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대한제국 황제 고종>
[러일전쟁]
[을사늑약]
[순국선열과 을사의병]
[헤이그 특사]
[고종의 강제퇴위]
[경술국치]
[덕수궁 전하]
[독립운동가 고종]
[고종 독살설]
<라봉봉>
[러일전쟁]
그렇게 조선 고종은 일제의 간섭을 피해 ,
러시아와 일본이 대립하는 상황을 이용해
야심차게 대한제국을 열었지만
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동아시아의 힘의 균형은 깨져버렸고
세계 초강대국 영국과 미국 역시
러시아 견제를 위해 아시아에서 일본의 패권을 인정해줌으로서
더이상 조선(대한제국)을 도와줄 나라는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당시 일본제국도 러시아를 물리치고 대한제국을 따먹기 위해
나랏돈을 군비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 몰빵) 했고
영국과 미국에서 돈을 빌려
대한제국 100년치 예산을 전비에 쏟아부을정도였기에
1905년 9월 5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날 이후
곧바로 본전을 뽑기위해
대한제국을 식민지화 시키기 시작했고
허울뿐인 , 이름만 제국이었던 약소국 대한제국은
일본의 러일전쟁 승전후 순식간에 일본의 식민지가 됩니다
[을사늑약]
그래서 러일전쟁 종전 고작 2달만인
1905년 11월 17일 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기는
을사조약(을사늑약 , 한일 협상 조약) 이 체결됩니다
<을사늑약 제2조>
일본국 정부는 한국과 타국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전히 하는 책임을 지며
한국 정부는 이후부터 일본국 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국제적 성질을 가진 어떠한 조약이나 약속을 하지 않을 것을 기약한다.
국가 주권중 가장 중요한 권리중 하나인
외교권을 넘긴다는 것은
곧 식민지화 됨을 의미하고
저도 처음 역사를 배울 역린이 , 잼민이 시절엔
'아니 멸망된것도 아니고 외교권 박탈인데
한국인들이 왜 을사조약에 치욕스럽다며 자결까지 하지 ?'
이런 생각도 했는데
점차 알게된게
외교권은 곧 외국과 교류할 권리를 상실하는 것이고
더이상 대한제국은 일본 허락 없이는 다른 나라와 교역을 할 수가 없고
일본이 말그대로 무역금지 , 굶어 죽어라 하면
죽어야 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집에 쌀이 떨어져서 마트에서 쌀 20kg를 시켜야되는데
5만원짜리 햅쌀을 사려했는데
옆에 있는 양아치 새끼가 칼들고 ㅈㄹㅈㄹ하면서
마트에서 구매금지를 한다하고
동네에 있는 마트 상인들도 알고보니 양아치네 친척이었던 한통속인 그런 상황이라 보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양아치의 허락을 맡고 쌀을 사야겠죠 ?
그러면 양아치는 자기네 쌀 팔테니 15만원에 사라고 ㅈㄹ을 하는 것이고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굶어죽지 않기위해 바가지 쓰고 사야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고
100만원에 팔면 100만원에 사야되는 것이고
이게 반복되면 돈이 다 떨어져서
그냥 집안 자체가 망하는 것입니다
즉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을사조약) 은
대한제국의 멸망 , 식민지화를 의미했고
사실상 이날 대한제국은 멸망합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대한제국 내 모든 외국 공사관이 철수했고
대한제국이 외국에 설치한 한국 공사관도 모두 철수했고
외국 국가들은 대한제국과 교류하려면
일본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일본은 대한제국의 주권을 마음대로 팔아넘길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것이 간도협약으로서
대한제국 외교권을 강탈한 일본은
1909년 대한제국이 관리하던 간도(만주) 영토를
철도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청나라에 팔았습니다
간도협약은 대한제국 외교권 상실의 대표적 사례로서
그니까 외교권 상실은
일본이 한국 국토를 팔아도 아무런 힘도 못쓰는 것이었고
나라 멸망을 의미하는것과 똑같았습니다
[순국선열과 을사의병]
이한응 , 민영환 , 홍만식 , 이상철 , 김봉학 , 송병선 등
대한제국 양반 , 관료들은
을사조약 후
나라를 빼앗겼다는 수치심에 잇달아 자결했고
전국에선 을사의병이 일어나 일제에 항거했습니다
이에 오늘날에도
을사늑약 체결일인
11월 17일 , 이 치욕의 날을 잊지 않기 위해
이 날을
'순국선열의 날'
로 기리고 있습니다
[헤이그 특사]
또한 고종 , 광무황제 역시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국새도 찍지 않았고
광무황제는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아관파천 이후 또다시 자신의 모든 정치생명을 걸고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세계 기구의 원조였던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 이상설 , 이위종 3인을 밀사로 보냅니다
(1907년 헤이그 특사 , 헤이그 밀사)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는
세계 열강들이 이미 일본의 한국 지배를 묵인한 상태였고
결국 외교권을 박탈한 대한제국 고종은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 당합니다
[고종의 강제퇴위]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고종은
그와 명성황후 민씨 사이에서 낳은 아들 ,
황태자 순종(융희황제)에게 왕위를 강제로 양위하고 태황제로 물러납니다
[경술국치]
그리고 ,
결국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은 을사조약 이후 일본의 보호국에서
아예 합병당해 역사가 사라져 일본령 조선이 되었고
<한일 합병 조약>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모든것)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
사람들은 일제의 한국 강탈을
경술년의 나라의 치욕이라 해서
이를
'경술국치(1910년'
라고 불렀습니다
이로인해
장장 35년 혹은 을사조약까지 포함해
장장 40년의 일제강점기가 시작됩니다
[덕수궁 전하]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가 사라지자
고종 , 광무황제는 태황제에서
이태왕(이씨조선의 큰 왕)으로 강등됬고
고종은 덕수궁에서 살고 있었기에
'덕수궁 전하'
라고 불리었습니다
[독립운동가 고종]
그러나 ,
고종 황제는 500년 조선이 멸망한 이후에도
수많은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그랬듯이
죽을때까지도 일제에 맞섰고
이미 을미사변 이후 부인이 죽었을때부터 일본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1904년 러일전쟁때부터 지속적으로 해외 망명 , 탈출시도를 했고
퇴위당한 이후에도 나이는 67세였지만 건강은 상당히 팔팔했던 고종은
덕수궁에서 망국의 한을 씹어먹으며
남겨진 대한제국 황실 자금으로 뒤로는 독립운동을 지원했습니다
[고종 독살설]
또한 고종황제는
1918년 북경으로 빠져나가려 했지만
결국 이런 시도에 일본은 고종을 살해하기로 했고
고종은 이때 진짜로 궁궐을 나서서
신하들이랑 합류하려 했지만
갑자기 밤중에 식혜를 마신 고종은
몸이 부풀어 올라 사망합니다
조선왕 독살설도 음모론들도 많지만
당시 고종은 정말 팔팔했었고
당시 고종 주변의 친일파 , 독립운동가 할 것 없이
고종의 죽음에 의문을 보였습니다
<친일파 윤치호의 일기>
완벽한 건강을 누리던 (고종) 황제가
식혜를 섭취한 뒤 반시간(30분) 만에 격렬하게 몸을 뒤틀면서 죽었다.
황제의 팔다리가 하루 이틀 사이에 엄청나게 부풀어 올라서
통 넓은 한복 바지를 벗기기 위해 바지를 찢어야 할 정도였다.
혀가 닳아 없어지고 치아는 모두 빠져나왔다.
1피트(30.38㎝)쯤 되는 검은 줄무늬가 목 부위에서부터 복부까지 길게 나 있었다
<독립운동가 이회영 실기>
(고종이) 밤중에 식혜를 드신 후
반 시각이 지나 갑자기 복통이 일어나 괴로워하시다가
반 시간 만에 붕어(사망)하셨다
또한 고종황제가 승하한 직후 2명의 궁녀가 의문사했고
한국사람들은 일제가 고종을 독살한 것을 확신했고
이에 고종독살설은 전국적으로 퍼져
1919년 고종의 장례식에 맞추어
3.1운동이 일어나며
세계에 충격을 주고 점차 일제의 만행이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고종은 비록 무능한 인물이었고
무능한 지도자였으며
이완용 등 간신들을 등용한 무능한 황제였지만
그럼에도 그의 부인 명성황후와 마찬가지로
한나라의 수장 , 상징성이 가장 컸던 인물이었고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는 죽기 직전까지 일제에 맞섰고
결국 일제에 갑자기 그를 독살하자
숨죽여 있던 한국인들의 성난 민심에 불을 붙였고
한국사 마지막 왕국이자 제국이었던
대한제국 황제 고종 ,
그의 죽음을 거름삼아
한민족이 대단결한 3.1운동이 벌어지고
결국 민주공화정 대한민국이 탄생하게 됩니다
<고종>대한은 나의 것이 아니다.
너희 만성(蔓性 , 백성)의 것
<라봉봉>사실 역적이자 반민족행위자인 이완용도 악인이지만
이완용은 결국 대한제국 신하였고
그런 이완용보다 더 나빴던게 그런 신하들을 쓴
무능했던 고종이었기도 합니다
이에 고종은 그의 이름이 이명복이고 평생 군밤을 좋아했기에
덍복이 , 군밤왕 등 비하적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고
무능한 인물이라는 악평도 많습니다
그러나 ,
그가 오늘날까지 한국인들에게
망국의 황제로 동정받고 사랑받는 이유는
그전까진 그저 백성보다 자신의 왕권 , 황권지키기에 급급한 고종 ,
어리석은 임금이었지만
을사조약 이후부터는
고종도 자신의 실책과 과오를 인정하고
대한은 황제가 아닌 백성의 것임을 선언하고
(이로인해 유생 , 전주이씨들도 대한민국 공화정의 독립운동을 인정하고
대한제국-대한민국 승계가 탈없이 이루어짐)
적극적으로 독립운동가들을 자신의 내탕금 , 사비로 지원해주었고
한국 독립운동사 초기는 독립운동가들이 고종과 엮여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며
또한 한민족 지도자의 상징이었던 그의 죽음으로
한민족의 결집이 시작되
새로운 민족국가 ,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는 비록 무능하고 어리석은 임금이었고
그로 인해 조선이 망하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됬지만
마지막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정말 목숨을 걸고 죽을때까지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로 죽었으며
이완용이나 친일파들 처럼
적당히 일제에 타협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살 수 있었으면서도
굳이 노령의 대한제국 태황제는
목숨을 걸고 일제에 맞설 것을 선택하였고
이전 아관파천이나 반일정책등이 그저 자신의 전제왕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면
을사조약 이후부턴 진심으로 반성한 고종은
정말로 한민족과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 독립운동가였고
국가 최상위 지도층이
일제에 맞선 모습은 독립운동가들의 귀감이 되었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다 사망한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시작은 무능했지만 끝은 담대했던 인물이었고
일제가 제공해준 안락한 삶을 거부하고 죽을때까지 일제에 맞선 그의 모습으로
조선 500년 왕조의 최후가 부끄럽지 않았으며
끝내 일제가 고종 태황제를 독살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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