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즉위한 순종황제>
[여흥민씨 가문]
[나라의 어머니 조선왕비]
[명성황후]
[병약한 황태자 순종]
[순명효황후 민씨]
[황제가 된 고종 , 황태자가 된 순종]
[순정효황후 윤씨]
[김홍륙 독차 사건]
[순종 고자설]
[강제로 즉위한 순종황제]
<라봉봉>
[여흥민씨 가문]
고종은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여흥민씨 가문과 혼인해 명성황후 민씨를 아내로 맞았고
여흥민씨가문은 태종 이방원의 부인이자
세종대왕의 어머니
원경왕후 민씨를 배출한 것을 시작으로
숙종비 인현왕후 민씨도 어진 왕비로 유명했고
고종비 명성황후 민씨까지
조선 건국과 끝을 함께한 조선 전통 왕비가문입니다
고려 말 문벌귀족 여흥민씨 민제는
무식하지만 용맹하고 이름났던 북방의 신흥무인인
전주이씨 이성계 가문의
이성계의 막내아들 이방원에게 시집보냈고
용맹한 성격이었던
원경왕후 민씨는 고려 명문가인 자신의 민씨 집안의 지원사격으로
남편 이방원을 내조해 조선을 건국하고
세종대왕을 낳았으며
이런 어마무시한 공으로
여흥민씨는 건국 , 중기 , 후기에 걸쳐
원경왕후 , 인현왕후 , 명성황후라는
역사에 남는 왕후를 배출해냈고
그렇게 여흥민씨는
조선 왕실 전주이씨와
시작과 끝을 함께한 가문이 되었습니다
[나라의 어머니 조선왕비]
조선시대 왕비는 조선시대의 여자지만 ,
왕 다음 조선 서열 2위로서
엄연히 일반 조선 남성 , 정1품 영의정 등 사대부 신하들보다 서열이 높았고
조선왕족은 특권계층으로서 일반 신하들과 달리
일반적 품계가 작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왕비의 서열은
조선 왕실 공식서열 2위인 세자보다
더 높았으며
왕의 어머니 , 왕대비일 경우
수렴청정도 가능하며
나이 든 세자나 왕도 어머니가 비록 계모일지언정
말을 안들으면 곧 패륜이었기에
왕보다 사실상 서열이 높았으며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왕비는 밤에 잠자리 , 침대에서 남편에게 여러 정치적 요구를 하며
정사에 간여하는 베갯머리 송사가 가능했기에
신하들도 왕비가문에 달라붙어
정쟁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려 했고
이런 것들로 인해
정치적 실권이 막강했던
왕비는 나라의 어머니 ,
국모 國母 라 불립니다
[명성황후]
명성황후는 사실상 조선 마지막 국모로서
비록 흥선대원군에 의해 정략적 의도로 고종과 결혼했지만
그녀는 성년이 된 고종을 꼬득여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신의 친정가문 여흥민씨들을 등용해
세도정치를 부활시키고
죽을때까지 개화기 조선시대 정책에 관여했으며
명성황후는 말년에는 친청정책 , 친러정책으로
일제에 대항하다가
결국 1895년 을미사변으로 경복궁에 무력으로 침투한
일본 낭인(깡패) 들에게
살해당합니다
고종과 명성황후 부부는 비록 정략혼으로 맺어진 사이었고
일제에 맞선 이유도 백성보단
왕권 , 기득권 수호에 매진한 무능하고 어리석은 부부였지만
두 인물은 금슬이 좋았으며
고종은 을미사변 이후
사랑하는 부인이자 정치적 동반자였던 명성황후 민씨가 살해당한 것에
큰 충격을 느끼고 더욱 더 반일정책을 강화하고
사실상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1905년 을사늑약 이후부터는
먼저 간 부인을 그리워하며
일제에 대항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결국 일제에 찍혀 일제에 독살당합니다
아 ,
지금은 순종 이야기인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그렇게 고종과 명성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조선 마지막 임금이자 마지막 황제 순종은
이런 극반일 부모에서 태어났다는
시대적 배경 ,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야기 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병약한 황태자 순종]
금슬이 좋았던 고종-명성황후 부부는
4남 1녀를 두었지만
첫째아들은 항문이 막힌 기형아(쇄항증)로 태어나 4일만에 사망했고
둘째아들 이척은 순종이 되었고
나머지 자녀들은 모두 요절해버려
둘째아들만이 유일하기 살아남아
조선 마지막 임금이 됩니다
<순종 탄생 당시 고종>
하늘이 종묘사직을 도와 원자가 태어났으니 ,
이것은 사실 우리나라의 더없는 경사이다.
자전(임금의 어머니)의 기쁨이 비길 데 없을 것이니 ,
이레째 되는 날에 대왕대비전에게
직접 치사(찬양의 글), 전문(길흉때 올리는 글), 표리(겉과 속)를 올리겠다.
그리고 이어 전에 나아가 진하(축하)를 받겠다.
고종-명성황후 부부에게
순종의 탄생은 큰 기쁨이었지만
순종 역시 요절했던 형제들과 같이
평생동안 몸이 매우 안좋았는데
이로인해 다른 자녀들처럼 요절할까 두려운
명성황후는 순종의 건강때문에
무속신앙에 빠져서 국가예산을 탕진하게 됩니다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에게
하나뿐인 금지옥엽으로 귀하디 귀하게 자란 순종이었고
이로인해 순종 역시
효심이 지극했던 아들로 자랐습니다
순종은 태어나지 1년만에 세자로 임명되었고
5살의 세자 순종은
글자쓰기를 매우 좋아하고 천자문도 곧잘 읽었기에
고종은 숙종 , 정종 , 순종 , 익종이 5살때 성균관에 입학한 전례를 들며
5세의 순종을 성균관에 입학시키려 했습니다
[순명효황후 민씨]
이후 9살의 순종은 11살의 여흥민씨 가문의
민태호의 딸과 혼인해
순명효황후 민씨를 부인으로 맞았고
순종은 여흥민씨 어머니 명성황후와 더불어
부인까지 여흥민씨와 혼인하게 되었고
을사조약으로 사실상 조선은 멸망하기에
조선 왕실 , 전주이씨는
시작과 끝을 여흥민씨와 함께합니다
<시아버지 고종의 며느리 순명효황후 책봉교서>
생각하건대 , 세자는 진실로 만백성의 기대와 관계된다.
이미 관례(상투틀기)와 자를 짓는 의식을 거행하여
엄숙히 성인의 의젓한 모습을 갖췄으니 ,
나라를 다스리려면 먼저 가정을 세워야 하는 만큼
마땅히 빨리 빈을 맞아야 한다.
이에 훌륭한 규수를 구하여 이름있는 가문에서 선발하였다.
그의 덕은 단정하고 성실하였으며 그 예의는 공경스러웠고 정중하였다.
아! 저 민씨는 옛날의 어진 부인들과 같은 훌륭한 복을 가지고 있다.
대대로 절개과 충성이 이어져 정헌공을 받은 명성과 덕망이 있는 가문에서 태어났고 ,
왕비의 가까운 친척으로서 인현 왕후(숙종비 , 어진 성품으로 유명)가 남긴 혜택을 받았다.
...
너를 세자빈으로 책봉하는 만큼 총애를 받고 훈계의 말을 가슴에 새길 것이다.
우리의 종통을 이어 만대를 계승하여 가게 할 것이며 ,
너의 집을 화순하게 해서 온갖 복을 펴야 할 것이다.
공경으로 부모를 섬겨야 하고 ,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아랫사람을 거느려야 할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삼가하여야 복록(복의 공덕)이 모여들고
안팎이 다 잘되어야 백성들이 따를 것이다.
말을 바르게 하여 법도에 맞도록 하고
사미(아름다운 생각)와 사제(단정한 생각)의 명예를 떨치고 ,
자손을 번성하게 하는 상서로운 복을 쌓아
아름다운 칭송을 받아 창성함을 더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교시하노니 ,
잘 알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순종비 순명효황후 민씨 역시
순종처럼 덕스러운 용모에 성품이 유순한 인물이었고
순종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격동과 광기의 구한말 ,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순종은 별달리 할 수 있는게 없었고
아버지는 일본군에 경복궁을 점령당해 협박받고 ,
어머니 명성황후가 을미사변으로
경복궁에 침투한 일본깡패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것을
보고 자라야 했던 순종은
유약한 몸에 평생의 트라우마가 생기게 되었고
또한 ,
1895년 을미사변 당시
일본 깡패들이 어머니 명성황후를 해하려 할때
순종비이자 세자빈이었던 순명효황후는
일본 깡패들에게 시어머니 명성황후를 막아내어 보호하려다
그만 발이 미끄러져서 허리를 다쳐
고질병이 되었습니다
[황제가 된 고종 , 황태자가 된 순종]
어머니가 일본깡패에게 살해당한 이후부터 순종 역시
아버지 고종과 더불어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고종은
1896년
아들 순종을 데리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했으며
이후 러시아 공사관에서 환궁한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해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순종은 황태자에 ,
세자빈은 황태자비에 책봉됩니다
[순정효황후 윤씨]
그러나 ,
황태자비는 1904년 , 을사조약 1년전 사망했고
이후 1906년 순종은 윤택영의 딸 , 해평윤씨 가문의 여인을 아내로 맞아
조선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 윤씨는
그렇게 망국의 황태자 순종의 아내가 되어
조선 , 대한제국의 멸망과 일제강점기 , 대한민국 시기까지 생존한
한국사 마지막 황후가 되었습니다
[김홍륙 독차 사건]
순종의 아버지 고종은
겉보기엔 키도 작고 유약해보였지만
뒤에선 계속해서 일제에 저항했던 인물이었고
흥선대원군이 직접 선택한 임금이자
흥선대원군의 아들답게
겉은 온화해도 기본적인 깡다구는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에 외국인들도
고종과 순종 부자를 만나보고
고종은 키는 작아도 나름 상냥하고 이야기가 잘통했다는 호평을 남긴 반면
유약한 순종은
키는 큰데 어리버리하게 생겼다는 평을 남겼고
이외에도 순종은
예전에
1898년 '김홍륙 독차 사건(고종 독살 사건)' 당시
러시아어 역관(통역사) 김홍륙이
고종을 독살하려
고종과 순종이 같이 마시는 커피에
아편(마약)을 넣었고
을미사변 이후 암살위협에 트라우마가 많았던
고종은 평소 커피도 즐겼기에
커피맛이 이상하다고 바로 뱉었지만
원래 커피맛을 잘 모르던 순종은 무심코 커피를 마시다
피를 토하고 그자리에서 기절했고
혈변을 누고 치아도 상당히 빠져서 틀니를 끼고 살았습니다
겨우 살아난 순종이지만 순종은
점차 생명 위협을 느끼며 더욱 위축되었고
순종은 평소 어벙한 외모에
틀니까지 껴서 하관이 더 거져서
이후부터는 사람들은 독살사건 이후부터
순종이 바보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순종 고자설]
또한 이때의 부작용때문인지
순종은 평생동안 아들 , 딸 할 것 없이
한명의 자식도 두지 못했고
이로인해 고자가 되었다는 설도 있고
어린시절 순종의 성기를 궁녀가 빨다
고자가 되었다는 야사도 있습니다
[강제로 즉위한 순종황제]
하여튼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국화 되며
사실상 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고종은 일제에 저항을 멈추지 않았고
끝내 고종은 세계열강들이 모이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헤이그 특사(헤이그 밀사)를 보내
일제의 폭력성과 부당함을 세계에 호소하려 했지만
일제에 걸려서
결국 강제퇴위 당했고
아무 힘도 없고 그저 암살위협에 위축되 살던
허수아비 황태자 순종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즉위해
조선 27대임금 ,
조선 마지막 임금 ,
대한제국 2대황제 ,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
한국사 마지막 군주
라는 여러 타이틀을 다는
허울뿐인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로 즉위합니다
당시 고종 황제는 일제의 강요에 황위를 양위할 마음이 1도 없었기에
순종에게 대리청정을 하겠다고만 했지만
일제는 순종이 대리청정을 시작한지 일주일도 안되서
순종의 황제즉위를 의논했고
결국 순종은 일제의 강요에
1907년 8월 27일 대한제국 2대황제에 즉위하고
연호는 융희로 정해
한국 마지막 황제이자 융희황제 , 순종황제라 불리게 됩니다
<순종 즉위 교서>
아! 생각건대 우리 태조 고황제(태조 이성계)는
하늘의 의사에 응하고 사람의 마음에 맞게 왕업을 이룩하고 계통을 이어줌으로써
억만년토록 무궁할 우리나라의 터전을 열어 주셨다.
창업에 부지런히 힘쓰는 것에 고달프시어
왕위를 정종 대왕에게 물려주었고 ,
정종 대왕은 이어받아 또 태종 대왕(태종 이방원)에게 물려주었으며 ,
태종 대왕은 또한 세종 대왕에게 물려주었다.
세종 대왕은 세 임금의 뒤를 이어 성왕(성스러운 임금) 중의 성왕이었으니 ,
거룩한 공적과 훌륭한 교화로
당요우순(중국 태평성대시기 임금) 때와 같은 세상을 이룩하고
예악, 문물이 찬연하게 구비되었다.
윗사람은 어진이를 어질게 여기고 친척을 가깝게 하였으며
아랫사람은 그들의 즐거움을 즐거워하고 그들의 이익을 이롭게 여기면서
오늘의 경사를 보게 되었으니 ,
우리나라의 예법이 원래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성인이 하는 일에는 다 은미한 뜻이 있어서
일반 사람들은 원래 알지 못하는 것이지만 ,
짐과 같이 무능한 사람이 하는 일이야 일반 사람들도 어찌 모르겠는가 ?
그리고 세상일은 잘 되는 때와 못 되는 때가 있고
운수는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는 법이다.
근래 수십 년 동안에 우리나라에는 난관이 많아서
비록 태황제(고종 태황제 , 고종)와 같은
훌륭한 덕과 지극한 인자함으로 밤낮 근심걱정 했어도
오히려 장차 그렇게 되는 때를 돌이켜 바로잡지 못하였는데 ,
변변치 못한 나로서 어떻게 이미 그렇게 된 뒤에 와서 수습할 수 있겠는가 ?
...
그대 이완용(매국노) 은 총리이니 ,
너의 부하들을 통솔하고 경계하여 그대의 임금을 인도하되 ,
조금이라도 바르지 않게 인도하지 말라.
...
아아 ! 황제가 되는 것이 즐거움은 없고 단지 두려운 생각만 들게 된다.
믿는 것은 신하들뿐이니 무거운 부담을 돕도록 하라.
그렇게 일제의 강요로 황제가 된 순종이었고
곧 자신이 자식을 낳지 못함을 직감한 순종은
곧바로 고종이 귀비 엄씨와 사이에서 낳은
이복동생 영친왕 이은을 황태자에 책봉하기로 했고
그렇게 허울뿐인 제국이자 약소국 대한제국은
마지막 황제 순종황제와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을 끝으로 곧 멸망합니다
<라봉봉>오늘날 사람들이
조선 초기 정종이 동생 태종 이방원에게 숙청당하지 않기 위해
일부로 정실부인 사이에서 아기를 낳지 않고
첩 사이에서만 아기를 낳은게 아닐까라는 이야기도 하는데
혹시 순종 역시
어짜피 자식을 낳아봤자 부모님 꼴 나거나
일제에 핍밥을 받고 평생 살아갈게 눈이 보였기에
일부로 피임을 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너무간 추측이기도 하고
실제 순종은 평생 허약했던 인물이었고
하여튼 ,
이미 순종의 아버지 고종대에
개화 , 대한제국 선포 , 일제에 맞서기 등
해볼만한건 다해봤고
도중의 고종의 뒷심 부족으로
모두 다 실패 후
모든 방법이 막혀버린 상황이어서
을사조약 이후 사실상 대한제국의 모든 힘은 모두 일제에 거세된 상황이었고
일제의 꼭두각시로 즉위한
순종은 할 수 있는게 정말 아무것도 없었고
한국사 마지막 임금임에도
존재감이 적은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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