한 군주여서

뛰어난 문치주의 업적 및 삼국사기라는 유산을 후세에 남긴 인물이었고

왕권도 강했던 시기입니다

 

인종 사후

인종을 첫째아들 , 태자 왕현이 왕위를 이어

고려 18대왕 의종이 됩니다

 

<의종 기록>성품이 놀이와 잔치를 좋아하였고 , 여러 소인들과 친하게 어울렸다

 

사극 무인시대의 의종

 

의종대부터 고려 전성기가 끝나고 헬고려가 시작되는데

의종은 아버지대의 대신이었던 김부식을 중용했지만

김부식이 사망하자 슬슬 자신의 세력을 만들려했고

내시와 환관 , 관료들이 의종에게 몰려듭니다

 

신하들은 앞다투어 의종에게 좋은 물건들을 바치며

의종의 환심을 사려했고

이외에도 놀러다니는 의종은

보현원 등 개경 주위 사찰로 자주 행차했는데

국왕을 호위하는 하급 무신들은 역시 의종의 세력화 됩니다

 

인싸성향이 강했던 의종은 다양한 출신의 측근들과

놀러다니며 여러 행사를 벌였고

충신들이 여러차례 간청하며 그만 둘 것을 요청했지만

의종은 듣지 않고 여러 궁궐 공사와 잔치를 벌이며

사치와 향락에 빠져듭니다

 

[머리카락을 판 가난한 아내]

당시 고려 백성들의 고난은 컸고

의종은 청년재 남쪽 기슭에 정자를 지어

중미정이라 하고 배를 띄우고 뱃노래를 부르게 했는데

 

고려의 정원 , 춘천 청평사 고려선원 명승

 

뱃놀이하는 모습 , 조선 신윤복의 주유청강

 

처음 정자를 지을때

착출된 고려 백성들은 각자 먹을 음식들을 가져왔는데

한 백성은 너무 가난해 먹을 것을 가져오지 못하고

같이 온 백성들의 것을 얻어먹었습니다

 

이에 인부들은

모두 밥 한숫가락씩 덜어서 그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줬습니다

 

<인부들>우리도 어려운 형편이지만

모두 이 자를 위해 밥 한숟가락씩 덜어 주세 !

(십시일반 十匙一飯 , 열숟가락은 하나의 밥이 된다)

 

고려 인심은 세계 제일이라네 !

 

매일같이 얻어먹던 가난한 인부였는데

어느날 아내가 공사장에 와서 음식을 갖추어와서

말하기를

 

<가난한 인부의 아내>친한 분을 불러서 같이 잡수도록 하시오.

 

했고 놀란 인부는

 

<가난한 인부>집이 가난한데 무엇으로 준비하였소

남에게 사통하여 얻은 것인가 ?

아니면 남의 것을 훔친 것인가 ?

 

이에 아내가 말하기를

 

<가난한 인부의 아내>모양이 추하니 뉘가 나와 사통할 것이며

성질이 옹졸하니 어찌 능히 도적질하리요

다만 머리털을 깎아 사왔을 뿐이오

 

하며 두건에 감쳐진 잘려진 머리카락을 보이니

같이 있던 인부들은 흐느껴 울며

그녀가 가져온 음식을 먹지 못했고

듣는 사람들이 슬퍼했습니다

 

고려사 의종에 기록된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을 위로한 아내

 

[대장군의 뺨을 친 문신]

이러한 와중 의종의 측근들은 의종의 환심을 얻으려

서로 다투기 시작했고

하루는 보현원에 행차하려는 의종이

오문 앞에 이르러 술을 마시다 취해

무신들에게 수박희(한국 전통 맨손 격투 경기)를 열라 했습니다

 

고구려 벽화의 수박희

 

이에 환갑이 넘은 대장군 이소응이 다른 젊은 무신과 서로 수박희를 하다

고령으로 이기지 못하고 달아나자

종 5품의 젊은 문신이었던 한뢰는

종 3품의 나이든 대장군 이소응의 뺨을 치며

비웃었습니다

 

<한뢰>(찰싹) 대장군이나 되어서 수박경기에도 지는

너같은 놈이 어찌 폐하를 모시고 나라를 지키겠느냐 ?

 

대장군 이소응을 면박주는 한뢰

 

이에 술에 취한 의종과 문신들은

깔깔대며 박수를 치며 웃었고

분노한 정중부는 큰 소리로 한뢰를 꾸짖었습니다

 

<정중부>이소응이 비록 무신이나 벼슬이 3품인데

어찌 이렇게 욕을 보이는가 ?

 

이만큼 당시 고려 문벌귀족 , 문신들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고

무신들은 더 높은 직위임에도 새파랗게 젊은 문신에게

뺨을 얻어맞는 수치를 당할 정도로

차별받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런일이 일어나자 의종은

일단 정중부의 손을 잡아 위로하고 화해시켰습니다

 

[무신들에 대한 차별]

사실 무신이었던 정중부는 이전 인종대에도 차별받은 적이 있었고

문신수장이었던 김부식의 아들인 문신 김돈중이

만만히 보고 술자리에서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지져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평소 정중부는 멋진 수염으로 유명한 장군이었고

김돈중은

 

'무신 따위에게 저렇게 멋진 수염은 어울리지 않는다'

 

라 질투하며 정중부 수염을 지져버린 것이었습니다

 

정중부의 수염을 지지는 김돈중

 

빡돈 정중부는 김돈중을 그자리에서 잡아 쥐어박았는데

아들 김돈중이 얻어맞고 돌아오자

치맛바람(?) 이 강한 김부식은

오히려 정중부에게 벌을 줘야한다 주장하다

인종은 어찌어찌 정중부를 감싸준 사건도 있었고

 

그만큼 무신들의 불만은

이전 왕대부터 차근차근 쌓여오던 것이었는데

의종대에 이르러 수박경기사건까지 일어나자

분노가 터져나온 것이었습니다

 

[무신정변]

그러나 계속해서 의종은 국정에 관심은 커녕

놀기만을 좋아했고

무신들은 차별에 분노하며 화를 참고있었습니다

 

결국 1170년 보현원에 행차하다 개경에 돌아오는 길에

정중부 , 의의방 등 의종의 측근무신들은 무신정변을 일으켜

이전 대장군 이소응의 뺨을 친 한뢰 등 문신들을 모조리 잡아 죽입니다

 

빡돌아서 보이는게 없었던

이고 , 이의방 , 정중부 무신 일당은

곧 수박대회에서 웃었던 문신들을 참살했고

깜짝놀란 한뢰는 황급히 의종에게 다가가

의종이 앉는 의자 밑으로 숨었고

의종 앞에서 화를 숨기던 무신들은

당장 한뢰에게 나오라 했지만

한뢰는 의종의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집니다

 

그러나 이고가 칼을 빼들고 위협하니

그제서야 한뢰가 나왔고 즉시 한뢰를 죽였습니다

 

궁궐 무관인 김석재는 이의방에게

 

<김석재>감히 어전(임금 앞)에서 칼을 뽑았는가 !

 

하고 소리쳤지만

이의방은 눈을 부릅뚜고 꾸짖으며

 

<이의방>그 주둥아리 닥치라

 

하니 김석재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분노한 무신들은

수많은 문관 , 대소신료와 환관들을 모두 살해하니

시체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무신정변

 

처음 무신정변을 일으킬때

정중부와 이의방은 약속하며

 

<정중부와 이의방>우리들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복두(관모) 를 벗을 것이다.

그렇지 않는 사람은 모두 죽이자

 

(현대어 해석 :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복두를 벗어라 !

그렇지 않는 자는 모두 죽여라 !)

 

고려 문신의 상징이자 관모 '복두' , 강민첨 초상화

 

라고 했기에

무인들 중 복두를 벗지 않은 사람들까지 많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무신정변 그림

 

정중부와 무신들은

대궐에 들어가서 계속해서 숙직하던 관료들까지 모두 잡아 죽였고

 

사람들을 시켜 거리에서 말하기를

 

<무신들>문신의 관을 머리에 쓴 사람들은

비록 서리(하급 관리) 라도 죽여서 씨도 남겨두지 말라

 

라고 했고 군졸들 역시 봉기해서

수많은 문신들을 죽였습니다

 

 

의종은 더욱 두려워져서

정중부를 불러서 난을 중지할 것을 설득했지만

정중부는

 

<정중부>예 , 예.

 

라고만 대답하고 확답하지 않았고

끝내 무신들은 곧 의종을 거제도로 유배보내고

의종의 셋째동생 익양공 왕호(명종)를 허수아비 왕위에 올리며

왕과 조정이 아닌 ,

장군의 막부에서 명령이 행해지는

일본 쇼군의 원조인 무신정권 혹은 무신집권기가 시작됩니다

 

[김보당의 난]

거제도로 유배가있던 의종이었는데

3년 후 김보당이 의종의 복귀와 무신정권을 무너트리려

반란을 일으켰고

김보당은 사람을 시켜 의종을 일단 경주에서 기다리게 했지만

김보당의 난은 실패하고

무신정권의 이의민이 이끄는 부대가 경주로 와서

의종을 살해합니다

 

오늘날 고려 의종을 기리는 거제도민들 , 거제인터넷신문

 

그렇게 정중부 등에 의종이 왕위에 쫓겨나

의종의 셋째동생 익양공 왕호는 졸지에 무신들에 의해

허수아비 왕 , 고려 19대왕 명종으로 옹립되었고

당연 실권은 없었고

고려의 권력은 왕에서 장군 , 군인들에게 옮겨집니다

 

[강한 자들만 살아남는 시대]

명종대부터 고려왕실은 그냥 존재만 하는 허수아비 왕실이 되었는데

일단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한 정통성도 강하고

이전 왕대에 태평성대를 누리며 옛날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정체성이 강했던

한국의 지역민들은 점차 고려백성이라는 하나의 백성으로 통합되가던 시기였기에

 

힘은 강했지만 갑자기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라

정통성이 약했던 고려 무신들은

함부로 정통민족국가였던 고려 왕실을 뒤집어 엎기도 어려워

그냥 왕자리는 유지시켜놓고 실권만 가져가게 됩니다

 

일단 요즘식 표현으로는 무신들은

ㄹㅇ 개무식했습니다

 

사실 문신들이 괜히 무신들을 무시한게 아닌게

무신들은 글도 잘 몰라 일도 주먹구구 , 감정식으로 처리해버렸고

무신집권기동안은

오직 힘의 논리로 더 강한 새끼만 살아남는 시대가 펼쳐집니다

 

(대한민국의 경우 군사독재시기부터

1990년대까지가 유명했습니다)

 

강자시대때의 옛날 놀이터의 어린이들

 

물론 무신정권기 이전 , 문벌귀족사회 당시에는 문신들이

너무 막나간것은 있었지만

나름 귀족적 분위기가 흐르며 글잘하는 새끼들이 우대받고

적어도 이성은 존중되는 시대였고

 

무신정권기부터는 철저한 힘의 논리의 시대가 펼쳐지며

무신집권자들 역시 서로를 죽이고 또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몰라

집안에 틀어박혔고

힘을 잃은 문신 , 관료들 역시 유명무실한 '과거제(과거시험)' 보다는

무신집권자들의 눈에 띄는 '천거제' 에 집중해

살아남고 출세하기 위해

무신집권자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오지게 써대던 시대였습니다

 

(시험보다 인싸력 , 싸바싸바가 대우받는 시대)

 

단 무신집권기는 장점도 있었는데

무신들 스스로부터 신분이 평민 , 천민이 많았기에

이 시기는 이전까지 뿌리깊던 신라와 고려의 오랜 악폐였던

집안 , 가문 , 신분이 크게 중요시 되지 않았고

 

힘(무력)이 정의이던 시대로서

누구나 강한 자라면

천민이던간에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나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었고

무신집권기 고려사회는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자유로운 분위기가 감돌게 됩니다

 

[허수아비왕 명종]

이런 자유분방하고 앵그리한 무신들에 의해

갑자기 왕위에 오른 명종은

허수아비왕(실권이 없는 왕 , 바지사장) 이 되어

항상 무신들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지냈습니다

 

역덕 , 고전겜덕들에겐 익숙한 징기스칸4 게임의 명종

 

명종대는 무신정권이 막 시작되는 시기라

갑자기 막강한 힘이 생겨진 무신들은

서로 서열정리를 하고 있었던 시기였고

 

무신인 이고와 이의방이 맞다이를 뜰때에도

이런 상황에서 명종은 형 의종처럼

또 누구편에 붙다가 좆될지 몰라서

조용히 짜져있었습니다

 

그러다 집권자가 된 이의방 마저 정중부의 칼을 맞고 사망해

정중부는 사실상 무신정권 최초의 집권자가 됩니다

 

[칼빵과 칼빵]

일단 명종시기 이고에 칼빵을 놓고

무신집권자가 된 이의방은

 

정중부에게 칼빵을 맞고 사망했습니다

 

계속되는 뒤통수의 뒤통수

 

그러다 정중부는 경대승의 칼빵을 맞고 사망했고

 

경대승 역시 언제 칼빵을 맞을지 몰라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꿈에 정중부가 나와 병을 얻고 급사했고

 

이후 경대승에게 칼빵을 맞을까 숨어있었던 무인 이의민은

경대승이 죽자 개경에 돌아와 새로운 무신집권자가 됬는데

역시 방자하게 굴다가 최충헌의 칼빵을 맞고 사망합니다

 

칼빵의 시대 , 이전 화제가 된 작은 하마 이야기 짤방

 

그나마 최충헌은 머리가 돌아가는 무신이었기에

이런 선대의 사례들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최충헌시대대부터서야 무신정권은 안정기가 시작되어

칼빵의 사례들이 없어지고 최씨 무신가문의 장기집권화가 됩니다

 

칼빵이라는 말은 비속어중에서도 아주 나쁜말이고

저는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참으로 뒤통수와 뒤통수가 난무하는 서바이벌 , 칼빵의 시대가

무신정권 초기였습니다

 

[인망이 두터웠던 정중부]

이의방을 죽이고 새로운 권력자가 된

정중부는 역시 평민출신으로

군인으로서 눈에 띄어 새로운 무신집권자가 된 것인데

거구에 미남이었고 얼굴 빛은 백옥같이 희고

수염이 아름다웠다 합니다

 

미염공(수염미남) 정중부

 

(그래서 이전에 존못 금수저였던 김돈중이 질투해 지짐)

 

정중부는 불의에 분노할줄도 알고

나름 리더십도 강해 무신들에게 인망이 두터웠고

무신들은 그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무신들>정시중(정중부) 께서 앞장서 대의를 부르짖고

문신들을 억눌러 여러 해 쌓인 우리들의 울분을 씻어 줌으로써 ,

무반의 위세를 펼친 공이 막대하다. 

 

[경대승의 정변]

그러나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하리라' 했던가 ..

 

화제가 된 드라마 도깨비 공유의 검의 모델이 된 고려의 도검 '금입사풀꽃무늬철검'

 

이의방에게 칼빵을 놓고 집권한 정중부 역시

청년장군 경대승의 칼빵을 맞아사망하는데

 

정권을 잡은 정중부와 그의 가문은 위세가 하늘을 찔렀고

공주를 둘째아내로 삼으려 하는

정중부의 아들 정균의 행태에 분노한 26살의 청년장군 경대승은

이전부터 정중부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중대하고 어려운 일이라

은인자중(마음속으로 참고 견디며 신중히 행동)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정중부 세력이 너무 나대면서 인심을 잃어가자

결국 경대승은 결사대 30명을 꾸려서

왕궁 담장을 넘어 대장군 및 눈에 띄는 사람마다

모조리 다 살해합니다

 

청년장군 경대승

 

궁궐 안에서 고함소리와 칼날이 마구 부딪히자

명종은 몹시 놀랐는데

경대승이 명종의 침전 밖에 와서는

 

<경대승>신들이 사직을 보호하고자 합니다

두려워 마소서 !

 

하고 큰 소리로 아뢰었습니다

 

이에 명종의 위로주를 받은 경대승은 곧 금군(왕실 친위대) 을 출동시켜

민가에 숨어있던 정중부 , 정균 및 정중부 가문 , 세력들을 모조리 체포해 목을 벤 뒤

큰 거리에 매달았습니다

 

효수 , 거리에 목을 메다는 형벌

 

이로인해 청년장군 경대승은 고작 26세의 나이에

고려 최고 집권자가 되었습니다

 

조정의 신료들이 경대승을 축하하는 자리에서도

경대승은

 

당시 임금인 명종과 문신들은

폭정을 일삼던 정중부와 그 일당을 척살한 경대승에게 기뻐하며

축하연을 열었는데

경대승은 모든 문신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경대승>임금을 시해한 자가 아직 살아있는데

어찌 하례(축하)를 받겠는가 ?

 

라고 말하니

무신정변 당시 문신 학살자 및 의종을 시해한 것으로 유명했던

이의민 등 여러 무신들은 경대승을 두려워했습니다

 

[경대승의 도방]

그러나 본인도 무신이면서

뜬금없이 명종과 문신들을 비호하는

청년장군 경대승의 자기모순적 행태 , 애송이같은 모습은

당시 무신들의 불만을 샀고

 

다시 권력을 잃을까 빡돌아가기 시작한

경대승 집권기의 고려 무신들은

 

<무신들>정시중(정중부) 께서 앞장서 대의를 부르짖고

문신들을 억눌러 여러 해 쌓인 우리들의 울분을 씻어 줌으로써 ,

무반의 위세를 펼친 공이 막대하다.

이제 경대승이 하루 아침에 네 분의 대신을 죽였으니

누가 그를 토벌할 것이냐 ?

 

(위에서 말한대로

정중부는 나름 무신들의 존경을 받고있었기에

경대승은 점차 까이기 시작함)

 

하고 대놓고 떠들었고

 

심상치 않은 부하들의 발언에 겁이난 경대승은

결사대 백 수십명들을 모아서 '도방' 이라 부르며 자기 집에 두었는데

도방이란 어떤 관직이라기보다

검계나 조직폭력배같은 경대승의 개인 세력으로서 이름을 올리거나

경대승의 집으로 몰려들거나 하는 청년 세력들이었습니다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에서 검계의 모습

 

경대승은 도방들에게

긴 베개와 큰 이불을 만들어 두고 번갈아가며 숙직하게 했고

자신 역시 칼빵을 맞을까 두려워진 경대승은

아예 도방들과 함께 같은 이불을 덮고 자기도 했습니다

 

정중부를 살해한 뒤로부터 마음이 항상 불안해진 경대승은

항상 도방 몇사람들을 길거리에 보내 민심을 살피게 했고

(사복경찰)

 

어쩌다 유언비어가 돌면 즉시 잡아 가두고 심문하며

매우 혹독한 형벌을 가했습니다

 

이에 정중부처럼 점차 경대승 역시 민심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당시 도방들도 개경에서 강도질 , 살인을 하기 시작하고

관청에서 체포하면 경대승이 그때마다 석방했기에

도방은 대놓고 강도질을 하며 안하무인하게 굴었습니다

 

[청년장군 경대승]

이런 상황에서 명종은 경대승을 꺼리면서도

 

(명종 본인 역시 무신들이 옹립한 왕이었고

경대승 역시 무신정변 이전으로 상황을 돌려야 한다 주장하면서

본인 스스로가 무신이라는 이중적 모습이 있었음)

 

겉으로는 두터운 은총을 과시하려

매일같이 진수성찬 , 의복과 보물을 내려주었고

경대승이 요청하는 것은 그대로 다 들어주었습니다

 

이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경대승에게 아부했지만

그럼에도 경대승은 또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기에

학식있거나 용맹한 자가 아니면 다 물리쳤기에

무신들 역시 이 젊은 집권자를 두려워하며

방자하게 굴지는 못했고

 

경대승 역시 암살의 위협에 집에 은거했지만

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조정에 반드시 나가 결정에 관여했습니다

 

그러나 부하 세력인 도방들이 날뛰기 시작하고

경대승은 점차 칼빵 , 암살 트라우마가 강해지기 시작했고

스트레스를 얻다가

갑자기 꿈에

정중부가 나타나 칼을 잡고 큰 소리로 꾸짖는 꿈을 꾸고

병을 얻어 30세에 사망합니다

 

그의 부하인 도방이 문제를 일으키긴 했지만

나름 정의를 추구한 청년장군이었고

본인 스스로는 청렴한 인물이라

자신의 가문이 가진 땅들을 모두 원래 주인이나

나라에 환속시켜 죽을때까지 하루 한끼에 두가지 반찬으로 검소하게 살았으며

죽었을때도 집한채와 쌀 몇섬이 재산의 전부였습니다

 

검소한 양반의 밥상

 

경대승의 장례가 시작되자

길가는 사람들이 슬퍼하며 통곡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참 역사란 만화나 드라마처럼

악인과 선인의 구분이 명확하지가 않는 면도 있고

악행과 선행을 모두 기록하고 있어

평가가 갈리는 면도 있고 시대에 따라 재평가되기도 합니다

 

경륜이 부족해 한계가 있었던 청년장군 경대승 ,

그러나 20대에 자신의 능력만으로 권력을 잡아

고려를 흔든 청년이기도 했고

사리사욕 없는 칼을 찬 새파란 청년 지도자의 모습에

당대 나이든 고려 대신 , 장군들도 꼼짝하지 못했던 모습이 상상됩니다

 

이러한 케이스가 고대 로마때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 같은 경우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경대승의 경우는 카이사르의 후계자였던 옥타비아누스에 비해서

더 빡센 케이스였고

아무리 옛날이라지만서도 한국사나 세계사에서도 흔한 사례는 아닙니다

 

또한 경대승은 여러 인품 , 왕실에 대한 존중이 강했던 인물이라

사대부들의 그에 대한 평가가 높았으며

다른 무신집권자들과 달리 반역자로 기록되지 않았던 인물로서

가히 '청년장군 경대승' 이라 불릴 만큼의 인물이었습니다

 

26세..

 

[천민출신 장군 이의민]

경대승이 급사하자

경대승이 이끈 도방 무리들은 반란죄라는 모함을 받아 금방 해체되고

도방의 무리들은 죽거나 멀리 귀양가게 되며

경대승의 세력은 완전히 사라지게 됬고

경대승이 뜻밖에 일찍 사망해버리자

 

무신들에 옹립되어

재위기간 내내 무신들의 눈치를 보느라

무기력해져있었던 명종은 스스로 권력을 잡지 않고

 

경대승의 견제속에 경주에 숨어있던

무신 이의민을 개경에 불러서

무신정권 다음 실권자로 임명합니다

 

왜 명종이 이의민을 불렀냐면

명종 역시 권력을 잡기위해

계속 뒤통수와 칼빵이 난무하는 무신들을 보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고

 

우유부단하고 무기력했던 명종은

혹시라도 이의민이 경주를 기반으로 반란을 일으켜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

아예 개경에 데려와 권력자에 앉히고 자신은 허수아비 왕을 이어갈 계획이었던 것인데

이의민은 경대승의 라이벌로서

경대승 생전 경대승을 두려워하며 벼슬을 버리고 경주에 숨어있다

이때에 이르러 명종의 부름을 받고 개경에 돌아와 새로운 무신집권자가 됩니다

 

이의민은 경주의 천민출신의 인물로서

아버지는 소금장수 , 어머니는 절의 노비였는데

키가 189cm 였고 힘이 유달리 뛰어나

불량배짓을 하다가 관리의 눈에 띄어 무관이 되었고

개경에 상경했는데

 

이의민 , 천민출신 고려 무신집권자

 

의종이 수박실력이 뛰어난 이의민을 눈여겨 보며

승진시켜주며 천민출신에서 무신들의 대열에 들어갑니다

 

이후 무신정변이 일어나자

이의민은 무신들의 행동대장 , 살인기계가 되어

문신들을 마구 학살했고

이후 의종을 복위시키려는 김보당의 난이 일어나자

 

이의민은 경주로 내려가 의종에게 술 두어잔을 올리고

의종의 등뼈를 부러뜨리니 손대는대로 부러지는 소리가 나자

이의민은 큰 소리로 웃었고

 

놀기 좋아한 왕이었던 의종은 그렇게

자신이 총애한 무신 이의민에게 척추가 부러지며 시해당합니다

 

(한국사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은 왕)

 

이의민은 의종의 시신을 담요로 싸서

가마솥 2개를 합쳐 그 속에 넣어 못속에 던졌고

 

겹쳐놓은 가마솥 , 옛날 사우나 목욕탕의 바가지수영의 원리와 동일

 

당시 의종 역시 왕이었던 시기 놀기만 좋아하다 민심을 잃을대로 잃었기에

한 스님은 못속에서 가마솥은 건지고 의종의 시체는 버렸습니다 (;;)

 

이렇게 이의민은

무신정권이 시작되자 명종을 옹립하고 의종을 시해한 것으로

대장군으로 초고속 진급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왕은 왕이었고

이로인해

자신을 발탁해준 의종을 배은망덕하게 직접 시해했기에

이의민은 두고두고 정적들에게 낙인찍히게 됬고

 

경대승이 일어나자

경대승은 이의민을 죽이려 했기에

이의민은 대장군 직도 버리고

고향 경주로 돌아와 암살위협에 세력을 모아 숨어지내다

경대승이 급사하자 다시 돌아와 고려 무신집권자가 된 것이었습니다

 

단지 힘이 강하고 수박경기를 잘했다는 이유로

천민출신에서 고려 최고 권력자가 된 이의민의 사례는

그만큼 무신정권기가 힘의 논리로 움직이던 ,

'강한 자들만 살아남던 시대' 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자신의 재주 , 능력이 뛰어나고

본인 스스로가 '강한 자' 라면

신분고하에 상관없이 누구나 승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였습니다

 

[최충헌 가문의 장기집권]

그러나 이의민 역시

요즘말로 '빡대가리' 였던 집권자라

천민출신임을 티내듯이

ㅈㄴ 무식하고 교양이 없어

권력을 잡고 온갖 여포짓을 일삼았고

 

아예 왕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지기도 하고

그의 아들 역시 아버지백을 믿고 온갖 나쁜짓을 일삼다

권위있고 교양있는 가문출신이었던 무신 최충헌 집안과 시비가 붙었고

 

이에 최충헌은 개빡돌아서

이의민에게 칼빵을 놓고 명종을 폐위시킵니다

 

무신집권기 초기 ,

기존까지 무신들은 어수선한 상황속에

서로 칼빵을 놓으며

서로를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 시대였다면

 

최충헌 시대부터는

최충헌은 이전 무신들의 사례를 보고

얻은 여러 교훈들을 참고하며 무신정권을 안정화시켰고

이로인해 최충헌대부터 무신집권은 상당히 체계화되고 안정기가 시작되었으며

최씨 4대 , 60년에 이르는 최씨가문의 무신집권기가 시작됩니다

 

무신정권 집권자들과 4대의 최씨정권 시대

 

<라봉봉>흔히 왕 , 권력의 자리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왕관의 빛나는 보석 , 부귀영화만 보지

왕관의 무게 , 책임감에 대해서는 잘 생각을 안하는거 같고

 

옛날에도 왕자리는 '왕노릇 한다' 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정말 고된 자리였고

왕 역시 고려 의종이나 조선 연산군같이 놀기만 좋아하면

선대로부터 이어진 강력한 왕권이라는 유산을 말아먹고

언제든 신하들에게 쫓겨나는 위태로운 자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왕이 아니더라도

권력의 자리는 여러 고능력이 필요한 자리이며

무신집권 초 혼란은

이렇게 너도나도 무신들이 급격히 출세해버리자

서로 죽고죽이며 막상 권력을 잡게 됬는데

또 능력부족으로 지키지도 못해 금방 살해당하는 그런 과정들이 반복됬습니다

 

무신정권은 왕에 대해 충성해야하는 것이 정의라는

유교적 , 사대부적 명분이 강했던 조선시대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정권이기도 했고

진취 , 자유로운 기풍이 강했던 고려의 사회모습을 노골적으로 , 샅샅이 보여주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최근 살인사건을 일으킨 범죄자 장대호가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을 태운 이야기를 언급한 사건이 있는데

그때 제 블로그에서 사람들이 무신정변 , 정중부 이야기를 엄청나게 봤고

 

장대호는 평소 사회에 대한 차별과 멸시에 대해 분노심을 품고

폭력을 하는 손님에게 시달리다가 살인을 하고

자신의 범죄를 정중부의 무신정변에 비유한 바가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치면 히틀러도 불우한 시절을 보냈고

모든 범죄자들의 논리는

수많은 역사의 폭력적인 사건과 그 맥을 같이할 수 있기에

폭력과 범죄를 정당화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차별과 멸시로 인해

수많은 잘못된 사건들이 역사에서 반복되는 현실이 안타깝고

당시 무신들에 대한 문신들의 거만했던 모습이

오늘날에도 경비원 갑질 , 병영부조리 , 약자에 대한 폭행등으로

반복되는 우리사회의 자화상이 아닐까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때 화제가 된 웹툰 송곳의 명대사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는 말이 화제가 된 것처럼

무신정변은 고려사회의 문무차별에 대한 모순이 폭발한 사건이기도 했으며

무신들의 '송곳' 이 튀어나온 사건들이었습니다

 

또한 그들만의 리그 , 문벌귀족과 문신들에 대한 차별에 분노해 일어났던

약자였던 무신들은

무신정변 이후 강자가 되어

또다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며 문관이나 다른 이들을 차별했고

 

우리 역시 살아가며 이 사건속 문신의 입장이나 무신들의 입장이 될 수가 있는 것인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갑질이 훗날 응보로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고

내가 현재 당하고 있는 갑질이 우리사회의 자화상이거나

내가 이전에 했던 허물일지도 모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약자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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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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