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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 희종 , 강종>

[이의민과 나무도깨비]

[비둘기를 뺏은 이의민의 아들]

[명종의 폐위]

[허수아비 왕 신종]

[최충헌의 집권]

[만적의 난]

[희종대 최충헌의 권세]

[희종 VS 최충헌]

[짧게 재위한 강종]

<라봉봉>

 

[이의민과 나무도깨비]

자 이전에 고려 무신정권 초기 이야기를 썼는데

초기 무신정권은 질서도 없고 사실상 개판이었습니다

 

초기에는 무신들이 대부분

평민 , 천민 출신에 배운게 없으며 급속히 출세한 인물들이라

권력을 잡으면 곧바로 방자하게 굴다가 칼을 맞고 집안이 박살났으며

이런게 계속 반복됬는데

서로 죽고 죽이며 집권자들이 계속해서 교체됬고

이러한 와중에 갑자기 집권한 이의민 역시

힘이 무지 강해 동네 건달 , 천민출신으로서 갑자기 고려 최고 권력자가 되자

여러 횡포와 권력남용을 하게 됩니다

 

갑자기 고려 최고권력자가 된 이의민은 원래 천민출신에

힘이 장사인 이유로 출세한 인물이고

선대 무신들이 전부 죽자

갑자기 고려 권력자가 된 케이스인데

 

최고권력자가 되고나서도 글자도 몰라서 오직 무당의 말을 믿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무당

 

경주에는 나무도깨비가 있었는데

경주 사람들은 그것을 두두을이라 불렀고

이의민은 집에 사당을 만들어 나무 도깨비를 가져다 안치하고

날마다 제사를 지내며 복을 빌었습니다

 

한국의 나무인형 장승

 

그런데 어느날 사당에서 곡소리가 들리니

나무 도깨비가 말하기를

 

<나무도깨비>내가 오랫동안 너희 집을 지켰는데

이제 하늘에서 장차 재앙을 내리려고 하니

내가 의지할 곳이 없어서 운다

 

했습니다

 

[비둘기를 뺏은 이의민의 아들]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은 아버지가 집권하자 장군이 되어

방만하게 굴었는데

이지영은 명망있는 무신집안인 최충수 집에 비둘기를 빼앗았습니다

 

편지를 전하는 비둘기 전서구

 

이에 최충수는 화가 나서 형 최충헌에게 이 사실을 일렀고

이의민 부자를 죽이자 하니

최충헌이 그렇게 하자 했습니다

 

이의민이 미타산 별장에 갔을때

최충헌 형제는 가서 이의민을 죽이고 저자거리에 이의민의 머리를 내걸었고

 

효수

 

장군이었던 이의민의 아들들은

최충헌에게 맞서다

최충헌에 협조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이길 수 없다 생각해 달아납니다

 

결국 최충헌은 이의민 자녀들을 추격해 체포했고

잡힌 이지순과 이지광은 최충헌 앞에 나아가 잘못을 빌었지만

최충헌은

 

<최충헌>이놈들은 재앙의 씨앗이니

은혜를 베풀 수 없다

 

하고 그들의 목을 베었습니다

 

조선시대 참수형을 집행하는 그림

 

[명종의 폐위]

새롭게 권력을 잡은 최충헌은

왠지 고려 무신집권자들이 계속 죽어가며 교체되는 와중에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혼자 살아남아 계속해서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명종을 고깝게 본거 같고

최충헌의 동생 최충수가 말했습니다

 

<최충수>명종이 28년이나 왕위에 있었는데

늙고 정사를 게을리하여

여러 소군(왕의 서자)이 은혜와 위력을 마음대로 부려

국정을 문란하게 하였으며

왕이 또 많은 소인들을 유달리 귀엽게 여기고 사랑해

황금과 비단을 많이 내려주어 창고가 텅 비었으니

왕을 어찌 폐하지 않겠습니까 ?

 

결국 최충헌 형제는 명종을 협박해

왕위에서 끌어내렸습니다

 

<고려사 사관>정중부 , 이의방 , 이의민 등이

의종을 시해하고 국가의 권력을 마음대로 농단하면서

명종을 위한 계책은 마땅히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 힘을 키워

반드시 적을 토멸한 이후에 끝나는 것이다

 

만약 힘이 부족하다고 한다면 경대승이 왕실의 미약함에 분개하고

강한 신하가 발호함을 미워하여 하루아침에 의병을 일으켜

정중부 부자를 주살하기를 여우와 토끼를 사냥하듯이 하자

이의민이 머리를 감싸 쥐고 쥐처럼 달아나서 시골에서 목숨만 부지하였으니 ,

이때야말로 현량을 임용하고 기강을 바르게 세워

왕실을 다시 떨치게 할 기회였을 것인데 ,

왕(명종)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안일함에 빠져

그 하는 일이 평소 아무 일 없을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의민 같은 자는 다만 한 필부(평범한 사람)일 뿐이니

사자 한 명을 보내 그가 임금을 시해한 죄를 들어

목을 베고 멸족하는 것이 옳았을 것인데 ,

도리어 불러들여 작위를 갑자기 올려주었으니 ,

그로 하여금 왕실을 업신여기고 조신을 살해하며 벼슬을 팔고 형옥을 거래하며

조정의 정치를 흐리고 어지럽히게 하였으니 ,

그 화가 참혹하였다.

 

최충헌이 틈을 타서 일어나니

왕(명종)은 도리어 추방당하고 자손도 보전하지 못하였다.

이로부터 권신이 잇달아 권력을 잡아

왕실이 망하지 않고 실낱같이 이어온 지가 백여 년이 되었으니 ,

아아 , 원통하다

 

명종은 무인들에 의해 왕위에 올라

무인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과정에서도 운좋게 살아남았지만

경대승이 사망하고 자신에게 권력을 쥘 기회가 있음에도

우유부단하여 무신 이의민을 다시 불러들였고

이로인해 결국 이의민에 분노한 최충헌이 일어나

이의민을 죽이고 명종까지 끌어내리게 됩니다

 

무신정권의 변천

 

[허수아비 왕 신종]

최충헌은 명종의 동생인 54세의 평량공 왕민을

왕위에 올려

고려 20대왕 신종이 됩니다

 

이의민을 쫓아낸 최충헌은

이전 무신들의 짧은 집권 , 비참한 최후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했고

자신의 시대를 새 부대에 담고자

명종을 아예 왕위에서 내리고

신종을 새 왕에 앉힙니다

 

신종은 왕이되고나서 그저 최충헌의 말에

OK 싸인 해주는 예스맨이 되었을 뿐이고

 

최충헌의 허수아비 왕 신종

 

말년에도

골골대던 신종에게 최충헌은 문병을 올때

신종은

 

<신종>과인이 집에 살다가 왕위에 오른 것은

공의 힘입니다

나이가 이미 많은데 더구나 병이 오래 낫지를 않으니

조정의 일을 처리할 수 없어

태자에게 왕위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에 최충헌은

 

<최충헌>원하건대 주상께서는 스스로 잘 몸조리를 하십시오

선위하시겠다는 명은 신이 감히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최충헌이 두려워진 허수아비 왕 신종은

평생을 급격히 쫄아있었습니다

 

[최충헌의 집권]

최충헌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무신정권을

체계화시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합니다

 

사극 무인시대의 최충헌

 

하루는 어떤사람이 최충헌의 사신을 사칭하며

병장기를 가지고 봉주에 가서

은과 비단을 거두어 집으로 가져가니

최충헌은 그의 목을 베고 3일동안 저자거리에 걸어두었고

백성들이 병장기를 지니는 것을 금지시킵니다

 

최충헌은 인사권을 장악하고

자신의 집에 정방이라는 기구를 설치해

인사권을 결정한뒤 신종에게 알리면

신종은 고개를 끄떡일 뿐이었습니다

 

사실상 고려의 국왕이 된

최충헌이 아낀 사람들 역시 권력이 커져

사람들이 뇌물수수를 공공연하게 했습니다

 

<고려사 사관>신종은 최충헌이 왕위에 세웠는데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것과

관청의 설치와 폐지가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이름뿐인 왕을 억지로 옹위하여 신민의 위에 앉혔으니

허수아비와 같았다

슬프다 !

 

[만적의 난]

이렇게 무신정권은 최충헌대에 이르러

대놓고 노골적이게 되었고

 

왕이 왕이 아니고

신하가 신하가 아니게되자

백성들도 이상함을 느꼈고

수도 개경과 지방에서는 민란이 연이어 터집니다

 

최충헌의 집 노비 만적은

다른 노비들과 북쪽 산에서 땔나무를 하다가

노예들을 불러 말하기를

 

<만적>국가에서 경인년과 계사년 이래로

높은 관직도 천민과 노예에서 많이 나왔으니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타고났겠는가 ?

때가 되면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라고 어찌 뼈빠지게 일만 하면서

채찍 아래에서 고통만 당하겠는가 ?

 

이에 흥분한 노비들은

 

<노비들>옳다 ! 그렇다 !

 

하고 외쳤습니다

 

드라마 추노에서 모인 노비들 , 억압받은 백성들

 

만적은 누런 종이 수천장을 잘라서

정 丁 글자를 써 표지로 삼고 약속기로 했고

 

만적의 난

 

개경노비들이 한꺼번에 집결해

북을 치고 고함을 치면

궁궐안의 환관들이 모두 호응하고

관노들도 궁궐안에서 나쁜놈들을 죽일것이니

먼저 최충헌을 죽인 뒤 각자 자신의 주인을 죽이고

노예 문서를 불태우자 했습니다

 

노비문서

 

<만적>먼저 최충헌을 죽인 뒤 각기 자신의 주인을 죽이고

천적(노예문서) 을 불태워 그리하여 삼한(한국 전역) 에서

천인을 없애버리면 !

공경장상이라도 우리가 모두 할 수 있을 것이다 !

 

만적은 아예 천인이라는 신분을 없애버리자 주장했고

이는 한국사 최초의 노예해방 , 노예제 폐지운동이라는 역사적인 의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속한 날이 되어 노비들이 모였으나

겨우 수백명에 불과했고

나중에 다시모이자 했는데

율학박사 한충유의 집 노비 순정은

한충유에게 이 사실을 말했고

한충유는 최충헌에게 알렸습니다

 

이에 최충헌은 만적과 100여명 노비들을 체포해서

강에 던져버렸고

 

한충유에게는 벼슬을 제수하고

순정에게는 백금 80냥을 하사하고 면천시켜

양인으로 삼았습니다

 

또 워낙 많은 노비들이 호응했기에

모두 죽일 수 없어서

최충헌은 조서를 내려 불문에 붙이기로 합니다

 

지방에서도 연이어 민초들의 반란이 일어났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이

 

개경에서는 신하들이 왕을 쉽게 갈아치우는 하극상이 일어나고

개경에서도 천민 , 평민출신 사람들이 너도나도

장군이 되고 출세하자

전국적으로 신분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무신집권기 농민과 천민들의 전국적인 반란

 

이후 최충헌 역시 다른 무신집권자들처럼

언제 자신이 칼빵 , 뒷통수를 맞을까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문무관 및 한량 , 군졸 중에서

월등하게 힘센 사람들을 모두 뽑아

자기집에서 숙직하게 하니

이들을 도방이라 했고

최충헌이 길에 다닐때마다 무장한 도방 무리들이 둘러싸서 호위하니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도방의 호위에도 알 수 없는 불안감...

 

[희종대 최충헌의 권세]

신종은 병이 깊어지자

최충헌의 허락을 맡아 겨우 왕위를 태자에게 물려주었고

이에 신종의 맏아들 , 태자 왕영이 왕위를 이어

고려 21대왕 희종이 되었습니다

 

희종은 즉위후 자신을 왕위에 올려준 최충헌에게

엄청나게 긴 벼슬을 주었고

 

그 벼슬 이름은

 

수태사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판병부 어사대사

守太師 門下侍郞 同中書門下平章事 判兵部 御史臺事

 

였는데

요즘식으로

킹왕짱멋지고 잘생기고 똑똑하고 인생의 진리인 여러벼슬 다해먹는 충헌이 형

이라는 의미라 할 수 있고

그만큼 최충헌의 위세가 높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희종은 최충헌을 일반 신하로 대우하지 않고

늘 은문상국 , 은혜를 입은 재상이라 불렀습니다

 

이후부터 최충헌은 관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궁궐에 들어왔고

시종들이 최충헌에게

왕이 사용하는 거대한 양산인 일산까지 씌어주고

따르는 시종들이 거의 3천명이었으니

왠만한 왕의 위세와 같았습니다

 

원래는 왕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일산 , 원래는..

 

처음 희종은 자신을 왕위에 올려준 최충헌을 크게 의지했는데

최충헌의 저택이 궁궐과 비슷해지고

 

거대한 한옥

 

나라안에 불평이 생겨나자

점차 희종은 아버지 신종과 달리

최충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며

최충헌을 암살하려 합니다

 

[희종 VS 최충헌]

1211년(희종 7년) 최충헌은 인사문제로 희종을 알현하려 궁을 찾아

희종이 있는 문앞에 있었는데

환관이 최충헌의 시종들을 속여 말하기를

 

<환관>술과 음식을 하사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고는 인도하여 최충헌의 시종들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잠시 후 갑자기 승려를 포함한 10여명이 무기를 들고 뛰쳐나와

최충헌의 시종들을 공격했고

놀란 최충헌은 희종에게 허둥대며 말하기를

 

<최충헌>원하건대 주상께서 신을 구해주십시오

 

했으나

 

 

희종은 묵묵히 문을 닫고

들이지 않았고

최충헌은 계책이 없어 병풍 사이에 숨었고

한 승려가 세번이나 수색했지만 최충헌을 잡지 못했습니다

 

이때 최충헌의 사람들이 즉시 내전으로 달려가

최충헌을 부축하며 탈출했고

최충헌의 도방(경호원)들은 궁성밖에 집결해서 초조해하다

지붕에서

 

'우리 공께서는 무사하시다 !'

 

하는 소리를 듣고

도방들은 다투어 궁궐로 진입했고 승려들은 패해 달아났습니다

 

<최충헌의 부하>제가 이제 병사들을 이끌고 궁궐로 들어가 다 죽이고

한놈도 남겨주지 않겠으며

임금도 없애버리겠습니다 !

 

이에 최충헌은

 

<최충헌>그렇게 한다면 나라가 장차 어찌 되겠는가

후세에 구실이 될까 두렵다

내가 마땅히 심문하겠으니 너는 가벼히 가지 말거라

 

죽을뻔하다 살아난 최충헌은 희종을 원망하여

희종을 폐위시켰고

한남공을 즉위시켰습니다

 

<고려사 사관>

이 시기에 최충헌이 나라의 명을 잡은 지가 이미 여러 해였다.

당여(黨與 무리)를 널리 심고 위세와 복덕을 오로지 멋대로 하였다.

희종이 비록 무엇을 하려 해도 , 어떻게 하였겠는가.

왕이 된 자의 계책이란 마땅히 바르게 스스로 처하며

현명한 이를 임용하고 능력이 있는 이를 부리는 것이다.

왕실이 스스로 강하다면 비록 발호하는 신하가 있다고 하여도

그 악을 펼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왕은 이를 알지 못하고 경박한 모의를 듣고 써서

일시의 분한 마음을 풀고자 하다가 졸지에 쫓겨났구나 ,

아아

 

[짧게 재위한 강종]

최충헌에게 희종이 폐위되어

명종의 아들 한남공 왕오가 왕위를 이어 고려 22대왕 강종이 되었고

평생을 무신권력자들의 칼부림을 보고 성장한 강종은

강화도에서 오랜 유배생활을 하다가

이때에 이르러

60세의 나이에 살벌한 분위기속에

최충헌의 임명으로 왕위에 오릅니다

 

오랜 유배생활과 희종의 사례때문에 강종은 별다른 활동을 하지는 못했고

최충헌의 눈치를 보다가

재위 1년 8개월만에 사망합니다

 

<라봉봉>설명을 좋게 해보려 그림도 조금 그려서 넣어봤는데

옛날 그림실력이 녹슬지 않은 느낌이고

나중에 제가 쓴 글을 풀만화화해볼까 생각중입니다

 

최충헌의 권력은 정말 노골적으로 강했는데

그럼에도 최충헌은 이전까지의 평민 , 천민 출신의

다른 무신 집권자들과 달리

명문가 출신에 글공부를 했던 문관출신의 무신이었고

 

이로인해 무신정권은 최충헌대에 이르러

체계화되고 조직화되어

안정기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항상 칼로 권력을 잡은 자는 칼의 위협에 시달렸고

최충헌 역시 예외가 아니라

이전 무신집권자들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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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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