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고종과 흥선대원군>

[한국 근현대사]

[안동김씨의 병폐]

[흥선대원군]

[마지막 조선왕가]

[상갓집 개]

[로비스트 흥선군]

[살아있는 대원군]

[명성황후 민자영]

[흥선대원군의 개혁]

<라봉봉>

 

[한국 근현대사]

자 , 

이전에 썼던 기나긴 조선시대 국왕들의 인생사 이야기가 드디어 끝났고

고종과 순종은 조선 마지막 임금이기도 하지만

망국의 임금이자

조선에서 대한제국을 선포 , 유지한 인물들이기에

고종대부터는 조선사가 아닌

근현대사로 분류되고 있고

 

실제로 순수조선(한국)인들이 기록한 마지막 조선왕조실록이 철종때가 마지막이고

고종과 순종실록은 일제의 감시하에 일제에 의해 편찬되었기에

함부로 원문 그대로 읽고 선동되어서도 안되고

이로인해 조선사가 아닌 근현대사라 분류합니다

 

조선왕조실록 (빛나는 한국 문화유산)

 

일제가 조선사편수회에서 펴낸 조선사 (식민사관)

 

또한 ,

그렇기에 한국 근현대사는

혼란기 , 암흑의 시대였기에

정부 기록(일제와 군사독재정권)을 곧이곧대로 신뢰할 수는 없고

근현대사부터는 한국사에서 유래없이 이례적으로

민중사관 ,민족사관을 가진 민중사학자 , 재야사학자들이 대거 출현하게 되었고

 

민중사학은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우리의 소중한 진실된 역사를 지키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의 사비로 쓰이거나

민주화운동가들이 정권에 저항하며 쓰였기에

 

일제의 공격과 이념갈등 등에

기존 사관보다 안정적인 상황에서 학술활동을 하지 못해

더 감정적이기도 하고 일제의 공격 혹은 사회주의(이념갈등 시기)와 연관되어

부실한 기록도 많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에 ,

팩트와 합리주의 역사관을 자처하며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배하기 위해 기록한 통계와 자료를 그대로 믿고

일제식 식민사관이 진실된 역사라고 주장하는 식민사학자들도 나타나게 되었고

 

당연 일제던 군사정권이던

자신들의 수탈과 독재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치적을 치장하고 조작하기 바빴기에

 

이런 역사만 곧이 곧대로 읽고

사실 이 시기는 합리적이고 좋은 시기였다고 주장하는

식민사학자들에게 선동되어서도 안되고

 

단 민중사학 등은

감정에 선동당한다거나

정부기관의 통계자료나 국제관계 등 여러 이해관계 등에는

부족한 점이 있기에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정통성과 자부심을 잃지 말고

다양한 자료들을 분석하며 한쪽 주장에 함몰되지 않도록 하며 읽어야 하고

 

하여튼 ,

근현대사 시기는

민중의식의 성장 및 기술의 발달로

지식과 정보량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암울한 기록이 많은 한국사의 암흑시대였기에

 

일반적으로 삼국사기 , 고려사 , 조선왕조실록만 읽어도 충분한 

삼국 , 고려 , 조선시대 역사와 달리

다양한 입장과 세력에 대한 배경지식을 알고 읽으면 더욱 좋고

심지어 당시 적국이자 한국을 식민지배했던 일본근현대사까지 공부해서

당시 일본 내부사정에 대한 배경지식까지 파악하고

한국 근현대사를 읽으면 더욱 좋기도 합니다

 

또한 저가 어렸을때는 명문대 박사 , 교수 , 역사전문학자들 위주로

역사책을 썼고 저역시 그런 사람들의 글을 보고 역사책을 공부했지만

점차 인터넷의 도입과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대사회에서

21세기 오늘날은 더 다양한 출신들이 역사책을 쓰고 역사 이야기를 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고

여러분이 보는 역사블로그 '라봉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료가 한정된 삼국~조선사와 달리 오늘날 다양한 한국사 대중서적들 , 그리고 라봉봉 블로그

 

[안동김씨의 병폐]

조선 25대왕 철종은 

왕족으로 태어났음에도

집안이 역적죄에 연달아 연루되

집안이 무너지고

강화도에서 유배가서 살던

한미한 왕족이었지만

 

임금이 되기 전 강화도에서 농사나 지었던 강화도령 철종

 

헌종 사후 조선 남성왕족들의 씨가 말라가자

당시 실권을 쥐고 있던 세도가문인

안동김씨들이 겨우 강화도를 뒤져내서 즉위시킨 인물이었고

 

이에 아무런 지지기반 , 세력도 없고

또 개인적으로 딱히 특출나지도 않았던 철종은 재위기간동안

안동김씨들에게 철저한 꼭두각시임금이 되어 좌절하고

여색과 술로 세월을 탕진하다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역시 후사없이 요절합니다

 

철종의 죽음으로 효종의 직계후손은 완전히 단절되었고

결국 안동김씨들은 권력을 잃을지도 몰라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안동김씨들은 순조대부터 철종대까지

왕을 무시하고 권력을 좌지우지하며

이미 자신들에게 대항하는 명문가문 , 세력들은

전부다 죽여버리고

벼슬을 매관매직(돈으로 관직을 사고팜) 하며

국가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안동김씨의 전횡

 

자연히 관리들은

더이상 명재상 , 청백리 같은 백성을 위하는 관리들이 나올 수가 없게 되었고

이에 안동김씨들에게 뇌물을 주고 수령이 된 지방관들은

탐관오리가 되어

다시 지역 백성을 착취하여 관직구매에 들인 돈을 충당하게 되었고

 

이미 과거제도도 이미 과거합격자들이

안동김씨들에게 의해 내정되있어

유명무실해졌기에

 

관리들은 안동김씨 , 세도가문들의 비위를 맞추고 아부하기 바빴고

 

이렇게 순조대부터 시작된

왕권이 무시되고

특정 양반가문에 의해 독점 , 주도되는 세도정치로

조선에 헬게이트가 열리고

청백리들이 단절되자

조선 청백리 명문가들도

부정해질대로 부정해져버린 과거제 , 조정에 반발해

오히려 자손들이 과거제에 합격하지 않는 것을

더욱 영광으로 삼는 풍조가 나타납니다

 

(과거에 합격했다는 의미는

청렴하고 실력이 뛰어난게 아니라

안동김씨에 뇌물을 썼다는 의미니까)

 

과거시험 보는 사람들 , 단원 김홍도

 

이렇게 안동김씨들이 자신의 재산을 불리기 위해

관직을 판매하며 전국에 탐관오리라는 독을 뿌려대자

거액에 관직을 구매한 탐관오리들은 다시 농민들을 착취하고

무고한 백성을 잡아다가 죄명을 씌우고 재산을 빼앗아

농민들은 사실상 생산물 , 재산의 전부를 빼앗기게 되었고

결국 철종대부터 조선에서는 전국적인 민란 ,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고

 

철종과 고종대의 전국적 농민봉기

 

조선은 멸망 5분전 수준까지가며

국가 기강이 완전히 문란 , 흔들립니다

 

또한 ,

안동김씨의 죄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가문 , 세력들은 전부 다 죽여버렸기에

조선 조정은 더이상 인재가 나올 수 없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

이전

조선전기 훈구파들의 세도정치보다 더욱 커진

조선 후기 세도정치였기에

조선 왕족 역시 안동김씨를 비판하다

유배당해버렸고

 

이에 임금과 신하 , 왕족 할 것없이

안동김씨들의 칼날을 피해

숨죽여 살고 있던 시기로서

 

철종대 안동김씨 독재시기동안

안동김씨의 눈을 피해 숨죽여 살고있던

야심을 가진 한 전주 이씨 왕족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흥선대원군 이하응' 입니다

 

흥선대원군

 

요즘도 흔히 고집세고 남과 타협하길 거부하고

남을 의견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너 정말 흥선대원군 같아 !'

 

하는데

이 흥선대원군이 바로 그 흥선대원군 이하응으로서

 

조선말기부터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

이양선(서양배) 가 조선 영해에 빈번히 출현하고

서학(천주교 및 서양학문) 이 조선 내부에 탄압속에서도

꾸준히 침투하고 있었고

 

조정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로

무너지고 있었던

내 , 외적으로 혼란한 시기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안동김씨의 이목을 피해

조용히 숨죽여 살다가

철종 사후 아들 이명복을 고종 , 조선 26대 국왕으로 앉힌 후

조선 역사에 전무후무하게

살아있는 왕의 아버지 , 살아있는 대원군이 되어

 

조정에서 안동김씨들을 축출해내고

다시 국왕 중심의 복고(과거로 돌아감) , 왕정복고를 이루어내고

세금제도를 백성들의 실정에 맞게 개혁했으며

 

총과 칼을 들고 밀려들어오는 서양 , 외세에 맞서

극도의 비융통성으로 쇄국 , 나라문을 완전히 봉쇄하고

마지막 조선 정치인의 자존심을 지킨 인물이고

 

이에 한국 위인으로 분류되나

또한 극단적인 비타협민족주의자의 상징으로서 

고집센 사람을 뜻하는 대명사가 된 인물입니다

 

흥선대원군 !

 

[마지막 조선왕가]

일단 철종사망으로

효종의 후손들은 대가 끊겨버렸고

 

결국 조선 족보는 대를 거슬러 올라가

효종의 아버지인

인조반정의 인조의 셋째아들 인평대군까지 거슬러올라가는데

인조는

 

첫째아들 소현세자와

둘째아들 효종(봉림대군) ,

셋째아들 인평대군

 

이 있었고

청나라에 우호적이었던 소현세자는

청나라를 미워했던 인조에게 역적으로 찍히기도 했고

 

효종 역시 정통성 강했던 형 소현세자를 제치고 왕이 된거라

소현세자 후손들은 효종 후손들의 감시를 받았고

 

결국 효종은 유일한 친동생 인평대군은 오지게 아껴했는데

이후 효종을 이은 효종의 후손들인

조선 후기 왕들 역시

인평대군의 후손들을 크게 아껴주었고

 

이 인평대군의 후손은

편안하게 살며 대를 잇다가

이후 인평대군 후손 남연군은

사도세자의 양자로 들어갔고

남연군의 막내아들은

바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며

 

흥선대원군의 아들이

바로 조선 26대 임금 고종이 됩니다

 

고종

 

이렇게 조선 후기는 남성 왕족의 씨가 극도로 귀해져서

결국 족보와 시간을 멀리 인조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겨우겨우 구색을 맞춰서 흥선대원군의 아들을 왕위에 앉혀버린 것이었고

흥선대원군과 고종 일가가 결국 마지막 조선왕가입니다

 

고종(가운데) 의 가족사진 , 마지막 조선왕가 고종일가

 

[상갓집 개]

하여튼 고종아빠 흥선대원군은

소년시절부터 뛰어난 재주를 가졌고

이에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대학자인 추사 김정희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부탁을 받고

흥선대원군을 교육합니다

 

추사 김정희는 추사체를 만든 인물로

조선 후기 예술가였고

난초 그림에도 능해

 

흥선대원군은 김정희에게 직접 교육받아

평생동안 난초그림을 잘그린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김정희 묵란

 

이하응 묵란

 

그러나

이하응은

불운하게도 어머니 , 맏형 , 아버지가

연달아 사망하며 고아가 됬고

 

왕족으로서 14살의 나이에 정3품 당상관(명예직)이 되고

흥선군 직위를 받아

붉은 관복을 입고다닐 수 있었지만

 

관복을 입은 흥선군 이하응

 

조선 왕족 , 종친들은 실제 조정업무에 나서지는 못하고

나랏돈이나 타먹으며 비상상황에 대비해

씨를 뿌리다 죽는 것을 강요받았고

 

흥선군 역시

명예뿐인 재상직을 받고

왕실 종친 명단관리나 하고 있었는데

 

당시는 세도가문들이 정권을 휘두르던 시기였고

안동김씨들은 자신들의 가문의 권력에 방해되는

타 세력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있었던 시기였기에

조선 왕족들도 두려워 떨고 있었고

 

단지 안동김씨들은

철종이 후사가 없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안동김씨들은

무능했던 철종에게 안동김씨 처녀를 왕비로 맞이하게 했는데

철종은 아들을 낳지 못해버렸고

 

철종의 대가 끊기면

실력없이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척신(왕과 친척인 신하들) ,

세도정치가 그렇듯이

곧 안동김씨 일가의 실각을 의미하기도 했기에

 

철종 사후 차기 대통을 이을 다른 왕족들을 경계했고

이에 총명한 왕족 흥선군 역시 주요 표적이 됬기에

 

영민했던 흥선군은 조용히 몸을 숙이고 지냈지만

흥선군 역시 철종이 아들도 없고 병약한 것을 간파한 후부터는

 

흥선군은 안동김씨들을 속이기 위해 일부로

시정잡배처럼 굴며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다니며

안동김씨들의 잔치마다 찾아가 술을 얻어먹으며

굴욕적으로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며

무시받으면서 주인잃은 상갓집 개처럼

여기저기 얻어먹고 다닌다는 의미로

'상갓집 개'라 불릴 정도였고

 

상갓집개 흥선군

 

그런 이하응은 굴욕을 참고서는 조용히 뒤에서 사람들을 모으며 

차기 집권자가 될 준비를 시작합니다

 

[로비스트 흥선군]

흥선군의 아들 이명복(고종)은

어릴때부터 모습이 비범해

멋대로 놀지 아니했고

 

하루는

관상을 보는 자가 와서

이명복을 보고 놀라서는 엎드려 아뢰기를 ,

 

<관상가>다른 날이 나라의 주인이 되시리라

 

했습니다

 

철종의 병색을 눈치깐 흥선군은

일단 왕족이었기에 궁궐에 출입할 수 있었고

 

당시 왕실 최고어른이었던

순조의 며느리이자 효명세자(문조) 의 비인

신정왕후 조씨 ,

즉 '조대비' 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았습니다

 

조대비 추정 초상화

 

흥선군의 생각대로

앓던 철종이 후사없이 사망하자

조대비는 결국 친분이 있었던 왕족

흥선군에게

SOS 를 쳤고

 

흥선군의 설계대로 결국

12살배기 흥선군의 둘째아들 이명복은

효명세자와 조대비의 법적 양자로 입적하고

 

조선 26대 임금 고종으로 즉위합니다

 

치밀했던 흥선군은

안동김씨들에게 억눌려 있었던

풍양조씨 조대비의 기를 살려주기 위하여

일부로 철종의 양자가 아니라

조대비와 조대비 남편 효명세자(익종) 의 양자로

들어간 것이었고

조대비 역시 흡족해져서 흥선군과 고종을 왕으로 임명해줍니다

 

(막후 로비의 승리다 안동김씨 씹새끼들아 ~~)

 

고종의 유전적 아버지 흥선대원군 및 법적 아버지 효명세자 익종

 

[살아있는 대원군]

그렇게 새 임금이 된

고종이 나이가 너무 어리자

고종의 양어머니

신정왕후는 수렴청정을 실행하였고

 

흥선군은 왕의 아버지 대원군이 되어 흥선대원군으로

2차 전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

유래가 없이 왕의 아버지가 살아있는 상황 ,

살아있는 대원군이 나타났기에

 

법도와 전례가 없었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실제로는 대신들 앞에서

나서지는 못했고

 

막후에서 조대비와 국정을 논의하며

흥선대원군이 말하는 것을

조대비가 승인한 후

조대비가 결정을 내리는 형태로 

흥선대원군의 섭정이 시작되었고

 

섭정 당시의 흥선대원군 초상화

 

조대비가 주렴(구슬로 만든 발)을 드리우고 수렴청정을 시작하자

어린 고종은 크고 작은 일은 반드시 조대비에게 여쭈었고

조대비는 막후의 흥선대원군과 잘 싸바싸바해서

국정을 운영합니다

 

조대비와 흥선대원군의 수렴청정

 

[명성황후 민자영]

안동김씨들은

철종대에는 조선 최고벼슬인

삼정승(영의정 , 좌의정 , 우의정)을 싹쓸이하고

중앙 및 지방관직까지 싹쓸이를 하던때라

 

반대파들에게 무자비하게 칼빵을 놓던 안동김씨들에게

억눌려 지낸 과거가 있었던

 

풍양조씨 조대비와 흥선대원군은

아들 고종대에부터는

더이상 왕비들 가문이 나대는

세도정치를 꼴보기 싫어했고

 

이에 더이상 안동김씨도 , 풍양조씨도 아닌

한미한 집안의 여성을 며느리로 맞으려 계획했고

 

탐욕의 세도가가 아닌

조용히 나서지 않고 덕이 높은 여성으로 유명했던

양반 명문가

숙종비 인현왕후 여흥 민씨 집안의 후손에서 왕비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인물이 바로 여흥민씨 민자영 ,

명성황후입니다

 

민자영은 조대비의 간택령에

5명 왕비후보속에서 삼간택끝에 최종 고종비로 간택되었고

 

14세의 민자영은 그렇게

13세의 고종과 혼인을 맺어

 

명성황후

 

(현종비 명성왕후와 다르고 또한 고종이 황제가 되기에 황후임)

 

가 됩니다

 

고종과 명성황후

 

명성황후 일가인 여흥 민씨는

이전부터 남연군 , 흥선대원군 일가와 혼맥으로 엮여있었기에

흥선대원군은 아군이 될 것이라 판단했고

 

또한 집안 격도 명문가로서 적당히 좋고

명성왕후는 아버지 , 친형제도 없어 외척걱정도 없었기에

 

흥선대원군은 고심하고 고심한끝에

명성황후 민자영을 며느리로 맞이하지만

 

이후 명성황후는 

고종이 친정(직접 정치) 을 시작하자

아버지 흥선대원군와 사이가 틀어진 고종을 꼬득여서

자신을 뽑아준 시아버지 흥선대원군에게

뒤통수를 오지게 때리고

 

여흥민씨 친척들을 다 불러모아서

흥선대원군과 조대비가 우려하던

세도정치를 다시 부활시키는데

 

이전 안동김씨가 해쳐먹던 것에

더하면 더했지

 

고종비 명성왕후의 친척들인

여흥민씨들은 온 혈연 , 학연을 다 동원해서

안동김씨들의 파벌을 집어삼키며

매관매직(관직 판매 , 구매) 을 일삼으며

파벌의 덩치를 불려갑니다

 

'내가 조선의 국모다 !' 하며 일제에 맞서는 모습으로 미화된 명성황후 , KBS 2TV 특별기획 드라마  명성황후 (2001)  明成皇后 / The Last Empress

 

명성황후 추정사진 , 실제론 탐욕의 여인이었던 명성황후

 

물론 안동김씨들이 이전부터

기나긴 60년간 세도정치를 공고히하며

워낙 많이 권력을 콘크리트화시켜놨고

정책 경험이 많았기에

흥선대원군이나 고종 , 명성왕후 , 여흥민씨들도

안동김씨들을 단번에 조정에서 밀어내진 못했지만

 

하여튼 극도로 세도정치를 견제하던 흥선대원군은

고종이 성년이 된 이후 결국 자신이 고르고 고른 끝에 뽑은 며느리와 그 일가들에게

뒤통수를 오지게 맞고 실각하게 됩니다

 

[흥선대원군의 개혁]

하여튼 ,

고종이 어린 시기엔

명성황후도 어렸고

 

조대비와 흥선대원군이 수렴청정 , 막후정치를 하고 있었기에

흥선대원군 주도의 개혁정책이 실행됬고

 

안동김씨들에게 오랫동안 울분을 참고 지내던 흥선대원군은

정권을 잡고나서

자신이 그동안 생각해온 이상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정치가 흥선대원군은 

단번에 거대세력화된 안동김씨들을 밀어낼 수 없음을 알기에

적당히 안동김씨와 타협하지만

또한 당파를 초월한 타 세력들을 등용하며

왕권을 상승시켰고

 

조선 영해에 서양배들이 출현하며

통상(무역) 을 요구해오자

쇄국정책(나라 문을 닫는 정책 , 통상 거부) 을 하며

전쟁을 할지언정 서양 오랑캐들과 교류하지 않겠다고 고집합니다

 

또한 ,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들의 군권+인사권+재정권이 합쳐진 만능권력기구였던

비변사를 혁파시켰고

 

임진왜란 이후부터 강화되어 초월적 전시권력기관이었던 비변사

 

대전회통을 편찬해

조선 후기 법을 정비했으며

 

조선왕국 최후의 법전 대전회통

 

나라의 특권과 면책권을 받으며

지방민 수탈기구가 되버린

서원(지방 학교)을 철폐했고

양반들에게도 세금을 걷는 호포제를 실시해

백성들의 큰 환호를 받습니다

 

조선시대 지방사립대 개념이자 민중수탈기관으로 전락했던 서원 , 퇴계이황의 안동도산서원(이런 메이저 서원 제외 싹다 철폐)

 

그러나 흥선대원군은 극단적인 쇄국정책 및

천주교도와 외국인들을 극도로 탄압해

프랑스와 미국의 침공을 받아

조선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라는 프랑스와 미국의 강화도 침공을 받게되었고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당시 프랑스와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인구와 자원이 풍부한 중국과 일본과의 무역에 더 신경쓰던 상황이라

조선침략을 포기하고 금방 물러갔고

 

결국 흥선대원군은 

오랑캐를 물리쳤다 자화자찬하며 척화비를 세우게 됩니다

 

척화비

 

이로인해 조선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더욱 서양 신기술 도입 , 근대화가 늦춰지게 되었고

 

또한 흥선대원군은 결정적 실책으로

왕실 권위를 높히고자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진 경복궁을 다시 짓게 되는데

 

경복궁 공사에 나랏돈과 백성들의 노동력이 어마어마하게 사용됬고

가뜩이나 철종대부터 탐관오리 증가 , 지방민 수탈로

민란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던 상황에서

흥선대원군이 경복궁까지 거대하게 지어버리자

조선 재정은 완전히 파탄나게 됩니다

 

경복궁 , 조선말기화가 안중식

 

오늘날 경복궁 전경

 

그렇게 ,

유능한 개혁가의 모습도 보였지만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흥선대원군의 모습에

나이가 들어가던 고종 역시 많은 실망감을 느꼈고

고종이 점차 성년이 되가자

명성왕후 역시 점차 고종을 꼬득이며 자기 친척들을 세력화시키게 되고

하여튼 고종이 점차 성인이 되자

점차 흥선대원군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망국의 군주 , 대한제국 황제 고종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라봉봉>조선의 파락호(권세있는 집안의 망나니) 흥선대원군 !

그는 오랜 세월 안동김씨들의 세도속에서

조선을 바꾸어보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끝내 아들을 조선 26대왕 고종으로 만들고 이후 조선 집권자가 되어

조선을 개혁한 조선 대정치가이자 한국의 위인입니다

 

쇄국정책과 기독교 탄압정책을 시행한

흥선대원군이 위인전에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도 있지만

 

그럼에도 흥선대원군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시작하는 인물이자

 

근현대시기부터 밀려들어오는 외세 문물 , 외세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탈속에

끝까지 타협을 거부한 조선의 대정치가였고

 

그는 비록 고려를 막아낼 수 없었지만

끝까지 신라인으로 살고 신라인으로 죽은 신라 마지막 태자 마의태자처럼

흥선대원군은 조선의 마지막 자존심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안동김씨 독재치하속 흥선군은 상갓집 개로 불릴지언정

진정한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심을 버리지는 않았으며

역시 이후에도 수많은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개새끼가 되어

민족을 팔아 안락하게 사육되는 것을 거부하며

인간으로서 존엄할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여러분도 ,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여러분은 어떤 길을 택하실 것입니까 ?

 

반응형

'어린이 한국역사 > 2집 Humanism'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화정책에 실패한 고종  (0) 2020.10.06
고종의 개화정책  (0) 2020.10.03
꼭두각시 임금 철종  (0) 2020.09.28
정조를 흠모한 조선 헌종  (0) 2020.09.26
순조와 세도정치  (0) 2020.09.24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