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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의 유년시절>

[마지막 군부독재자]

[군부독재자와 전국3영걸]

[물태우]

[참모의 후손]

[행복한 어린시절]

[온순한 아이]

[대구공고와 전두환]

[경북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노태우와 전두환]

[태릉 타잔]

[한 사람의 천재보다는 두 사람의 보통사람]

[김옥숙]

[미국에 신랑]

<라봉봉>

 

[마지막 군부독재자]

박정희 , 전두환에 묻혔지만

대한민국 마지막 군사독재 , 군부출신 대통령은 노태우였고

또한 노태우는 오늘날 제6공화국 첫번째 직선제 대통령입니다

 

대한민국 13대 대통령 노태우 공식 초상화

 

친구따라 강남간다지만

노태우는 친구따라 대통령까지 한 인물이고

전두환의 베프이자 성공한 2인자로서 처세술의 달인인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박정희와 전두환도 실제 성격은 정반대였지만

정치적으로는 같은 액윽보수로서 정치적으로는 똑같은 행보를 보였는데

마지막 군사독재자였던 노태우는 이 둘과는 또 달리

흐믈흐믈한 모습을 보인 인물입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위기를 뚫고 나가는 돌파형 인물이었다면

노태우는 뚫기보다는 그냥 대세수용적이고 타협하는 자세였고

유연하고 온건한 이미지를 구축함으로서

강경하고 억압적이었던 군부세력 이미지를 많이 변하게 했고

근데 또 착한놈은 아니어서 (ㅋㅋ)

노태우 역시 굉장히 신비한 인물입니다

 

한국은 그렇게 군부독재자가 총 3명이나 나와버렸고

막 해방이 된 시기부터 21세기 직전까지

좌우대립 , 독재 , 군부독재가 삼연타로 터진 시기였고

특히 군부독재가 30년가량으로 일제강점기 수준으로 매우 길었기에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은 군국주의 , 병영국가의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1994년까지 한국 청소년이 했던 교련수업(군사훈련)

 

오늘날 휴가나온 군장병들

 

이게 한국에서만 살면 잘 못느끼는데

요즘은 좀 북한이 잠잠한데

최근까지 한국은 실제로 세계인들의 눈에 보기에

엄청난 고위험의 전쟁국가였고

한국보다 후진국들도 한국처럼 극단적 수준의 징병률과 군사화된 모습은 아니기에

그냥 해외여행 일주일만 가봐도 대충 나라의 분위기가

경직된 한국과는 확다른 모습이 있고

 

일제강점기 35년 이후에도 오늘날까지

일제 잔재들이 있듯이

군사정권이 박정희 1961년 5월 16일부터 1993년 노태우 임기까지

32년이 됬기에

오늘날까지 군대식 문화의 잔재들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고

 

한국이 그만큼 경직되있고 군사적 잔재가

매우 강하게 남아있는 나라임을 보여줍니다

 

(근데 북한은 우리보다 더심하기도 함)

 

오늘날 직장에서도 계속되는 군대식 문화 , tvN 드라마 미생(2014)

 

노태우는 마지막 군사정권 대통령이었고

제6공화국 최초의 민주주의 직선제로 뽑힌 대통령이었기에

과도기적 인물이었고

박정희 , 전두환보다 군부적 색체가 가장 약한 인물이었습니다

 

한국 3명의 군사독재 대통령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부독재자와 전국3영걸]

어떤이들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관계를

일본 전국시대 3대영걸인

 

오다 노부나가(박정희)-도요토미 히데요시(전두환)-도쿠가와 이에야스(노태우)

 

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일본 전국 3영걸 , 왼쪽부터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

 

이게 다행히 노태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대대로 막부시대(군부시대) 를 연 인물은 아니었지만

 

노태우때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제6공화국(1987~) 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이고 있는

대한민국 최장수 체제로서

 

대한민국 제6공화국 첫번째 대통령 노태우

 

대한민국 제6공화국 7번째 대통령인 오늘날 문재인 대통령

 

지금이 2021년이니 벌써 34년이 되고

지금 제6공화국도 문제가 많지만

현재 제6공화국은

오욕과 독재 , 군부로 얼룩진

제1~제5공화국에 비해 상당히 평화롭고 안정적인 체제이며

가히 일본 최장수 , 최안정 체제였던 에도막부와도 비슷합니다

 

그렇다고 노태우가 일본 영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비길만한 인물은 아니지만

노태우는 마지막 군부독재자 , 제6공화국 최초의 민선대통령으로서

이승만 , 박정희 , 전두환처럼 지저분한 은퇴를 하지는 않고

깔끔하게 후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퇴임후 별다른 불만 , 의의표출 없이 법의 심판을 받았기에

나름 현재 대한민국 , 제6공화국은 노태우가 스타트를 잘 끊어 준 것이었고

온화한 모습으로 풀려난 이후에도 꾸준히 광주에 사죄했으며

심판과 과거청산에 ㅈㄴ ㅈㄹㅈㄹ했던 전두환보다는 양반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퇴임후 군사반란죄로 법의 심판을 받는 노태우와 전두환 전직 대통령

 

이 스타트를 잘 끊어 주었기에

일본 에도막부처럼 대한민국 제6공화국이 최장수 체제로 갈 수 있는 것이며

별거 아닌거 같아도

사실 제1공화국 헌법도 이승만이 말년에 ㅈㄹ만 안했어도

무난한 미국식 정치체계였기에 이승만도 조지 워싱턴급 대우도 받고

평안하게 오래 갔을 것인데

나름 이 스타트끊는게 ㅈㄴ게 중요합니다

 

하여튼 ,

다시 한국 3대 군부독재자들을 일본 3대 군벌과 비교해보면

 

박정희는 노부나가처럼 유능해서 발전은 시켰는데

ㅈㄴ게 잔인하고 엄격한 인물이었고

 

전두환은 노부나가에게 충성을 바치다 출세한 히데요시처럼

잔인해서 주변 사람들을 다 조지며 주변에 믿을 사람이 없었던

주군 박정희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제일 빠른속도로 별을 단 인물이었고

히데요시가 일본에서 영웅으로 인정받지만

잔머리질에 못생겨서 원숭이라 까이듯이

전두환 역시 꾀가 많고 대머리라

문어대가리라 희화화 되는 것도 비슷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군부독재자

노태우는 역시 이에야스를 닮았는데

에이야스가 평화주의 모습을 보이며 힘을 키웠듯이

노태우 역시 같은 군부인사 , 최고권력자임에도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대놓고 잔인한짓이나 학살은 하지 않았고

전두환 뒤에서 ㅈㄴ 가만히 기다리다가

대통령직을 꽁으로 먹고

또 겉으로는 부드럽고 선한데 응큼한 구석도 강해서

 

이전 권력자였던

도요토미 일가와 화해하기로 약속하고

도요토미 일가가 성곽을 허물고 해자를 메우자

곧바로 뒤통수치고 도요토미 일가를 멸망시킨게

 

전두환 뒤에서 2인자로 꿀빨다가

대통령되자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보낸 것 ,

재벌과 결탁해 뒤로 전두환처럼 자산증식에 열심이었던 노태우였고

민주화 인사들 탄압도 변하지 않고일관됬기에

하여튼 선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와 달리 탐욕과 야비한 구석도 있었으며

이에야스같은 이런 부류를 일본에서는 너구리상이라 하는데

과연 노태우 역시 너구리스타일의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너구리 영감 도쿠가와 이에야스

 

하하하

 

노부나가(박정희)는 새가 울지 않으면 죽여버렸고(중앙정보부)

히데요시(전두환)는 새가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들었고(애마부인)

이에야스(노태우)는 새가 울때까지 기다렸다(조용한 2인자)

 

는 전국삼영걸 두견새 이이갸처럼

셋 다 그런 성향의 인물이었고

하여튼 노태우는 그렇다고 이에야스처럼 엄청난 호족도 아니었고

민주화때문에 신군부가 마지막 발악격으로 겨우겨우 당선시킨 인물이고

민주화 열기로 신군부에 대한 민심도 최악이었고

여소야대 현상도 겪으며 재임시 힘도 가장 약했기에 

그냥 마지막 힘없는 군부독재자였고

단지 성격만 가장 부드러운 성격의 영걸이었던 이에야스처럼

가장 부드러운 군부독재자였습니다

 

 

[물태우]

이게 씹덕계에서는 전문용어로

하라구로 속성 인물이라 하는데

 

하라구로 속성

 

하라구로는

마치 겉촉속바(겉은 촉촉 속은 바삭ㅋ) 처럼

능구렁이 , 양의 탈을 쓴 늑대 , 음흉캐릭들을 뜻하고 있고

막 탐정만화에서도 흉악한 어깨들이 알고보니 착한놈이고

제일 착하고 친절한 할머니가

알고보니 범인이었다는 그런 막장설정처럼 

저도 겪은 바로는 이런 부류들이 사회집단에 꼭 한두명씩은 있는

ㅈㄴ 웃긴스타일의 인물입니다

 

하여튼 ,

전두환이 ㅈㄴ 나쁜놈인건 어린이들도 다 알고 얼굴도 흉악하게 생겨서

전두환은 육사 , 군시절부터 인간병기 선배로 ㅈㄴ 무서운 쎈캐였는데

전두환의 베프 노태우는 그런 전두환을 선한 얼굴로 따라다니며

모범생 이미지를 구축하며 군부출세 맨 선두에 있던 전두환의 바로 뒤에서서

전두환의 꿀요직을 그대로 승계받으며

고속승진했던 인물이고

 

전두환과 노태우

 

노태우는 부드러운 미소속에 철저한 '2인자 전략' 을 사용하며

끝내 대통령직까지 했던 인물이고

전두환처럼 근성형 인물도 있고

바로옆에서는 노태우같은 이런 꿀빨러 인물도 있고 역사란게 참 재밌습니다

 

단 억센 성격의 전두환도 직진만했기에 옆에서 도와주고

이미지를 관리해줄 인물이 필요했고

부드럽고 선한 성격의 노태우가 바로 옆에서 전두환을 보좌해주었기에

두 청년은 청년시절부터 같이

장군 , 대통령까지 골고루 해먹을 수가 있었던 것이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틀어지기도 했지만

서로 평생 운명공동체로서 함께했고

이후 군부독재와 쿠데타가 심판받을 때

법정에서의 최후역시 함께였습니다

 

하여튼 ,

마지막 군부독재자 겸

군사정권 이후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는

군정에서 민주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단계시기의 대통령이었고

나름 부드럽고 온화한 성향으로 더이상의 군부의 권력남용을 막고

민주정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한 인물이었고

선임 대통령 겸 보스였던 전두환의 어그로가 너무 강해서

비판과 욕들이 전부다 전두환에 박혀버리기에

군부독재자임에도 별다른 이미지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인물입니다

 

또한 그렇다해서 전두환 친구이자

12.12 쿠데타 주역이었기에

좋은 이미지도 없는 인물이고

 

윤보선 , 최규하 대통령이

각각 민주계와 보수계의 허수아비 대통령으로서

존재감이 제로 수준인데

이 두인물은 2년도 못하고 쿠데타로 쫓겨난 인물이기에

그럴 수 있다쳐도

 

전두환의 예우를 받는 윤보선(가운데) 과 최규하 전직 대통령

 

노태우는 군사정권 이후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이고

임기도중 1988년 서울올림픽도 했던 행운도 누렸고

5년임기도 정상적으로 다채우고 다음 대통령이 같은 여당임에도

군부에서 민주화로 넘어가는

여러 이런 복잡한 시대상들과 맞물려서

존재감이 제로수준인 5년채운 대통령이었고

 

나쁜 이미지도 , 좋은 이미지도 딱히 없는 인물로서

이로인해 국민들에겐 '물태우' 라 불리는 인물이고

 

물태우

 

물론 마지막 군부독재자답게 당시까지만해도 언론들은 노태우 눈치를 봐야했음

 

노태우는 취임시기에도 처음으로 대통령 권위를 내려놓은 인물로서

그전까지 권위주의에 찌들어 왕처럼 굴었던 한국 대통령이었지만

한국 대통령중 처음으로 자기를 놀려도 된다했지만

인기도 , 존재감 자체가 없어서 국민들도 전두환을 놀리지

아무도 이 인물을 놀리지도 않습니다

 

하여튼 ,

불법권력자던 허수아비던 물탄 인물이던

역시 대한민국의 수장까지 올라간 인물들 중

평범한 인물은 없으며

대한민국 13대 대통령 노태우 역시

자기관리 , 처세술로 대통령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입니다

 

[참모의 후손]

노태우는 1932년 12월 4일 경상북도 달성군(대구) 공산면 신용리에서

 

공산면사무소 면서기를 지낸 아버지

노병수와 어머니 김태향 사이에서

2남중 장남(첫째) 로 태어납니다

 

노태우의 부모님은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다

팔공산에서 백일기도를 올리는 노력도 했고

결혼후 9년만에 노태우를 낳았습니다

 

노태우의 어머니는 노태우를 임신했을때 태몽을 꿨는데

콩밭에서 김을 매던 중 (잡초뽑기)

숨어있던 큰 구렁이를 보고 놀라서

집으로 오다가 구렁이가 따라와 어머니의 몸을 휘감았기에

놀라서 꿈에서 깼고

 

이에 할아버지는 이 구렁이는 용이라며

아이 이름을 노태룡이라 지으려 했지만

조선인이 억압받던 일제시대였기에

꿈을 숨기기 위해

일부로 어리석을 우자를 붙여서

이름을 노태우라 지었습니다

 

노태우의 조상은

삼국지에 나오는 오나라 손권의 참모 노숙이었고

노숙이 ㅈㄴ게 온화하고 똑똑해서

오나라 2인자로서 오나라 손권의 제갈량같은 대참모였고

 

적벽대전에서 노숙(왼쪽) 과 제갈량

 

노태우는

조선전기의 문신이자 온건 훈구파

영의정 노사신의 15대후손으로

 

과연 온건한 참모의 후손다운

온건한 참모 , 2인자 노태우였습니다

 

물론 노태우는 영원한 2인자 김종필과 달리

결정적인 순간에 한방을 보여줬고

 

2인자에서 머문 김종필과 끝내 1인자까지 올라간 노태우

 

2인자 이미지는 강하지만

전두환의 도움으로 대통령직까지 올라

자기딴엔 전두환과 선을 그었고 (물론 국민들은 그렇게 안봄ㅋ)

실제론 참모형 인물보다는 온건형 인물이 더 적합한 인물입니다

 

[행복한 어린시절]

하여튼 ,

노태우 아버지 노병수는

소학교 학력이 전부였지만

신문물에 일찍 눈뜬 인물이었고

189cm 키를 가지고

음악적 자질도 뛰어나고 한문도 잘해 면서기를 지냈던 인물이었고

 

노병수는 너덧살의 노태우를 무릎에 앉히고

마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유성 축음기에서 나오는 음악도 들려주며

 

축음기

 

노태우는 일찍부터 노래도 잘 불렀습니다

 

<노태우>(아버지가 유성축음기를 틀어줄 때) 그럴 때면

으례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 노래를 같이 들었다

 

 

[온순한 아이]

그러나

1939년 노태우가 8살때 

노태우 아버지는 친동생 노병상의 중학교 졸업식 참석을 위해

버스를 타다가 철도 건널목 사고로 숨을 거두었고

 

이로인해

노병상은 자기때문에 형이 죽었다는 부채의식을 가지고

조카 노태우를 정성껏 키우게 됩니다

노태우는 이때부터 가세가 기울어 가난하게 살았으며

8살때부터 6년간은 늑대가 나오는 산골길 시오리를

날마다 달리다싶이 하며

국민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린 노태우는

소설이나 시집을 사려했지만

양반가였던 할아버지는 그런 책을 사는 것을 원치 않아서

스스로 해결하려 했는데

 

12살의 가난한 5학년 학생 노태우 어린이는

방과후 벌목장에 가서 일을 해 돈을 벌려 했고

벌목장 감독은 그런 노태우를 보고 웃으며 말하길

 

<벌목장 감독>이곳은 어린이들이 노는 곳이 아니야

다른 곳으로 가봐 !

 

했는데

그럼에도 노태우는 거기서 일해서

지폐로 5원을 품값으로 받았고

 

 

다음날 대구에 나가 유명작가 소설집과 동화집 ,

남은 돈으로 얼레빗과 참빗을 사서 어머니에게 선물했습니다

 

14살때부터 대구의 삼촌집에서 중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노태우>자꾸 참다보니 참는게 제2의 천성이 됐다

 

그러나 결국 친아버지 없이 자란 노태우였기에

여느 아이들처럼 어리광 피우며 자라지는 못했고

어린시절부터 노태우는 내성적이고 온순한 아이로 자라서

말을 아끼고 조숙하게 행동했습니다

 

<노태우>강한 주장 , 서슴 없는 주장을 용기라고 하지만

참기 힘든 것을 참는 것도 이에 못지 않은 용기

 

[대구공고와 전두환]

노태우는 초딩때부터 공부를 ㅈㄴ게 잘했는데

공산초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했고 (3등이라고도 함)

 

문학에 취미가 있었던 노태우는 그쪽으로 가려했지만

그걸로 벌어먹기 힘들다는 어른들의 판단을 따라서

5년제 대구공업학교(대구공고) 항공기계과에 입학합니다

 

1년뒤 노태우는 대구공고 기계과에 입학한 하급생 전두환을 처음 만나게 되었고

물론 당시 노태우는 곧 광복후 경북중(경북고) 로 편입했기에

전두환과 헤어졌고

대고공고시절 당시까지는 노태우와 전두환은 별다른 인연은 없었습니다

 

논란이 된 대구공고의 '모교를 빛낸 동문 전두환-노태우 전시관' , 연합뉴스

 

[경북고등학교]

그러나 노태우는 뜻을 세우면 끝장을 내는 성격이었고

이내 다시금 학업에 대한 마음이 걸려서

대구 공업중(대구공고) 전기반 3학년때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경북중학교 4학년에 편입하려 했고

 

옛날에는 명문중고등학교들이 존재했고

서울에는 고등학교계 스카이 대학이었던

경기고 , 경복고 , 서울고가 있었는데

지방에서 서울에있는 고등학교까지 유학가기가 어렵기도 했기에

지방 이름을 딴 명문고들이 있었고

경북고 역시 지역에서 가장 알아주는 수재학교였고

노태우는 10:1의 경쟁을 뚫고 경북고에 편입하는데 성공해

경북지역 수재들과 공부하고 친분을 쌓게 됩니다

 

노태우는 대구 칠성동 삼촌집에서 중학시절을 보냈는데

노태우는 중학시절부터 독서를 좋아했고

삼국지를 읽더니

 

<노태우>유비같은 사람이 되겠다

 

했습니다

 

삼국지 영웅 유비

 

[육군사관학교]

그렇게 경북중딩 노태우는 의사가 되려했는데

1950년 노태우가 경북중학(경북고) 6학년때에

6.25 전쟁이 터져서

노태우는 학도병으로 헌병학교에 자원입대했고

머리가 똑똑했기에

9백명중 1등을 해서 헌병학교기간요원으로

1년여 근무하다가

1951년 육군사관학교 정규 4년제 1기가 모집되자

경상도 수재 경북고 출신 + 1등헌병 출신이었던

노태우에게 육사시험은 좆밥이었고

 

최상위권 성적으로 무난하게 육사에 입학했는데

입학성적은 200명 가운데 10위권이었습니다

 

<노태우>그 때 불타오르는 향학열을 어디가서 채울 수가 없었는데

진해(육군사관학교 위치) 는 안전한 곳이니까 배울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51년 육사생도 시절의 노태우

 

반대로 그의 영원한 친구였던

대구공고 출신의 빡대가리였던 전두환은

노태우와 같은 시기 육사에 지원했지만

200명 모집정원에서도 들지 못해 육사에서 떨어졌는데

갑자기 육사에서 28명의 예비합격자를 추가로 발표하는 바람에

꼴찌에서 두번째인 227등으로 들어갔습니다 (기적임ㅋㅋ)

 

[노태우와 전두환]

노태우는 육사에 들어가보서 보니

대구공고 시절 후배였던 전두환이 입학해 있어

운명의 동반관계를 만나게 됩니다

 

전두환과 노태우

 

도중에 대구공고에서 경북고로 편입하며 

고상하게 공부하며 부잣집 도련님들과 교류하던 노태우와 달리

전두환은 땜장이 학교(당시 공고 비하어) 출신으로

그냥 엄청난 운빨로 꼴찌로 육사에 입학한 것이었기에

노태우와 전두환은 수준차이가 났었고

 

(원래는 노태우가 전두환보다 앞서있었음ㅋㅋ)

 

톨스토이와 헤르만 헤세를 읽고

클래식 음악을 즐기던 소심한 청년 노태우는

투박하고 억세며

공부성적제로 + 나대면서 일진짓과 축구를 즐기던 전두환과는 

정반대타입의 유형이었고

 

노태우와 전두환

 

아이러니하게도 육사입학때까지는 노태우가 앞서있었지만

군대 특성상 결국 전두환같은 체질이

공부는 못해도 더 군인으로서 성공하기 좋은 체질이었으며

다른 육사동기들도 전두환을 난놈이라 여겼고

노태우는 사실 군인 타입이 아니라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노태우>육사생도중에서도

머리가 좋아 성적이 우수하고 말도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멀리보니 우직하게 땀흘리는 사람들(전두환이랑 나) 이 오히려 잘 되더라

 

육사시절 노태우는 전두환과 같은 방을 썼고

노태우는 자신보다 한살 형이었던 전두환을

 

(전두환은 학교를 늦게가서 노태우보다는 대구공고 후배였음)

 

보좌해주는 역활을 했습니다

 

육사생도 시절의 전두환과 노태우

 

[태릉 타잔]

영어를 잘하던 소심한 육사생도 노태우는 의외로

육사 체육 1위 , 보스기질의 전두환과 어울리며

체력 1위 전두환과 1, 2위를 다툴만큼 체력이 ㅆㅅㅌㅊ였고

 

그렇다고 축구 , 야구 , 복싱등을 즐기며 인간병기였던 전두환과는 달리

노태우는 스포츠 자체에 별다른 흥미는 없고

테니스 정도나 치는 정도였지만

노태우는 영어와 체력이 다 ㅆㅅㅌㅊ인 만능형 팔방미인 장교였고

 

이에 노태우는 별명이 '태릉 타잔' 이라 불린 만큼

의외로 체력도 ㅆㅅㅌㅊ였기에

체력 1위 전두환과 같이 한국 최초 미국특전사 교육에 뽑혀서

미국유학을 가는 행운을 얻게 되고

얌전한 노태우는 활발한 인싸였던 전두환과 어울리며

육사 4학년때 구대장 생도도 하고 성격도 점차 적극성을 띄게 됩니다

 

[한 사람의 천재보다는 두 사람의 보통사람]

1955년

4년제 정기육사 1기 겸 육사 11기인

노태우와 전두환은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해

빠이빠이 했고

 

하나회 주역들인 육사 11기 , 뒷줄 노태우와 전두환

 

노태우는 육군 제5보병사단 소대장으로 발령받았는데

당시 사단장이 박정희였고

이전 단기육사출신인 박정희는

정규육사 1기 출신 겸 똑똑한 군인이었던 노태우를 각별하게 대해줬고

점심때 초대하거나 오리사냥가자고 제의하기도 했습니다

 

노태우는 소대장 시절부터

 

'명령이 아닌 대화'

 

라는 지휘방침으로

다양한 구성원들을 통합 , 조화해 생명력있는 집단을 만들려 하며

우수부대를 만들려 했습니다

 

<노태우>인간관계는 법규와 규율이 아닌

오묘한 예술이라는 생각으로 살아 왔다 ,

 

나는 일을 함에 조직을 매우 중시하며

한 사람의 천재보다는 두 사람의 범인(평범한 사람 , 보통사람) 이 낫다는 생각에서

모두의 의견을 듣고 거기서 나온 결론을 토대로

스스로 해 나가도록 한다

 

소위시절 노태우(맨 왼쪽)

 

노태우는

장교 , 병사들 할 것없이 두루두루 인맥질에 열심이었던 전두환는 달리

지휘관시절에도 '자기사람' 을 만들거나 데리고 다니지 않았으며

전두환처럼 독자적 인맥을 구축하지는 않고

 

노태우는 마치 주식 모르는 사람들이 삼성전자 한개만 사놓고 자기 할일 하듯이

오직 육사내 특급우량주였던 전두환 한명한테만 집요하게 빨때를 꼽은 인물입니다

 

하여튼 ,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

전두환이 박정희에게 빨때를 꼽기 전까지만 해도

정규육사 1기(육사 11기) 내에서는

성적도 우수하고 모범적이었던 노태우가 전두환보다 앞선 장교였고

육사내 선두주자로 활동했는데

 

초보장교 노태우는 이후 선생님으로서의 자질이 뛰어나서

육군정보학교에서는 영어교관을 역임했습니다

 

[김옥숙]

노태우는 육사생도시절엔  전두환과 같은 방을 썼지만

문화적 친구였던 김복동 생도와 친하게 지내고 있었고

김복동 집에 놀러가다

경북여고 1학년이던 그의 여동생 김옥숙을 처음 보게 됩니다

 

김옥숙

 

노태우는 이후 육군중위시절 

육사동기겸 친구 김복동 중위집을 자주 놀러가다

김복동 여동생 김옥숙을 다시 만났는데

김옥숙은 경북대 가정과에 다니는 여대생이 되어있었고

김옥숙은 미녀여서 처녀시절 미스코리아 대회출전을 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노태우는 김옥숙에게 말이 없는데다가 신중하고

믿음직하다는 인상을 주었고

여자를 겸손하고 정중하게 대해줬기에

김옥숙은 노태우에게 '영국신사' 라는 별명을 지어주었고

 

둘은 릴케의 시집 같은 것을 주고받고

차이콥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를 같이 듣고 하다가

결국

1959년 6월 9일 결혼을 하게 됩니다

 

노태우-김옥숙 부부

 

노태우 일가

 

노태우는 전두환과 매우 비슷한 처가를 만나게 됬는데

노태우와 전두환 둘다 가난한 경상도 촌놈이었고

둘다 처갓집이 풍족한 집안이었기에

둘다 초기엔 처갓집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인물입니다

 

노태우는 대구의 가난한 이름없는 집안으로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살았지만

김옥숙 집안은 대구에서도 꽤 알아주는 집안이었고

장인어른이 일제시대때 경찰공무원으로 일했기에

김옥숙은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그러나 노태우 단짝친구였던 김복동은

둘의 혼사를 밀어붙여주었고

이후에도 김옥숙은 나댔던 전두환 부인 이순자와는 정반대로

남편을 닮아 조용히 '그림자 내조' 를 펼쳤습니다

 

그림자 내조를 펼친 김옥숙 여사

 

[미국에 간 신랑]

노태우는 김옥숙과 결혼 전

미국에 교육을 받으러가는 시험을 쳐놨었는데

대구에서 결혼을 하고 부산으로 신혼여행에 가서

해운대에서 하룻밤을 떡 자고 있었더니

서울에서 전보가 와서 빨리 미국가게 올라오라는 전보가 왔습니다

 

<노태우>가을쯤 가게 될 줄 알았는데

서울로 와서 미8군에 가니까

주사를 빵빵 놓더니 바로 미국가라 이거요

그래서 미국에 간 게 결혼한 지 3일 만이오

교육기간은 6개월인데

그때 각하(전두환 중위) 랑 같이 갔지요

 

그렇게 노태우는

1959년 6월 12일

역시 막 신혼이었던 전두환과 같이

미국으로 특전사 교육을 받으러 가게 되었고

전두환은 그래도 신혼 1년차였는데

노태우는 신혼 3일만에 미국으로 떠나버립니다 (ㅠㅠ)

 

 

<라봉봉>근데 의외로 한국 대통령들이

듣보 대통령들이 유명한 대통령들보다 더 나은 경우도 많아서

꼭 유명한게 다 좋은건 아니고

오히려 유명해지는 것은 쉽지만 올바른 정치를 하는게 더 어려운 일입니다

 

노태우 같은 유형 인물들이 사실 ㅅㅌㅊ들이 많은데

전두환이 체력에 몰빵된 타입이라면

노태우는 머리 똑똑하고 체력우수한 만능캐릭형 인물이고

 

노태우는 제갈량처럼 ㅈㄴ 똑똑한 천재는 아니어도

그가 존경했던 유비같은 느낌도 나고

나이들면서 삼국지를 다시보니깐

다시보니 유비도 실제로 ㅆㅅㅌㅊ였던게 보이고

제가 제갈량 스타일이기에

옛날부터 이런 유형 인물들이랑 뭔가 죽이 잘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노태우는 전형적인 문관형 타입임에도

경제형편을 위해 노가다도 뛰고 공고도 다니다

군에 입대한 인물이라

경제관념도 우수한 인물이었고

 

그렇기에 전두환 그늘에서만 2인자로만 머물지 않고

훗날 기회를 딱 잡아버린 것이었고

대통령이 되고서도 서민 , 보통사람 대통령이 된 것이며

 

그럼에도 근묵자흑 , 나쁜 친구(전두환ㅋㅋ) 를 사귀어 버렸기 때문에

똑같이 쿠데타와 비리를 저지르고 사이좋게 감옥을 가게 됩니다

 

단 그럼에도 계속 전두환 2인자 , 그늘에서 나오려는

발버둥을 계속 친 흔적이 보이는 인물이고

전두환과의 관계는 사람들에게는 죽마고우 , 베스트 프렌드로 알려져있지만

'애증' 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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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abongbong 라봉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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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abongbong 라봉봉이야기 2021.01.24 09: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라봉봉 독자 여러분 제가 지금 도저히 글을 쓸 기운이 없습니다 왜냐면 저는 해야할 일이 산더미 같이 쌓였기 때문입니다 😂 그래요 , 저는 일복이 너무 많은 젠틀맨이죠 , 그러므로 일단 블로그는 휴업을 해야겠고 지금도 새장비나 그런거들 생각중이니 가게 확장공사 그런거 한다고 생각해주세요 저도 한번 쉬면 계속쉴까 두렵지만 그렇다고 애매하게 이대로 글쓰기는 힘들어서 쉴때 푹 쉬고 그래도 틈나면 글좀 쓸게요 나름 희망의 휴식이라구욧 (찐) 역사상담문의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은 ‘박정희의 교사시절’ 글이 제일 인기가 많군요 !!

  2. 슬픈이야기 2021.11.23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두환이 저돌적이고 과격한사람이었다면 노태우는 부드러움속의 처세술이었죠~!!!!

    • labongbong 라봉봉이야기 2021.11.23 19: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네 별개로 노태우가 대한민국 대통령중 미남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미는 인간의 본능이기에 미적 측면도 정치와 외교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노태우가 처세력과 자기관리력도 있어서 업보속에서도 그나마 평탄한 삶이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