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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종의 효심과 우애>

[프로꿀빨러 정종]

[무인 출신 정종]

[왕자의 난]

[격구를 즐긴 정종]

[2차 왕자의 난]

[착한 형님 정종]

[정종의 개경천도]

[조사의의 난]

[정종의 행복한 노년]

[공정대왕 정종]

[효심과 우애의 왕]

<라봉봉>

 

[프로꿀빨러 정종]

조선 2대왕 정종 !

 

아버지이자 창업군주인 조선 1대왕 태조 이성계와

동복동생(같은 어머니 , 친동생) 조선 3대왕 태종 이방원 사이에 가려진

존재감 없는 다크템플러같던 임금 정종 !

(ㅠㅠ)

 

한편으론 조용히 임금노릇도 해보고 꿀빨며

안락한 노후를 즐기며 세상을 떠난 

프로 꿀빨러기도 했는데

정종의 매력은 무엇이기에

이렇게 꿀을 잘 빨아낼 수 있었을까요 ? (이런걸 알아야 나중에 잘삼 !)

 

아마추어 꿀빨러의 최후

 

[무인 출신 정종]

일단 정종 이방과는 태조 이성계의 둘째아들로서

체구가 곰처럼 강건하고

왼쪽 눈 밑에 큰 사마귀가 있었다 합니다

 

어깨깡패+눈밑 사마귀+격구덕후 정종

 

고려시대에

아버지 태조 이성계를 따라 전쟁터에 나서며 왜구를 물리치는 무공을 세웠고

동생 방원이가 문과에 급제해 선비들 , 사대부들을 장악해가고 있을때

 

둘째형으로서 묵묵히 아버지를 도우며

이성계 집안의 맏형노릇을 해냈습니다

 

(첫째인 진안대군은 술좋아하고 정치적으로 꼬여있어서 맏형노릇 탈락)

 

태조 이성계의 가계도 , 신의왕후 한씨의 자녀들인 정종과 태종

 

[왕자의 난]

그러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고

태조 이성계는 세자를 갑자기 어린 10살배기 이복동생 , 막내동생

의안대군 이방석에게 주었고

 

당시 실질적 장남이었던 이방과의 나이는 35세 ,

이방원의 나이는 25세였고

이런 장성한 이복 형들을 제치고

10세의 이방석이 왕세자가 되자

 

이방원은 분노하다

결국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과 이복동생 이방석을 죽여버립니다

 

철퇴왕 킬방원

 

당시 이성계의 사병들인 가별초들 역시

오랫동안 동북면 도련님으로 모셔온

장성한 이방원 등에 대항하지 못했고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세자가

갑자기 왕위에 오른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은 단번에 권력을 장악해

이방원은 왕실 친인척의 지지를 받았고

정도전 등 이성계의 동지들은 살해되어

태조 이성계의 권력은 순식간에 무력화되었습니다

 

손발이 잘린 이성계는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했고

 

태종 이방원은 일단 정통성 문제때문에

형 이방과에게 왕위를 양보했고

이방과는 반강제로 세자에 임명되

태조의 양위를 받아 조선 2대왕 정종이 됩니다

 

이후 이방원은 차차 왕이 될 준비를 하게 됩니다

 

[격구를 즐긴 정종]

정종은 뜬금없이 왕이 되어서

동생 방원이의 눈치를 보며

정치보다는 격구나 사냥을 즐겼고

 

한국의 폴로스포츠 '격구'

 

어느날도 격구하며 떠드는 소리가 그치지 않으니

정종은 사관 이경생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정종>격구하는 일 같은 것도 또한 역사책에 쓰는가 ?

 

이에 이경생은

 

<이경생>인군(임금)의 거동을 반드시 쓰는데

하물며 격구하는 것이겠습니까 (당연 쓰죠 ㅋ 님 똥싸는거까지 씀 ㅋ)

 

사관

 

이에 격구덕후 정종은

 

<정종>내가 전대 임금과 신하들이 살아온 자취를 보고자하니

'고려사' 를 바치도록 하라

 

고려사 역사책

 

일단 정종은 이미 국정을 장악한

동생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기전

자신은 그저 동생을 위해 임시로 해주는 허수아비임을 잘 알고 있었고

별다른 미련이나 욕심내지 않고

조용히 지내며 격구를 즐겼습니다

 

[2차 왕자의 난]

1400년(정종 2년)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서

무능력했던 넷째동생 이방간이

능력이 있었던 다섯째동생 이방원이 

정권을 잡은 것을 질투해 군사를 일으켜 공격하자

 

정종과 태조 이성계는

이방간이 노답인 것을 알고

이방간에게 ㅈㄹ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고

 

정종은 분노하며 이방간에게

 

'동생을 해치려하냐 미친놈아 ?

군사를 버리고 투항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했고

태조 이성계 역시 크게 분노하며 말하길

 

'니가 방원이랑 애비가 다르냐 애미가 다르냐

어찌 이지경이 됬냐'

 

하며 노발대발했습니다

 

(이전 이야기에서 씀)

 

2차 왕자의 난 , 동생들의 싸움을 말린 정종

 

결국 이방간은 이방원군에게 사로잡혔고

나름 이방원도 이전 이복동생 이방석을 죽인것과 달리

바로 위의 친형인 이방간은 죽이기도 뭐하고

1차 왕자의 난 때문에 민심도 흉흉해졌기에

그냥 유배만 보내서 목숨은 보전시켰습니다

 

[착한 형님 정종]

이렇게 정종은 허수아비였음에도

나름 이방원의 입장을 밀어주며

형제간의 싸움을 말리려는

큰 형노릇은 톡톡히 했고

크게 유능하지는 않았으면서도

패륜아 동생들을 화해시키려 노력하는

올바르고 착한 형님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정종의 개경천도]

정종은 재위기간 내내 격구 외엔 별로 한게 없었는데

그나마 정종이 한 일이라고는

고려태생으로서 고려인의 향수가 강했던 정종은

형제끼리 골육상쟁을 벌인 한양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잠시 수도를 개경으로 옮겼는데

이후 이방원이 태종이 되어 다시 한양으로 천도합니다

 

[조사의의 난]

정종은 이방원이 원한대로

이방원을 세자로 책봉하는데 힘썼고

 

동생 이방원을 아들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고

상왕이었던 이성계는 태상왕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됩니다

 

그렇게 조선 3대왕 태종 이방원의 시대가 마침내 열리게 됬는데

이후 태상왕 태조 이성계는 1 , 2차 왕자의 난때문에

골육상쟁을 벌인 태종 이방원에

분노하다가 고향 함흥으로 가서

결국 자신의 사병 가별초 등 1만대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조사의의 난 , 조사의는 이성계의 허수아비였음)

 

태종군과 맞다이를 뜨는데

이성계의 함흥 병사들도 태상왕 이성계의 명령은 철저히 따랐지만

그렇다고 이미 왕이 된 태종의 군대 , 중앙정부군을

칠 명분도 딱히 없었고

태종이 5만대군의 쪽수빨로 역관광시키자

결국 함흥에서 버로우타다가

태종의 간곡한 설득에

다시 한양에 올라와 이방원과 화해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조사의의 난

 

이런 개판의 상황에서

상왕으로 물러난 정종은

아버지 태조와 동생 태종 사이에서

조용히 짜져있었고

 

나름 태종은 10년위인 착한 형님 정종을

극진히 모셨고

태조 이성계가 사망한 이후

태종의 왕권이 공고해지며

태종과 상왕 정종간의 관계는 안정되었습니다

 

사극 용의눈물에서 병든 아버지 태조를 간호하는 태종(왼쪽) 과 정종 형제의 아름다운 모습 , KBS 대하드라마龍의 눈물 (1996)

 

[정종의 행복한 노년]

왕위에서 물러난 정종은

연회에서 태종과 허허 호호 하며 잘 지냈고

 

왕위에서 물러난 후 20년동안

격구 , 사냥 , 연회 , 온천 등

조용히 꿀빨다

세종대왕이 즉위한 것까지 보고

태상왕자리에도 올라보고

곧 세종 1년 태종과 세종대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생을 마쳤습니다

 

[공정대왕 정종]

정종은 태조와 태종사이에 낀 임시 , 허수아비 임금이었기에

시호를 받지 못했고

한동안 공손할 공 恭 , 편안할 정 靖 자로

공정대왕이라 불리다가

숙종때 262년만에

정종 묘호를 받아 조선 2대임금 정종으로

공식 인정되었습니다

 

[효심과 우애의 왕]

과연 정종이 정말 허수아비고 무능했을까 싶은게

고려시대에는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왜구를 토벌하는 공을 세운 장군이었고

마음에 안들면 일단 형제나 아버지라도 죽이거나 조지고 보는

유능한 동생 킬방원 아니 이방원의 형으로서

이방원이 극진히 모실정도였다하니

말 다한겁니다

 

이성계 아들들중 효심도 가장 깊어

이성계도 정종이 유일하게 속안썩이는 아들이라며

정종만은 이뻐했고

우애도 깊어

친구없는 외로운 동생이었던 이방원과 가장 절친해서

맏형노릇도 제대로 했고

눈치와 인품이 뛰어났던 인물이라 할 수 있고

 

별다른 업적이나 이야기를 남기지 못했음에도

왕위에서 물러난 후 아무런 화를 입지 않고

조용히 꿀을 20년동안 빨았다는 것은

결코 무능하다고 볼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점차 공정대왕이 묘호도 받지 못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있는 사실에

후손들은 점차 부당함을 느껴

이후 정종으로 추대될 정도였습니다

 

정종은 효심과 우애의 왕이라 할 수 있고

역사에서는 화려한 조명이 비춰도 좆같은 놈들이 있고

화려한 조명은 비추지 않음에도

참 좋은사람들이 있는데

 

정종은 후자의 부류로서

참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생각됩니다

 

효심 , 우애심 , 조용히 꿀빨기 이게 포인트

 

<라봉봉>음 역시 학교 역사교육의 문제점은

허구한날

 

'태조 이성계 조선건국 , 신권중시

태종 이방원 사병혁파 , 호패제와 신문고제도 시행'

 

이런거만 주구장창 영혼없이 암기하라하지

정종은 아예 이야기도 하지 않고

업적 , 치적 , 사건 위주의 이야기만 암기를 강요당하지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 , 도덕적이고 우애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건 사실 다른나라도 비슷한 사정이고

이러니 나라와 사회가 개판이고 애들 인성이 막장으로 가는게 아닐까도 싶고

효도와 우애 같은 이런 아름다운 미풍양속들은 역시 따로 공부하거나

스스로 노력해서 가꾸어 나가야한다 생각됩니다

 

조선은 유교의 나라답게

여러 유교꼰대 , 병폐도 있었지만

효도와 우애를 중시하고 선비나 여인의 절개와 순결 등

아름다운 이야기도 참 많고

어린시절 이런 이야기들을 보며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의 밑바닥에는

태종 이방원이 아들 세종이 뜻을 편하게 펴게 하기위해

온갖 더러운 일들을 도맡아 하며

혼신의 노력이 있었다 이야기됩니다

 

그렇다면 태종 이방원의 업적 밑바닥에도

착하고 조용한 형이었던 정종의 노력과

우애심이 있지 않았을까 싶군요

 

참 착한사람들은 당장은 눈에 안띄더라도

결국 반드시 이름을 남긴다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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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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