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즉위 전까지의 태종 이방원>

[더없이 귀한 막둥이]

[이방원의 이미지]

[가족을 보호한 이방원]

[정몽주를 죽이다]

[정안군 이방원]

[가장 뛰어난 아들]

[왕자의 난]

[태종 이방원]

<라봉봉>

 

[더없이 귀한 막둥이]

조선을 건국한 인물이 태조 이성계라면

조선의 기반을 다진 인물은 태종 이방원입니다

 

이방원은 공민왕대 이성계가 한창 무장으로 활약하던 시기인

요동을 정벌하던 시기(1차 요동정벌 , 동녕부 공격) 에

이성계의 5번째 아들 , 막둥이로 태어났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가계도 , 실질적 막내였던 이방원

 

이방원의 어머니 한씨(훗날 신의왕후 한씨) 는

이방원을 낳고 점치는 사람 문성윤에게 물었는데

문성윤은

 

<문성윤>이 사주는 귀하기가 말할 수 없으니

조심하고 점쟁이에게 경솔히 물어보지 마소서

 

라고 대답합니다

 

이성계의 집안은 대대로 동북면의 무장가문이었고

이성계의 아들들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어린 이방원은 유일하게 글읽기를 좋아해 학문이 나날로 늘었습니다

 

[문과에 급제한 이방원]

결국 이방원은 이후

1382년(우왕 8년) 고려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해 문과에 급제합니다

 

이방원이 과거에 합격한 고려시대 말은

백성들은 유랑하고 어렵게 살던 시기였고

이에 이방원은 슬퍼하며 세상을 구제할 뜻을 가지고

몸을 굽혀 선비들에게 겸손했습니다

 

태조 이성계 역시 무장 가문에서

뜬금없이 과거시험에 합격한 아들이 나오자 눈물흘렸고

이방원만큼은 다른 아들들과 다르게 대했고

이방원 또한 효성을 다했습니다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의 기쁨이었습니다

이방원은 평생 군인집안 , 무장가문출신으로서

학벌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던 태조 이성계의

학문 컴플렉스를 해결해주었고

너무 기뻐 이방원의 문과 급제 합격장을 여러번 읽게 했습니다

 

사극 육룡이나르샤의 태종 이방원 , 의외로 문돌이였음

 

이성계가 문신들을 초청하면 시를 짓거나 교류하는 등

문인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보완했고

 

태조 이성계의 사회적 브레인이 정도전이었다면

혈연적 브레인은 이방원이었습니다

 

[이방원의 이미지]

항상 조선 3대왕 태종 이방원은

철퇴 , 킬방원 , 숙청 등

카리스마나 야성적인 무인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 체질이 마르고 허약했고

 

조선 2대왕 정종의 경우는

허수아비 , 유약한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론 체구가 곰처럼 강건하고 격구덕후였다 합니다

 

정종과 태종의 이미지들

 

둘의 이미지는 실제랑 정반대로 바뀐 케이스고

단 겉모습이 아닌

내면적 모습은 오늘날의 이미지와 맞고

 

이방원은 몸은 선비같아도

언제든 철퇴를 휘두를 정도로

냉철 , 과감하고 패기가 넘친 인물이었고

 

실제 조선의 철퇴 , 이방원의 별명

 

정종은 몸은 곰같이 커도

다소 어질고 유약한 형이기도 했습니다

 

[가족을 보호한 이방원]

1388년

아버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일으켜

개경의 최영 장군을 치자

 

개경에 머물고 있던

21세의 젊은 이방원은

아버지를 지원하러 간 형들 대신에

개경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구조했고

이들을 이천으로 피신시킨 후

사태가 수습되자 개경에 돌아옵니다

 

만약 이방원이 없었더라면

이성계의 가족은 분노한 최영 장군에게

잡혀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위화도 회군으로 아버지가 정권을 잡은

1388년 (창왕 1년) 에는

이방원은 대학자 문하시중 이색을 따라

명나라에 다녀왔습니다

 

[정몽주를 죽이다]

이후 공양왕대에

이성계는 해주에서 사냥하다 말에서 떨어져 부상입었는데

 

이성계의 낙마사고 , KBS

 

고려 마지막 충신 정몽주는

한때는 이성계 일파에 참여했지만

고려 충신으로서 고려의 멸망을 바란 인물은 아니었고

 

점차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왕이 될낌새를 보이자

이성계를 견제했고

이성계가 말에서 낙마해 부상입은 틈을 타

이성계 일파를 제거하려 합니다

 

정몽주

 

정몽주는 이성계의 브레인인

정도전 , 조준 , 남은 등을 모두 귀양보내버렸고

이 위기소식을 들은 이방원은

급하게 벽란도에서 머물던 이성계를 개경에 데려옵니다

 

그럼에도 정몽주는 대간들을 사주해

정도전 , 조준의 목베기를 청하는 글을 올렸는데

암묵적으로 정몽주를 지원한 공양왕은

단지 이성계가 두려워 허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원은 아버지 이성계에게

정몽주를 죽일것을 청하자

이성계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왕조 실록 태조실록>

여러 소인들의 참소와 모함이 더욱 급하므로 ,

화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전하(태종 이방원) 께서

몽주를 죽이기를 청하니

태조가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이에 이방원은 친척들을 모아서

정몽주를 제거해야할 것을 주장했고

정몽주 살해계획을 의논합니다

 

친척들과 의논을 마친 이방원은

다시 이성계에게 아뢰길

 

<이방원>지금 몽주 등이 사람을 보내어

도전 등을 국문하면서

그 공사를 우리 집안에 관련시키고자 하니

사세가 이미 급하온데

장차 어찌하겠습니까 ?

 

이에 이성계는

 

<이성계>죽고 사는 것은 명이 있으니

다만 마땅히 순리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속히 여막(무덤가의 초막)으로 들어가서 어머니 제사나 마치거라

 

당시 이성계는 대학자 정몽주와 술자리도 자주 가져

평소 친분도 깊었고

정몽주를 능히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 여겼는데

정몽주 역시 만만한 인물이 아니였기에

이성계가 몸져눕자 곧바로 이성계의 손발을 자르려 한 것이었고

이것을 눈치챈 이방원은 위기를 느끼고

정몽주를 제거할 것을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이방원은 하는 수 없이

물러나와 근심하다가

다시금 친척들과 의논합니다

이방원은

 

<이방원>아버님께서 내 말을 듣지 아니하지만

그러나 몽주는 죽이지 않을 수 없으니

내가 마땅히 그 허물을 책임지겠다

 

하고

휘하의 조영규를 불러

정몽주를 치게했는데

이 사실을 들은 정몽주는

상황을 살피려 이성계의 문병을 왔고

이성계는 그저 이전같이 정몽주를 대접합니다

 

이방원의 부하 , 자객들은

 

<이방원의 자객들>몽주를 죽이려면 이때가 시기입니다 ,

공(이성계) 이 노하시면 두려운 일인데 어찌하겠습니까 ?

 

이에 이방원은

 

<이방원>기회를 잃어서는 안된다

공이 노하시면 내가 마땅히

대의(큰 일)로서 아뢰어 위로하여 풀도록 하겠다

 

결국 조영규 등 자객들은 무기를 가져와

정몽주를 기다리다

정몽주가 오자 말머리를 쳐서 말을 넘어트리고

정몽주가 땅에 떨어지자

달려가 죽였습니다

 

선죽교의 피 , 정몽주의 죽음

 

정몽주가 암살당한 개성 선죽교

 

정몽주는 이성계를 죽이려했지만

고려 대학자로서 큰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고

정몽주의 죽음 소식에

이성계는 아픈와중에도 일어나서 이방원에게

분노합니다

 

<이성계>우리 집안은 본디 충효로써 세상에 알려졌는데 ,

너희들이 마음대로 대신을 죽였으니 ,

나라 사람들이 내가 이 일을 몰랐다고 여기겠는가 ?

부모가 자식에게 경서를 가르친 것은

그 자식이 충성하고 효도하기를 원한 것인데 ,

네가 감히 불효한 짓을 이렇게 하니 ,

내가 사약을 마시고 죽고 싶은 심정이다.

 

이에 이방원은

 

<이방원>몽주 등이 장차 우리 집을 모함하려고 하는데 ,

어찌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합하겠습니까 ?

이것이 곧 효도가 되는 까닭입니다

 

하고는

뜻밖의 변고에 대비하기 위해

즉시 휘하 군사들을 거느리고

병든 이성계의 집을 빙 둘러싸고 지키게 했습니다

 

다음날 이성계는 마지못해

부하들에게

정몽주가 충신을 모함하다 죽었다는 것을

공양왕에게 알리라 했습니다

 

[정안군 이방원]

결국 이성계의 마지막 정적 정몽주까지 살해되자

다시 신진사대부들은 복귀했고

결국

1392년 7월 이성계는 신하들의 추대로

왕좌에 즉위해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합니다

 

조선 건국 당시 26세의 이방원은

조선의 왕자로 임명되어

정안군에 책봉되어

이때부터

'도련님' 이 아닌

'정안군' 이라 불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태조 이성계는 가장 뛰어난 아들이었던

이방원을 조선 정치에서 철저히 배제시켰고

이방원은 세자로 책봉되지도 못하고

개국공신으로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는 이후 이성계에게 큰 화로 돌아오게 됩니다

 

당시 이성계는

자신을 도와 조선을 건국한

신의왕후 한씨의 장성한 아들들을 제치고

 

신덕왕후 강씨와 사이에서 낳은

10살짜리 막내 이방석을 세자로 결정했고

당시 이방원의 나이는 25세였습니다

 

이방석과 이방원

 

이방원은

이성계의 막둥이 아들로서

형들과 달리 학문적 소양을 보여

이성계를 기쁘게 했고

형들이 이성계와 함께 전장터에 나갈때

집안에서 가족들을 돌보고 보호한 역활을 하고

또한 정몽주 암살 등

형제들 중 홀로 나서서 아버지를 지켜내고

이성계가 차마 하기 어려웠던 일들을

대신 하며 피를 흘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자책봉에서 제외되자

아버지 태조 이성계에 대한

정안군 이방원의 배신감은 말로 하기 어려웠고

결국 이후 왕자의 난으로 이어집니다

 

[가장 뛰어난 아들]

일단

1394년(태조 3년) 명나라에서

왕자를 입조시키라하자

 

태조 이성계는

정안군 이방원을 불러 말했습니다

 

<이성계>명나라 황제가 만일 묻는 일이 있다면

네가 아니면 대답할 사람이 없다.

 

이에 이방원은

 

<이방원>종묘와 사직의 크나큰 일을 위해서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

 

이에 이성계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이성계>너의 체질이 파리하고 허약해서

만리의 먼 길을 탈 없이 갔다가 올 수 있겠는가 ?

 

나름 권력에서 배제시키긴 했어도

이성계의 아들중 가장 대범하고 뛰어난 아들이

이방원이었고

이성계는 이방원을 일부로 정치판에서 아낀 것이기도 했습니다

 

[왕자의 난]

그러나

이후에도 정도전 등은 어린 세자 방석을 조종하며

신하 , 재상중심의 정치를 구상하고 있었고

요동정벌을 계기로 이방원을 견제하려

이방원의 사병들을 빼앗으려 했고

 

이에 당시 31세의 이방원은 결국 다시 칼을 뽑아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 남은 및

세자 방석을 한번에 죽여버리고

정국을 장악합니다

 

왕자의 난 , SBS 창사 25주년 특별기획 육룡이 나르샤 (2015~2016) Six Flying Dragons / Roots of the Throne

 

왕자의 난 직후 실권을 장악한 이방원이었지만

이방원은 한숨 쉬어야 될 상황을 직감하고

세자 추대를 사양하고

장자계승을 주장하며

일단 자신을 아끼는 형이었던

이방과를 왕으로 올려

이방과는 조선 2대왕 정종이 됩니다

 

왕자의 난으로

태조 이성계는

순식간에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고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야했고

 

일단 정종을 허수아비왕으로 앉힌 이방원은

군권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며

곧바로 왕이 될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갑니다

 

다섯째 동생 이방원이 정권을 잡은것에

질투한

넷째 이방간은

상왕으로 물러난 아버지 태조 이성계가

이방원을 미워하는 것을 이용해

자신의 사병들로

이방원을 쳤고

 

당시 33세의 이방원 역시 자신의 사병들로

개성 시내에서 시가전을 벌여 친형을 제압합니다

 

화제가 되었던 사극 정도전의 개경 시가전

 

이를 2차 왕자의 난이라 합니다

 

못난 형이었던 이방간은

이방원의 군사를 대적할 수 없었고

 

당시 정종과 상왕으로 물러나있던 태조 이성계 역시

골육상쟁에 대한 분노와

이방간은 이방원을 대적할 수 없었음을 알았기에

이방간에게 ㅈㄹ하지말고 철좀 들라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2차 왕자의 난

 

[태종 이방원]

하여튼 결국 이방간은 이방원에게 패배했고

시가전이 종료된 3일 후

하륜은 정종에게 이방원을 세자로 삼을 것을 청했습니다

 

<하륜>정몽주의 난에 만일 정안공(이방원) 이 없었다면 ,

큰 일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을 것이고 ,

정도전의 난에 만일 정안공이 없었다면 ,

또한 어찌 오늘이 있었겠습니까 ?

또 어제 일(2차 왕자의 난)로 보더라도

하늘의 뜻과 인심을 또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청하건대 , 정안공을 세워 세자를 삼으소서

 

이에 정종은

 

<정종>경들의 말이 심히 옳다

 

하고 동생 이방원을 세자로 삼았고

9개월 후

정종은 이방원에게 왕위를 양보했고

결국

이방원은 조선 3대왕 태종으로 즉위합니다

이때 이방원의 나이

33세였습니다

 

태종 이방원

 

험난하고 험난한

철퇴왕 태종 킬방원의 킹스로드는

왕이 된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

 

<라봉봉>이방원은 이성계의 영원한 막둥이였지만

장성한 형들을 제치고 이성계의 아들중

가장 총명하고 냉철하고 대범했던 인물이었고

 

조선건국에 직접 앞장서 아버지를 보호하고

피를 흘린 개국공신이었습니다

 

역사에서는 건국자가 뛰어난 덕성과 포용력 , 지도력으로

나라를 건국하면

곧이어 신생국가를 안정시키는 냉철한 카리스마형 인물이 나오게 되는데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 ,

고려 4대왕 광종

조선 3대왕 태종 이방원이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신생국가들은

뛰어난 창업자 이후부터는

공신들도 많고

초기단계기에 여러 불안정한 요소가 많아

금방 멸망할 수 있기도 해서

곧이어 이런 엄격한 지도자들이 나오는것으로 보여지고

이방원이 이런 포지션에 해당했습니다

 

역사는 정몽주의 충심 위주로 이야기하는데

정몽주 역시 이성계 일가에 칼을 겨눈 것이었고

당시 이방원의 입장에서도 본다면

당장 정몽주가 자신 일가를 죽이려 하는데

가만히 있기도 뭐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여튼 온갖 궂은 일을 다한 인물이기도 하고

지적 판단력이나 성깔도 있었던 인물이고

일부로 이런 모습때문에 이성계도 이방원을

노골적으로 배제하면서도 또 아낀 모습이 보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왕이 되고서도 이어지는데

정적제거 , 숙청등으로 피를 엄청나게 흘린 인물이라

참 이로인해 조선초기가 안정됬다는 이야기도 있고

공포스러운 이야기기도 합니다

 

반응형

'어린이 한국역사 > 2집 Humanis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즉위 전의 세종대왕  (0) 2020.06.08
조선 태종의 개혁  (0) 2020.06.08
조선 정종의 효심과 우애  (0) 2020.06.06
조선 건국 이후의 태조 이성계  (0) 2020.06.06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  (0) 2020.06.06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