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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학창시절>

[정치수업]

[산업역군]

[부유한 서양과 가난한 한국]

[공주수업]

[스페인 방문]

[하와이 방문]

[영어공부]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

[여대생 박근혜의 일탈]

[여대생 박근혜의 일상]

[밤하늘의 꿈]

[의문의 서강대 수석졸업]

[프랑스 유학]

<라봉봉>

 

[정치수업]

그렇게 청와대에 들어간 소녀 박근혜는

현모양처였던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보고 배우며

사춘기도 무사히 지나가게 되었고

박근혜의 마음속엔 이상적인 모습의 여성상이 어머니 육영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육영수와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로 집권하긴 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발전 5개년 계획도 성공시키며

국민들에게 성공적인 대통령의 모습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었기에

 

박근혜는 뛰어난 부모속에 나름 행복한 어린시절이었고

점차 박근혜 일가의 행복은 박근혜가 한창 성인이 되던시기

박정희가 주변사람들의 만류에도

은퇴하지 않고 3선개헌과 유신독재를 선포하며 끝나가게 됩니다

 

3선개헌 반대운동

 

 

일단 박근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

박근혜가 청와대 생활을 하는중 가뭄이 심하게 들었던 해가 있었고

아버지(박정희 대통령) 는 아침저녁으로 가뭄걱정을 했습니다

 

시찰하는 박정희 대통령

 

저녁식사자리에서 아버지는 농작물이 말라

어느때보다 힘든 해가 될거라는 말을 꺼내셨고

어머니의 안색 역시 좋지 않았습니다

 

박근혜가 어머니 , 아버지와 청와대생활을 하던 시기

아침저녁으로 식탁에서 일어나는 대화들은

이와같은 사회현안에 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식사하는 박정희 일가

 

일단 아버지가 대통령이기때문에

박근혜는 자연스래 밥상머리에서

밥상머리 교육으로 정치 , 경제 , 사회 , 국방 , 문화 등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는 부모님을 보았고

수출목표를 달성했다거나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을 획득했을때 처럼

좋은 소식이 들려오는 날은 가족모두들 대화를 나누며 행복해했습니다

 

하루는 간혹 아버지는 박근혜 삼남매에게

너희가 만약 정부부처의 장관이라면 어떤 정책을 펼칠건지 말해보라는

질문도 했고

 

가끔 어린 지만이(박지만 , 박정희의 아들) 가

과학부 장관이 되서 로보트를 만들거에요 하면

껄껄 웃기도 했습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한 박지만

 

일단 아버지가 대통령이고 그것도

대한민국사를 관통하던 거물정치인 박정희이다보니

자연히 박근혜는 밥상머리에서 이런저런 많은것들을 배웠고

일반적 평범한 가정의 식사때 이야기거리와는 다른 이야기를하며 자랐고

자연스레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사이 박근혜는 애국심도 자랐습니다

 

 

어느날부턴가 부모님이 가뭄걱정을 하면 박근혜는

 

<박근혜>비가 내리게해주세요

 

하고 기도도 했고

박근혜는 어느새 나라살림을 걱정하는 애어른이 되어갑니다

 

기도하는 박근혜 대통령 , 서울신문

 

[산업역군]

청와대엔 여러분야의 전문가들도 많이 다녀가 박근혜는

아버지와 전문가들의 대화도 듣기도 했는데

하루는 박정희는 박근혜에게 진로에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본적이 있었고

박근혜는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싶다했습니다

아버지가 이유를 물으시길래

 

전자공학

 

박근혜는 청와대에 방문한 한 박사가

조그만한 트랜지스터 하나에 20~30달러씩하고

007 가방 한개 분량이면 몇만달라나 하니

대한민국은 전자산업에 사활을 걸어야한다고 말했던 것을 언급하면서

 

트랜지스터

 

<박근혜>산업역군이 되어 나라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평소 박근혜가 역사학과에 가기를 희망하던 육영수 여사가

그말을 듣고 크게 놀랐고

육영수는

 

<육영수>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어떻게 하려고 ?

 

더이상 어머니는 말씀을 있지 못하셨는데

아버지는 달랐고

아버지는 이전부터 박근혜를 전문인력으로 키우려했던거로 보였고

 

<박정희>그래 정말 좋은 생각이다 ,

너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아버지는 믿는다

 

[부유한 서양과 가난한 한국]

그날 이후 아버지는 박근혜가 더 넓은세상을 볼 수 있게하려했고

호주와 뉴질랜드 방문일정이 잡혔을때

박정희 대통령은 아무런 사전언급없이 박근혜라는 이름을

참가명단에 넣도록 했고

 

서구국가인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한 박근혜는 큰 충격을 받게되는데

동화속에나 나올법한 서구국가의 주택이 참 인상적이었고

어느집에 가더라도 하얀지붕에 커다란 창이 있는 예쁜 집마당에는

꽃과 나무와 가득했고 집집마다 탐스러운 과실수와 잘 가꿔진 정원의 꽃들은

풍요를 의미했고 저녁산책을 즐기던 사람들의 모습엔

여유와 미소가 감돌았습니다

 

1968년 9월 16일 박정희 대통령 호주방문에 동참한 성심여고 2학년 박근혜

 

1970년 호주 시드니

 

가난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현실과는 사뭇 다른

박근혜가 본 서양 백인국가의 모습이었고

박근혜는 여유롭고 풍요로운 서구국가의 풍경을 바라보며

왜 우리나라가 하루빨리 경제성장을 이뤄야하는지를 절감했습니다

 

(애국소녀 박근혜 ㅠㅠ)

 

애국보수 박근혜는

언제까지 우물 안 개구리로 살 수는 없었고

그들을 빨리 따라잡아서 그들의 빛나는 풍요를 우리것으로 만들겠다는

투지가 솟아났습니다

 

<박근혜>우리도 이렇게 잘 살수 있다는 희망과

우리도 이렇게 잘 살아야 한다

 

[공주수업]

박근혜는 육영수 여사의 조언에 따라 학창시절부터

외국어를 공부해왔고

박근혜는 어린시절부터 청와대에 살며

미국인 교사에게 영어과외를 받아서 영어에 능숙했고

박근혜는 자서전 등을 통해

영어 외에도 프랑스어 , 중국어 , 스페인어 등

(한국어 포함해서)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전 이야기에서 썼듯이 박근혜는 실제로 공주수업을 받은 인물인데

실제로 역사에서 서양왕실에서 공주수업개념이 존재했고

공주수업이란 대외적인 사교술이나 요리배우기 ,

왕실예법 , 외모나 몸매가꾸기나 무슨 보석 치장하며 꾸미기라 생각하기 쉽지만

공주수업의 가장 어럽고 시간 많이걸리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핵심적인 것은 바로 '외국어 배우기' 인데

 

유럽은 동양 한중일이 형식적인 외교관계를 맺었음에도

대륙 , 반도 , 섬 형태라

대부분 배타적이고 적게 , 이질적으로 교류해온 역사와 달리

 

유럽대륙안에 여러 국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교류도 크고 활발했기에

실제로 유럽왕실끼리는 결혼동맹을 맺어 다 피가 섞여있고

제일 유명한게 합스부르크 왕가인데 

합스부르크 왕가에는

 

'다른 이들은 전쟁을 하게 두어라 ,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 결혼하라 !'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결혼수출국으로 유명하고

 

합스부르크 가문은 독특한 전략인 결혼동맹을 통해

세력을 늘려갔고 다른가문보다 특히 그걸 더 잘활용하며

유럽 대륙 전체를 따먹는 수준에 이르는데

 

합스부르크가의 영토

 

빵과 케이크 드립으로

유명한 프랑스 왕후 마리 앙투아네트도

오스트리아 공주 및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속녀로서

모국어 독일어를 비롯해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등 외국어와

음악과 댄스를 배운것으로 유명하고

 

마리 앙투아네트

 

유럽 왕실가문이나 명문가 여성들은 이렇게 어린시절부터

외국 유력가에 시집보내기 위해

다양한 외국어와 예법을 가르치는게 하나의 덕목이었고

이런 공주수업으로 정략결혼을 통해 부와 영토를 유지했기에

실제로 여러가지 외국어를 배우는 공주수업 개념이 실존해왔고

 

박근혜 역시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우다

다양한 언어를 확장시켜가며

사교계에서 분위기 메이커 , 퍼스트레이디 노릇을 했다거나

이렇게 갈고닦은 외국어 실력은

남자들로 가득한 여러 정치 , 외교적 상황에서 여성 정치인이라는 언더독 효과까지

시너지를 받아 그녀가 대통령까지 해먹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었고

 

사교활동하는 박근혜

 

진짜 공주수업의 핵심은 결국

누구나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치장과 허례허식 익히기가 아니라

진짜 부자들한테도 어려운게 외국어 학습이기에

박근혜가 다개국어가 가능할정도로 재능이나 지능이 있고

문학소녀 기질이 있었기에 정치판에서도 남자들 사이에서도 나름 한가닥 한 것이었고

비록 무능했지만 대통령 해먹은것도 완전 뽀록은 아니고

 

정작 박근혜한테 정신적으로 모자라다며

'칠푼이' 라 비하한 김영삼은

서울대학교를 나왔음에도 영어를 못했던 것으로 유명하고

 

저도 사실 박근혜가 탄핵당하며 온갖 욕을 먹을때

그저 박근혜가 모자란 이미지라 여겨지기도 했는데

제가 막상 뒤늦게 나이먹고 영어공부하니

박근혜도 앵간치 외국어에 대한 노력을 한 사람이고

 

수감시절 박근혜가 옥중에서 공부하던 영어 , 스페인어 , 프랑스어 사전(ㅠㅠ)

 

영어나 외국어라는건 단순히 엉덩이 붙여서 공부만 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그나라에 대한 정서적 , 문화적 , 역사적 이해도 있어야하기에

언어는 영혼의 흔적이라는 얘기도 있고

외국어 학습은 시간투자도 엄청나야하고

결국 그언어가 내포한 인생관과 철학까지 이해해야하는 고도의 학문이고

이런거때문에 백날 반미나 반일을 외쳐도

영어나 일본어 되게 잘하면 영미권이나 일본에서 알아서 인정해주고 대우해주고

백날 친미나 친일을 외쳐도 영어나 일본어 못하면

제대로 대우받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박근혜가 대통령 시기 미국의회 영어연설에서 박수받거나

굳이 친미하겠다며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미국이 걱정안했던게

영어를 엥간치 했기때문이고

 

또 박근혜가 중국어도 했는데

중국에서 박근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가 베스트셀러가 된거 보면

그냥 외국어 실력 자체가

그나라를 되게 많이 관심가지고 이해한거라는 증표와 다를 바 없기애

다개국어 가능한 정치인들은 국제사회에서도 대우가 좋고

 

당장 한국인들도 한국내 외노자들이 몰려다니며 자국문화만 고수하고

자기네 나라말만 하는 외노자들보다 김치 열심히 먹으려 노력하고 한국어 잘하는 외노자한테

말한마디 더 따뜻히 해주고 하나라도 더 챙겨줄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니

 

(반대로 한국인들이 미국에가도 영어책 한줄이라도 더 읽고

햄버거 열심히 먹으면 백형 , 백누나들이 좋아하겠쥬 ?)

 

인간사는 이런 잘 보이지 않는 언어권력같은게 분명 존재하고

박근혜는 존경하는 어머니 육영수가 언어가 중요하다 강조한것도 있고

나름 문학소녀 기질이 있어서 이런걸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던 겁니다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와 김영삼은 일제강점기 세대라

실제로 일본어는 유창히 했던 인물들인데

영어를 못했다 하고

일본어는 한국어와 어순과 문법이 같아서

한국인들에겐 되게 배우기 쉬운 언어이고

 

결국 한국인에겐 영어가 제일 어려운건데

대신 막상 영어 한번 뚫어놓으면

동양언어가 한자문화권이듯이

일단 유럽어계가 라틴어문화권이라 되게 유사하고

영어 , 프랑스어 , 스페인어가 같은 뿌리고 알파벳문자라

다 비슷해서 영어 하나만 잘하면 금방 유럽어 배우기가 쉬운거고

또한 1개국어때는 모르지만

2개국어가 제대로 가능한 시기부터는

언어학습에 대한 '요령' 이란게 분명 생기기 때문에

1개국어에서 2개국어로 가는 시간보다

2개국어에서 3개 , 4개국어로 가는 시간이 훨씬 빠르게 되고

 

이로인해

외국어 5개씩 한다는 사람들 보면

물론 사기꾼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역사 인물중에서 다개국어 가능자들이 좀 있기도 하고

요즘 대한민국 외고출신들도 제2외국어 기본적으로 몇개씩 배우는거로 알고 있고

5개가 다 유창한 수준은 아닐지언정 그렇다고 완전 다 사기라 봐서도 안되고

 

한국사 언어천재 세종대왕의 신하 겸 3~7개국어에 능통했다는 집현전학자 겸 조선초기 권신 신숙주

 

박근혜는 이런 공주수업 , 다국어 학습을 어린시절부터

조기적으로 한 것이었고

이당시 한국이 개발도상국 시대였기에 일반 국민들이

박근혜같은 귀족적인 교육기회를 가지는 것은

쉽지 않았던 건데

대한민국 경제력이 향상된 1980~9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어린시절부터 유학이나 다양한 외국어 학습 , 인터넷 등으로

예전 세대보다 확실 이런 언어학습에 기회가 늘었고

 

박근혜는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정치수업과

어머니 권유로 외국어 공부를 하며 여러가지 서양 공주처럼 공부한

ㄹㅇ 찐 공주수업 1세대라 보면되고

오늘날에도 제 또래나 후배세대들도 일찌감치

이런 공주수업이나 다개국어 학습자들이 꽤 있는거로 알고 있고

여자들도 이렇게 다개국어 가능하면

행복한 결혼생활까지는 장담할 순 없더라도

행복을 향한 날개와 징검다리정도는 된다거나

돈많고 빡대가리 호구부자남자들 충분히 꼬실 수 있을겁니다

 

하여튼 저도 나이먹고 뒤늦게서야 다개국어 가능자가 된 사람으로서

박근혜가 좀 인간 자체가 불운한 인생사 + 개인적 무능과 결함으로 문제가 있을지언정

이젠 박근혜가 그래도 어느정도 수준은 이해가 되고

박근혜가 대충 저랑 같은 방식으로 ,

저랑 같은 영문학고전 읽고 공부한게 보여서

세간에서 쉽게 조롱당할만큼

칠푼이라거나 무지성 빡대가리 수준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고

외국어 학습 부분은 어느정도 공감은 됩니다

 

근데 비판도 좀 하자면 문제는 박근혜는 일단 외국어 잘하기전에

한국어부터 제대로 배웠어야 했고

정책 , 외교적 용어는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샬라샬라하며

재롱부리는 수준보다 서울대 , 하버드 나온애들이나

의사 , 판사 출신들이랑 토론벌여야하기에

먹물 엄청나게 먹어야하고

뉘앙스나 어감까지 고려해야 할 정도로 훨씬 까다로운 말들이 많은데

재임시절 괜히 ㄹ혜어(근혜어) 라는 괴상한 말이 나온게 아닌만큼

특유의 화법과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치적 부담감등이 겹쳐

박근혜가 한국어 자체를 엄청 못하고

일반인이나 주변사람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했기에

박근혜 측근들도 그녀에 등을 돌린 수준이고

박근혜 외국어 5개도 국제사회에서 분위기 띄우기 수준이라곤 생각되도

사실 신뢰가 그렇게 가는편은 아니고

 

대한민국 현대사 미스터리로 남은 근혜어(ㄹ혜어)

 

요즘은 우리나라에 영줌마 , 영저씨 등 영어고수들이 엥간치 많은데

제가 역사책만 거의 20년 읽었듯이

이사람들도 영어 한개만 몇십년째 파는 사람들일텐데

다개국어 어중이떠중이식으로 잘하는게 크게 자랑이라 하기도 뭐시기한거 같고

 

영어인들이나 사람들도 대한민국 대통령 영어실력은

아예 영어가 밥벌이수단이었던 이승만이나 최규하정도를 높게 쳐주지

그 이하들은 별 언급이 없고 박근혜 영어도

대한민국 대통령중 상위권으론 쳐주어도

한국어도 엄청나게 잘했던 이승만과 달리

예전 'ㄹ혜어' 등 논란이 된 한국어 실력때매 영 시원치 않은 느낌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확실히 언어학습에 대한 애정도 있고

영어 못하는 대통령들보단 그래도

영국 , 미국식 정서나 문화를 엥간치 알았기에

나름 정치나 국제적으로 더 넓게는 봤다 생각되지만

이승만처럼 영어를 시원시원하게 질러버리는 단계까진 진입하진 못해서 아쉽다 생각됨)

 

하여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박근혜는 어린시절부터 유능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국정운영 , 언어학습 등 체계적 수업을 지도 , 요구받고 

대한민국 국민중 가장 최상의 , 가장 돈지랄이 들어간 교육환경에서

진짜 공주처럼 배워왔지만

그녀보다 더 못한 환경에서 더 노력으로 더 올라간 대한민국 국민들이 많고

 

공주수업이란건 옛날부터 쭉 있어온 것이지만

당장 겉은 화려해져도

남들에 보여주기식 ,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결정시키는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바보같은 실패한 수업이고

'겨우' 공주보다는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게 여자나 인간의 운명이라는 생각입니다

 

[스페인 방문]

성년이 된 박근혜가 대학생이 되자

갑작스럽게 해외방문이 이어졌고

 

1972년 10월 스페인에서 유조선 전수식에 참석해달라는 공문이 왔고

한국과 합작회사인 회사가 유조선을 완성하자 어머니를 초대하는데

이미 정해진 바쁜 일정때문에 짬을 낼 수 없었던 어머니대신

박근혜가 참석하기로 결정됩니다

 

스페인이란 나라에 적응할 새도 없이

1972년 당시 만 20세였던 박근혜 처녀의 첫 외교업무는 시작됬고

수많은 스페인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5분간 스페인어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스페인어로 낭독을 끝내자

정열적 기질의 스페인사람들은 휘파람을 불며 환호해줬고 (ㅋㅋㅋ)

금새 그곳은 뜨거운 축제의 장이 되었습니다 (ㅋㅋㅋ)

 

 

듣던대로 스페인은 정열의 나라였고

어느곳을 가나 꽃미남 , 꽃미녀들이 환한 웃음을 보내줬고

축제의 나라답게 사람들의 천성이 밝고 유쾌해보였습니다

 

정열의 스페인 플라멩코

 

예전부터 박근혜는 스페인 산페르민 축제에 관심이 많았고

매년 7월 6일 시청앞에서 폭죽을 터트리는 스페인의 유명한 축제였고

박근혜는 헤밍웨이 작품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를 통해 이 축제를 알았고

헤밍웨이가 10년간 참여했을정도로 대단하다는 이 축제에

박근혜 역시 언젠간 나도 꼭 이축제에 참가해 자유와 열기를 느껴보고 싶었고

이얘기를 하자 행사관계자들 역시 언제든 환영한다며 화답해줍니다

 

산페르민 축제

 

비록 당시는 참가는 못했지만

문학소녀 + 맘속에 정열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박근혜 처녀는

이후에도 배낭여행하는 젊은이를 보면 떠나고픈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그 이듬해 하와이에서 거행된 한국이민 70주년 경축행사에서

육영수 여사에게 참석해달라는 초대가 있었고

이번에도 어머니는 박근혜를 대신 보냅니다

 

[하와이 방문]

이번 박근혜의 하와이 방문은

이전  기업방문인 스페인 방문때보다 더 큰 국가적 의미의 행사였고

훨씬더 큰 책임이 따랐는데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박근혜가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하는 비서진을 향해

어머니는 단호하게

 

<육영수>믿으셔도 됩니다 ,

근혜가 알아서 잘 해낼테니까요

 

당시 박근혜는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며 두근거렸고

그 행사는 우리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였기에

한치의 실수나 빈틈이 허용되면 안된다 생각한 박근혜였습니다

 

박근혜는 행사에 관련된 자료 뿐만 아니라

풍습 , 경제력 , 문화차이 , 주요인사 , 정채적 쟁점까지 공부해갔고

의상도 생각하는데 초대받은 행사나 파티를 하나둘 점검하며

그 분위기에 맞는 의상 , 옷 , 구두 , 시계 , 핸드백 등 필요한게 적지 않았고

학생신분인 박근혜는 모두 새것으로 구입할 순 없었기에

박근혜는 어머니 의상과 장신구 중 적당한것을 빌려 착용하기로 합니다

 

육영수는 당시 박근혜에게 한가지 숙제를 냈고

 

<육영수>우리를 초청한 측에 어떤 선물이 가장 적합할지 찾아보라

 

박근혜는 한국적이면서 의미있는 선물이 무엇일지 여러날을 고민하며

선물 목록을 만들어나갑니다

 

박근혜는 김홍도 그림집같은 우리문화를 알릴 수 있는 것을 생각했고

어머니는 결정에 따른 책임감을 길러주려

박근혜가 고른 선물에 대해 간섭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김홍도 그림집

 

1973년 1월 12일 오전 6시 10분 박근혜는 하와이 공항에 도착했고

교포들의 환영은 대단했고

하와이 주정부의 반응도 정중하고 사려깊었습니다

 

카할라 힐튼호텔에서 개최한 답례연회는

태평양 지구사령관을 비롯해 하와이 유력인사들이 대거참여했고

그 자리에서 박근혜는 파격적 대우를 받았고

박근혜 역시 텔레비전으로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가운데

박근혜는 축하메세지를 읽어나갔고

 

한국 하와이 이민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연설하는 박근혜

 

방송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기자들이 몰려들고

질문에 쉴새 없이 쏟아지는데 박근혜는 그 질문들에 영어로 대답하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까지 침착하게 대답을 마치자

첫날 몹시 불안한 모습으로 박근혜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던 수행원들의 얼굴에

드디어 안심의 미소가 번졌습니다

 

티비를 통해 이 광경을 지켜본 교포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500여명의 교포들이 모인자리에 초대를 받은 박근혜는 일일히

그들과 악수를 나눴고 박근혜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는

교포 1세대들을 보며 박근혜는 알 수 없는 서글픔으로 뭉클해졌습니다

 

박근혜는 그때 순간 타국에서 교포들이 흘린 피땀과 고생에 보답하는 길은

나라가 부강해지는 일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순간

화려하게 반짝이는 하와이의 풍경을 바라보던 박근혜는

자신의 손을 움켜쥔 할머니의 투박하고 거친손을 떠올렸고

그 할머니의 애잔한 눈빛에는 떠나온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있었습니다

 

<박근혜>그분들을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은 하루빨리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서야 한다

 

박근혜는 성공적으로 하와이에서의 임무를 마치긴 했지만

이로인해 떠나갈때 비행기에서 마음은 편치만은 않았고

두고온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남았습니다

 

박근혜가 다시 한국에 돌아오자 어머니와 아버지 , 외할머니 , 동생들이 마중을

나와있었고

 

먼저 아버지 앞으로 다가와 인사를 드린뒤

어머니 앞에 섰는데 박근혜는 긴장이 풀리며

내조국 , 내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저녁때 부모님께선 이번 하와이 일정에 대한 소감을 물으셨습니다

 

<부모님>무엇이 가장 인상적이더냐 ?

 

<박근혜>하와이 박물관에 가서 한국관이 있기에 둘러보았는데

생각보다 볼품이 없었어요 ,

해외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게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곳까지 이민을 가서 고생하는데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으면

그분들의 위상도 결코 높아지지 않을거란 생각을 했어요

 

<박정희>우리 근혜가 그런것까지 관심을 갖고 보다니

허투로 갔다 온것은 아니구나

 

흡족해하는 아버지의 이 한마디가 박근혜에겐 큰 칭찬이었습니다

그후 박정희 대통령은 한복을 만들어 하와이 박물관에 기증하게 했습니다

 

<박근혜>우리의 고유한 멋을 잘 살린 한복이

그곳에 진열되어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영어공부]

박근혜는 그렇게 굵직한 행사들에 초대받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차근차근 외교훈련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박근혜는 다양한 외국어능력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그로인해 본격적으로 영어공부에 매달립니다

 

<박근혜>버스를 타고 이동하거나 ,

방을 청소할때 ,

뜨개질을 하거나 ,

양치질을 할때 등

조금이라도 짜투리 시간이 나면은

새로운 단어가 포함된 문장을 암기하거나 테이프를 들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셰익스피어 , 탈무드 등

유명한 명작들을 영어로 읽을만큼 영어가 익숙해진 뒤에야

비로소 어느새 영어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영어에 자신감이 붙자 프랑스어와 스페인어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다른나라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넓어진다는 의미였다

언어는 내 삶의 질을 높여주는 수단이었다

 

(박근혜가 읽은 책들을 저도 국문 , 영문 등으로 읽어서 공감이 되고

영어는 진짜 영문학 고전을 많이 읽어야 갈증이 해소됩니다)

 

다른나라의 말을 구사할 수 있다는 성취감은 생각보다 컸고

책을 통해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만족감은 맛있는 음식이나

새옷을 입는 느낌과는 다른 차원의 행복이었고

박근혜는 점차 공부벌레 여대생이 되어갑니다

 

 

감옥에서도 영어공부한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또래 여대생들은 강의가 끝난 뒤

삼삼오오 어울려 음악감상실이나 영화관에 다니며

다양한 관심사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대학생활의 낭만을 즐겼고

가정교사 알바를 하던 친구들은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

비교하는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재밌는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아버지가 대통령인 히키 아싸 여대생인 박근혜는

솔직히 가끔은 그런 자유가 부럽기도 했지만

자유가 제한된 생활을 받아들여야 했던 박근혜는

언어공부를 하며 지식을 쌓는 일에 새로운 만족을 느낍니다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

박근혜는 나라의 미래에 대한 생각과 

산업역군이 되기 위해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하였고

평범한 대학생활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자신의 뜻으로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간 것은 후회없는 선택이었지만

원체부터 문학소녀 , 문과소녀인 박근혜에게 공대 공부는 만만치 않았고

 

박근혜는 전자공학과를 가기 위해 문과에서 이과로 바꿨기 때문에

수학을 비롯해서 공부할 것이 남들보다 더 많았고

친구들과 봄햇살을 맞으며 꽃구경도 하고 몰려다니기도 했지만

박근혜는 수업시간에 가장 몰두했습니다

 

1972년 서강대시절 박근혜

 

남자동기들은 수업이 끝나면 한무더기씩 몰려나가 주점에서 막걸리 파티를 했고

히키아싸여대생 박근혜 공주는 가끔은 그런 (서민들의) 삶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박근혜는 남자들 사이에 껴서 막걸리를 마실 만큼

대범하진 못했습니다

 

근데 같이 어울렸다 해도

서강대 남자동기들도 무서운 독재자 박정희 황제의 공주에게 막걸리 멕일만큼

간덩이가 크진 못했을거 같다는 생각이고 ㅋㅋ

 

잘못하면 남산끌려감ㅋㅋ

 

근데 저도 원체 보수적인 성격이라

20대 성인이 결혼할것도 아니면서

남녀끼리 모여서 술마시는건 저도 좀 아니라 생각하고

특히 여대생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면

부모나 미래 남편이 걱정하거나 상처입을 수가 있고

 

20대엔 영어책 한줄이라도 더 읽던가

청년들이 해야할 일도 많고 건전한 취미도 많은데

 

이성끼리의 음주나 문란을 낭만으로 포장하는 이런 미개한 대학문화가 전 좋다 생각하지 않고

그래도 이건 박근혜가 잘한듯 하고

20대 젊은 혈기와 무지성이 낭만으로 포장되기에

이런 보수적인 학생들도 존재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여튼쨌든애니웨이

하루는 서강대 남자동기중 한명이

박근혜에게 성큼 다가오더니

 

<남자동기>근혜씨 나 데모하러 갑니다

 

하고 말을 건냈고

박근혜는 잠시 뒤 그친구의 등에 대고

 

<박근혜>무슨 이유로 데모하는 건데요 ?

 

(무슨 이유긴 니네 아빠지 ㅡㅡ;; )

 

그 남자친구는 뒤를 돌아보더니 씩 웃으면서

 

<남자동기>몸좀 풀려고요

 

하고서 사라졌습니다

마치 나 운동하러간다는 말처럼 일상적으로 들렸고

데모를 하더라도 과 동기들은 수업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수업시간마다 빈자리가 거의 눈에 띄지 않을정도로

출석률은 높았고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온 남학생에게 교수님이 이유를 묻자

남학생은

 

'데모하고 왔습니다'

 

라며 성큼 자리에 가서 앉았고

그 남학생의 얼굴에는 팽팽한 긴장감보다

수업시간에 늦은 쑥스러움이 배어있었습니다

 

여대생 박근혜가 당시 바라보던 데모고

아버지의 독재를 반대하는 데모들이었을 것인데

 

군부독재 시절 데모하는 학생들

 

자신의 동기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몰아내려 일상적으로 시위나가는

1970년대 시대상 ,

이런 시대상에서

당시 박근혜는 할 수 있는건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이었기에

박근혜는 점점 학과공부에 매달렸고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박근혜>아버지가 알려진 분이셨기에 내 대학생활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운신의 폭이 좁았다 ,

혹시 내가 실수라고 한다면 부모님 얼굴에 누가될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항상 긴장하며 지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었다

 

박근혜는 천성적으로 수줍은 히키+아싸성향도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들로

여대생 박근혜는 그렇게 흔한 미팅한번 나가보지 못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밤 늦게까지 거리를 돌아다녀 본적도 없었습니다

 

대통령의 딸은 그렇게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책임감이 요구되는 자리였고

그렇다고 박근혜는

돌출행동이나 엉뚱한 일을 만들어 경호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박근혜 역시 경호팀들이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로

K-여대생에 불과한 자신을 경호하는일 자체가

굳이 지루하고 피곤한 일들임을 알고 있었기에

괜히 쓸데없는 일을 하며 남들에게 민폐끼치고 싶지 않아했습니다

 

[여대생 박근혜의 일탈]

하지만 단 하루

박근혜는 경호팀의 눈을 피해 일탈을 감행했고 (근혜님은 못말려ㅋㅋ)

박근혜는 학교에 도착해서 강의실로 가는척 하다가

뒷문으로 빠져나가 명동으로 향했습니다

 

경호원 미안해요 오늘 하루만은..

 

가끔씩 일탈을 즐겼던 박근혜

 

명동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창문을 활짝여니

기분좋은 봄바람이 들어왔고

하늘에는 솜사탕처럼 풍성해보이는 뭉게구름이 평화롭게 떠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명동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발걸음은

날아갈듯 가벼웠고

거리를 걷던 중 박근혜는 중앙극장 앞에서

영화 천일의 앤(영국왕비 앤 불린의 생애를 다룬 작품으로

평민에서 왕비자리까지 얻너낸 미인

+ 대영제국을 연 엘리자베스 여왕 엄마로 유명합니다)

 

포스터를 보고 박근혜는 무작정 표를 끊고 영화관에 들어갔고

평일오전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고

박근혜는 앤 불린의 기구한 삶에 영화를 보는내내 가슴이 조였습니다

 

천일의 앤

 

영화를 보고나서 명동 거리를 걸으며

박근혜는 봄날 기운을 만끽했고

사람들의 가벼운 옷차림에서 봄기운이 몹시 느껴졌고

쇼윈도에 걸린 옷들을 구경하다 맘에드는 옷이 있으면

들어가서 걸쳐보기도 합니다

 

옷가게 점원이

어디서 많이 본거같다고 티비에 나온적 있냐는 질문엔

 

<박근혜>흔한 얼굴이라서 누구랑 비슷하단 말 많이 들어요

 

하며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20대 시절 박근혜

 

명동거리엔 멋쟁이들이 많았고

그 당시 유행하던 나팔바지부터 미니스커트까지

경쾌한 여대생들의 옷차림이 보는 눈을 즐겁게 했고

기타를 둘러매고 오가는 남자들도 심심찮게 보였습니다

 

1970년대 초 서울번화가

 

 

박근혜는 길을 걷다가 맘에 드는 찻집을 발견했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커피향이 코끝을 맴돌았습니다

 

박근혜는 창가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활기차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맞은편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는 책을 읽고 있었고

그도 자신처럼 수업을 땡땡이 친 모양같았고

잠시 그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먼저 웃음을 지어보였고

박근혜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찻집 안에는 모짜르트의 음악이 흘렀고

그저 평화롭고 나른한 한때였습니다

 

<박근혜>혼자만의 자유 ,

참 소중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박근혜의 소심한 일탈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할때

박근혜는 명동성당에 들려 저녁미사에 참석했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간절한 바람들이 느껴졌고

박근혜의 마음 역시 알 수 없는 경건함으로 고요해졌습니다

 

명동성당 미사

 

성당을 나오니 거리는 어두워졌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습니다

 

충동적인 일탈이었지만 후회되진 않았고

다만 걱정하고 계실 부모님과 비상걸렸을 경호팀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꾸중을 들을 각오로 집으로 돌아왔는데

의외로 부모님은 담담한 표정이었고

의외로 아무일도 없다는 듣이 저녁식사를 하셨습니다

 

다음날 태연한 모습으로 학교를 가니

한 친구가 어제 어디갔다왔냐고 , 경호원이 찾았다고 물었고

박근혜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습니다

 

<박근혜>천일의 앤 봤나요 ?

 

친구는 뜬금없어했고

 

<박근혜>어제 그 영화를 봤거든요

 

그제야 친구도 이해하겠다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친구>근혜씨 ,

다음엔 혼자보러가지 말고 같이가요 ,

봄인데 강의실에만 있지나 답답해요

 

[여대생 박근혜의 일상]

근데 박근혜가 자서전에 쓴 묘사들을 보면

사람들의 표정이나 일상적인 모습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고

그런저런 묘사들 보면 

평생 새장속의 새나 공주로 지내서 한편으론

서민적 , 일상적인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서민음식 JMTGR

 

부잣집 출신들은 진짜 모르는 서민의 세계(현대재벌가 정몽준의 고시원 방문짤)

 

소심한 일탈사건 , 그후로 별다른 사건 없이 조용히 시간은 흘렀고

연구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박근혜 역시 점점 공대생의 모습을 갖춰갑니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느라 밤늦게 집가는 일도 있었고

독한 화학약품때문에 스타킹이 뚫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남학생>근혜씨 , 스타킹 땜질해야겠네요

구멍이 크게 났네요

 

과엔 여학생이라곤 단 둘뿐이었기에

가끔 농담스런 말을 듣곤 했습니다

 

이런일이 잦아서 나중엔 남학생이던 여학생이던 구분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어울려 지냅니다

 

가끔 친구들과 어울려 학교앞 음악다방에 앉아 봄햇살을 즐기며

수다를 떨었는데

남학생들이 피는 담배연기는 참기 힘들었고

당시 학교앞 다방은 지금의 카페느낌이 아니라

너구리 굴 속처럼 어두운 곳이 많았고

송창식 등의 음악이 흘러나왔고

가끔 장발의 남자가 통기타를 치며 구슬픈 노래를 불렀습니다

 

1960~7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 '다방'

 

여대생 박근혜의 점심은 도시락을 싸가거나 학교 구내식당에서 해결합니다

구내식당 점심메뉴는 딱 3개였고

 

짜장면 , 볶음밥 , 오므라이스

 

였는데

이중 짜장면이 가장 싸고 맛있었고

 

옛시절 짜장면

 

짜장면 30원 , 볶음밥 50원 , 오므라이스는 70원쯤 했고

친구들마다 식성이 달랐기에 3가지 메뉴를 시켜놓고

나누어 먹으며 수다를 떠는건 대학생활의 재미중 하나였습니다

 

서강대 개교 10주년이 되며

과별 행사가 있었는데

전자공학과는 생긴지 2년밖에 안되

다른 과보다 인원수도 , 모아둔 과 활동비도 적었고

강의가 끝나면 남학생들이 우르루 한자리에 모여

행사때 뭘할지도 열띤 토론도 벌입니다

 

'돈도 없는데 입는것 보단 벗는게 낫지 않을까요 ?'

 

'역시 머리가 좋아 , 우리는 그냥 벗고 뛰죠'

 

박근혜는 가방을 챙기며 잠잖코 남학생들의 말을 듣자니

웃음이 나왔고

 

'근혜씨 , 우리가 뭘하면 멋있다고 소문이 날거 같아요 ?'

 

<박근혜>글쎄요

 

결국 전자공확가 남학생들은 아프리카 토인으로 분장하기로 했고

박근혜는 여학생으로서 전자공학과 깃발을 들기로 결정됩니다

 

토인 복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진 박근혜는

두말 없이 기를 들고 선두에 서서 신촌까지 행진했고

웃통깐 남학생들이 토인 복장을 한 채

얼굴에 검댕이 칠을 하고 있으니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키득거리며 모여들었고

박근혜 역시 남학생들의 몰골을 보니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과동기들도 서로를 바라보며 배꼽 빠지도록 웃었고

나중에 돌이켜봐도 참 유쾌한 하루였습니다

 

신촌 로터리로 행진하는 박근혜 여대생 (70 전자)

 

박근혜 아버지가 나폴레옹 뽕에 빠졌듯이 박근혜도 이때부터 좀 잔다르크 뽕에 빠진듯

 

학교 규칙이 매우 엄격해서 수업에 빠지면 진급이 어렵고

제때 졸업도 못했는데

교수님들은 학점에 매우 엄격했고

정말 열심히 하지 않고는 A 학점을 받기 어려웠고

전자공학이 어려운 학문이라는 것은 알고 시작했으니

박근혜는 더욱 잘하려 했고

무거운 책을 옆구리에 끼고 연구실과 강의실을 열심히 넘나듭니다

 

[밤하늘의 꿈]

3학년이 되니 실험실 과제가 많았고

물리실험은 2인 1조로 진행됬는데

그날 박근혜의 파트너는 ROTC 후보생(대학생 군장교) 친구였고

 

서강대 ROTC(학군단) , 서강대학교 총동문회

 

대학교에 있는 대학생장교 ROTC , 영화 클래식(2003)

 

그 친구는 후보생 교육이 끝나는 저녁 7시에 실험실에서 만나 과제를 하자했고

시간에 맞추어 실험실에 도착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친구가 나타나지 않았고

늦은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하며 박근혜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어느덧 1시간을 넘어서고 있었고

박근혜는 급한사정이 있을까 조금더 기다려 보기로 했고

당시는 핸드폰은 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이니 기다리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는데

 

친구는 3시간 가까이 흘러서야 실험실에 나타났고

그때까지 실험실에 남아있는 박근혜를 보고 몹시 미안해했고

자신이 임원직을 맡고있어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시간가는줄 몰랐다며

그냥 가지 그랬냐했는데

박근혜는 약속을 했기에 그럴 수 없다 대답합니다

 

당시는 통금제도가 있었기에

밤 12시 통금을 생각해 둘은 실험을 다음날로 미루고

공학관을 빠져나왔고

친구와 학교정문까지 걸어가는동안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장래희망 , 가족이야기 , 전자공학에 거는 기대 등

자못 진지한 대화가 오고갔고

박근혜는 친구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박근혜>누군가의 의지와 소망 ,

미래를 향한 꿈과 열정을 상상하고 있으면

인생이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박근혜>세월이 흐른 뒤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

 

차가운 밤공기를 맡으며 친구는 먼 미래를 떠올렸습니다

 

<친구>자기가 원하는 바대로 살고 있으면 좋겠어요 ,

근혜씨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데요

 

<박근혜>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

다만 꾸준히 공부해서 학자나 연구원이 됬으면 좋겠어요

 

그날은 유난히 공기가 차갑고 맑은 가을밤이었고

밤하늘에 북두칠성이 빤작이며 빛을 발했습니다

 

[의문의 서강대 수석졸업]

졸업이 다가올 무렵

박근혜는 수석졸업이라는 소식을 들었고

예상 못한 일이라 무척 놀랐지만 박근혜는 정말 기뻤습니다

 

(박근혜 자서전에 이렇게 써있는데

박근혜 졸업당시 우연히 서강대 1등 선정방식이 바뀌었다고도 하고

솔직히 양심문제인지 지능문제인지 의문스러운 대목 ;;)

 

다음날 가족들이 모인 점심식사자리에서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렸는데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기뻐하셨습니다

 

서강대 수석졸업자 , 박대통령의영애인 박근혜양(전자공학과) 은 이공대에서 수석을차지했다 , ㅉㅉ

 

그날 오후 아버지 집무실 복도에서 비서실장에게 축하인사를 받았고

부모님 외에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사실이라 의아해 물어봤더니

아버지가 너무 기뻐하시며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합니다

 

늘 냉철하고 엄격 , 근엄하던 박정희 대통령도

딸이 학교에서 1등해오자 동네방네 자랑한 팔불출이 된 것이었고

갑자기 박근혜의 콧등이 시큰해졌습니다

 

졸업식을 앞두고

박근혜가 입을 한복을 골라주는 어머니의 눈가가 붉어졌고

 

<육영수>수석으로 졸업하는데

옷 한번 안해주고 입던옷을 입으라 해서 미안하다

 

박근혜는 활짝웃으며

괜찮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표정은 여전히 미안하다 말하고 있었고

박근혜는 어머니의 옷을 깨끗히 손질해 입은것이 오히려 더 뜻깊었습니다

 

서강대 졸업식 당시 박근혜

 

서강대학교 수석졸업은 어머니에겐 최고의 선물이 되었고

박근혜는 뒤늦게 이것이

자신이 어머니에게 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효도였다고

깨달았습니다

 

<박근혜>(우리 가족의) 불행은 소리없이 찾아오고 있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하는 점은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박근혜 서강대 수석졸업은

본인은 자랑스럽다 써놨지만

논란이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이고

 

제가 본바로는 웃긴게

진짜 공부 잘하거나 정시로 학교 뚫은애들은 공부얘기 안하거나 조용히 찐따처럼 있고

 

(대신 성적이나 공부 그런거 물어보면 자신있고 시원시원하게 답해줌)

 

수시로 들어오거나 뒷구멍으로 들어오거나 1등한애들은

이상하게 공부 부심부리며 남무시하거나 더 설치고 다니는 경향이 있고

 

(그리고 마치 다들 짜맞춘듯 집요하게 캐물으면 지혼자 ㅂㅅ처럼 발끈하는 패턴이 있음)

 

특혜로 1등한 애들은 어디가서 1등했다거나 학벌부심부리며 꺼드럭대면 안되고

오히려 자랑이라기보다 부끄러워해야 할 박근혜의 흑역사입니다

 

박근혜는 대통령 , 장기집권독재자 딸로 살은

인생이 여러 특혜논란이 있는 인물이고

박근혜가 52년생인데 2월 2일생 , 빠른년생으로

학교를 1년 일찍들어간거로 보이고

박근혜가 성심여중 입학할 당시는

입시를 치러 중학교에 진학했던 시기였고 

원래는 전과목 모두 시험을 봤는데

박근혜가 중학교 입시를 치를 때는

 

'어린이들의 수험부담을 덜어준다'

 

는 이유로 우연히 1964년 단 한해동안 국어 , 산수 두과목만 보았고

박근혜는 소수정예 귀족학교 + 명문으로 꼽히던

서울 성심여중에 합격 , 이듬해부터는 다시

전과목 모두 시험보는거로 다시 원상복구되는 우연이 일어났고

 

(그다음해 초딩들 무즙파동 터짐ㅋㅋ)

 

이게 막 대한민국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박정희 눈치를 보던 

누군가가 영향력을 행사한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고

이해 입시때 삼성전자 사장을 지낸 진대제 어린이는

2과목만 보는 바람이 국어와 산수(수학) 에서 높은 성적을 거둬

경북중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하고

그럼에도 1965년 입시부터 다시 모든과목을 시험치게 되며

박근혜가 입학할 단 1년을 빼곤 2과목전형이 그냥 사라졌고

구체적 이유등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 아버지도 박근혜랑 동갑인

52년생인데 박근혜가 2과목으로 들어가고 바로 다음해

전과목전형으로 시험쳐서 경복중을 들어가셨고

 

(아버지때 무즙파동이 있었다 하니 박근혜가 1년 빨리들간듯)

 

당시는 중고등입시가 있었기에

이후에도 서울 경복고(46회 , 이수만 SM 회장 6년 친구임ㅋㅋ) 까지

시험쳐서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가셨던 전국권 수재셨는데

 

(당시 고교서열이 경기고 다음이 서울고나 경복고였고

아버지 친구들이 한반에 서울대를 절반 이상이 갔음)

 

아버지 말로는

경복고가 전국수재들 집합소긴 했는데

그당시에도 경복고에도 장차관 아들놈들이

5명정도는 그냥 입시시험이 아니라

뒷구멍으로 암암리에 들어왔다한거 같고

 

(5명빼곤 다 입학시험에서 초고득점해서 들어왔기에

명문자부심 그런게 현재까지도 있음)

 

박정희나 육영수가 유능했다지만

박근혜 사례를 보면

본인 딸을 공정하게 교육하는 것엔 결국 실패했고

윗물 , 대통령부터 썩은거라 그밑에 장차관들도 설치게 된거고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도

자식교육에선 결국 무력하고 부패한 후진국 독재권력자였을 뿐이고

 

육영수 역시 이미지는 선하고 좋지만

자신의 딸 박근혜가 서강대 공대 수석할 수준이 절대 아니란걸

본인도 분명 알았을텐데

기뻐했다는 걸 보면 분명 치맛바람이나 문제가 있었던 거고

 

박근혜가 서강대 공대수석이라기엔

이산화탄소를 이산화가스라 잘못 말하거나

센서달린 신발을 인공지능 사례로 혼동하는 등

과학기술에 무지한 모습을 보였기에

박근혜는 아버지의 위세를 등에 업고

불공정한 성적 특혜를 누렸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하고

웃긴게 박근혜 서강대 학점이 3학년 1학기까진

대게 A에 B , C 가 더러 섞여있었는데

아버지가 유신독재선포한 이후부터

우연히 올 A 로 바뀌는 일이 일어났고

서강대 교수들도 간덩이가 왠만큼 크지 않고서

박정희 딸 박근혜에게

A 가 아닌 학점을 주진 못했을테고

하여튼 우연이라기엔 박근혜의 학창시절 성적에 대해

석연찮은 구석이 너무 많았습니다

 

서강대 교수들의 대동단결 박근혜 올 A

 

일설에는 박근혜는 사춘기 시절에도 공부를 너무 안해서

육영수 여사가 굉장히 걱정을 하다가

주변사람들이 이를 듣고 요즘 최면술이 유행이라 조언을 해줬는데

장충식 단국대 총장 부인 소개로

최태민이 청와대에 들어와 박근혜를 최면술로 집중력을 키워

공부성적을 올릴 수 있다며 최면치료했다하고

 

(당연히 비과학적 요법이겠지만 한때 유행한 뇌파 학습법 이런 개념인듯)

 

그래서 이때 최태민 목사가 처음 청와대에 들어갔고

육영수가 박근혜에게 공부를 시키려고 하다

최태민과 박근혜의 첫만남이 이뤄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여튼 부모가 치맛바람에 말도안되고

박근혜도 문학소녀라 책도 좀 읽었고

기본 언어대가리는 있긴 있는 사람이지만

부모가 억지로 박근혜 학력 , 지능 높이려

온갖 돈ㅈㄹ에 애를 쓴 흔적이 있고

공부라는게 절대로 돈만으로 잘하는게 아닌것인데

박정희와 육영수의 지나친 교육적 욕망이

박근혜 인생을 오히려 더욱 불행히 만들었다 생각됩니다

 

박근혜 서강대 수석 댓글에

 

'조작된 성적으로 좋은학교가서 출세하면 인류의 재앙입니다'

 

라는 말이 참 공감이 됬고

공부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다 해야하지만

억지로 돈쏟아부어가며 시험공부나 학교공부 시킨다고 되는것도 아닌데

굳이 박정희일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부방법은 잘 모르고 욕심만 앞서니

운동할때 약물복용하는 최악수를 두듯이

그냥 돈만 쏟고 억지로 좋은학벌 만들려하는 경향이 있고

참 어리석고 불행해지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근데

지금(2022년) 은 근데 이 박정희 시기(1960~70년) 보다

더 퇴보해서 (;;) 입시불공정 , 비리가 더 심한시대라

지금 서울대학생들 70~80% 가 수능 , 정시가 아니라

수시로 들어와서 국민 세금빨아먹는 것으로 알고 있고

양심적으로 교육제도 씹창내서 국민 우민화 시키는

공부 진짜 ㅈ도 못하는 좌 , 우파 대한민국 정치인들

양심 있으면 국민들한테 머리 박고 정계은퇴 제발 해줘야하고

 

농어촌 전형 , 지역할당제 , 균형전형 , 저소득전형 ,

여대(이화여대 약대 , 사범대 , 의대 , 로스쿨 남자 입학금지고

여대가 약대 입학정원 절반처먹고 있음 적폐ㅅㅂㅋㅋ) ,

내신이랑 수시제도도 하루빨리 다 없애고 

올수능 100%로 돌려야 서민과 재수생들도 공정한 기회를 얻고

박근혜같은 불행한 정치인이 다시 안나오고

의대생이던 서울대생이던 '전과목' 수능과외 못하는 수준이면

공부 잘하는 척 가오잡지 말고

돌팔지 말고 양심껏 자퇴해주는게

이나라의 장래와 본인 개인의 인생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특혜 의혹이 아주 강한 박근혜같은 금수저나 정치인 자녀들뿐만 아니라

농어촌 , 장애인이나 저소득이라는 이유만으로 학문에 따라올 수준도 안되는애들

억지로 대학에 꾸역꾸역 넣어서 세금낭비시켜도 안된다는 생각이고

 

(부잣집애던 가난한집 애던

공부 못하면 억지로 대학가지말고 제발 알바라도 해서 부모님 용돈이나 드려야함 ㅡㅡ)

 

장애인의 경우도 특수한 상황으로 수능공부에 제약이 있을 시

대학총장이나 교수들의 회의와 심사를 거쳐 충분히 입학시킬 수준이 되야

교육부 허가를 거쳐서 입학시켜야한다 생각하고

금수저던 흙수저던 교육분야는 그냥 잘하는 애들을 뽑아야지

막연히 가난한집 , 부잣집 , 농촌애 , 장애인 , 여자들이라고 기회를 줘도 안되는거고

 

학문은 인간 이성과 지성의 영역이기에

철저하게 실력제로 가야하지

ㅅㅂ 가난한 고시원 서민 , 농촌 , 장애인애들 불쌍하다고 서울대 공대에 뽑는다고

걔네들이 원자력이나 반도체 , 우주선 설계할 수는 없듯이

억지로 할당량이나 특혜를 주면 절대 안되고

이런 ㅂㅅ같은 제도들이랑 기득권들의 편법 , 특혜때문에

계속 대한민국의 아인슈타인 , 퀴리부인들이 묻혀가고 있는거고 

 

전 제발 저의 이 의견에 누군가 반박할 수 있으면

반박해줬으면 좋겠고

충분히 오랜 생각과 가치판단을 거쳐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프랑스 유학]

서강대 졸업식이 있고 얼마뒤 박근혜는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박근혜는 알프스 가까히 있는 그르노블에 자리잡았고

그르노블은 알프스 지역의 중심도시로

유럽 8대대학에 꼽하는 그르노블 대학이 있는 곳이었고

문화예술의 도시답게 거리에는 바이올린 켜는 악사들이 많았고

크고 작은 공연들이 펼쳐졌습니다

 

또한 이 지역은 2차 세계대전때 레지스탕스의 거점지로서

독일 나치에 강력하게 저항했던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외국 유학생들이 많아서인지 동양여자라해서

호기심어린 시선을 보내는 사람은 드물었고

일단 박근혜는 이곳 그르노블 대학의 어학과정을 마칠 생각이었습니다

 

유학을 오기전부터 몇년동안 책과 테이프를 통해

꾸준히 프랑스어를 공부했지만

본격적인 학문에 들어가려면 어학을 보충할 필요가 있었고

그르노블 생활은 대체로 자유로웠습니다

 

한명쯤 경호원도 있었을텐데

경호원도 눈에 띈적이 없을정도로 조용히 움직였고

박근혜는 다른 유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학교 가까이에서 하숙을 했습니다

 

프랑스 유학시절 하숙생 친구들과 박근혜 , 동아일보

 

하숙집 아주머니는 남편과 일찍 사별한 뒤

딸을 키우며 하숙으로 생계를 이어갔고

그녀는 성격이 소탈하고 요리를 잘하며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그곳엔 자신 말고도 캐나다 학생 한명도 있었는데

모두가 함께모이는 저녁식사 자리는 항상 이야기로 풍성했고

그들은 한국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프랑스와 캐나다 풍습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하루는 그 아주머니에게 한 가족을 소개받았는데

그들은 박근혜를 부활절 파티에 초대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알프스 산 근처 산장에서 함께 보내자했고

박근혜는 흔쾌히 응했습니다

박근혜는 자동차로 몇시간을 달려가는 사이

점점 광활하게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잠시 넑을 잃었습니다

 

아름다운 알프스

 

그곳에 지내는 며칠동안 박근혜는

보통 프랑스 가족의 소박한 생활상을 보았고

아침일찍 남편이 마을로 내려가 빵을 사올동안

아내는 스프를 끓이고 따뜻한 우유와 커피 , 신선한 샐러드를 준비했고

식사가 끝나면 가족이 함께 뒷마무리를 도왔고

가족들은 각자의 역할이 있어

 

식탁을 정돈하는 아이 ,

설거지를 하는 남편 ,

디저트를 준비하는 아내

 

박근혜에겐 그 모습은 매우 합리적이고 따뜻해 보였습니다

다과를 나누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기타연주에 맞춰 온 가족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참 평화로왔습니다

 

곁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박근혜는 잠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았습니다

 

<박근혜>언젠간 좋은 사람을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

 

유학한 학교에서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의 국적은

독일 , 미국 , 멕시코 , 영국 , 일본 등 국적이 다채로왔습니다

 

많은 나라의 다양한 인종이 모여있으니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도 많았고

박근혜가 속한 반은 어느정도 프랑스어 구사가 가능한 학생이 모여있었기에

일상적 대화에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한반에 12명정도 인원으로 수업이 진행됬는데

그 방식이 매우 자유로왔고

원형 탁자에 둘러 앉아 그날의 주제를 정해 토론을 벌였습니다

 

프랑스의 역사 , 문화적 차이 , 동물학대나 인권문제 등

토론의 주제는 다양했고

모두들 커다란 백과사전을 펼쳐두고 진지하게 수업에 참여했고

궁금한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사전을 들춰가며 공부하고

무엇보다 강사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루는 강사가 박근혜를 지목하며

수업에 참여한 동안 가장 인상깊은게 무엇이냐 물었고

박근혜는 한국과 다른 프랑스의 수업방식을 예로 들었습니다

 

<박근혜>선생님 혼자 강단에 서서 일방적으로 서서 수업을 진행하는게 아니라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토록 이끌어간다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박근혜는 한국의 강의실 풍경과 사뭇 다른

그들의 능동적인 토론문화에 적지않은 자극을 받았고

동양권 친구들은 선생님의 질문에 수줍어하거나 머뭇거릴때가 많았는데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매우 활발하게 참여했습니다

 

유럽친구들은 동서양의 문화차이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보였고

수업이 끝난 뒤 몇몇 친구들이 박근혜에게 다가와 좀더 토론하자 제안합니다

 

학교앞 카페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샌드위치와 커피를 제공하고 있어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고

호주머니가 빈약한 유학생들은 집에 가는 길에 그 카페에 들려

값싼 샌드위치로 저녁식사를 해결했습니다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박근혜에게 여러가지를 물었고

특히 금발머리가 인상적인 독일인 여자 친구는 한국에 궁금한게 많아했고

훗날 유엔에서 일하고 싶어하던 꿈을 가진 친구였습니다

 

<금발 백인녀>너희나라는 방바닥이 뜨겁다면서 ?

길거리에서 키스를 하면 혼난다고 하던데 ?

 

그녀의 질문은 웃음을 자아냈고

하루는 어디서 그런얘기를 들었냐 물었더니

가까운 친척이 한국에 있는 독일회사서 근무한적이 있다 했습니다

 

<박근혜>유럽처럼 길거리에서 남녀가 키스하는 모습은 없어 ,

문화적 차이라고 보면 돼

 

그녀는 박근혜보다 프랑스어가 서툴렀기에

한국의 온돌문화 , 예의범절을 알려주는데는 어려움이 있었고

프랑스어보다 영어를 더 잘 구사하는 그녀를 위해

둘은 곧잘 영어로 대화했고

나중엔 프랑스어 사전을 펼쳐놓고 어려운 단어를 찾아가며 토론을 벌였고

둘은 친해져 스스럼없이 하숙집에 놀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20대 초반의 여학생답게 그녀는 발랄하고 재밌는 친구였고

몇달뒤 집안에 사정이 생겨서 독일로 돌아간 뒤로 연락이 끊겼고

얼마 뒤 박근혜도 급히 귀국을 해야했기에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었습니다

 

박근혜는 되도록이면 일찍 하숙집에 돌아가

저녁식사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고

혼자 낯선 나라에 있다보니 외로움에 젖어 차츰 목표를 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몇가지 규칙을 정했고

 

친구들끼리 다과를 즐기며 수다를 떨고 교류하는 것은 일주일에 한번 ,

단기 어학코스를 끝내는대로 그르노블 대학에 입학해 본격적 학문에 매진 등

공부에 노력하려 합니다

 

박근혜는 밤이되면 늘 가족의 모습이 떠올랐고

아버지가 즐겨 부르시던 황성옛터가 귓가에 맴돌거나

뜨개질 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박근혜는 부모님께 자주 편지를 드렸고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 또한 박근혜에겐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딸바보 박정희는 청와대 뜰에 핀

철쭉 , 라일락 , 목련을 손수 사진을 찍고 일일히 설명을 달아

편지로 보내주었고

그리고 딸의 편지를 기다리는 재미가 솔솔하다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 

이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고

프랑스로 떠나온지 6개월만에 박근혜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새로운 도전으로 한걸음씩 내딛으며 한창 꿈에 부풀어 올라있던 사이

박근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박근혜가 유학간 사이 박근혜의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행사에서

공산주의자 문세광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고

박근혜는 급히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가야했습니다

 

<라봉봉>박근혜가 탄핵이후

거의 국민쌍년 , 허수아비 , 국정농단 이미지에

온갖 욕을 먹긴했지만

전 원래 박근혜에 대해서 의외로

별 생각 없었고 오히려 외국어 잘하고 그래도 측근관리나 위기대처에만 실패했지

엄청 정치를 못하거나 그렇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박근혜 어린시절부터 교육문제에 대해 읽어보니

이때부터 박근혜 삶이 꼬이기 시작한거고

비단 박근혜 뿐만아니라

이후 줄줄히 터진

여야할거 없는 정치인 자녀 , 기득권 자녀 사태들 보면

아주 대단히 잘못됬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수많은 대한민국 청소년 , 청년 , 취업준비생들이

대기업 , 공기업 , 공무직에 들어가기 위해

서울대 입학 , 토익 950점 , 공모전 , 자격증 등 취득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나라를 좀먹는 일들이 심각하고

박근혜는 그래도 대놓고 무식하게 공주처럼 키워서

눈에 보이기라도 하지 지금이 박정희시대보다 더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은폐되어

입시조작 , 취업조작등이 자행되고 있고

 

옛날 신라위인 김유신 장군은 삼국통일이라는 거대한 업적을 이룩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부하장수와 신라병사 ,

신라백성의 아들들이

삼국통일전쟁이서 모두 죽어가는데

자신의 아들 김원술은 장군임에도 전장에서 죽지 않고 도망쳤다는 이유로

아들을 아들로 생각치 않고 죽을때까지 얼굴한번 보지 않았는데

 

김유신 부인역시 어머니로서

아들 김원술이 찾아오자 당장 꺼지라했고

이로인해 김원술은 태백산에 들어갔는데

 

당대 가장 잘나가던 국가인 신라 귀족사회 분위기가 이랬고

김유신-지소부인은

박근혜를 오구오구 치맛폭속에서 키운

박정희-육영수 부부와 정반대의 모습이고

 

지금 대한민국 기득권사회 분위기는

딱 조선말 안동김씨 , 풍양조씨 세력가에 줄서서 뇌물바치고 과거합격하거나

일제강점기 일본인(기득권 1등시민 , 국민의힘과 민주당 자녀들) ,

조센징(피지배층 노예 , 대다수 서민과 국민들)

같은 분위기고

솔직히 이대로가면 당장 이나라는 망해도 이상할일 없는 나라라는 생각입니다

 

자기 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귀한 줄 알아야하고

저도 자식을 낳으면 수시니 취업 도와달라느니 하면

바로 회초리 들거나 ㅈ팰것이고

제 아들딸이 감옥 가더라도 어쩔 수 없는거고

 

그나마 대한민국 사회에서

김영삼이나 김대중이 민주주의 거물 대통령로 여겨지는건

김영삼이나 김대중은 자기 아들들이 본인 대통령 재임시 감방가더라도

본인들이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독재와 부정부패와 싸웠다는 자부심과 프라이드가 아주 강한 인물들이었기에

법치를 준수해 못난 아들 감싸고 도는 팔불출이 되진 않았고

김대중 이후부터 다시 이런 문제가 커지면서 나라가 대혼란의 시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박근혜도 양심이 있었거나 본인 어머니 , 아버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자기가 받는 특혜에 대해서 더더욱 엄격하고 조심스러워 했다는 생각이고

아버지도 물론 문제가 있지만

아버지가 한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것에 비해

너무 철없는 여대생의 모습이었다 생각합니다

 

박근혜가 분명 본인이 공부 노력도 부정할 수 없고 최상의 교육과 환경으로

어느정도 외국어도 학습하고 머리가 완전 칠푼이라 불리거나 무식한 수준도 아니지만

ㅈㄴ 철없고 처신 잘못했다는 생각이고

 

김영삼 아들이나 김대중 아들들은 죄가 너무 명확해서

할말도 없다지만

애매하게 잘하거나 흐릿한 비리는 잡기가 진짜 애매한데

 

박근혜도 본인피셜 5개국어 가능자에

객관적으로도 나름 준수한 영어실력이 있다고 인정받는 대통령이고

실제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논란이된

정유라 , 조민 , 문준용(현직 문재인 대통령 아들) 등 정치인 자녀 및 금수저들을 보면

정유라도 금메달리스트고 조민 토익만점 , 문준용 토익 800~900점 수준에

나름 준수하거나 좋은 스펙이라 본인들이 억울한 점도 분명 있긴 있는데

그럴수록 더 본인이 만약 정치인 자녀가 아니라면 가정도 해보며

일반 시민들도 그수준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도 고려해야하고

논란 안되게 뚜렷하고 깨끗한 방식으로 입학하거나 돈을 벌어야지

분명 처신 제대로 못한거고

 

지금 처신문제가 아니라 그냥 제도를 아예 바꿔버려야

이런 금수저 자녀들의 사태들이 재발하지 않는다는 생각이고

어짜피 이런거 할거면 100% 성적제로 가야 그냥 문제가 없습니다

 

또 제가 이전부터 써오려 했지만

옛날 2천년대 전 시대와 지금 2000년대 컴퓨터가 도입된 IT 시대는 확실히 달라져서

이젠 금수저나 흙수저의 경계도 컴퓨터로 지식습득이 용이해졌기에

옛날 박근혜가 공부하던 시대에 비해 허물어졌기도 해서

 

금수저도 특혜줘도 안되지만

흙수저도 특혜 절대 줘선 안되고

이외에도 여성이 약자 '였던' 시대 , 보수적 분위기때매 여대가 옛날엔 있었지만

이젠 이화여대 , 여대 카르텔 등도 반드시 제거해야할 중요문제고

ㅅㅂ 제 사촌이 이화여대 의대 , 사범대 , 사회학과 1명씩 있는데

공부 ㅈㄴ 잘한건 잘알고 인정하는데 왜 나(라봉봉)는

꼬추달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 

조개가 없다는 이유로 ,

성적이 되도 집에서 가까운 이화여대에 입학할 수 없는지가 ㅅㅂ 의문이고

지금 약대도 절반이 ㅅㅂ 여대가 먹고있고

비단 박근혜나 금수저자녀들 , 이대생들이나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그냥 제도적으로 워낙 꼬일대로 꼬이고 썩어있어서

사회구조 자체가 계속해서 서민 , 남자 , 약자들이 죽어가며 출산률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고

앞으로 누군가 이런걸 한번 쓸어버려야 국가 기강이 바로서고

국민들이 행복해지고

국운이 산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원래 가족친척스펙자랑 해봤자 제스펙도 아니고 부질없다는 생각이라

블로그에 가족친척 이야기는 안하려지만 박근혜 적폐 쓰다보니 말이 나왔는데

 

그냥 저희 아빠나 친척들처럼

전과목 1자리수로 틀리거나 전국등수찍고 경복고나 경기고 , 의대들어가면

아무 문제도 없고 친구들끼리도 스카이캐슬같은 말도 안되는 막장드라마 안찍고

나이먹어도 같이 자부심 느끼며 친하게 지내고

 

(근데 공부가 쉬운건 아니라

대중들이 명문학교나 공부잘하는 사람들에 대해

막연한 환상이 있는건 사실이고 말도 안되는 수준의

의사 , 판사 드라마가 오늘날에도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임)

 

흙수저던 금수저던 공부 문제로 컴플렉스 가질 일도 없고

행복이 성적순은 아니지만 그냥 앞으론 차라리 ㅅㅂ 제발좀

성적순으로 그냥 줄세우기좀 해서

부모가 압력넣지 말고 알아서 성적순으로 대학가던가 해서

본인 스스로 학점따면 되고

그냥 이게 제일 공정하고 이런 세속적이고 부질없는거는

최대한 운전면허처럼 빨리 단순하고 간단하게 만들고

청소년 , 청년들은 잠자거나 운동 ,  독서할 시간 만들어주는게 제일 좋다는 생각입니다

 

하여튼 박근혜 비리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박근혜는 제가 읽어보니

여러 논린과 과장도 많은 인물이나

딱 제가 박근혜를 너무 높게 보지도 않고 낮게 보지도 않고 정확히 보고 있다는 생각이고

문학소녀 기질이 있어서

섬세하게 사물이나 사람들 표정과 분위기를 항상 살핐다는 느낌이 강하고

 

제가 어렸을때부터 문학소녀를 동경해왔고

저도 나름 문학소년이라 엥간한

한국 , 세계 문학고전은 다 읽어봤기에

박근혜가 본책도 저도 읽어봤고

박근혜가 대충 이해는 되는데

 

지극히 개인적 생각이지만

다개국어 가능자나 문학소녀들도 의외로 국내파들도 많고

영국이나 미국의 중후한 공주나 고급스러운 느낌의 문학소녀가 있는가 하면

박근혜는 뭔가 계속 그냥 국가를 그냥 개인 재산정도로 여기는

아프리카나 아시아쪽 후진 독재국가의 공주같은 느낌이 들고

딱 박근혜가 어린시절 받은 교육과 유학이 고풍스러운 신데렐라라는 느낌보단

지금도 선진국에는 후진국 , 독재국가 지도자 자녀들이

피난 겸 유학하면서 국민세금 해외로 빼돌리고 쓰고 탕진하는데 딱 그런느낌이고

 

솔직히 박정희-육영수가 박근혜 교육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이고

박근혜도 양심껏 자기 수준에 맞게 그냥 초등학교 교사정도나 한다거나

좋은 남자 만나서 애도 낳고 에세이 정도나 썼으면 행복했을텐데

부모 욕심과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정치

+ 괜히 주변에서도 헛바람이 많이 들어갔다는 느낌이고

 

하여튼 그나마 박근혜가 영어공부랑 고전독서를 하며 노력은 했기에

훗날 대통령이 되는 기초소양은 길러졌고

말한마디 , 매너 등의 중요성도 알았기에

팬클럽(박사모)도 두텁게 생겼다는 생각입니다

 

전 딱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박근혜를 평가한다는 느낌이고

박근혜던 노무현이던 박사모 , 노사모 팬클럽 힘이 너무 강해서

감정에 치우치거나 편향된 기록들이 너무 많아

좀 보기 그런것도 많은데 대한민국 대통령이나 현대사 인물들은

좀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있어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나 국민들에게 가치관의 오도가 오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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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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