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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임금 철종>

[대가 끊긴 조선왕실]

[사도세자의 후손 철종]

[역적집안 철종일가]

[강화도령 이원범]

[철종을 보호한 순원왕후]

[순원왕후의 죽음]

[철종과 안동김씨의 공존]

[임술농민봉기]

[꼭두각시 임금]

[소현세자와 효종의 후손들]

[한국사 마지막 '' 철종]

<라봉봉>

 

[대가 끊긴 조선왕실]

홀로 안동김씨들과 투쟁을 벌이던 헌종은

결국 세도정치의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23살의 한창의 나이에 요절해버렸고

영조의 자부심이었던 효종대부터 이어진 조선 직계혈통 라인인

헌종이 사망하자 직계 삼종의 혈맥(삼종혈맥 , 효종과 현종과 숙종을 의미) 이 끊겨버렸고

또한 정조의 혈통도 끊겨버립니다

 

효종의 후손들 '삼종혈맥'

 

조선 후기 조선 왕실의 피는 참 귀했는데

전기와 달리 유독 왕자들이 많이 태어나지 않은 조선 후기 왕실이었고

헌종마저 후사없이 사망하자 조선왕실엔 큰 비상이 걸립니다

 

일단 안동김씨들 , 세도가들은 자신을 극도로 견제하던 헌종이 사망하자

곧바로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었고

 

조선 왕실의 대가 끊기자

곧바로 안동김씨들은 역시 안동김씨였던

순조부인인 대왕대비 순원왕후 김씨(안동김씨) 와 결탁해

허수아비 왕을 앉혀 세도정치를 확장하려 작정했고

 

대왕대비 순원왕후 김씨는 저 멀리 강화도에서 숨어살던

사도세자의 증손자 이원범을 데려와 조선 국왕에 임명했고

 

이원범 ,

이 인물이 바로 조선 25대왕 철종입니다

 

철종 어진

 

[사도세자의 후손 철종]

철종이 사도세자 증손자인데

근데 , 사도세자는

뚱땡이 세자로서 아버지 영조에게 매일같이 갈굼과 구박을 받으면서도

은근 씨를 많이 뿌렸고

 

정신과 육체적으로 영조에게 오지게 학대받았던 사도세자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의 아들이 순조 단 한명인것과 달리

사도세자는 정식부인 혜경궁 홍씨와 낳은 정조 이외에도

후궁들에게서도 여러 아들들을 낳았고

 

이로인해 영조는 돼지같이 맨날 먹던 아들놈이

세자신분임에도 

아내 이외에 후궁을 4명이나 두고

공부는 안하고 자식만 계속 생산해내자

ㅈㄴ게 미워하고 갈군것일 수도 있고

 

조선시대에서 자식을 많이 낳는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고작 세자 신분으로 후궁을 4명이나 두었던 사도세자도

여러 정신병까지 겹쳐

결국 죽을 당시 본처 일가와 다른 신하들도

아무도 편을 들어주지 않았을 정도로

처신을 참 잘못한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마르고 날렵했던 영조는

돼지같이 뚱땡이인 자신의 아들이 맨날 쳐먹고 후궁들과 ㅅㅅ만 해대고

온갖 비행만 저질러대자

돌아버릴 지경에 결국 자식을 뒤주에 가두어 죽여버렸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도세자는 이런 짐승남 같은 성향때문에

선비성향이었던 영조 , 정조와 달리 많은 자식을 낳아

살아남은 사도세자의 자식들은 다행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사도세자가 후궁과 낳은 은언군의 손자가

바로 철종 이원범이었습니다

 

멀고도 험한 사도세자와 철종의 관계

 

[역적집안 철종일가]

근데 철종도 가족사가 안습이었던게

일단 증조할아버지 사도세자가 고조할아버지 영조에게

역적취급을 받으며 잔혹하게 살해당했고

철종의 할아버지 은언군도 역모죄에 엮여

아버지와 함께 인천 강화도 서쪽의 교동도로

유배를 갔고

 

강화도 교동도 , 수도 한양과 하루거리로 가까워 조선왕실 및 왕족 전용 유배지로 애용된 섬

 

은언군은 순조시기

은언군의 부인이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천주교도라는 것이 드러나

신유박해때 사약을 받아 사형당했고

 

박해받은 조선 천주교도들

 

은언군의 아들 , 철종의 아버지는 교동도에서 40년간 살다가

겨우 귀양에서 풀려나 수도 한성으로 돌아오고

이원범 , 철종을 낳았는데

 

은언군이 역적죄로 죽었기에

철종의 아버지는 군호(왕족에게 OO군 이라 붙여주는 호칭) 조차 받지 못했고

철종은 그렇게 왕족임에도

 

증조할아버지(사도세자)=역적

할아버지(은언군)=역적

아버지=역적 아버지때문에 40년 귀양

 

이라는 안습한 가족사가 있었기에

왕족임에도 별다른 힘이 없었고

 

그나마 아버지가 귀양에서 풀려나고서는

다시 명예가 회복된 이원범 집안이어서

이원범은 4살때는 천자문을 읽어

글씨를 아예 모르지는 않고

평범한 왕족으로 살아가나 싶었는데

 

하필 이원범(철종) 은 더 재수없게도

이원범이 14살때

큰형이 왕으로 추대되는 역적모의사건이 있었기에

큰형은 처형되고

이원범은

연좌제(가족중 죄인이 있을경우 가족들도 공동책임으로 죄를 묻는 봉건제 악습)

로서 강화도로 유배됩니다

 

강화도로 유배될 당시

바다를 건널적에 바람을 만나 위태로운 상황이 됬지만

이원범은 태연히 두려워함이 없이

가족들을 위무했고

 

 

이후 배가 언덕에 도달하자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배에 탄 사람들>이 배에 하늘이 돕는 사람이 타고 있었을 것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철종실록의 철종 미화 기록)

 

[강화도령 이원범]

하여튼 ,

이원범은

증조할아버지 , 할아버지 , 아버지 , 형까지

모두 역적죄에 연루되거나 연좌된 안습한 가족사가 있었기에

당시 왕족임에도 출생이 꼬여도 한참 꼬인 상황이었고

 

집구석이 캐노답이었던 이원범 역시

유배된 강화도에서 농사꾼 , 나무꾼으로 살며

강화 백성들에게 그저

'강화도령' 이라 불리며

평범한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강화도령 이원범

 

원래같으면 그렇게 '반도의 흔한 역적 집안 사람' 으로서

강화도 유배지에서 평범한 농사꾼으로 생애를 마감할 뻔한 이원범이었고

 

이원범 역시 다사다난한 유년시절을 보냈기에

글자도 잘 모르고 단지 조선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ㅎㅌㅊ 농사꾼으로 살아가다 죽을 운명이었는데

 

헌종이 23살에 자식없이 요절해버리자

상황이 급변합니다

 

이원범의 성품이 참 순박했지만

아무리 촌동네 강화도라도

부모도 없고 , 왕족임에도 글도 모르고 , 또 역적 집안에 시집 갈 처녀는 없었고

이원범은 19세까지 결혼도 못한

ㅆㅎㅌㅊ 도태남 , 노총각(당시기준) 으로 농사나 지으며 살고 있었는데 (ㅠㅠ)

 

헌종이 죽고 조선왕실 남성이 극도로 부족한 상황속에서

이원범이 그나마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의 혈통으로서

제일 왕실과 가까운 핏줄이었고

 

그나마 19살의 나이였던 이원범은

당대 기준으론 성인이었지만 (조선성인나이=15~16세)

나름 20세 이전이기에 적당히 어려서

대왕대비 순원왕후 김씨와 안동김씨들이

수렴청정을 하며 적당히 조종할 정도로 만만한 나이었기에

적당히 어리숙하고 어리고 성품이 선했던 이원범은

 

안동김씨의 철저한 정략 , 정치적 의도속에

왕으로 낙점되어 강화도에서 한양으로 모셔지게 됩니다

 

순원왕후 김씨는

 

<순원왕후>영조의 혈맥은 헌종과 이원범 뿐이니

종사를 부탁할 것으로 정하였다

 

하고서는

강화도로 대신들을 보내서

귀인(귀한 사람 , 이원범)을 한양으로 받들어 모셔오게 했습니다

 

이원범은 유배되 살던 강화도에서 사실상 평민으로 지내며

장가도 못가고 생명을 부지하고 있었지만

강화백성들에게는

그래도 왕족이기에 '강화도령' 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인물이었고

 

이 순박한 농사꾼 , 강화도령을 국왕으로서 모셔오려

한양에서 병사와 대신들이 대거 출동해오자

 

이원범은 이전 큰 형이 역모죄로 죽은것을 본 트라우마가 있었기에

자신을 잡아 죽이려 온줄 알고

산으로 도망쳐버리는데

영의정의 설득과 강화 주민들의 협조로

자신을 잡으러 온 것이 아닌 왕으로 모시러 왔다는 사정을 듣고서는

순박한 농사꾼 강화도령 이원범은 결국 가마에 올라

서울로 가서 조선 25대왕 철종으로 즉위합니다

 

강화도행렬도

 

[철종을 보호한 순원왕후]

이미 어리버리한 순조때 순조에게 기어오르며 한창 꿀빨던 안동김씨들은

순조 사후 강경하고 똑부러진 헌종에게 크게 당한 전례가 있기에

다시 어리버리한 강화도령 이원범 , 철종이 즉위하자

신나서 엉덩이를 흔듭니다 (내가 써도 웃기군ㅋ)

 

다시 살아난 안동김C들

 

대왕대비 순원왕후는

철종이 즉위하자

철종에게 하교하기를

 

<순원왕후>이렇게 망극한 일을 당한 속에서도

5백년 종사를 부탁할 사람을 얻게 되어 다행스럽소

 

주상은 영조의 혈손으로서 지난날 어려움도 많았고 오랫동안 시골에서 살아왔으나 ,

옛날의 제왕 중에도 민간에서 생장한 이가 있었으므로

백성들의 괴로움을 빠짐없이 알아서

정사를 하면서 매양 애민(愛民 , 백성을 사랑함) 위주로 하여

끝내는 명주(명군) 되었으니 ,

지금 주상도 백성들의 일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오.

백성을 사랑하는 도리는 절검(절약하고 검소)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

비록 낱의 밥알이나 자의 베도 모두가 백성들에게서 나온 것인 만큼 ,

만일 절검치 않는다면 피해는 즉각 백성들에게 돌아갈 것이고 ,

백성들이 없으면 나라가 유지될 없으니 ,

모름지기 일념(한 마음)으로 가다듬어

애민(愛民 , 백성 사랑) 두 글자를 잊지 마오.

 

안동김씨의 불꽃 순원왕후 김씨 , KBS 2TV 월화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2016) Love in the Moonlight

 

하여튼 순원왕후는 

수많은 왕족중 일부로 19세의 어린 이원범을 왕으로 직접 택한 것이었고

 

(물론 원래부터 이원범이 왕위 계승서열이 가장 높긴 했는데

그래도 애매한 여러 인물들 중 이원범을 직접 택한 것)

 

순원왕후 김씨는 철종을 자신의 아들 , 즉 양자로 삼아

철종의 즉위 정당성을 높이는데 열중합니다

 

순원왕후 김씨 역시 본인도 안동김씨이자

안동김씨 주축 인물이었지만

나름 완전 막나가는 여인은 아니었기에

민생을 걱정하며 친정 안동김씨가 지나치게 나대는 것을 꺼린 인물이었고

 

순원왕후는 철종의 왕비를 간택할때도

친정(안동김문)에다가

 

'이번에도 우리가문에서 왕비 내는 것은 애바임'

 

하고 전보를 쳤지만

권세욕이 매우 강했던 탐욕의 안동김씨들 , 그녀의 친정은

 

'ㅈㄹ ㄴㄴ해'

 

라는 답변을 보내고

기어이 철종 왕비까지 다시 안동김씨로 선택했고

결국 철종은 법적 엄마(양부모 , 순원왕후 김씨)가 안동김씨인데 부인 역시 안동김씨라는

안습한 상황이 되서 조선왕실 족보가 개족보화 됩니다

 

결국 철종이 즉위하자

하루아침에 철종 집안은 역적집안에서

다시 왕족 집안으로 격상되었고

 

철종은 결국 순원왕후 김씨의 우려에도

안동김씨 가문의 김문근의 딸을 왕비로 삼게 되어 혼인했고

결국 안동김씨 김문근은 국구(임금의 장인) 가 되어

권력을 휘두릅니다

 

순조~철종대까지 이어진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세도정치

 

[순원왕후의 죽음]

일단 ,

불행한 가족사를 지니고

순박한 영혼을 가졌던 양아들 철종을 불쌍히 여긴 순원왕후 김씨는

철종 초기 자신이 수렴청정을 하며

진짜 자신의 아들처럼 철종을 보호해 주었고

 

(안동김씨라고 무조건 악이 아니었고

순원왕후 김씨는 한계는 있지만 ㄹㅇ 교양있는 대왕대비였음)

 

이후 순원왕후 김씨가 사망하자

아무것도 모르는 농사꾼으로 살던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주고 , 아들로서 보살펴준

양어머니 순원왕후에게

철종은 진심으로 슬퍼했습니다

 

<철종의 순원왕후 애도>

선왕(헌종)께서 승하하였을 때를 당하여

나같은 작은 사람을 영조의 혈손이라 하여

어렵고도 큰 일을 맡기고서

가르치는 마음으로 타이르셨다

...

사람이 어머니에 대해 누군들 3 동안의 사랑을 받지 않았겠는가마는

소자는 태모(太母 , 대왕대비)에게 9 동안 사랑을 받았으니 ,

종신(평생)토록 하늘처럼 끝없는 사모가 있게 되었다.

나를 돌보아 감싸주고 나를 길러주어

의복 , 음식 , 질병, 한난(춥고 따뜻) , 주소(밤낮

품안에 있는 어린 아기처럼 생각하였으니 ,

생명 세상에 살면서 은덕을 갚을 방법이 없다.

하늘이여 , 원통하여 그저 망극하기만 할 뿐이다

 

철종은 평생 역적 자손으로 강화도에서 무식하게 살다가

순원왕후 도움으로 국왕이 되었고

또한 순원왕후는 순박했지만 일자무식의 양아들이었던 철종을

타이르고 가르치며 

국왕으로서

 

백성을 사랑하는 것 ,

검소해야 하는 것 ,

독서해야 하는 것 ,

대신을 예우하고 존경해야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분명하고 자세하고 간곡하게 가르쳐주었고

 

집무하는 조선국왕 , 화성행궁

 

안동김씨들에게 둘러쌓인 조정 , 궁궐속에서

어느한명도 의지할 수 없었던

철종에게는

순원왕후 역시 안동김씨였지만

 

철종은 양아들인 자신을 

보호해주고 정성스럽게 대한 순원왕후를 깊이 존경하고 의지하고 있었고

 

순원왕후가 사망하자

진짜 어머니가 사망한 것처럼 통곡합니다

 

<철종>이 세상에서는 자성(임금의 어머니)의 교훈을 어느 곳에서 다시 받들겠으며

자성의 은혜를 어느 곳에서 다시 보답할 있겠습니까 ?

외로운 소자가 무엇을 믿고 살겠으며 ,

어디에 힘입어 국사를 다스릴 있겠습니까 ?

하늘과 땅을 우러러보고 굽어본들 미칠 바가 없어 ,

말을 하려 하여도 소리가 막히고 글을 쓰려고 하니 창자가 억눌려 ,

섞인 눈물을 닦으면서 대략 지극히 애통한 속마음을 호소하오니 ,

혼령께서는 강림하사 불쌍히 여기는 민휼(불쌍한 백성을 도우는 것) 드리우소서

 

아 ! 슬픕니다 , 아 ! 애통합니다

 

 

[철종과 안동김씨의 공존]

양어머니 순원왕후 김씨를 진심으로 존경했던 철종은

순조비 순원왕후 사후

순조와 순원왕후를 더욱 높이려했고

 

이에 철종은 그녀의 친정인 안동김씨들을

홍경래의 난때 홍경래의 난을 안동김씨 김조순이 주도해 진압했던 것을 명분으로 삼아

안동김씨들을 다른 신하들과 달리 공신으로 우대합니다

 

자신의 세력도 없고 온순했던 철종은 선대왕 헌종처럼

세도가문 안동김씨들과 외로운 싸움을 할 바에

세도가문 안동김씨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들과 타협하는 길을 택했고

 

이는 또한 순원왕후 김씨가 올바른 모습으로

생전 덕을 쌓아

사후 자신의 안동김씨가문에 화를 입는 것을 막아낸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철종의 우호적인 모습에 탐욕의 안동김씨들은 더욱 

세도정치의 욕망의 불꽃을 뿜어올리고 있었고

 

안동김씨들은 다른 집안 , 세력들은

전부 다 죽여버립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안동김씨들의 세도정치

 

안동김씨들은 권력 유지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제거했고

즉위부터 철저하게 안동김씨들의 각본에 맞게 즉위한

허수아비 , 꼭두각시 임금 철종은

이런 안동김씨 앞에 무력한 임금이었습니다

 

[임술농민봉기]

철종은 비록 안동김씨였음에도

진심으로 의지 , 존경했던 양어머니 순원왕후가 사망하고

안동김씨들에게 둘러쌓인 상황속에

자신을 타일러주고 경계시켜줄 멘토가 사라져버렸고

 

이런 상황에서

순박했지만 유능한 임금도 아니었던 철종은

국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호조(재정경제부) 재정이 고갈되는 와중에도

궁궐을 수리하는 명을 내리는데

 

당시는

가뜩이나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로

안동김씨들에게 벼슬들이 매관매직(관직 판매 , 구매) 되고

벼슬을 구입해 관리가 된 관리들은

탐관오리가 되어 백성들의 세금 , 고혈을 쥐어짜내던

국가멸망 5분전의 상황이었고

 

철없는 임금 철종이

여색에 빠지며 궁궐수리까지 시키자

결국 철종 말기부터는 전국적으로 민란이 일어납니다

 

이미 순조대 홍경래의 난이라는

최초의 민란을 접한 조선 왕실 , 신하 등 조선 지배층들은

민심의 이반이라는 거대한 태풍에 떨고 있었고

 

그나마 홍경래의 난 진압 이후

잠시 사그라지는가 하며

다시금 권세를 확장시키며 재산을 불리던 안동김씨들이었지만

결국 민중의 분노는 다시 일어나기 시작해

이번엔 홍경래의 난처럼 북쪽지방 한정의 민란이 아닌

전국적인 민란이 일어나서

조선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철종 13년(1862년) 2월

관리들의 탐관오리짓에 한계를 느낀 농민 , 백성들은 들고 일어나

진주농민봉기를 시작으로

전국적인 민란이 일어났고

이를 '임술민란(임술농민봉기)' 이라 합니다

 

조선 후기 반란들과 임술농민봉기

 

[꼭두각시 임금]

철종은 오랫동안 농사꾼 , 백성으로 살았던 인물이기에

백성들의 어려운 삶도 잘 알았던 인물이었고

왕이 된 이후 나름 본인 주도로

개혁을 하려는 시도도 했지만

 

안동김씨로 둘러쌓인 조정에

듣보잡 강화도 촌동출신 철종을 지지해줄 세력은 한명도 없었고

애초에 그는 철저히

 

안동김씨의 ,

안동김씨에 의한 ,

안동김씨를 위한

 

임금으로 계획된 꼭두각시 임금이었기에

안동김씨에게 뜻이 좌절되

끝내 자신의 주제파악을 하게 되어버린 철종은 (ㅠㅠ)

 

임금임에도 임금이 아니라는 허탈감속에

예전에 순박했던 강화도령 이원범 자신을 그리워하며

여색과 술로 시간을 때우다

결국 몸이 다 망가져서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해버렸고

 

그럼에도 나름 철종과 안동김씨는

악어와 악어새 , 기생충과 숙주의 관계였는데

그나마 말 잘듣던 순둥이 철종이 사망해버리자

숙주를 잃어버린 기생충 안동김씨들은

숙주를 잃어버린 기생충들이 운명이 그렇듯이

화려한 권세를 뒤로하고 역사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소현세자와 효종의 후손들]

철종이 아들없이 사망하자

조선 왕통은 또다시 단절되었고

결국 삼종혈맥 , 효종의 후손들은 모두 전멸합니다

 

재밌는 것은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치욕을 당했던 인조는

 

자신의 적장자이자

청나라에 대해 온건 , 현실적 입장이었던 소현세자를 오지게 미워했고

 

자신의 차남(둘째아들) 이자

소현세자의 동생인

청나라에 대해 강경 , 복수해야한다는 입장이었던 봉림대군 효종을 매우 사랑했는데

 

온건했던 소현세자(왼쪽)와 강경했던 봉림대군

 

그럼에도 강대국 청나라의 현실을 잘 알았던

소현세자는 조선 백성을 사랑하고

조선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어진 성품의 세자였고

아이러니하게도

 

봉림대군 효종의 대는 끊겨버렸고

역적으로 몰린 소현세자 일가는

효종의 후손들인 삼종혈맥 , 조선 후기 왕실의

삼엄한 감시속에서도 질기게 살아남아

 

효종의 후손들이 아들을 1~2명씩 겨우 낳은 것과 달리

소현세자의 후손들은 아들을 5~6명씩 순풍순풍 낳아버려

 

오늘날까지

 

'전주이씨 소현세자파'

 

혈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온건하고 백성을 사랑했던 소현세자는 

비운의 죽음을 맞았지만

끝내 기적적으로 자손이 풍성하게 이어지다

명예가 회복되었고

 

유능했지만 독하고 모진 구석이 있었던

봉림대군 효종의 후손들은

삼종의 혈맥 , 영조와 정조 등 조선을 빛낸 화려한 명군들을 자랑했지만

 

모진 성향과 정신병 , 불우한 가족사 등에

자손도 겨우겨우 잇다가

철종대에 이르러 완전히 삼종혈맥의 대가 끊겨버렸다는

 

역사의 아이러니함이 있습니다

 

(이런걸 보면 후손들을 행복을 위해서라도 현세의 우리가 잘해야함)

 

[한국사 마지막 '왕' 철종]

철종은 마지막 조선 '왕' 이었고

철종 다음 고종대부터는

조선왕국은 '대한제국' 을 선포하고

왕의 나라에서 황제의 나라가 되기 때문에

대한제국 1대황제 고종은

조선왕실 시호로는 고종이지만

광무황제로 ,

대한제국 2대황제 겸 조선 마지막왕 순종은

조선왕실 시호로는 순종이지만

융희황제로 불리기에

 

철종은 마지막 조선의 봉건군주였고

한국사 마지막 봉건군주이자 한국사 마지막 국왕이자

철종시대는 한국인들이 주권으로 이끈 마지막 왕정시대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딱 정확히 3명만 남은 조선왕실어진 , 왼쪽부터 건국 태조 이성계 - 중흥 영조 - 마지막 왕 철종 , 국립고궁박물관

 

또한 철종실록은

순수 조선인들이 기록한 마지막 실록이고

 

조선이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 조선왕조실록 마지막 정통실록 '철종실록'

 

일제가 조선을 강제병합한 고종시기부터는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일제의 감시 및

일제가 편찬했기에

문제가 많고

 

철종실록을 끝으로

전통적인 조선왕조실록은 끝나게 됩니다

 

조선 역사기록관리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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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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