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정조를 흠모한 조선 헌종>

[효명세자]

[세도정치]

[안동김씨 VS 풍양조씨]

[헌종 VS 안동김씨]

[비변사]

[정조 빠돌이 헌종]

[낙선재]

[끊겨버린 삼종혈맥]

<라봉봉>

 

[효명세자]

순조는 하나뿐인 아들이자 총명하고 뛰어났던 효명세자가 사망한 뒤

비통속에서 4년후 세상을 떠났고

그나마 안동김씨들의 세도정치에서 버티고 있었던 순조마저 사망하자

조선 왕실은 대위기를 맞습니다

 

(안동김씨 VS 전주이씨)

 

결국 순조의 손자이자 효명세자의 아들인

헌종이 8살의 어린나이에 즉위해

조선 24대왕 헌종이 됩니다

 

헌종 , 열성어진

 

먼저 순조는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 효명세자에 큰 기대가 있었는데

효명세자는 총명하고 외모도 출중했고

단호한 일처리로 차기 국왕으로서 큰 기대를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효명세자는 세자빈과 함께 적통 아들을 낳아

또다시 순조를 기쁘게 해주었는데

 

이 순조의 적통손자가 바로

헌종이었습니다

헌종이 태어나자 순조는

 

<순조>오늘 신시에 세자빈이 원손을 낳았으니 , 모든 행사는 관례대로 거행하라

 

이에 신하들은 순조를 축하하며

 

<신하들>하늘과 조종들께서 묵묵히 도우시어 빈궁께서 원손을 순산하셨으니 ,

이는 실로 억만 종묘 사직의 무궁한 기쁨입니다.

처음으로 손자를 보시는 경사를 맞았으니 ,

전하의 마음이 더욱 기쁘시겠습니다만

신들도 즐거운 마음을 금할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당시 안동김씨의 전횡에 불만을 느끼는 신하들도 많았고

또한 , 유약했던 임금 순조 역시 안동김씨에 눌려있었기에

단호하고 총명한 성향의 아들 효명세자에게 큰 기대를 하며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세자가 왕대신 나라를 운영) 을 시키고 있었던 때였는데

하필 효명세자는 헌종이 4살될때 갑자기 병에 걸려

2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세도정치]

효명세자라는 마지막 잎새까지 떨어진 순조는

절망속에 4년뒤 사망했고

결국 순조의 손자이자 효명세자의 아들 헌종이 8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를 잇게되어

조선 24대왕 헌종이 되는데

헌종의 즉위는 시기적으로도 너무 안좋았던게

 

하필 당시는 조선 왕실과 친족이었던 척신들인

안동김씨가 세도정치(힘 , 권세로 하는 정치)를 하며

권력을 강화 , 확장시키던 때였고

안동김씨가 헛기침을 하면 나는 새도(세도=새도) 떨어트린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안동김씨 가문의 탐욕속에 그들의 권력은 강화되었고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세도가문들은 훌륭한 신하 , 뛰어난 지식인들의 관직진출을 막고

자신에게 아부하고 뇌물을 바치는 사람들을 고위관직에 임명하며

재산을 모으며 나라를 부패하게 했고

 

뇌물을 주고 관직을 얻은 자들은 탐관오리가 되어

백성들에게 더욱 많은 세금을 거두었기에

그대로 백성들의 피해로 돌아왔습니다

 

세도가 집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오늘날 의원회관 앞에 쌓인 국회의원 추석선물들 (역사는 반복된다)

 

순조대부터 이런현상이 시작됬는데

유약했던 순조는 안동김씨들의 위협속에 아무것도 못하고

끙끙앓다가 사망해버렸고

하필 순조의 손자 헌종까지

적세손이었음에도 유래가 없이 8살이라는

조선 최연소 국왕으로 즉위해버리자

 

무능한 어린왕 앞에서

안동김씨 , 세도가문들의 권력강화는 더욱 빨라졌습니다

 

[안동김씨 VS 풍양조씨]

헌종이 너무 어리니

헌종의 친할머니이자

순조의 부인 순원왕후 김씨가

대리청정을 했는데

 

순원왕후 김씨는 바로 김조순의 딸 , 안동김씨였는데

당연히 이에 안동김씨들이 순원왕후에 달라붙어

다시 권력을 강화했고

 

하필 헌종 엄마였던

신정왕후 조씨는

풍양조씨였기에

 

헌종대에는

 

안동김씨 VS 풍양조씨

 

라는

조선 후기 희대의 세도가들의 경쟁이 펼쳐집니다

 

(헌종도 태어나보니

할머니가 안동김씨 ,

엄마가 풍양조씨로

헌종대에는 족보적으로도 이미 안동김씨와 풍양조씨들에게

강간당하고 있었던 조선왕실 전주이씨였음)

 

참고로 여기서 헌종의 엄마이자

효명세자빈이었던 신정왕후 조씨는

풍양조씨지만 이후에도 기억해야 할 인물인게

바로 한국 근현대사를 시작할때

왕실서열과 거리가 있었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아들 개똥이 고종 이명복을

직접 왕으로 낙점한

 

'조대비'

 

가 바로 신정왕후 조씨고

 

신정왕후 조씨 추정 초상화

 

하여튼 헌종엄마는 신정왕후보다는 '조대비' 로 기억되는 인물이고

풍양조씨 일가를 대표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니까

8살 어린임금 헌종이 즉위하자

 

순조비 순원왕후 김씨 VS 며느리인 신정왕후 조씨 

 

의 일가가 맞다이를 뜨게 되었고

 

(나라꼴도 , 집안꼴도 개판)

 

아무것도 모르던 헌종은

점차 나이가 먹어가며

조선시대 기준 성년이 된 15살부터 친정(직접 정치)을 실시했고

 

친정을 시작한 헌종은

너무 강성했던 할머니네 가문인 안동김씨를 견제하기 위해

엄마 가문인 풍양조씨를 밀어주며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 합니다

 

[헌종 VS 안동김씨]

헌종은 우유부단했던 할아버지 순조와 달리

강경파 인물이었고

안동김씨를 찍어 누르려 합니다

 

당시 안동김씨들은 비변사(의정부 , 내각) 을 장악하고 있었던 무서운 상황이었는데

왜 무서운 것이냐면

지금으로 치면 국회의원 300명중에서

250명이 다

김동동 , 김철수 , 김돌돌 , 김봉봉 

이런 김씨 일가로서

모두다 한명의 김씨집안에서

큰아빠 , 작은아빠 , 삼촌 , 이모들이 다 국회의원을 해먹고 있었던

모두가 한통속인 그런 무시무시한 상황이라고 생각해보면 됩니다

 

게다가 안동김씨들은 더 무서웠던게

군사권까지 장악하고 있었기에

헌종 할아버지 순조 역시 한때 안동김씨에 맞서 친위군사를 늘리려다가

안동김씨의 반대에 깨갱하고 명을 거둔 사례가 있었고

 

조선 왕실 역시

이전에 막나가다가 연산군과 광해군대에

군사권을 장악한 신하들의 중종반정 , 인조반정을 맞고

신하들에게 왕이 교체된 사례가 2번이나 있었기에

함부로 군권을 장악한 안동김씨에게 뭐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헌종시기는 하여튼 총체적 노답 시기였습니다

 

[비변사]

일단 안동김씨들은 비변사(의정부) 를 장악하고 있었는데

비변사는 의정부대신들이 모인

전쟁시 최고 회의기구로서

임진왜란대부터 그 기능이 확대되었는데

 

비변사 터 , 서울특별시 종로구

 

비변사는 전시비상대책회의기구답게

다른 정부기관 , 6조들의 권한을

무시하는 초월적 권한을 가진 기구로서

워낙 권력이 씹사기다보니

한번 권력을 맛본 사람들은 비변사를 계속 애용했고

결국 비변사는 임진왜란 이후에도 주요 권한기구로 남아

조선 후기부터는

기존 의정부 , 6조 체계를 무력화 시킨 조선 최고기구화 됩니다

 

비변사

 

(조선은 임진왜란 , 병자호란 이후부터

사실상 행정부 체계가 다 무너지고

전시체제 국가로 되었음을 의미함)

 

비변사가 아무리 강해져도 이게 그나마

숙종 , 영조 , 정조같은 명군시기에는

그나마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강력한 기구로 작용했을 뿐이지만

신하들을 견제해 낼 역량이 있었던 정조가 사망해버리자

순조대부터는 안동김씨 등 세도가문들에 의해

비변사가 장악되어

세도가 , 비변사의 독주가 시작되었고

비변사는 군사권 , 관리 임명권 , 조세권까지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기구로서

국왕권까지 위협했습니다

 

이에 조선왕조상 유래없이

왕실이 신하들에게 극도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고

국왕뿐만 아닌 전주 이씨 종친(왕실 친척) 들 마저

안동김씨들에게 눌려 암살위협까지 느끼며

숨죽여 살아야 할 정도로

죳되고 있었습니다

 

결국 성인이 된 헌종은 안동김씨를 견제하기 위해

안동김씨가 장악한 의정부(비변사) 를 거치지 않고

직접 신하들을 임명하려 했는데

 

헌종은 유약했던 순조의 모습이 아닌

정조같이 대범한 인물이었고

 

안동김씨의 위협속에도

결국 특지 , 임금의 특별명령 이라는 수단을 사용해

풍양조씨들을 대거 특지로 임명하고

규장각 출신 역시 특지로 임명하며

왕권을 강화하려 시도하지만

 

결국 풍양조씨 역시 헌종의 엄마네 가족들이었고

 

헌종의 권력강화시도는 결국

안동김씨라는 할머니네 가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엄마네 가족을 이용하는 ,

 

외척을 견제하기 위해

외척을 등용하는

안습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정조 빠돌이 헌종]

증조할아버지 정조를 닮고 싶었던 헌종은

정조가 자신의 친위부대 장용영을 키운것처럼

훈련도감(조선 군사기구)을 장악한 안동김씨에 맞서 군사권을 키우려 했고

 

곧바로 신료들의 반발을 받았지만

끝내 헌종은 궁중경비가 소홀하다는 이유로

정조의 장용영을 따라해

장용영보단 작은

자신의 미니 친위부대 '총위영' 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정조 빠돌이 헌종은

정조를 너무 닮고싶어해

다시금 정조의 정책을 부활시켰는데

 

정조가 시행했던 초계문신제를 부활시키는데

초계문신제란 

젊은 신하들 중 유능한 인재를 뽑아

규장각에서 특별 재교육 시키며

초계문신들은 국왕의 전폭적 지지 , 관심을 받으며

왕의 개혁정책에 적극 동참하는 것으로

정조의 베스트 프렌드 겸 한국 위인이자 실학자

정약용이 대표적 초계문신이고

 

정조 장용영 , 헌종 총위영이

임금의 친위부대라면

 

정조와 헌종의 초계문신제는

임금의 친위관료 양성 목적이 있었던 제도였습니다

 

[낙선재]

정조 이산은 원대한 꿈을 가진 청년개혁군주로서

조선 , 그리고 한국 역사의

마지막 임금다운 임금 , 명군이었던 인물답게

 

헌종은 증조할아버지 정조를 진심으로 흠모(존경해 따름)했고

정조같은 성군이 되는 것을 꿈꾼 헌종은

 

정조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로서

궁궐안에 낙선재라는 도서관 겸 낭만적 안식처를 짓는데

낙선재는 역시 정조의 도서관 규장각같은 개념이었습니다

 

특히 정조는 일반적 왕실 인물이라기보다

이례적으로 스스로를 사대부중의 사대부 ,

신하들의 스승(군사 君師 , 임금 스승) 을 자처한 임금으로서

 

정조는 평소 성향이나 자신의 건물등에도

왕실처럼 화려하게 꾸미지 않고

사대부 집안처럼 단청칠을 하지 않았는데

 

헌종의 창덕궁 낙선재 역시 

왕실 궁궐같은 집이 아닌

일반적인 양반가 같은 집이 되었고

헌종의 처소이자 아지트로 사용됩니다

 

궁궐보단 일반 양반가 집같은 창덕궁 낙선재

 

(베르사유 궁전 , 낙선재 등

인싸성향 새끼들은 꼭 아지트나 찻집 이런걸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싸성향인 저로선 좀 이해가 안되는 부분입니다)

 

하여튼 이러면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던

헌종은 이제는 자식을 낳기위해

자신의 부인들과 한창 떡을 칠 준비를 하고 있었고

 

특히 헌종은 왕비와 사이에서

자식을 볼 수 없다 판단해

친위세력까지 동원하며 후궁을 맞이해

 

(아무리 왕이어도 후궁들이기는

신하나 부인 눈치를 봐야했음)

 

낙선재 옆에 석복헌이라는 건물을 짓고

후궁을 살게 합니다 

 

조선 사대부 예술의 정점이 녹아든 창덕궁 낙선재

 

(헌종 역시 오늘날 청년들이 직장을 가지고나서 자식을 계획하듯 한 것이었고

놀랍게도 이거도 정조 따라한거 ,

자식생산 & 떡치기까지 따라하는 헌종은 거의 정조 스토커 수준)

 

[끊겨버린 삼종혈맥]

정조를 꿈꾼 헌종은

정조의 개혁을 다시 부활시키며

정조가 척신들을 배제시키고 사대부들을 등용한 것처럼

헌종 역시 안동김씨들을 배제시키고 사대부들을 등요하며

정조스러운 개혁군주를 꿈꾸었지만

 

안타깝게도 헌종은 즉위 15년째인

23살의 젊은 나이에

피를 토하고 소화불량 , 설사를 하며 건강이 나빠지다

자식도 없이 요절해버립니다

 

헌종까지 자식없이 사망해버리자 영조가 자랑하던

삼종혈맥 (효종 , 현종 , 숙종) 의 효종대부터 이어진

조선후기 순혈주의 명군 혈통은 단절되었고

한국사 마지막 명군 정조의 혈통역시 끊겼습니다

 

안동김씨를 견제하던 헌종까지 갑자기 죽어버리자

숨죽이던 안동김씨들은 다시금 기세를 펼치고 있었고

헌종 할머니 대왕대비 순원왕후 김씨는

또다시 권력을 잡게 되어

안동김씨는 이제는 더이상 견제할 세력이 사라진 ,

조선 세도가문 최정점이 되어

마지막 세도권력의 불꽃을 뿜어올립니다

 

<라봉봉>이전에도 헌종이야기를 쓴 바가 있었는데

그때는 이양선의 출몰 , 세도가문 , 김대건신부의 순교 등

굵직한 주요 사건을 썼고

 

이번엔 안동김씨에 맞서며

정조를 흠모하고 낭만적이었던 임금 헌종의 인간사 중심으로 써보니

또 새롭습니다

 

(역사 이야기는 원래 이런식으로 계속 우려먹는 것임 !)

 

헌종은 비록 존재감이 없는 임금이었지만

마지막 직계 삼종혈맥으로서

조선 후기 명군의 피를 이은 마지막 임금이었고

나름 자신의 대에

정조처럼 훌륭한 개혁군주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안동김씨들의 반발 및

너무 젊은나이에 요절한 것으로

결국 또다시 조선 개혁은 멀어지고

 

안동김씨들은 헌종 다음대인 철종대에 이르러서는

대놓고 세도정치를 펼치며 매관매직(관직을 판매)을 일삼았고

고종과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등장 이전까지

조선 척신들의 마지막 불꽃을 뿜어올립니다

 

반응형

'어린이 한국역사 > 2집 Humanism'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종과 흥선대원군  (0) 2020.09.30
꼭두각시 임금 철종  (0) 2020.09.28
순조와 세도정치  (0) 2020.09.24
조선 마지막 불꽃 정조  (0) 2020.09.15
즉위 전의 세손 정조  (2) 2020.09.12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